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한 축복
오가와 요코 지음, 권남희 옮김 / 문학수첩 / 2008년 7월
평점 :
절판


 

“이제야말로 끝이구나, 하고 생각할 때마다 반드시 누군가가 구원의 손길을 내민다...스크린 위로 내려오는 우연의 신비에 나는 넋을 잃었다. 존경스런 마음마저 들었다.(p.51)

본문 내용 중 일부를 발췌해 본다. 오가와 요코의 우연한 축복은 이렇듯 우연을 마주했던 놀라움을 기억하는 그녀로부터 비롯된다. 소설인지 현실속의 그녀인지 분간할 수 없는 것은 아마도 주인공인 그녀의 직업이 작가이기 때문일 듯 하기도 하지만, 작가로서 살아가는 일상을 담은 글들은 소설이라고 하기에는 극적인 부분이 없어 더욱 그리 보이기도 했다.

7편의 단편들은 일련의 시간 순이 아니기 때문에 다른 내용일 듯 보이나 모두 같은 인물들의 이야기로 시간 순으로 한다면 장편소설로 볼 수 있겠다. 하나의 글 속에서 만나게 되는 우연들이 시간의 뒤섞임 속에서도 하나의 통일된 안정감을 가져다준다.

창작의 고통에 시달려 허기진 그녀가 우연치 않게 봉투를 수집하던 옛 시절 실종된 고모를 떠올리고는 마음의 위로를 찾고 소설쓰기를 지속하게 되는 일, 동생 죽음(살해라고 표현했다.)의 고통으로부터 누구에게도 구원받지 못한 그녀가 동생의 병문안을 온 한 여인으로부터 마음의 위안을 찾게 된 일, 누선수석결정증으로부터 고통 받던 아폴로를, 비가 오는 날 한 손에는 유모차 한 손에는 아픈 아폴로를 끌고 ‘스핑크스’라는 유난스러운 이름의 동물병원을 찾지 못해 안절부절 못할 즈음 차를 태워준 그가 수의사였던 일 등 외에도 주인공의 인생은 험난하고 순탄치 않은 여정에 다름 아니다. 그럼에도 잿빛 구름 같기 만한 날들이 지속되는 것은 아니다. 그곳에서도 잠깐의 햇살이 고개를 내밀고 있기 때문이다.

소설은 막힘없이 쉬이 읽히다가도 사색의 시간이 필요해 한동안 지연되기도 했다. 잔잔한 듯 소소한 일상이지만, 느껴지는 의미를 되새겨야 할 만큼 사색적이다. 시와 닮은 소설이지 싶다. 곰곰이 되새기다보면 맛과 향이 어우러지는 것이 그렇다. 또한 불러오는 잔잔한 감동이 깊어 그러할지도 모르겠다.

현대인들이 오가와 요코의 글을 사랑하는 이유는 현실의 고통을 담담히 그리고 있을 뿐만 아니라 가끔씩 생기를 주는 우연과도 같은 축복의 모습을 그리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사족으로 덧붙이자면 잠시의 축복은 우연처럼 다가오기 때문에 현실의 고통에 힘이 들어도 마음의 여유 정도는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기억해두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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