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라, 내한테서 찔레꽃 냄새가 난다꼬 - 이지누가 만난 이 땅의 토박이, 성주 문상의 옹
이지누 글.사진 / 호미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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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까지 영화 ‘워낭소리’가 다큐멘터리임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관객을 동원하며 장안의 화제가 된 일이 있었다. 일각에서는 의도된 장면을 편집하는 등으로 순수한 다큐멘터리로 보기는 힘들다는 비판이 있기도 했다. 이런 저런 논란 속에서도 이 영화를 통해 우리는 그 동안 정(情)에 많이 목말라 있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급속한 도시화로 인해 핵가족화가 되고, 물질만능주의에 물들면서 우리는 많은 것을 잃었다는 것을 깨닫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 3대 골짜기 중의 한 곳이라고 하는 봉화에서 노부부가 늙은 소와 함께 서로 부대끼며 살아가는 모습은 진한 감동을 남겨 주었다. 자연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도 다시금 새겨보는 시간이 되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워낭소리’의 감독이 혹시 이 책에서 영감을 얻지는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물론 우연의 일치이겠지만 이 책에도 할아버지의 소에 대한 애뜻한 마음이 담긴 내용이 나온다.

“봐라, 저것도 우리맨치로 말을 모 하이 짐승이라카는 기지, 사람하고 똑 같은 기라. 사람도 배고프마 밥 묵고 그래 하는데 저것도 배고프마 밥도 묵고 지 묵고 자븐 것도 무야지, 어데 사람만 지 묵고 싶은 거 무라카는 법이 있디나. 철따라 풀도 다르거든. 사람들도 안 그렇디나. 철마다 나는 기 다 다른데, 그라이 우짜노, 소도 지 물 꺼 찾아 묵는데 가마이 놔 또야지. 사람 맘대로 끌고 댕기마 되는가 어데.”(본서 제57쪽 참조) “그런데 소는 뭘하러 끌고 가십니꺼?”, “이것도 집에마 있시마 안 심심컷나, 내가 심심으마 소도 심심은거지. 그라이 내 일하는 데 델꼬 가마 소도 귀경도 하고안 좋겠나.”(본서 제120쪽 참조)

우리 문화에 대한 강한 애착을 보이고 있는 지은이 이지누는 일백 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성주 수륜면 작은동의 깊은 산골에서 농사만 지으면 살다가 간 문상의 할아버지를 찾아간다. 지은이는 1999년 가을부터 2002년 여름에 걸쳐 문상의 옹을 만나 나누었던 이야기와 느낌을 기록하고 있다. 마치 한 편의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킬 정도로 아주 상세하게 두 사람의 모습을 담고 있다.

근대화와 현대화라는 엄청난 변화의 소용돌이가 거쳐갔지만 시계는 그저 문상의 옹에게 맞추어져 있었다. 매일 반복되는 소소한 일이지만 문상의 옹은 자연과 교감하며 자신이 백여 년동안 터득한 삶의 지혜를 몸으로 보여주고 있다. 도시생활에 익숙한 우리가 봤을때 문상의 옹의 시간은 너무나 더디게 가는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답답한다. 아니 마치 정지되어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일지도 모른다. 지은이는 그런 문상의 옹에게서 사람의 향기를 맡은 것이다.

“되돌아선 할배를 다시 뒤따랐습니다. 저는 할배한테서, 할배는 머리 위의 찔레나무에서 풍겨 오는 찔레꽃 향기를 맡으며 가는 동안 비로소 사람의 향기란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 어림짐작을 할 수 있었습니다. 코로 맡는 향기가 진한 사람일수록 사람의 향기는 적은 법이고, 사람의 향기가 강한 사람에게서는 코로 맡을 수 있는 향기가 아니라 마음으로 맡아야 하는 향기가 풍긴다는 사실 말입니다. 할배한테서는 마음으로 맡을 수 있는 향기만 났습니다. 어느 누구도 쉬이 가지지 못할 향기입니다. 일부러 가지려고 애를 쓰면 더욱 가지기 힘든 것이 바로 그것이지 싶었습니다(본서 제107쪽 참조)

지은이는 문상의 옹과 주고받은 이야기를 입말 그대로 전해주고 있는데, 백 년동안 성주 산골의 말씨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옹의 구수한 경상도 사투리는 책 속의 활자로만 남아 있는 것이 아니라 금방이라도 책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은 강한 생동감을 준다. 1부 ‘글로 하는 이바구’에는 그런 생생한 이야기를 담았고, 2부 ‘사진으로 하는 이바구’에는 뭐라 말할 수 없는 삶의 희노애락이 녹아 들어있는 문상의 옹의 모습을 흑백사진으로 담고 있다.

어떤 면에서는 너무 무미건조하고 밋밋하지 않나 싶을 정도로 단조롭게 느껴졌는데, 책 장을 넘기며 지은이와 문상의 옹의 이야기에 빠져 들면서 그 속에 감추어진 또 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었다. 멋부리지 않는 가운데서 배어져 나오는 두 사람만의 진솔한 이야기는 사람 살아가는 모습이 그대로 담겨져 있었던 것이다. 바로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이었던 것이다. 때로는 능청스럽게, 때로는 너무나 순진하고 소박하게 느껴지는 두 사람의 대화는 정겹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그런데 2005년 오랜만에 문상의 옹을 찾아갈 때 지은이는 더 이상 문상의 옹을 볼 수 없었다. 언제나 할머니의 무덤 곁을 떠나지 않았던 문상의 옹은 할머니 묘 바로 옆을 지키고 계셨다. 문상의 옹은 그렇게 자신의 삶에서 배어져 나온 지혜를 우리에게 남겨 둔 채 떠난 것이다. 하루 하루 바쁘게 돌아가는 우리 도시인들에게 삶의 무게는 엄청난 것처럼 느껴지지만, 문상의 옹에게는 새털처럼 가볍게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아직도 내게는 보여주기 위한 삶, 아니면 남들보다 좀 더 가지려고 하는 삶, 삶에 대한 가식과 허영이 남아 있기 때문이 아닐까라는 반문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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