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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형의 Paris Talk - 자클린 오늘은 잠들어라
정재형 지음 / 브이북(바이널) / 2008년 4월
평점 :
절판
정재형이 요리사가 된건가?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던 책 표지였다. 학창 시절 ‘베이시스’라는 팀 이름으로 잘 알려진 그였기에, 책을 낸다는 사실에도, 책 표지가 바게트인 것에도 의아함을 가졌던 기억이 있다. 파리에서 오랜 유학생활을 했었던 것은 책을 읽은 직후에 알게 되었다. 그 동안 활동을 중지 했다고 생각했었는데, 영화 음악을 만드는 활동을 줄곧 해오고 있었다는 사실도. 뭐 사실 그리 궁금한 사람은 아니었다. 출판 직후에나 조금 관심이 되살아났던 것 외에는 생각도 없었다.
그런 그에게 이제는 친근함과 호기심이 생긴다고 할까? 문학 소년이길 원했고, 파리라는 낭만적인 공간에서 방랑자처럼 생활하고 있는 모습을 동경하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대리만족하는 마음으로 여행 책을 사 모으고는 하는 내게 이 책도 그러한 책의 일부였다. 물론 여느 여행 책과는 다르다. 유학생의 신분으로 생활하는 모습을 담은 책이기에 더 큰 만족이 찾아온다.
외로움을 느끼는 이의 글을 좋아한다. 혼자만의 공간과 시간을 가질 줄 아는 이라고 여겨지는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 이의 글 속에서 사색의 흔적을 찾는 일은 즐겁고 흥미롭다. 파리라는 공간에서의 한 남자의 사색적인 글들이 지면을 채운다. 간간히 멋스럽게 들어가 있는 사진들은 색감이 예쁘다. ‘예쁜 책이다’라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책인 것이다. 편집자의 실력이 참으로 대단?하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어찌 보면 주제도 불분명한 개인의 머릿속 생각들이 아닌가. 물론 정재형의 감각도 남달랐다. 음악적인 감각 외에도 예술가적 기질이 있다고 느껴질 만큼. 곳곳의 일러스트가 마음에 든다. 무심한 듯 해놓은 스케치마저도.
저자에게는 자신을 찾는 여정과도 같은 책이지만, 개인적인 일들을 단지 타국에서의 생활이기에 더 흥미롭게 바라보게 되는 책인지도 모른다. 허나 다른 이의 일기장을 들추어 보듯 어느 새 책에 빠져들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도 있을 것 같다. 파리에 대한 동경에서 시작되어 시작된 책읽기는 잔잔한 이야기이지만 살아가는 것에 대한 고민들이 담긴 책이라는 생각으로 마친다. 파리를 여행하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조금 적절하지 않은 안내 책이 될지 모르지만, 고민과 더불어 일상을 보내는 이들에게는 공감이 될 수 있는 책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버스를 타고 차창 강변으로 보이는 에펠탑.
또 봄볕 좋은 일요일 룩상부르그 공원에 나가 마시던 커피 한 잔.
긴 겨울의 우울함을 이겨내지 못할 거 같았던 파리의 비 내리는 어두운 오후.
골목골목 숨어있는 멋진 가게와 갤러리들, 그리고 조그마한 영화관들.
미라보 다리를 건너던 가을, 문득 어렸을 때 놀이터에서 맡던 기억의 향기.
한여름 찜통 같은 지하철 안의 열기보다 역겨운 사람들의 냄새.
결국 파리도 사람들이 만든 곳이고 사람이 살아가는 곳이다. p.3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