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연서
한호택 지음 / 달과소 / 2008년 8월
평점 :
전라북도 익산시 금마면에는 미륵불이 용으로 변해 내려온다는 큰 사찰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바로 미륵사지다. 이를 창건한 이가 무왕(어린 시절 장이라 불렸다)이었다. 백제의 귀족들의 권력다툼은 결국 백성들로 하여금 미륵불을 기다리는 염원으로 나타났고 무왕에게 이어진다. 이곳이 사비가 아닌 익산이라는 데에 생각해 볼 여지가 있다.
때는 삼국시대였고 삼국의 다툼 속에 백제는 그 힘을 잃어가고 있었다. 성왕의 죽음은 그 아들의 기운마저 가져가버린다. 다시는 여인을 취하지 않겠다던 위덕왕은 한 여인을 안았고 한 아이가 왕도 모르는 새 나고 자란다. 그가 장이다.
어린 장은 어린 시절 마를 판 일로 유명하다. 그래서 그를 서동이라 불렀다. 이 소설은 어린 시절 익숙했던 이 노래부터 시작하지만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아니다. 예상과는 다를 수밖에 없는지도 모른다.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이라고는 남아있는 역사서의 작은 지식에 불과하므로. 저자의 역사적 상상력은 빈 공간을 메워주는 데에 부족함이 없다.
소서노의 칼을 얻기 위해 일본으로 떠나야하는 장은 수련에 매진한다. 항아리를 만드는 방법과 장사를 하는 방법들을 통해 깨달음을 얻는 과정은 인상적이다. 스승과의 대화를 통해 장이 느꼈을 깨달음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 또한 소설의 또 다른 재미가 된다.
『왕평, 아미지, 서기, 일지 알면 알수록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많았다. 다양한 사람들, 모래알처럼 수많은 다양한 생각들...왕평이 장사를 시킨 뜻이 그런 것을 배우게 하려는 데 있는지도 몰랐다. p.114』
『은무문 삼전이 금무문 삼전으로 둔갑하고, 공으로 금무문 이전을 받은 사람이 그 돈을 벌게 해준 장사를 천한 짓이라고 경멸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p.115』
『좋은 것을 배웠다. 그것이 사람사이의 관계고 크게는 국가 간의 관계도 그와 다르지 않다. p.115』
다양한 이해관계와 권력의 다툼 속에 고군분투하는 장은, 나를 살리기 위해 너를 죽이거나 너를 위해서는 내가 죽거나가 아닌 너를 인정하며 나를 키우는 방법을 찾는 데에 매진한다. 그동안의 수련은 장에게 깨달음을 주었고 장은 형과 아버지를 잃지만 백제의 왕위를 지키고 선화공주와의 사랑을 지킨다. 그 과정을 따라가노라면 지위를 버리고 사람들을 사랑한 장의 마음을 엿볼 수 있을 것이다.
마를 팔던 서동이 무왕에 오르게 된 과정을 전개하고 있는 이 책은 역사적 사실에 상상을 가미한 팩션이다. 접하기 어려운 백제를 그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선화공주와의 결혼으로 유명한 무왕의 이야기는 짧은 문장이지만 아름다운 노래 같다. 길지 않은 문장은 읽는 것이 아닌 귀로 전해지는 바람소리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매혹적인 소설이다. 차분하면서도 감동이 있고 사랑을 느낄 수 있는 글이다. 해서 즐거운 마음을 간직한 채 읽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