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성장의 유혹>을 리뷰해주세요.
녹색성장의 유혹 - 글로벌 식품의약기업의 두 얼굴
스탠 콕스 지음, 추선영 옮김 / 난장이 / 2009년 1월
평점 :
품절


미국의 전(前) 부통령이었던 엘 고어가 지구 온난화의 심각성을 고발한 다큐멘터리로 상을 받으면서, 지구 온난화로 인한 폐해에 대한 심각성이 다시 부각되고 있다. 지구 온난화는 어제, 오늘 다루어진 문제가 아니다. 오래전부터 그 위험성을 경고했지만 미국 뿐만 아니라 서방 선진국들은 자국 산업의 발전을 위해 등한시해오고 있었던 문제였다. 그런데 최근 지구 곳곳에 서 일어나고 있는 이상기후와 그로 인한 자연재해 등으로 많은 나라들이 친환경, 녹색성장에 대해 눈을 돌리고 있다.

친환경, 생태친화, 녹색성장이라면 누구나 반길일이다. 하지만 지은이는 친환경, 생태친화라는 유령이 우리들을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미국의 식물유전학 박사이자 20년 넘게 인도와 미국을 오가며 생태문제를 연구한 지은이는 친환경, 녹색성장에 은폐된 우리들의 일상과 그 모순을 드러내 보여주며, 친환경, 녹색성장을 기치를 내걸고 있지만 지구와 인간을 파멸의 길로 몰아가고 있는 다국적 기업의 행태를 고발하고 있다. 

지은이가 이 책에서 고발 대상으로 삼고 있는 것은 우리 인간 생활에 있어 필수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는 의료와 식품이다. 의료와 식품이라는 두 주제를 다루면서 병원, 제약회사, 식품, 농업, 화학, 천연가스, 다이어트 산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사람의 목숨에 직결되는 의료와 식품에 대해서까지 녹색이라는 단어를 악용하여 무한성장을 지향하는 다국적 기업의 추한 이면을 실증적인 데이터와 자료들을 동원하여 속속들이 파헤치고 있다. 책장을 넘기면서 밝혀지는 다국적 제약회사와 거대 식품기업들이 전 세계적으로 미치는 해악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사람들은 대체로 자본주의의 대안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경제가 성장할 수록 파국적 영향이 더 커진다는 것을 목도하면서도 무기력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이 무기력증을 극복하려면, 현존 체계에서 아무런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다수의 사람들, 즉 타인의 노동으로 생산된 자본의 축적 때문에 살기가 어려워진 다수의 사람들이 다음의 두 가지 가정을 실행에 옮겨야만 한다. 첫째, 자본주의는 사물의 자연적인 상태도, 필연적인 상태도 아니다. 둘째,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에서 인간다운 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경제성장에 의존해서는 안된다(본서 제285,286쪽 참조).”

지은이는 자본주의가 사물의 자연적, 필연적 상태가 아니고, 인간다운 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경장성장에 의존해서는 안된다고 가정한다. 10장에서 칼 마르크스(Karl Marx)의 ‘자본’, 니콜라스 제오르제스쿠-뢰겐(Nicholas Georgescu-Roegen)의 ‘엔트로피 법칙과 경제과정’, 윌리엄 스탠리 제본스(William Stanley Jevons)의 ‘석탄문제’라는 세 권의 위대한 책을 소개하고 이 책을 통해 우리의 경제체제를 살펴볼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한다. 물론 오랜 세월동안 자본주의 체제내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위와 같은 가정을 인정하는 것은 쉽지 않다. 하지만 지금 현실적으로 우리 주위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감안한다면 지은이가 주장하는 내용이 단순한 가정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더 많이 생산하고 더 많이 소비하면 인간의 삶이 더욱 풍요로워질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오히려 거대 다국적 기업들의 이윤 추구 앞에 공공의 이익은 무참히 희생되는 것이 우리 현실이다. 지금이라도 우리는 이 현실을 직시하고 무엇이 우리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지를 성찰해 보아야 한다.

지은이는 지구 전역의 모든 국가에 사는 사람들이 힘을 모아 노동자 소유, 환경세(특히 무거운 탄소세), 기업에 대한 강력한 규제, 반독점법 시행, 부의 재분배를 촉구하여야 한다고 하며, 아직은 건립되지 않은 친환경 보건의료센터, ꡐ악시온 프라테나ꡑ와 아난타푸르 지역 공동체의 노력, 오클랜드에서 활동 중인 ꡐ서민의 식료품점ꡑ 같은 운동이 세계 모든 대륙에서 일어나야 한다고 글을 맺고 있다.

이명박 정부가 ‘저탄소, 녹색성장’을 기치로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주장하고 있는 현시점에서 이 책은 우리 국민들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녹색성장’의 이면에 드리워진 것을 냉철하게 파악하고 과연 자본주의가 우리 모두를 행복하게 하는 최상의 체계인지, 그리고 우리, 그리고 우리의 후손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 있는지를 질문해 보는 소중한 시간이 되었다.

․ 서평 도서의 좋은(추천할 만한) 점
최근 우리 사회에 번지고 있는 ‘녹색성장’에 대해 제대로 알 수 있도록 실증적으로 설명해주고 있어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 서평 도서와 맥락을 같이 하는 '한핏줄 도서' (옵션)
1. 살림의 경제학/강수돌/인물과 사상사
1. 불편한 진실/엘 고어/좋은생각
1. 꿀벌 없는 세상, 결실 없는 가을/로완 제이콥슨/에코리브르
1. 지구온난화 충격 리포트/Think the Earth Project,야마모토 료이치/미디어윌
1. 녹색시민 구보씨의 하루/존 라이언 등/그물코
1. 즐거운 불편/후쿠오카 켄세이/달팽이
1. 누가 세계를 약탈하는가/반다나 시바/울력 
 

․ 서평 도서를 권하고 싶은 대상
지금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습니다.

․ 마음에 남는 '책속에서' 한 구절
사람들은 대체로 자본주의의 대안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경제가 성장할 수록 파국적 영향이 더 커진다는 것을 목도하면서도 무기력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이 무기력증을 극복하려면, 현존 체계에서 아무런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다수의 사람들, 즉 타인의 노동으로 생산된 자본의 축적 때문에 살기가 어려워진 다수의 사람들이 다음의 두 가지 가정을 실행에 옮겨야만 한다. 첫째, 자본주의는 사물의 자연적인 상태도, 필연적인 상태도 아니다. 둘째,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에서 인간다운 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경제성장에 의존해서는 안된다(285,286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금난새의 내가 사랑한 교향곡>을 리뷰해주세요.
금난새의 내가 사랑한 교향곡 우리가 아직 몰랐던 세계의 교양 25
금난새 지음 / 생각의나무 / 2008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얼마전 클래식 음악을 소재로 한 ‘베토벤 바이러스’라는 드라마가 생각과 달리 엄청난 인기를 얻은 적이 있었다. 이 드라마로 인해 일반인들이 클래식에 대해 상당한 관심을 보였다. 클래식 악기의 구입이 늘었는가 하면, 모처럼 클래식 음반의 판매가 호조를 보이기도 했다. 이 드라마에 삽입되었던 클래식 음악을 수록한 음반은 품절이 될 정도였다. 드라마에서처럼 실제로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오디션을 치러 오케스트라를 구성하는 일도 일어났다.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으로 많은 사람들이 클래식 음악에 대한 갈증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실제로 일반인들이 클래식 음악을 접하고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비싼 공연관람료, 긴 연주시간, 복잡한 곡구성, 전문적인 용어 등. 일반인들이 생활에서 쉽게 접하는 대중음악에 비해 클래식 음악은 이런 저런 이유로 대중들과 유리된 채 소수의 매니아 층들 사이에서만 사랑을 받아왔었다. 무엇보다 클래식 음악계 내부에 도사리고 있는 이분법적인 사고(클래식 음악은 고급음악이고 대중음악은 저질음악이라는 사고)와 우월적이고 독선적인 시각이 대중들을 클래식 음악에서 더욱 멀어지게 하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했다.

이런 현상을 직시하고 클래식 음악을 대중들에게 좀 더 친숙하게 다가가게 하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는 사람들이 클래식 음악계 내부에서 나오기 시작했다. 가장 대표적인 사람 중의 한 사람이 바로 이 책을 쓴 금난새다. 그는 1980년부터 12년간 맡아온 KBS 교향악단을 그만두고 지방악단인 수원시향 상임지휘자가 되었고, 제도권 밖에서 사설 오케스트라인 유라시안 필하모닉을 창단했고, 포스코를 찾아가 로비 콘서트를 제안했으며󰡐해설이 있는 음악회‘, ’울릉도 음악회‘, ’도서관 음악회󰡑등을 기획하고 진행하는 등으로 클래식 음악을 대중화하는데 자신의 온 열정을 쏟아 부었다.

이 책도 바로 그런 지은이의 클래식 음악에 대한 끝없는 사랑과 열정이 빚어낸 결과물이다. 수많은 교향곡 중에서 교향곡의 아버지라 불리는 하이든의 ‘고별’ 교향곡부터, 모차르트, 베토벤, 베를리오즈, 멘델스존, 브람스, 차이콥스키, 드보르자크, 라흐마니노프, 쇼스타코비치의 ‘혁명’ 교향곡에 이르기까지 지은이의 삶과 음악에 영향을 준 작곡가들의 교향곡 열 곡을 엄선하여 곡이 탄생하게 된 배경, 작곡가의 삶과 작품세계, 그리고 에피소드 등을 마치 옆에서 이야기하듯이 들려주고 있다.

상세한 설명과 각종 그림 등은 이제 막 클래식 음악에 입문한 초보자들에게는 더할나위 없이 훌륭한 지침서가 되지 않을까 한다. 반면 클래식 음악을 어느 정도 듣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이 책은 큰 흥미를 유발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무엇보다 수많은 교향곡 중에서 10곡 만을 추려 놓아 클래식 음악을 좀 더 깊이 이해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양적인 면에서 많이 부족하다는 느낌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단순히 자신의 지식과 주관만을 전달하는 에세이류의 클래식 음악 책들과는 달리, 클래식 음악에 대한 지휘자로서 한 인간으로서의 끊임없는 정열과 진지한 자세를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소중한 시간이 되어 주는 책이 아닌가 한다. 

․ 서평 도서의 좋은(추천할 만한) 점
초보자들에게 클래식 음악에 대한 입문용으로는 괜찮은 것 같습니다.

․ 서평 도서와 맥락을 같이 하는 '한핏줄 도서' (옵션)
1. 내가 사랑하는 클래식 1, 2/박종호 저/시공사
1. 죽기 전에 꼭 들어야 할 클래식 1001/매튜 라이,스티븐 이설리스/마로니에 북스
1. 이 한장의 명반 : 클래식/안동림 저/현암사
1. 클래식 아는 만큼 들린다/최영옥 저/문예마당

․ 서평 도서를 권하고 싶은 대상
클래식 입문자들에게 권해드리고 싶습ㄴ니다.

․ 마음에 남는 '책속에서' 한 구절
클라라 슈만은 브람스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지만 그녀 역시 브람스에게 상당한 도움을 주었습니다. 클라라는 스물네 살의 브람스에게 데트몰트에 있는 한 공작의 저택에서 음악교사로 일할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브람스가 고심에 고심을 거듭한 끝에 작곡한 교향곡 제1번을 창작할 때에도 도움을 주었지요. 그리고 브람스는 교향곡 제2번을 작곡할 때도 클라라에게 피아노로 들려주었습니다. 그리고 교향곡 제2번이 완성되자 피아노 연주용 자필초고를 클라라에게 크리스마스 선물로 주었습니다. 이보다 더 좋은 선물이 있었을까요?(177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하워드 진의 만화 미국사 다른만화 시리즈 1
마이크 코노패키 외 지음, 송민경 옮김 / 다른 / 2008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요즘 서점가에는 아이들의 학습서를 만화로 옮긴 책들이 엄청난 판매부수를 자랑하여 베스트셀러의 반열에 올라있는 것을 자주 목격한다. 그런데 최근에는 딱딱한 인문서나 교양서를 쉽게 풀어쓴 만화가 등장하여 일반 독자들의 주목을 끌고 있다. 일단 만화는 글자수가 적고 그림과 같이 글을 읽으니 지루함을 덜어준다는 이점이 있다. 하지만 비주얼로 인해 글을 읽고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앗아가고 긴 글을 몇 컷의 그림으로 표현하다보니 글이 왜곡 전달되거나 혹은 이해하기가 힘들다는 단점이 있다는 지적도 있다. 여하튼 이런 저런 논란에도 불구하고 지금 우리 서점가는 만화가 휩쓸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이 책은 미국의 진보적 지식인으로 유명한 하워드 진의 ‘미국 민중사’와 ‘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은 없다’라는 책을 기초로 폴 불이 각색하고 마이크 코노패키가 만화로 옮긴 것이다. 미국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만화라고 하면 으레 수퍼맨, 스파이더맨 등 초인적인 힘을 가진 영웅들이 등장하여 어려움에 처한 세계를 구하고 악당을 물리친다는 이야기를 떠올리게 되는데, 이 책은 오히려 미국이라는 나라가 미국 안과 밖에서 자행한 무지막지한 비인간적인 만행의 역사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지은이는 운디드니 학살. 스페인․미국 전쟁, 필리핀 침공에서 최근까지도 이어져오고 있는 이라크 전쟁까지, 자신의 나라에서 보고, 듣고, 읽고 직접 몸으로 부딪치며 저항해 온 역사를 조심스럽게 그리고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미국의 군대는 세계평화라는 미명하에 윤리적인 목적이 아닌 경제력, 정치력, 군사력을 확대하려는 목적에 이용되어 왔으며, 이를 위해서는 다른 나라 국민들의 삶과 행복에 대해서는 눈을 감아왔다는 것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그림은 일반적인 만화책에서 볼 수 있는 것과 같은 부드러움과 화려함은 없다. 조금은 거친 듯한 그림, 현장 사진과 잡지나 신문기사를 그림과 적절하게 섞은 그림, 흑백 그림 등은 컬러로 표현한 것보다 오히려 미 제국주의가 보여준 만행을 더욱 극적으로 표현하는 것 같다. 지은이가 화자로 등장하여 마치 강의를 하듯 들려주는 이야기들은 그림과 함께 상당한 설득력을 얻고 있다.

지은이는 처음부터 끝까지 미국의 만행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한 가지 의문이 드는 것은, 과연 미국만 이런 모습을 보여줄까? 아마 대부분의 나라들이 미국에서 일어난 인종차별, 노조탄압, 정치적 탄압과 비슷한 만행을 자국내에서 행하지 않았을까. 영국, 프랑스, 일본, 한국, 중국 등 모든 나라에서 힘없는 대중들을 향해 무차별적으로 이루어지는 위와 같은 일들은 지금도 각종 언론매체를 통해 보도되고 있다. 이는 인간이 존재하는 한은 어느나라를 막론하고 일어나는 일이라고 본다. 굳이 미국이여서 그와 같은 일이 일어난 것은 아니라고 본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을 통해 미국이라는 나라 뿐만 아니라 우리가 몸담고 있는 이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에 대해서도 다시금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하원드 진이 훑어간 미 제국주의의 역사는 어두운 그림자만 드리우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지은이는 이 그림자 속에서도 긍정적인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어려울 때에 희망을 갖는 것은 어리석은 낭만주의가 아닙니다. 그것은 인간의 역사가 잔인함의 역사만이 아니라 열정과 희생, 용기와 관용의 역사라는 사실을 믿는 태도입니다. 만약 우리가 언제 어디에서 그런 일이 있었는지 잊지 않는다면 그리고 사람들이 훌륭하게 처신해온 경우가 아주 많았다는 것을 기억한다면 우리는 행동할 힘을 얻을 것입니다. 희망은 변화를 위한 에너지입니다. 미래는 현재의 무한한 연속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지금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최악의 상황과 싸우면서 인간으로서 올바른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그 자체로서 놀라운 승리인 것입니다(본서 284쪽 참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뭐라, 내한테서 찔레꽃 냄새가 난다꼬 - 이지누가 만난 이 땅의 토박이, 성주 문상의 옹
이지누 글.사진 / 호미 / 2008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얼마전까지 영화 ‘워낭소리’가 다큐멘터리임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관객을 동원하며 장안의 화제가 된 일이 있었다. 일각에서는 의도된 장면을 편집하는 등으로 순수한 다큐멘터리로 보기는 힘들다는 비판이 있기도 했다. 이런 저런 논란 속에서도 이 영화를 통해 우리는 그 동안 정(情)에 많이 목말라 있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급속한 도시화로 인해 핵가족화가 되고, 물질만능주의에 물들면서 우리는 많은 것을 잃었다는 것을 깨닫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 3대 골짜기 중의 한 곳이라고 하는 봉화에서 노부부가 늙은 소와 함께 서로 부대끼며 살아가는 모습은 진한 감동을 남겨 주었다. 자연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도 다시금 새겨보는 시간이 되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워낭소리’의 감독이 혹시 이 책에서 영감을 얻지는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물론 우연의 일치이겠지만 이 책에도 할아버지의 소에 대한 애뜻한 마음이 담긴 내용이 나온다.

“봐라, 저것도 우리맨치로 말을 모 하이 짐승이라카는 기지, 사람하고 똑 같은 기라. 사람도 배고프마 밥 묵고 그래 하는데 저것도 배고프마 밥도 묵고 지 묵고 자븐 것도 무야지, 어데 사람만 지 묵고 싶은 거 무라카는 법이 있디나. 철따라 풀도 다르거든. 사람들도 안 그렇디나. 철마다 나는 기 다 다른데, 그라이 우짜노, 소도 지 물 꺼 찾아 묵는데 가마이 놔 또야지. 사람 맘대로 끌고 댕기마 되는가 어데.”(본서 제57쪽 참조) “그런데 소는 뭘하러 끌고 가십니꺼?”, “이것도 집에마 있시마 안 심심컷나, 내가 심심으마 소도 심심은거지. 그라이 내 일하는 데 델꼬 가마 소도 귀경도 하고안 좋겠나.”(본서 제120쪽 참조)

우리 문화에 대한 강한 애착을 보이고 있는 지은이 이지누는 일백 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성주 수륜면 작은동의 깊은 산골에서 농사만 지으면 살다가 간 문상의 할아버지를 찾아간다. 지은이는 1999년 가을부터 2002년 여름에 걸쳐 문상의 옹을 만나 나누었던 이야기와 느낌을 기록하고 있다. 마치 한 편의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킬 정도로 아주 상세하게 두 사람의 모습을 담고 있다.

근대화와 현대화라는 엄청난 변화의 소용돌이가 거쳐갔지만 시계는 그저 문상의 옹에게 맞추어져 있었다. 매일 반복되는 소소한 일이지만 문상의 옹은 자연과 교감하며 자신이 백여 년동안 터득한 삶의 지혜를 몸으로 보여주고 있다. 도시생활에 익숙한 우리가 봤을때 문상의 옹의 시간은 너무나 더디게 가는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답답한다. 아니 마치 정지되어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일지도 모른다. 지은이는 그런 문상의 옹에게서 사람의 향기를 맡은 것이다.

“되돌아선 할배를 다시 뒤따랐습니다. 저는 할배한테서, 할배는 머리 위의 찔레나무에서 풍겨 오는 찔레꽃 향기를 맡으며 가는 동안 비로소 사람의 향기란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 어림짐작을 할 수 있었습니다. 코로 맡는 향기가 진한 사람일수록 사람의 향기는 적은 법이고, 사람의 향기가 강한 사람에게서는 코로 맡을 수 있는 향기가 아니라 마음으로 맡아야 하는 향기가 풍긴다는 사실 말입니다. 할배한테서는 마음으로 맡을 수 있는 향기만 났습니다. 어느 누구도 쉬이 가지지 못할 향기입니다. 일부러 가지려고 애를 쓰면 더욱 가지기 힘든 것이 바로 그것이지 싶었습니다(본서 제107쪽 참조)

지은이는 문상의 옹과 주고받은 이야기를 입말 그대로 전해주고 있는데, 백 년동안 성주 산골의 말씨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옹의 구수한 경상도 사투리는 책 속의 활자로만 남아 있는 것이 아니라 금방이라도 책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은 강한 생동감을 준다. 1부 ‘글로 하는 이바구’에는 그런 생생한 이야기를 담았고, 2부 ‘사진으로 하는 이바구’에는 뭐라 말할 수 없는 삶의 희노애락이 녹아 들어있는 문상의 옹의 모습을 흑백사진으로 담고 있다.

어떤 면에서는 너무 무미건조하고 밋밋하지 않나 싶을 정도로 단조롭게 느껴졌는데, 책 장을 넘기며 지은이와 문상의 옹의 이야기에 빠져 들면서 그 속에 감추어진 또 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었다. 멋부리지 않는 가운데서 배어져 나오는 두 사람만의 진솔한 이야기는 사람 살아가는 모습이 그대로 담겨져 있었던 것이다. 바로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이었던 것이다. 때로는 능청스럽게, 때로는 너무나 순진하고 소박하게 느껴지는 두 사람의 대화는 정겹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그런데 2005년 오랜만에 문상의 옹을 찾아갈 때 지은이는 더 이상 문상의 옹을 볼 수 없었다. 언제나 할머니의 무덤 곁을 떠나지 않았던 문상의 옹은 할머니 묘 바로 옆을 지키고 계셨다. 문상의 옹은 그렇게 자신의 삶에서 배어져 나온 지혜를 우리에게 남겨 둔 채 떠난 것이다. 하루 하루 바쁘게 돌아가는 우리 도시인들에게 삶의 무게는 엄청난 것처럼 느껴지지만, 문상의 옹에게는 새털처럼 가볍게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아직도 내게는 보여주기 위한 삶, 아니면 남들보다 좀 더 가지려고 하는 삶, 삶에 대한 가식과 허영이 남아 있기 때문이 아닐까라는 반문을 해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바시르와 왈츠를 - 대량학살된 팔레스타인들을 위하여, 다른만화시리즈 02 다른만화 시리즈 2
데이비드 폴론스키, 아리 폴먼 지음, 김한청 옮김 / 다른 / 2009년 2월
평점 :
품절


인간에게 가장 잔혹한 기억은 무엇일까?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아마 전쟁이 아닐까. 인간이 이 지구상에 존재한 이래로 지금까지도 크고 작은 전쟁은 끊임없이 이어져 오고 있다. 인간의 욕심이 빚어낸 인간 파멸의 가장 원초적인 모습이 전쟁이다. 전쟁 중에 벌어지는 각종 참혹한 일들, 그 중에서도 학살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사람이 사람을 죽인다고 생각하면 그 자체만으로도 소름이 끼친다. 그런데 이런 일이 문명화된 이 지구상에서 그와 같은 학살이 버젓이 자행이 되고 있으니 어처구니 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명목이 어떠하든 인간이 다른 인간의 생명을 강제적으로 앗아간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1982년 1차 레바논 전쟁 중에 이스라엘과 공조한 기독교도 팔랑헤당 민병대들은 베이루트 난민촌에서 3,000여 명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무참히 대량 학살한다. 이 책은 그 학살현장을 폭로한 동명의 애니메이션 영화를 만화 형식으로 만든 것이다. 동명의 애니메이션은 2009년 골든글로브 외국어 영화상을 수상하는 등 각종 영화제를 석권하며 많은 비평가들로부터 찬사를 받고 있는 작품이다. 전통적인 다큐멘터리 구성을 벗어나 만화라는 형식을 통해 역사의 진실을 추적해 나가는 한 개인의 모습을 아주 독특한 어법으로 보여주고 있다.

지은이 아리 폴먼은 옛 친구의 계속되는 악몽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신도 직접 참전한 전쟁임에도 당시의 상황을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을 발견하고는, 당시 함께했던 전우들을 찾아 나서면서, 그들의 증언을 통해 당시의 상황을 하나둘씩 재구성해 나간다. 지은이가 도착한 기억의 종착점에는 여자와 어린 아이, 노인들을 포함한 팔레스타인 난민 3,000여 명이 무자비하게 학살당했던 ‘사브라․샤틸라 대량학살’ 사건이 있었다. 자신에게 유리한 상황만 간직하려 하는 인간의 본능은 이스라엘 군이 레바논에 행한 잔혹한 행위를 정당화 했고, 그와 같은 끔찍한 상황들은 무의식 속에서 서서히 지워버린 것이다. 

만화와 다큐멘터리라는 형식을 적절히 배합하여 만든 이 작품은 짧은 글이지만 함축적인 문장과 인상적인 그림이 전쟁이 주는 추악한 이면을 고발하고 과거의 잘못된 행동을 돌아보고 반성하는 시간을 가지게 하는 매력적인 작품이다. 하지만 그 매력적인 작품 속에 담긴 내용은 너무나 암울하고 절망적이기까지 하다. 인간의 이성이 빚어낸 이 찬란한 문명 속에서 도저히 이성적으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으니 말이다.

이 책을 보면서 영화 ‘하얀 전쟁’, ‘박하사탕’, ‘마지막 휴가’, ‘플래툰’, ‘지옥의 묵시록’ 등 각종 전쟁 영화가 떠올랐다. 모든 전쟁이 그렇지만 전쟁에서 이긴 자는 은연중에 자신들의 모든 행위를 정당화하려 한다. 하지만 그 안에서 학살의 현장을 목격한 이들은 자신의 기억 속에서 그 모든 것들을 지워버리거나 아니면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고 미쳐버린다. 지은이도 바로 그 학살현장의 한복판에 있었던 사람이다. 그 후유증으로 당시의 기억들이 모두 지워져 버린 것이다.

전쟁은 인간이라는 종족이 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한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인간의 탐욕이 만들어 낸 가장 잔인한 산물(?)이다. 이 책에서는 이스라엘이 그 공범자이지만, 우리는 이스라엘뿐 만 아니라 많은 다른 공범자들을 보아왔다. 일본, 미국, 중국, 러시아 등 많은 선진국들이 전쟁을 통해 자신들의 배를 불리면서 아무런 이유도 없이 살상을 자행했다. 하지만 그들은 아직도 반성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자신들을 정당화하기까지 하고 있다. 전두환 군부정권이 무고한 시민들을 무참히 짓밟은 광주민주화 운동은 아직도 끝나지 않은 메아리로 우리들에게 되돌아오고 있다. 이 책에서 지은이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내용은 그저 남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바로 우리 역사의 한 모습이기도 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