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시르와 왈츠를 - 대량학살된 팔레스타인들을 위하여, 다른만화시리즈 02 다른만화 시리즈 2
데이비드 폴론스키, 아리 폴먼 지음, 김한청 옮김 / 다른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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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인간에게 가장 잔혹한 기억은 무엇일까?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아마 전쟁이 아닐까. 인간이 이 지구상에 존재한 이래로 지금까지도 크고 작은 전쟁은 끊임없이 이어져 오고 있다. 인간의 욕심이 빚어낸 인간 파멸의 가장 원초적인 모습이 전쟁이다. 전쟁 중에 벌어지는 각종 참혹한 일들, 그 중에서도 학살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사람이 사람을 죽인다고 생각하면 그 자체만으로도 소름이 끼친다. 그런데 이런 일이 문명화된 이 지구상에서 그와 같은 학살이 버젓이 자행이 되고 있으니 어처구니 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명목이 어떠하든 인간이 다른 인간의 생명을 강제적으로 앗아간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1982년 1차 레바논 전쟁 중에 이스라엘과 공조한 기독교도 팔랑헤당 민병대들은 베이루트 난민촌에서 3,000여 명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무참히 대량 학살한다. 이 책은 그 학살현장을 폭로한 동명의 애니메이션 영화를 만화 형식으로 만든 것이다. 동명의 애니메이션은 2009년 골든글로브 외국어 영화상을 수상하는 등 각종 영화제를 석권하며 많은 비평가들로부터 찬사를 받고 있는 작품이다. 전통적인 다큐멘터리 구성을 벗어나 만화라는 형식을 통해 역사의 진실을 추적해 나가는 한 개인의 모습을 아주 독특한 어법으로 보여주고 있다.

지은이 아리 폴먼은 옛 친구의 계속되는 악몽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신도 직접 참전한 전쟁임에도 당시의 상황을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을 발견하고는, 당시 함께했던 전우들을 찾아 나서면서, 그들의 증언을 통해 당시의 상황을 하나둘씩 재구성해 나간다. 지은이가 도착한 기억의 종착점에는 여자와 어린 아이, 노인들을 포함한 팔레스타인 난민 3,000여 명이 무자비하게 학살당했던 ‘사브라․샤틸라 대량학살’ 사건이 있었다. 자신에게 유리한 상황만 간직하려 하는 인간의 본능은 이스라엘 군이 레바논에 행한 잔혹한 행위를 정당화 했고, 그와 같은 끔찍한 상황들은 무의식 속에서 서서히 지워버린 것이다. 

만화와 다큐멘터리라는 형식을 적절히 배합하여 만든 이 작품은 짧은 글이지만 함축적인 문장과 인상적인 그림이 전쟁이 주는 추악한 이면을 고발하고 과거의 잘못된 행동을 돌아보고 반성하는 시간을 가지게 하는 매력적인 작품이다. 하지만 그 매력적인 작품 속에 담긴 내용은 너무나 암울하고 절망적이기까지 하다. 인간의 이성이 빚어낸 이 찬란한 문명 속에서 도저히 이성적으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으니 말이다.

이 책을 보면서 영화 ‘하얀 전쟁’, ‘박하사탕’, ‘마지막 휴가’, ‘플래툰’, ‘지옥의 묵시록’ 등 각종 전쟁 영화가 떠올랐다. 모든 전쟁이 그렇지만 전쟁에서 이긴 자는 은연중에 자신들의 모든 행위를 정당화하려 한다. 하지만 그 안에서 학살의 현장을 목격한 이들은 자신의 기억 속에서 그 모든 것들을 지워버리거나 아니면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고 미쳐버린다. 지은이도 바로 그 학살현장의 한복판에 있었던 사람이다. 그 후유증으로 당시의 기억들이 모두 지워져 버린 것이다.

전쟁은 인간이라는 종족이 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한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인간의 탐욕이 만들어 낸 가장 잔인한 산물(?)이다. 이 책에서는 이스라엘이 그 공범자이지만, 우리는 이스라엘뿐 만 아니라 많은 다른 공범자들을 보아왔다. 일본, 미국, 중국, 러시아 등 많은 선진국들이 전쟁을 통해 자신들의 배를 불리면서 아무런 이유도 없이 살상을 자행했다. 하지만 그들은 아직도 반성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자신들을 정당화하기까지 하고 있다. 전두환 군부정권이 무고한 시민들을 무참히 짓밟은 광주민주화 운동은 아직도 끝나지 않은 메아리로 우리들에게 되돌아오고 있다. 이 책에서 지은이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내용은 그저 남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바로 우리 역사의 한 모습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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