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법정의 역사 - 진실과 거짓 사이의 끝없는 공방
황밍허 지음, 이철환 옮김 / 시그마북스 / 2008년 10월
평점 :
절판
법에 관해서는 어느 정도 부정적인 인식이 있는 듯하다. 인터넷 상에 오르는 흉악범죄인에 대한 자비로운(?)듯한 처사에 매번 분개하는 이들도 보이고, 법이 물러 터졌다는 말도 흔히 듣는다. 뿐만 아니라 유전무죄라며 세태를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이들이 적잖다. 모두 법에 대한 어느 정도의 대중 인식으로 생각해도 무방하리라 생각된다. 부정적인 평을 면치 못하지만 사회에 꼭 필요하다고 공감하는 법은 그동안 어떻게 이룩되고 구축되어 왔는가...이 책을 보노라면 학자적인 지식은 아니더라도 얼개를 그릴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법에 대해 부정적인 사람, 혹은 법적 지식을 우선 접해 법에 대해 어렵다고 인식하는 사람들도 두루 읽을 수 있는 법의 입문서이자, 보통 사람들의 교양서로 적극 추천할 수 있는 책으로 꼽을 수 있겠다.
책은 크게 법정 편과 심판 편 두 부분으로 구성된다. 법정 편에서는 법의 이념을 실현할 수 있는 장소인 법원, 구성원인 재판관, 검찰, 변호인, 소송당사자, 그리고 법정 문화에 이르는 세부 사항을 옛 모습과 오늘날의 모습, 나아갈 방향 등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법원의 역사는 근대 이전과 이후로 나누어 살펴보고 있다. 중국의 근대 이전은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왕의 명령을 수행하는 수령이라는 존재는 지방의 행정권, 사법권을 모두 가진 존재였다. 재판을 진행하는 관청이라는 곳은 백성들에게는 두려움을 일으키는 곳이었기에, 공정하고 정의로운 재판을 기대하기에는 어려움이 많았다. 서양이라고 다를 바가 없다. 오히려 교회의 종교재판은 신의 이름을 빙자하여 사람들을 핍박하는 생지옥이었다. 얼마 전 읽은 ‘사랑과 잔혹의 세계사’에서 보았던 끔찍한 삽화들이 떠오르기도 했다.
중국의 사법권 독립은 영국 및 서양 열강들의 요구로 가능해진다. 개항장 부근의 외국인에 대한 재판권을 외국인에게 넘긴 것으로, 주권의 일부를 빼앗긴 상황이다. 중국은 반식민지 상태로 전락하여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지만, 이때의 기억은 법교육의 하나로 기능하게 된다. 우리나라도 이와 다르지 않았다. 갑오개혁에 실시된 사법권의 독립이 그것이다. 곧 일제의 지배로 완전히 박탈당하긴 하지만 말이다. 삼권분립을 완벽하게 추구하고자 했던 미국도 처음에는 가장 약한 부분 중 하나였다. 위험심사권을 획득한 이후 동등한 지위를 갖게 된 역사적인 사건들도 흥미롭다. 개인적으로 내용의 큰 줄기보다 오히려 세세한 에피소드를 읽는 즐거움이 큰 책이었다.
재판관도 마찬가지로 시간 순에 의해 그들의 위상을 살펴보고 있다. 중국은 위에서 밝힌 대로 재판관의 지위에 맞는 역할을 수행하는 이가 없었기에, 현령을 돕던 형조비장과 송사의 활동이 부각된다. 문제는 나라의 녹봉을 받는 자들이 아니었기 때문에 때로 백성을 착취하는 부류가 된다는 점이다. 이대로 20세기까지 오기 때문에 중국의 법문화는 상당히 권위적이고 부정적인 인식을 피할 수 없게 된다. 이와는 반대로 서양에서의 재판관은 왕권과 지배층의 권력에 맞서 자유와 평등을 확립하게 되는 과정으로 오늘날에도 재판관은 큰 경외심을 불러일으키는 존재이다. 오늘날에 이를 확연히 구분하는 것은 의미가 없을지 모르나, 역사적인 배경과 동서양의 법문화를 두루 살펴볼 수 있어 의미가 있다.
검찰, 변호인은 그들의 임무에 있어 적이 될 수밖에 없는 존재이다. 검찰이 우선이 되었으며 변호인은 후에 생겨난다. 검찰과 국가에 맞서 약자인 개인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로 생겨난 변호인이라는 존재의 필요성을 설명하고 있는데, 이들의 직업적인 윤리 의식 측면에 대한 부분도 흥미롭다. 중국은 여전히 죄인을 변호하는 이들에 대한 인식이 좋지 못하며 이들이 의뢰인을 만나는 기회도 대부분 박탈당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변호인 제도를 옹호하고 있는 저자의 설득은 상당히 힘이 있었다. 책을 이루는 사건 소개들에 대한 적절한 설명이 이를 돕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의 뒷부분인 심사 편에서는 법관의 차림새, 법정문화, 역사속의 심판,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심슨재판 등 유명한 재판들을 담고 있다. 이를 통해 종합적으로 앞으로 나아가야할 법정의 문화를 내다보고 있는 부분이라 하겠다. 이 책의 저자 황밍허는 중국인 법관이기 때문에 중국의 모습을 대개 설명하고 유럽과 미국의 예를 비교하여 설명하는 형식을 취했다. 법에 관한 글이 재미 보다는 지식이라고 생각했던 나로서는 의외의 경험을 하게 되었다. 흥미를 불러일으키고는 재미있는 에피소드로 설명하고 있는 황밍허의 글에 매료된 것이다. 법은 이러해야한다는 그리고 법은 우리에게 너무 소중하다는 인식을 불러일으키게 하는 힘을 가진 책이라 생각된다. 법에 대한 인문서로 교양서로 널리 읽혀졌으면 하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