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밀사 - 일본 막부 잠입 사건
허수정 지음 / 밀리언하우스 / 2008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책의 시작은 조선이다. 야심한 밤 구중궁궐에서 왕과 신하가 독대하는 장면이다. 왕은 효종, 신하는 이번 통신사 행렬의 종사관을 맡은 남용익. 독대를 금하고 있는 조선에서 무언가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품고 있다. 효종은 우리가 알다시피 북벌정책을 추진했던 왕으로 유명하다. 아버지 인조는 소현세자를 내칠 만큼 청을 경멸하여 효종으로 하여금 북벌을 완성할 것을 당부했다. 그런 효종에게 우선 필요한 것은 일본과의 교린이었다. 효종이 당부의 말과 함께 남용익에게 밀서를 건네어 준다. 호시나와 노부쓰나 중 성심으로 교린을 다할 사람에게 전하라 그렇지 않을 경우, 어린 쇼군에게 직접 전하라. 어명을 받은 남용익은 출발에 앞서 한껏 긴장하며 여정을 시작한다.

 당시 일본의 상황을 짚어보면, 가마쿠라 막부, 무로마치 막부에 이어 도쿠가와 이에야쓰에 의해 시작된 에도막부의 시대다. 에도막부의 4대 이에쓰나 쇼군은 어린아이로써 그 권력의 중점을 두고 두 로주(쇼군에 직속되어 정무를 총괄하는 직책)들이 암암리에 대립하고 있다. 쇼군은 막부의 우두머리로써 당시는 덴노(천황)보다 실질적인 권력을 가지고 있었는데, 덴노 세력은 쇼군의 권력을 빼앗아 황실을 중심으로 일본을 이끌어 가고자 한다. 얼마 후 메이지 유신 때에는 권력을 되찾는 상황을 보면 알 수 있다시피 쇼군의 막강 권력도 점점 그 지위를 잃어가고 있는 찰나 막부의 세력을 살리려는 움직임이 호시나에 의해 시작된다.

이 소설은 각 세력의 권력다툼이라고 볼 수 있다. 속고 속이는 이유 또한 다양한데, 그것을 파헤치는 것이 핵심이라고 볼 수 있다.
몇 몇 중요 인물들을 살펴보면 우선 남용익은 효종의 밀서를 호시나 혹은 노부쓰나에게 전달해야 한다. 조선과의 교린관례를 성심껏 행할 수 있는 인물을 모색하는 것이 목적이다.
명준은 통신사 행렬에 참여하게 되어 남용익을 모시는 역관이다. 예전에 일본에 살던 기억은 사건 해결에 실마리를 제공하기도 한다. 그의 추리에 의해 사건이 해결되니 이 사람이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다.
무라사키는 교토의 옛 귀족 세력으로 막부 정권을 증오한다. 그의 염원은 만세일계인 천황이 다시 권력을 되찾는 일, 바쇼라는 아이를 쇼군과 바꿔치기 할 심산으로 황실과 일을 도모한다. 물론 황실의 꼭두각시 노릇을 시키기 위함인 것은 말하지 않아도 알겠다.
호시나는 로주로써 쇼군을 보좌하고 있다. 3대 이에미쓰 쇼군의 이복동생으로써 황실의 이러한 움직임을 감지하고 바쇼를 데려와 다다테루에게 기르도록 한다. 지금의 쇼군이 어리고 정치에 무관심해 막부의 권력이 약화되는 것을 우려하여 황실과 같은 마찬가지로 바쇼를 쇼군과 바꿔치기 할 계획이다.
노부쓰나는 기요모리와 도겐을 살해한 혐의를 호시나에 두고 체포한다. 또 하나의 로주 호시나를 따르는 다이묘들과 가신들이 들고 일어나 대항할 경우, 그 반대세력을 잠재우기 위해 조선출병도 불사할 것을 계획한다. 그의 염원은 도요토미 히데요시처럼 권력을 장악하는 것이다.
교토소사대의 다나카는 명준과 함께 소설 후반부까지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동분서주 하는 인물이다. 과거에 쇄국을 천명하는 막부세력에 의해 기리스탄이라는 이유로 형이 살해당한 뒤 막부 전복을 위해 힘쓰는 그가 사건을 맡았다. 소설의 첫 번째 반전이다.
기요모리는 쇼군의 고케닌(쇼군의 직속 고급무사)이다. 이가 번 출신답게 닌자 출신으로 첫 번째로 살해당한다. 이 사건이 두 번째 반전이 되겠다.

소설 처음으로 돌아가서 통신사의 축하연 중 따로 마련한 술자리에서 기요모리가 그리고 두 번 째는 승려 도겐이 살해당한다. 살해한 범인을 찾는 것이 소설의 대부분의 내용이라 볼 수 있다. 세 번째 반전을 파헤치면 소설이 끝난다. 지금껏 등장하는 바쇼는 누구인가? 결과를 말하면 소설의 재미가 덜 할 것이므로 다음 독자 스스로에게 즐거움을 찾으라고 할 수 밖에 없다.

이 소설은 그동안의 팩션과는 다르다. 우선 소설의 장면이 일본이다. 그동안의 팩션이 우리의 옛 역사를 소재로 했다면 이 책은 일본의 역사를 배경으로 한다. 물론 우리의 역사도 중심이긴 하지만 말이다. 일본의 역사를 어느 정도 파악하고 읽어야 이해가 빨라 재미도 더해진다. 이 책을 읽을 때에는 부록에 나와 있는 통신사, 당시 일본의 권력 지형도 등을 먼저 읽는 것이 좋을 듯싶다. 일본의 역사를 간략하게나마 이해할 수 있도록 먼저 이원복의 먼나라 이웃나라 일본(역사)을 읽어 보았더니 재미도 더하고 기억에도 오래 남을 듯싶다.

마지막으로 소설을 읽으며 조금 아쉬웠던 점, 우선 등장인물들에 대해 파악하기가 쉽지 않았다. 또한 꼬아놓은 것은 대단하긴 한데 사건의 실마리를 거의 주지 않아서 소설의 후반부에 이르기까지도 사건은 미궁일 수밖에 없었다. 마치 명탐정 코난을 보는 듯한 기분이랄까? 만화는 살해당한 사람이 나오고 이것저것 조사해 해결하는 듯 보이지만, 결국은 코난이 어른 목소리를 내는 리본모양의 마이크에 대고 사건의 실상을 파헤치는 장면으로 끝을 맺는 것처럼 명준의 역할이 코난과 겹쳐 보였다. 독자로 하여금 사건을 풀어나가도록 배려했더라면 조금 더 재미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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