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전 재즈 (Fusion Jazz) 락&팝과 한솥밥 먹는 재즈
퓨전 레스토랑, 퓨전 요리, 퓨전 섹시, 그리고 “휘리릭 뽕, 퓨전!”을 외치던 제니퍼의 주문까지. 몇 년 전부터 퓨전이라는 말이 이곳저곳에서 폭넓게 사용되고 있다.
퓨전(Fusion)이란, 융합을 뜻하는 단어로 서로 다른 두 종류 이상의 것이 합해져 새로운 것이 됨을 일컫는다. 아마 퓨전 요리를 접해본 분들은 이 단어의 의미를 확실히 이해하고 있을 듯.
음악에서도 퓨전의 쓰임새는 별반 다르지 않다. 다른 두 장르의 음악이 하나 되는 것을 두고 통칭적으로 퓨전이라는 말을 붙인다. 음악에서 퓨전이라는 말을 처음으로 사용한 장르는 재즈이다. 69년에 발표되었던 마일즈 데이비스(Miles Davis)의 [Bitches Brew]가 최초의 퓨전재즈 음반으로 평가받고 있다.





글쓴이는 중학교 때부터 재즈를 들었다. 음반과 라디오를 통해 또 책을 통해 재즈란 무엇인가 알아가던 중이었는데 당시 즐겨듣던 음악들은 흔히 퓨전 재즈로 분류되던 것들이었다. 예를 들면 그로버 워싱턴 주니어(Grover Washington Jr.), 데이브 그루신(Dave Grusin), 리 릿나워(Lee Ritenour), 밥 제임스(Bob James), 데이빗 샌본(David Sanborn), 마이클 프랭스(Michael Franks) 같은 뮤지션들의 음악이다.
대체로 팝적인 가운데 재즈가 스며든 음악들이었다. 나름 퓨전 재즈를 통해 재즈의 안쪽까지 파고들어가고 있었는데 어느 책에선가 [Bitches Brew]가 퓨전 재즈의 문을 연 첫 작품이라는 소개를 접하게 되었다. 그래서 용돈을 모아 레코드점에 가서 앨범을 샀다. 그런데 음반이 만만치 않았다. 2장으로 나누어진 2장짜리 앨범-당시 처음 샀던 더블 앨범이었기도-이었으며 게다가 LP 한 면에 두 세곡 씩 밖에 들어있지 않았다. 게다가 요상한 자켓 디자인도 왠지 범상치 않았다.
턴테이블에 올려놓고 한 1분을 들었을까 나는 그만 플레이어를 꺼버리고 말았다. 투박한 리듬과 성의 없는 듯한 연주, 인내력을 갖게 하는 10분이 훌쩍 넘는 런닝 타임 등 중학생이던 초짜 ‘재즈 캣(Jazz Cat - 재즈 팬을 빗대어 하는 말)에게 [Bitches Brew]는 분명 버거운 작품이었다. 왜 당시 즐겨듣던 퓨전재즈와 [Bitches Brew]의 느낌은 그렇게 달랐던 것일까. 이에 대해 알려면 당시 재즈계 상황을 살짝 들춰봐야한다. 그럼 타임머신을 타고 60년대로 날아가 보자. (슝~)




60년대는 재즈에 있어 혼돈기라 할 수 있다. 이 때부터 재즈 신에는 ‘프리 재즈(Free Jazz)’라는 기존 재즈의 관습을 타파하는 파격적인 음악바람이 솔솔 불기 시작했다. 그리고 역풍으로 불어 닥친 락앤롤의 득세와 대중적 인기몰이는 공들여 쌓아 올려진 재즈라는 탑을 점점 허물고 있었다. 락에 밀리지 않으려면 재즈에 새로운 변화가 필요했다. 당시 재즈계의 마이더스로 통하던 트럼페터 마일즈 데이비스(Miles Davis)는 이러한 상황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 역시 락 음악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었으며 당대 최고의 기타 플레이어로 인정받던 지미 헨드릭스(Jimi Hendrix)와 절친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헨드릭스와의 사이는 사적인 문제로 틀어졌지만 마일즈는 재즈와 락을 융합하는 야심 찬 계획을 보다 구체화시키게 되었다.
일렉트릭 피아노에 조 자비눌(Joe Zawinul), 일렉트릭 기타에 존 맥러플린(John McLaughlin) 등을 새롭게 멤버로 맞아 그는 69년 봄 [In A Silent Way]를 완성했으며 6개월 후에는 보다 심혈을 기울인 대작 [Bitches Brew]를 발표하게 되었다. 퓨전 재즈의 본격적인 태동을 알린 문제작으로 재즈사에 기록되어 있는 이 앨범은 사이키델릭 락의 영향을 반영하고 있으며 무궁무진한 음악적 아이디어의 솔로연주로 채색되어 큰 반향을 일으켰다.

하지만 이런 음악 스타일에 대한 재즈계 내부의 ‘저항’도 만만치 않았다. 흑인들은 백인들의 락 음악과 재즈가 결합한 것에 대해 극심한 불만을 드러냈다. 결국 마일즈는 자신의 형제들에게 변절자라는 말까지 들어야했다.




마일즈는 70년대 내내 퓨전 재즈 성향의 음악을 추구해나갔고 다행히도 재즈계는 다시 활력을 되찾았다. '마일즈 사단'의 뮤지션들은 대거 독립하여 자신들만의 퓨전 재즈 그룹을 이끌며 70년대를 '퓨전 재즈 르네상스'로 만들었다. 대표적으로 건반 연주자 칙 코리아(Chick Corea)의 '리턴 투 포에어(Return To Forever)', 드러머 토니 윌리엄스(Tony Williams)의 '라이프타임(Lifetime)' 그리고 키보디스트 조 자비눌과 색소포니스트 웨인 쇼터(Wayne Shorter)의 '웨더 리포트(Weather Report)'와 존 맥러플린의 '마하비시누 오케스트라(Mahavishnu Orchestra)'등이 있었다.
퓨전 재즈의 인기는 8-90년대로 이어졌다. 70년대 퓨전 재즈가 락 혹은 이국적인 리듬과 재즈의 결합이었다면 80년대에는 보다 팝적인 취향으로, 그리고 90년대 들어서는 스무드(Smooth) 스타일로 시대에 맞게 변화해갔다. 특히 건반 연주자 데이브 그루신과 드러머 래리 로젠(Larry Rosen)에 의해 설립된 레이블 GRP는 8-90년대 퓨전 재즈 명반들을 양산하며 퓨전 재즈 팬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얻었다. 한편 케니 지(Kenny G)같은 스타급 플레이어도 등장하여 세계적인 인기를 얻었지만 점점 퓨전 재즈가 아닌 팝 인스트루멘탈로 선회하여 재즈 팬들의 원성을 사기도 했다.
이제 퓨전재즈는 재즈 락과 컨템포러리 재즈, 그리고 스무드 재즈를 모두 포함하는 포괄적인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글쓴이가 겪었던 [Bitches Brew]의 에피소드는 퓨전 재즈라는 음악에 대한 의미 파악을 제대로 못한데서 비롯되었던 ‘비화’였다. 한번 들은 퓨전재즈 음반, 열 음반 안 부러우니 부디 글쓴이와 같은 실수를 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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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6-12-30 09: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카시오페아랑 티 스퀘어 참 많이 들었는데, 요즘은 좀 가볍다는 느낌이에요. 뭐랄까 진지함과 깊이가 없달까. 갠적으로는 카시오페아 보다는 티 스퀘어를 더 좋아해요. ^^저 위에 애들은 안들어봤는데
 

대필의혹 한젬마씨 초고 분석해보니…

[한국일보   2006-12-25 18:43:47] 

문헌 자료 등 짜깁기·대필작가가 채워 넣도록 지시…원고라기 보단 메모·자료더미 가까워

“본인이 직접 쓴 내용을 작가가 다듬었을 뿐이다.” 대필 논란에 휩싸인 방송인 겸 화가 한젬마(37)씨의 주장이다. 그러나 한국일보가 25일 대필 의혹이 제기된 한씨의 책 4권 중 <화가의 집을 찾아서> <그 산을 넘고 싶다>의 초고를 입수해 책 본문과 비교한 결과, 한씨와 출판사(샘터)의 주장과는 달리 ‘고쳐 쓰기’ 수준을 넘어선 것으로 확인됐다.

한씨가 직접 썼다는 초고는 글의 형태를 띤 초벌 원고라기 보다는 메모와 자료더미에 더 가까웠다. 초고에는 한씨가 기존 방송에서 사용한 것으로 보이는 원고, 인터넷과 각종 문헌에서 발췌한 자료들이 짜깁기 된 흔적이 역력했다. 또 글 중간중간 한씨 자신이 궁금한 부분이나 추가했으면 하는 부분들을 ‘V’자로 표시한 뒤 대필작가가 채워 넣도록 표기했다.

화가의 작품세계 설명부분도 짧게 메모만 한 뒤 대필작가에게 채워 넣도록 지시한 부분이 상당수 발견돼 ‘저자가 책임져야 할 내용까지 대필작가가 대신 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사실로 드러났다. 더욱이 책에 등장하는 20명의 화가 중 양달석 윤두서 박생광 유영국 등과 관련된 글은 아예 초고에도 없어 “책에서 다룬 화가 중 일부는 대필작가가 전부 썼다”는 주장을 뒷받침했다.

필요한 내용 채워 넣도록 지시

한씨 초고에서 가장 자주 등장하는 것은 ‘V’자 표시다. 한씨가 지난 13일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밝혔듯이 대필작가가 조사해 채워넣도록 부탁한 부분으로, 개별 화가마다 수 차례씩 등장한다. 예를 들면 운보 김기창 화백의 초고에는 ‘이력을 보니 운보의 할머니도 한씨, 어머니도 한씨. 한씨는 청주 한씨 밖에 없다.

파는 V 몇 있지만 본은 하나다’라고 적혀 있다. 청주 한씨 문중에 파가 몇 개인지를 파악해 채워 넣으라는 의미다. 이 밖에 ‘조선 전람회 도록 있나. 국정의 역사에 대해’(서동진), ‘이인성 사망 당시 경찰자료 체크,(이인성), ‘오지호 기념관 언제 지어졌나, 현재 뭔가, 어떤 계획?’(오지호) 등이다. 고암 이응노의 경우 수덕여관의 미래, 미술관 운영의 어려움, 파리에서 이응노의 위상 등 20여개 가까운 항목을 대필작가의 몫으로 남겨 놓았다. 이쾌대를 다룬 초고에서도 유가족을 인터뷰해 첨가하라는 내용이 10여개에 달했다.

사색의 결정체인 표현과 비유 전혀 없어

대필작가가 ‘또 하나의 창작’ 수준에 가깝게 표현들을 바꾼 부분도 허다했다. 박수근을 다룬 책 본문에선 ‘오랜만에 전화를 걸어온 친구’처럼 친근한 사이지만 잘 챙겨주지 못하는 아쉬움으로 글이 전개된다. 박수근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체험을 통해 구구절절 설명하고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한씨 초고는 ‘박수근의 그림을 모르는 이는 간첩이다. 아니 간첩도 박수근을 알지 않을까’라는 구절로 글을 시작하고 있다. 어디에서도 박수근에 대한 애틋한 감정을 찾아 볼 수 없다. 이응노의 작품 <군상>을 설명하면서 비교 사례로 들었던 고은 시인의 <만인보>나 중국 테웨이 감독의 애니메이션 <피리부는 목동>, 영화 <바이바이블루스> 등은 초고에 전혀 포함돼 있지 않았다.

화가 작품세계까지 대필작가가 채워 넣어

더욱 심각한 것은 화가의 작품세계에 대한 설명도 대필작가가 상당부분 썼다는 점이다. 김기창 화백의 경우 책 본문에는 운보가 다녔던 내수성당의 수녀 형상을 띤 스테인드글라스와 운보의 작품 <성당과 수녀와 비둘기>를 비교하면서 수녀가 된 운보의 막내딸과 관련된 일화를 소개하고 있지만 초고에서는 찾아 볼 수 없다.

운보의 작품 <태양을 먹은 새>를 헤르만 헤세 <데미안>의 알을 깨고 나오는 새와 대조한 부분도 초고에는 없다. “운보의 이 새는 오히려 반대이다. 파괴한 후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품으면서 창조한다. 불덩어리를 삼키면서 그 뜨거움과 고통을 딛고 또 다른 세계로 날아가는 것이다. 생각해보자. 침묵 속에서 할 수 있는 것이 뭐가 있을까.” 운보가 조선미술전람회에서 받은 입선작 <널뛰기>를 통해 운보의 무의식을 엿 본 감상 또한 적혀있지 않다. 또 본문에는 거의 한 페이지 분량으로 고암의 작품세계인 <문자추상>을 설명하고 있지만, 한씨 초고에는 방송 당시 사용했던 것으로 보이는 원고와 ‘작품설명 보충’이라는 지시사항이 전부다. 결국 대필작가가 고암의 작품세계를 한씨 대신 설명한 셈이다.

이쾌대의 <자화상>과 <군상>을 설명하는 부분에서도 초고에는 ‘자화상이 많다.(자화상) 집단누드 자료이며 국내 최초를 기록함.(군상)’으로만 적혀 있지만 책 본문에선 4페이지에 걸쳐 작품설명이 돼 있다.

안형영 기자 prometheu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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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6-12-25 2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이건 너무하네요. 완전 작업지시만 하고선.

키노 2006-12-26 2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완존히 충격 먹었습니다용^^;;
 


크리스마스 이브다.

청계천에 웬 사람들이 이리도 많은지.

작년에 비하면 4-5배 가량 사람이 많은 것 같다. 솔직히 작년엔 한산했는데. 아마도 올해는

날씨도 따뜻하기 때문이 아닐런지..떠밀려 다니는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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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매지 2006-12-25 1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저도 어제 청계천에 있었어요!^^

키노 2006-12-25 2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그래요^^ 혹시 같은 곳에 있은 건 아닌지^^

마늘빵 2006-12-25 2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 저도 어제 여기 지나갔는데. ㅋㅋㅋ

비로그인 2006-12-26 1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아는 알라디너도 24일에 여기 있었다던데...

키노 2006-12-26 22: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많은 분들이 이브날 청계천에 가신 모양이네요^^ 번개팅이라도 할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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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 전당에서 있었던 국립발레단의 '호두까기 인형'을 다녀왔다.

무대장치는 볼만 했으나 무용수들의 몸이 전체적으로 무거워 보인다^^ 내 기분이 그래서인가^^

1층 로비에 호두까기 인형 모양을 한 엄청 큰 인형분장을 한 사람이 관람객들의 시선을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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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6-12-26 1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작년에 호두까기 인형을 보았어요.
저는 좋았는데 아이들이 부담스러워하더군요.
무용수들은 몸이 날씬한테 왜 무거워보였을까요?

키노 2006-12-26 22: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악과 무용수의 몸놀림이 엇박자가 되다보니 그런 것 같아요. 음악의 강약이 춤에서 드러나지 않으니 몸놀림이 되게 무거워 보이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