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가몽, 조선 최후의 48년
박성수 지음 / 왕의서재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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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사를 가르치고 있노라면, 그 어느 때보다 무력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 조선 후기의 역사를 전할 때이다. 일본과 서양 열강에 의한 침탈이 뚜렷해져 오고, 그에 대한 조선의 대응이 소극적이면서도 일관성이 없는 노릇 때문인데, 그 이유가 무엇인가는 아마도 이 책을 읽어본 이라면 잘 알 수 있으리라.

난세에는 영웅이 난다고 하는데, 조선에는 오히려 간신이 더 많았던 모양이다. 워낙에 세도정치가 3대에 걸쳐 뿌리가 깊었기 때문인지도 모르나, 대원군과 명성황후의 깊은 골 또한 또 한 번의 기회를 위기로 마무리 하게 된 듯 하여 못내 아쉽다. 권력의 한 자락을 잡은 이들도 자리를 밀어내기가 쉽지 않듯이, 워낙 많은 권력을 잡은 때문이었던가...시기를 읽지 못하고 욕심이 앞섰던 것이 화근이리라.

어렵사리 권력을 잡은 대원군은 왕권강화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인 인물로 평가되지만, 지나친 보수주의 정책으로 일관했다. 이에 개화정책을 추진했던 명성황후와 대립함으로써 어려운 시기를 야기했다는 평가를 벗어나기는 힘들 것 같다. 고종의 역할이 막중했을 터인데, 이 글에서 전해지는 고종은 난세의 황제로서는 어울리지 않는 군주였다. 영리하고 명석한 면이 있었으나 사람 보는 안목이 부족하였다. 독립협회를 해산하거나 아관파천을 단행한 일들은 소위 결단력이 약했음을 드러내 주는 대목이다. 물론 정환덕이 지적했듯이, 당시 상황은 조조가 살아온다 해도 막을 수 없는 상황인 정도가 되었을지라도 말이다.

나라를 부강하게 하려는 고종의 바람과는 달리, 궁을 채우는 것은 간신들이 더 많았던 것이 바람을 져버린 가장 큰 원인으로 보인다. 과거제의 폐지는 근대화를 위한 일이었으나, 인재를 발탁치 못하는 결과를 낳았다. 주로 청탁과 뇌물에 의한 인사가 주를 이루었고, 국가 중대소사는 점치는 일과 같은 비합리적인 방식으로 처리 되는 일이 많았다. 군함을 제조하는 대목에서 볼 수 있듯이, 이익을 위해서라면 임금도 서슴없이 속이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이와 같은 분위기가 고종의 힘을 더욱 빼버리는 결과를 가져왔지만, 곰곰이 생각한다면 고종의 인사처리가 부적절했던 것이 우선이었음을 정환덕의 일기에서도 확인 할 수 있다.

이 책은 시종원 부경 정환덕이 쓴 조선 최후 48년의 세월을 담은 일기 “남가몽”을 바탕으로 해설과 함께 덧붙여 만들어진 책이다. 정환덕은 시종원의 자리에 위치한 덕에 고종의 가장 가까운 자리에 위치할 수 있었다. 궁궐안에서의 비밀스러운 일을 접할 수 있었기에 사뭇 다른 역사적인 일들도 일기에 적어 넣을 수 있던 것이다. 물론 그 동안 나왔던 책들의 내용과 크게 다르지는 않다. 다만 고종을 개인적으로 조금 더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어, 다른 책들과 약간 다른 시선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 높이 살만한 책이 되겠다. 머리말에서 저자가 쓴 “남가몽은 후일을 위해 쓴 교훈의 역사책인 것이다.”라는 마지막 줄이 기억에 또렷이 남는다. 역사는 반복되지 않지만, 반복되어지는 실수를 미연에 방지 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라는 생각이 이 책을 권하는 이유가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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