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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후르츠 캔디
이근미 지음 / 달 / 2008년 8월
평점 :
절판
후르츠 캔디라는 제목과 달콤한 향내가 날 듯 한 책표지를 보면서 그리고 이 책을 읽기 전에 추천사에 적혀있던 칙릿 소설이라는 사전지식을 떠올리며 책을 읽다가, 화이트 데이에 대한 생각이 문득 떠오른다. 화이트 데이의 달콤한 유혹에서 일단 거리를 두고 어린 연인들의 사랑이라며 자못 “더” 어른인 척 해가며 무관심 한 듯 하지만 내심 기대가 생기는 것은 어쩔 수 없듯 이 책을 읽으면서 그런 느낌을 가지게 되었다.
무릇 칙릿 소설하면 내용의 전개라든지 소재의 진부함 때문에 관심의 영역에 넣지 않는 것이 고상함이라고 생각하다가도 이내 빠져들고 마는 상황 때문에 그러한 생각을 하게 된 것이리라. 소설의 초반부터 심상치 않은 우연성의 연속은 “역시나”라는 생각을 채워주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읽기에 속도가 붙어 한 자리에서 읽고 말았다.
소설은 신데렐라가 되어야 하는 여주인공이기 때문에 처음부터 공주의 등장은 없다. 보통의 학력, 외모 등 현실에서는 눈에 띄지 않는 조안나가 등장한다. 이러한 점이 아마도 진부하지만 눈길을 끈다. 광고계의 거인 “자이언트”에 공채로 당당하게 입사했건만 오해로 인해 프린세스가 되어버린다. 너무 쉽게 신데렐라가 탄생하는 과정은 싱거울 정도다.
이때부터 이 책이 맘에 들기 시작했다. 오해가 지속되는 과정과 깨지는 과정은 조안나를 공주에서 파렴치한 사람으로 바꾸어버린다. 좌절과 실망 속에 나날을 보내지만 사랑의 성공이 아닌 결국 조안나라는 여자의 노력으로 광고계의 프린세스가 된다. 조안나의 노력은 광고 카피와 맞물려 그려진다. 바꿀 수 있는 건 바꾸고 바꿀 수 없는 건 받아들여라는 광고카피처럼 상황을 받아들이고 현실에 좌절하지 않는 현명함으로 대처해 나아간다. 물론 사랑의 아픔이 때로 안나를 버겁게 할 지 모르지만 말이다.
“꿈이 있으니 겁날 게 없다. 조금씩 평안이 깃들었다. 마음이 상하면 세상 그 어떤 것도 소용없는 일이다. 바다가 출렁여도 내가 요동하지 않으면 그만이다. -p.250-”
안나의 이야기에서 마음에 들었던 점을 하나 더 고르자면 직장 상사와의 관계에 있어 무엇보다 쿨했던 점이다. 쿨하다는 것이 어느 것에나 무게를 두지 않고 객관적으로 대한다기 보다는 상대의 약점이나 실수 따위에 연연해하지 않았던 점이다. 통쾌한 복수를 처음에는 기대했지만, 역시 안나의 모습이 쿨했기 때문에 더없이 마음에 들었던 캐릭터였다.
“세월은 너무 빨리 우리를 때묻게 한다. 하지만 때는 마음만 먹으면 씻어낼 수 있으니 걱정 없다. -p.260-"
제목의 후르츠 캔디는 안나에게는 사랑이었을지 모르지만, 내게는 이 소설 한권이 후르츠 캔디가 되었다. 항상 끼고 있으면 문제가 될지도 모르겠지만, 가끔 읽노라면 재미와 감동을 얻을 수 있어 찾게 되는 책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