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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초 1
김탁환 지음 / 민음사 / 2008년 7월
평점 :
품절
신라시대의 승려 혜초가 고대 인도의 5천축국을 답사한 뒤 쓴 책이 왕오천축국전이다. 이 책은 1908년 프랑스의 동양학자가 중국 북서 지방 둔황 천불동 석불에서 발견하면서 세상에 알려진다. 책은 당시 인도 및 서역 각국의 종교와 풍속·문화 등에 관한 기록이 실려 있다. 현재 파리국립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는 이 책은 얼마 전 읽은 외규장각 도서를 통해 관심이 높았던 책이었으므로 책읽기에 앞서 기대가 컸다.
김탁환의 혜초는 왕오천축국전이라는 역사적 사실에 작가의 상상을 더한 팩션이다. 워낙 역사를 좋아하고 요즘 읽었던 팩션이 흥미를 자극했던 터라 읽히는 문제에 관한 두려움이 없었다. 그러나 이 소설은 조금 달랐다. 1권과 2권이라는 장편소설이기도 했지만, 다른 소설책과는 달리 쉬이 읽히지 않는 책이었다. 우선 고문서의 느낌을 살리기 위한 작가의 노력으로 상당히 아름다운 문체가 되긴 하였으나 몽환적인 느낌이 강해 집중하기가 어려워지는 이유 때문이었다. 또한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실크로드 길 위에 낯선 여행지를 두루 살피는 여정은 좇다가도 눈앞에서 놓치게 되는 실수를 범하게 했다. 어찌어찌하여 혜초의 여정을 따른다. 혜초의 여정만큼은 아니겠지만 쉽지 않다.
고대 인도 왕국과 실크로드 위 낯선 나라들을 여행하는 혜초의 모습과 고선지와 오름, 혜초와 김란수를 중심으로 쫓고 쫓김의 모습이 교차되어 진행되는 소설이다. 둘은 섞이지 않는 물과 기름처럼 보이지만, 하나의 이야기를 위해서는 또 다른 이야기가 힘을 보태 준다.
발로 깨달음을 얻으려는 혜초의 긴 여정은 참으로 막막하고 힘들다. 원효가 당으로 깨달음을 얻기 위해 떠나는 초입 길에 해골물을 마시며 깨달은 바는 도는 어디에서나 닦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혜초는 그러한 깨달음도 깨달음이요. 자신이 하고자 하는 바도 목적은 그와 같다고 말한다. “깨달음을 얻는 데 때와 장소는 중요하지 않다는 진리의 말씀을, 법명을 받던 날부터 배우고 익혔습니다. 하나 저는 머물며 경전을 파기보다 그 경전이 만들어진 자리를 손과 발과 몸으로 만지고 싶었습니다. p. 94" 이러한 의도로 시작된 고행 이었던 만큼 발로 찾은 곳에 대한 묘사가 주를 이룬다.
혜초의 여정과 함께 소설의 큰 줄기를 이루는 고선지와 김란수 그리고 오름이 나오는 이야기는 전적으로 장가의 상상력을 통해 만들어진다. 기억을 잃은 혜초의 자신을 찾기 위한 이야기로 볼 수 있는데 이 책을 읽을 때에 흥미를 잃지 않게 하는 요소가 된다. 이 책을 미리 읽은 사람들의 대부분이 평가한 대로 탄탄한 구성이 되지 못해 아쉽기는 하나 고선지와 혜초의 만남을 소설로 엮은 작가의 노력은 높이 평가할 수 있는 부분이다.
김탁환은 이 소설을 쓰고 싶지만 쓸 수 없는 작품이었다고 말한다. 소설 작업 이전의 기초 자료를 모으기 위해 답사는 필수인데 그것이 여의치 않았다고도 고백한다. 지금 시기에도 그러한데 당시의 혜초는 어떠했겠는가. 이러한 혜초에 대한 비상한 관심을 몰고 왔으니 작가의 공로는 대단하다. 혜초의 모습을 깨달음을 얻기 위한 글로 엮어 조금 더 감동적으로 그려내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긴 하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