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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견쟁이 신들 ㅣ 호시 신이치의 플라시보 시리즈 27
호시 신이치 지음, 윤성규 옮김 / 지식여행 / 2008년 3월
평점 :
품절
호시 신이치라는 작가의 작품은 이번이 두 번째다. 쇼트쇼트 스토리는 이제 조금 익숙해진 정도다. 여전히 이야기에서 얻게 되는 인상은 강렬하다. 짧지만 묵직한 무게가 느껴지는 글들이다. 참견쟁이 신들이라는 제목에서 연상할 수 있듯이, 인간 세상은 논리나 이성으로 따지고 들 수 없는 부분이 있다는 전제하에서 이야기들이 시작된다. 어릴 적 듣던 귀신 이야기에서 느껴지는 인과응보라든지 선과 악에서 선의 승리라는 보편적인 진리가 숨어있는 글들이라고 볼 수도 있다.
신들의 이야기 중 단연 으뜸은 고대 그리스, 로마의 신들일 것이다. 인간의 감정을 가지고 제 멋대로 활약하는 이야기들은 다시 살펴보아도 재미있다. 인간들의 모습에 못마땅해 하며 참견해대는 모습을 기억하는데, 이 책도 그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이것저것 참견하는 신들의 모습은 동과서가 어찌 그리 닮았는지. 아마도 인간은 신의 존재를 믿고 싶어하는가보다. 인간 사회의 팍팍한 고단함으로부터 위안을 얻고 싶은 욕망이 투영되어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물론 그 반대의 경우를 포함하기도 하지만.
참견쟁이 신들 중 내게 가장 큰 인상을 남긴 이야기는 밤의 목소리였다. 가장 보편적인 이야기이지만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는 점에서 가장 큰 점수를 주고 싶다. 어느 날 찾아온 이상한 환영과 목소리...귀신을 느끼는 경로들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야기의 남자도 마찬가지다. 친구를 죽이고 자해를 해서라도 죄를 감추려는 이 남자는 자신이 떨어뜨린 꽃병에 맞아 기절해 위기를 모면한다. 사건의 장소를 찾은 좀도둑이 결국 죄를 뒤집어쓰고 만다. 제정신을 차린 후 그 사실에 안도하는 남자는 화들짝 놀랄만한 소식을 접한다. 어제 일처럼 생각했던 남자의 회상과는 달리 사건이 일어났던 것은 3년 전. 그동안 유죄판결을 받은 좀도둑은 사형을 당하고 만다. 눈감으면 떠오르는 목소리와 환영은 그 남자의 것이었다. 살아갈 날 동안 느끼게 될 귀신의 존재는 이 남자에 대한 벌이다. 신의 존재를 통해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이들을 벌주고 있다.
신의 존재가 인간사회만큼 아니 훨씬 더 오래전이라고 믿게 된 것도 인간들의 믿음에 의해서였다. 참견쟁이 신들이라고 하지만 인간의 요구가 만들어낸 결과였으며 결국 인간사회를 지켜주는 막을 형성해 왔다고 생각된다. 인간에 의해 그 존재의 불안정함 속에서도 여전히 큰 위력을 발휘하고 있는 신들. 이 책의 다양한 이야기들이 극한 반전을 보이면서도 우리에게 크게 낯설지 않은 이유는 스스로에게 물어야 할 것 같다. 참견쟁이 신들을 통해 인간 사회의 모습을 들여다보는 묘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시사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며 잔혹한 것을 다루는 이야기가 아님에도 인간의 모습을 헤집듯 파헤치는 저자의 글들에 빠져들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