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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 시스터즈 키퍼 - 쌍둥이별
조디 피콜트 지음, 곽영미 옮김 / 이레 / 2008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몇 년 전 ‘아일랜드’라는 영화를 보고 곧 현실이 될 것이라는 예감에 좋지 않은 기분을 가졌던 기억이 있다. 산 사람을 사거나 납치해 신체의 일부를 갈취하는 사건들이 신문지상에 오를 때처럼 말이다. 그래서 생각한 대안이 인간이 아닌 다른 생물에 기관들을 배양하는 것을 고려되기도 했었는데, 이 역시 윤리적인 측면에서 많은 어려움이 예상되었었다. 인간이란 본래 생명을 유지하고픈 본능이 있는 것이겠지만, 타인과 다른 생명체에 대한 비윤리적인 행위라는 측면에서 강하게 제지되어 왔었다. 허나 최근 몇 년 기술의 진보로 인해 조금 다른 인식을 가져온 것이 사실이다. 여기에는 죽어가는 사람을 그대로 방치해 죽음에 이르는 것이 또 과연 옳은 것인가라는 쟁점이 반영된 것이리라 여겨진다.
오랜 논쟁의 끝이 보이지 않듯 선뜻 선택은 쉽지 않다. 이 책을 읽다보면 결국 이도저도 선택하지 못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차라리 비양심적인 주체에 의한 행위란다면 분노의 불을 지필 수 있겠지만, 이 글의 내용은 그렇지 않다. 내 자식이 죽어가고 있다. 타인의 골수 혹은 줄기세포 등이 일치하지 않을 때 과연 부모로서 나의 선택은 어떠할까? 아직 부모가 되어보지는 못했지만, 어렴풋이 그 고뇌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문제는 또 다른 아이의 입장이다.
소설에서 안나는 언니 케이티의 죽음을 늦추는 혹은 벗어날 수 있게 하는 유일한 탈출구다. 태어날 때부터 목적이 있어 태어난 안나는 이후로 수많은 의료행위를 통해 언니에게 자신의 혈액과 골수 등을 준다. 자발적 동의는 아니었지만, 가족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이루어지는 암묵적인 합의가 있었다. 모든 것이 케이티 위주로 돌아가는 생활, 안나의 일상은 케이티의 일상과 닮았다. 건강한 안나는 아픈 케이티와 다를 것 없는 인생을 살아가고 있었다. 열 세 살의 안나는 신장이식을 남겨두고 변호사를 찾는다. 변호사를 통해 자신의 몸을 사용할 권리를 되찾고자 부모를 고소하게 되면서 가족의 울타리가 흔들리기 시작한다. 안나의 입장이 되어보라. 과연 나는 어떻게 할 수 있을 것인가? 이 또한 명쾌한 답이 나오지 않는다.
차라리 부모가 오로지 케이티만을 위한다면 쉽게 적대적일 수 있었다. 하지만, 안나 또한 그들의 소중한 딸이 아니던가. 안나가 그만두기를 바란다는 것은, 곧 케이티의 죽음이 찾아온다는 뜻이었다. 두 딸의 엄마 사라는 이러한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다. 상황을 악화시키려는 안나의 뜻을 꺾고자 하지만, 용이치 않았다. 안나의 심정도 복잡하기는 매한가지다. 자신의 선택이 곧 언니의 죽음일 것이라는 죄책감. 곧 나를 잃거나, 언니를 잃거나 둘 중 하나의 결과를 낳을 것이라는 상황은 그 누구에게도 쉬운 선택이 아닐 것이다.
결국 법정공방이 오고가고 그 대안을 찾기 위해 등장인물들의 노력이 있지만, 그들 모두 이 사건의 해결이 쉽지 않다라는 것을 안다. 가족이기 때문에 고통을 동반하고자 하는 노력은 어느 경우 모든 것을 제칠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그것이 한 사람의 인생이 반토막 나는 것일지라도. 혹여 자신을 위한 선택이 가능하더라도 스스로의 죄책감을 벗어나기는 어려울 것이다. 다행히 소설은 가족의 분열 내지는 파국으로 몰아가지는 않는다. 오히려 이전의 존재의 무게가 느껴지지 않던 안나라는 한 인간에 대해 진솔한 관심과 생각들이 싹트게 되었다. 이는 저자의 이야기 전개가 사뭇 힘이 있는 이유가 되리라 생각한다.
우여곡절 끝에 법정은 안나의 편을 들어주었다. 이 모든 것이 케이티가 원해왔던 것임을 알게 된 것이다. 케이티의 입장 또한 안나와 같지 않았을까. 나를 위해 그것도 희망이 극히 적은 일을 위해 동기를 희생하고자 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오랫동안의 치료와 입원은 결국 본인을 지치게 하여 인간으로서의 삶을 영위하는 데에 무리가 있었을 것이다. 결국 가족 내의 구성원 모두 지극히 평범한 인물들이었음을 알게 된다. 누구도 이들을 비난하거나 몰아세울 수 없는 이유가 될 것이다.
선택이 쉽지 않듯 결론을 내기 어려운 탓인지, 갑작스러운 안나의 사고는 너무나도 급작스럽다. 결국 뇌사 상태의 안나의 장기를 케이티에게 이식해 건강을 되찾는다는 결론은 조금 허무하기 까지 하다. 허나 가능성 있는 소재와 갈등을 미묘하게 살려나가는 이야기 전개 그리고 세밀한 개인의 고뇌를 담은 이 책은 걸작이라고 할 수 있다. 앞으로 더욱 많은 사회적 논의와 공감이 필요한 부분이리라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