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을 건너는 여섯가지 방법
스티브 도나휴 지음, 고상숙 옮김 / 김영사 / 2005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누구나 한번쯤은 자신에게 닥쳐올 일을 미리 알 수 있는 능력이 있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본 적이 있을 것이다. 자신에게 일어날 일을 알 수 있다면 불행한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미리 알고서 이를 막을 수 있을수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우리네 인생은 그렇지 않다. 우리는 살아가는 동안에 수많은 일을 겪게 된다. 당장 오늘 하루에도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어떤이는 오히려 그와 같은 점으로 인해 인생은 살아볼 만한 가치가 있다고 한다. 예정된 삶은 무미건조할 뿐만 아니라 활력이 없다는 것이 그 이유다.

우리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을까? 지금 우리는 제대로 된 길을 가고 있는 걸까? 이처럼 불안정하고 불확실한 것이 우리 인생의 모습이다. 당장 가족 중에 누구 한 사람이 아프다든지, 아니면 직장을 잃어 버린다든지 숱하게 많은 일들이 때로는 즐거운 기억으로 때로는 아픈 기억으로 다가온다. 이 책은 그와 같은 우리의 불안하고 불확실한 모습을 사막에 비유하며, 지은이가 사하라 사막을 횡단하면서 겪은 일을 통해, 우리가 겪고 있는 불확실한 삶에 대한 생활의 지혜를 들려주고 있는 것이다.

지은이는 20대 한창 혈기왕성하던 시절 유럽을 여행하던 중 파리의 매서운 추위에 질려 그 해 겨울은 따뜻한 서아프리카 해변에서 보내겠다는 계획(?)을 세우고는 무작정 남의 차를 빌려타고 여행을 시작한다. 알제리에 이르러 세계 최대 사막인 사하라 사막을 종단하게 되는데 따뜻한 남쪽 해안으로 가겠다는 생각 외에는 별다른 계획이 없었던 지라, 지은이의 여정은 변화무쌍한 사막만큼이나 하루 하루를 예측하기 힘든 상황에서 생사를 넘나드는 일을 겪게 된다. 지은이는 그 과정에서 불확실한 인생의 사막을 헤쳐나갈 지혜를 터득하게 된 것이다.

지은이는 사막여행에서 터득한 인생 노하우를 여섯 가지로 나누어 우리에게 들려 주고 있다. “끊임없이 모양이 변하는 모래사막에서는 지도가 아니라 내면의 나침반을 따라가라, 오아시스를 만날 때마다 쉬어가야만 더 멀리 갈 수 있다, 정체상태에 빠지면 자신만만한 자아에서 공기를 조금 빼내어야 다시 움직일 수 있다, 사막을 건너는 것은 고독과 외로움 그리고 다른 사람과 함께 하는 것 사이에서 춤을 추는 것이다, 안전하고 따뜻한 캠프파이어에서 나와 깜깜한 사막의 어둠 속으로 나아가라, 열정을 가로막는 두려움과 불안감의 국경에서 멈추지 말라” 라는 여섯 가지 방법이 지은이가 제시하고 있는 인생의 사막을 건너는 방법이다.

사막과 마찬가지로 한치 앞을 예측하기 어려운 우리의 삶에 있어 유용한 이야기들이 아닐까 한다. 개인적으로는 오아시스를 만날 때는 쉬어가라는 대목이 가슴에 와닿는 부분이었다. 옆도 돌아보지 않고 자신마저 돌아볼 기회도 없이 정신없이 앞만 바라보고 가는 우리에게 우리 자신의 모습을 되돌아보고 재충전할 기회가 필요하다는 생각은 해보지만 정작 실천으로 옮기지는 못하고 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쉬어간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되었다.

처음 이 책을 펼쳐들 때는 단순한 여행서라는 느낌을 받았다가, 처음 몇 장을 넘기면서는 정말 막막한 모래사막을 보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장수가 넘어가면서 나는 어느새 지은이와 함께 사하라 사막 깊숙한 곳으로 와있었다. 최근에 읽어본 처세서 중에서 가장 가슴에 와닿고 실감이 나는 책이었다. 기존의 처세서들이 대부분 우화형식을 빌려서 훈계조로 가르치려고만 드는데 비해, 이 책은 지은이가 사막여행을 하면서 얻은 자신만의 인생경험을 통해, 인생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결혼과 위기였던 이혼, 아이의 양육문제, 그리고 취업 등 우리가 살아가면서 통상적으로 겪는 일상적인 내용들을 들려주고 있어 읽는 이로 하여금 점점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게 하는 매력을 가진 책이었다.

지은이는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멋진 여행이란 돈을 들여서 흔들림 하나 없이 길을 달리는 그런 여행이 아니라, 단순히 여행하는 순간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으로, 멋지게 여행하는 것은 끊임없이 밀려오는 인생의 밀물가 썰물을 평화스럽게 받아들이고, 우리 앞에 놓인 것을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한다고 한다. 지은이의 말처럼 인생이라는 사막에서 멋진 여행가가 되기 위해 불완전한 나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받아 들이며 호기심 찬 여행가의 자세로 인생에 접근해보는 것은 어떨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보랏빛 소가 온다 - 광고는 죽었다
세스 고딘 지음, 이주형 외 옮김 / 재인 / 2004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보랏빛 소가 온다”라는 제목만으로는 이 책이 무얼 이야기하고자 하는지 알기 어렵다. 보랏빛 소를 본 적도 없고 그런 소가 있다는 보도도 없었으니 더더욱 이 책의 내용이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의 지은이 세스 고딘은 일단 제목에서 독자들의 시선을 끌어 모으는데는 성공을 한 것 같다. 실제로 지은이는 이 책을 출간하면서 이 책을 통해 우리에게 전하고자 하는 전략을 그대로 실행에 옮겨 보여 성공을 거두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지은이가 주장하는 내용들이 더욱 설득력있게 들리는지도 모르겠다.

지은이는 가족과 함께 자동차로 프랑스를 여행할 때 소 떼 수백만 마리가 고속도로 바로 옆 그림같은 초원에서 풀을 뜯고 있는 모습에 매혹되었지만, 채 이십분이 지나지 않아 그렇게 경이롭게 보이던 소 떼가 평범해지기 시작했다는 경험을 이야기 하면서 만약 그때 ‘보랏빛 소(Purple Cow)'가 있었다면 어떠했을까?라고 질문을 던진다.

지은이 뿐만 아니라 나라도 갑자기 등장한 보랏빛 소로 인해 눈이 희둥그레지며 그 소에 관심이 집중될 것이다. 지은이는 이처럼 우리의 시선을 잡아 끄는 매력적인 것을 보라빛 소에 비유하며, 현재와 같이 상품이 흘러 넘치는 고도소비시대에서 보랏빛 소가 되지 않으면 안된다고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들이 생산한 제품이 ‘리마커블(remarkable)’할 것을 요구한다. 다른 제품들과 차별화되고, 흥미를 유발하며, 새롭고 주목할만한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은이는 이제는 평범한 제품으로 마케팅만 잘하면 성공할 수 있는 시대는 지나갔다며, 변화한 시대에 발맞추기 위해서, 그리고 이런 세상에 살아남기 위해서는 리마커블한 제품이 필수적이라고 한다. 소비자들의 기호를 파악하고 소비자들의 기호에 발빠르게 적응하며 그들의 기호를 충족시킬 수 있는 리마커블한 제품을 생산하지 못하면 변화하는 환경에서 살아남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자연스레 소비자들의 입소문을 통해 자신들이 생산한 제품이 날개돋힌 듯이 팔려 나갈 것이라는 것이다. 오늘날 같이 복잡하고 무언가에 오랫동안 집중할 수 없는 대신 다양한 커뮤니케이션이 발달한 사회에서 소비자들의 입소문은 광고를 넘어서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광고는 죽었다고 하는 것이다.

지은이는 이러한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수많은 사례들을 소개하며, 각 사례에 대한 지은이의 의견을 피력하고 있다.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위주의 서술방식에서 탈피하여, 실제로 발생한 사례들을 여러 가지 각도에서 분석하고 해부하여 각 사례들이 함축하고 있는 의미를 우리에게 전달해 주고 있다. 그래서인지 책을 읽는 재미가 솔솔하다.

마지막 장에서는 현실에서 무엇이 리마커블할지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아직 개척되지 않은 혁신적인 분야가 별로 없으므로, 우리에게 남은 건 시도되지 않은 ‘조합(combinaion)’뿐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러한 예로 38가지를 제시하며 우리의 신선한 아이디어를 기대해본다며 이 책을 끝맺음 하고 있다.

이 책을 통하여 당장 무언가 새롭고 참신하며 획기적인 아이디어를 떠올리기는 쉽지 않다. 다만 우리가 이 책에서 굳어져 버린 우리의 사고를 좀 더 유연하고 창의적으로 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수 있었다면 그것만으로도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충분히 리마커블해 질 수 있었다고 하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대중문화의 패러다임 한나래 언론문화총서 22
원용진 지음 / 한나래 / 2000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얼마전 우리 사회는 개그맨 출신의 심형래 감독이 연출한 “디 워”에 대한 논쟁으로 뜨거웠다. 한편에서는 한국 영화계의 현실을 고려한다면 영화 “디 워”에서 보여주는 특수효과는 대단한 것으로 헐리우드 영화에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잘 만들었다고 하는데 비해, 다른 한 편에서는 스토리도 엉성하고 특수효과도 조잡하기 이를데 없다며 논할 가치가 없는 영화라고 혹평을 하였다. 이는 비단 네티즌들만의 논쟁에 그치지 않고 진중권이라는 대중문화 비평가가 가세하면서 네티즌과의 설전은 극에 치달으며 영화 “디 워”에 대한 논의를 넘어 문화를 소비하는 대중들의 문화 의식 수준에 대한 논의로 까지 이어졌다. 근래 보기 드문 과잉반응이었다.

하지만 위와 같은 논의가 갑작스러운 것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이러한 현상은 그간 우리 대중 문화에 대한 진지한 논의가 없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대량 생산에 의한 대중 소비가 가능해지고 인터넷이라는 대중 매체가 활성화되면서 대중 문화에 대한 논의가 많은 사람들에 의해서 이루어지고 있는 와중에서 영화 “디 워”가 그 불씨를 지핀 것이라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대중 문화라고 하면 고급 문화에 반대되는 저급 문화로서, 때로는 상업 문화로 치부되면서 그다지 좋지 않은 방향으로 내몰려 온게 사실이었다. 그래서인지 대중 문화를 향휴하는 대중 자신들도 대중 문화를 심지어는 천박한 것으로까지 여겼던 것이다. 이런 사회적 풍조는 대중들만이 아니라 대중 문화를 연구하는 학자들에게도 일정 부분 책임이 있다. 지은이는 그러한 점을 통감하고 이 책에서 대중 문화를 읽는 눈을 제시하고 있다.

19세기 말 20세기 초반 사회의 급격한 변화로 인해 대중은 역사의 무대 위로 부상한다. 이는 대중 매체의 등장과 궤를 같이 하는데, 대량 복제 기술을 통한 문화의 대량 생산, 대량 소비가 가능해지면서 문화의 소비가 대중에게까지 확대되기 시작한 것이다. 예전에는 생산자 중심의 문화였다면 이제 바야흐로 소비자 중심의 문화가 형성되기 시작한 것이다. 소비자의 기호를 읽어야 하는 것이다. 바로 이 점이 대중 문화를 곱게 바라보지 않는 부분이기도 하다. 대중들의 기호에 영합하려는 기획은 대중 문화의 질을 하향평준화 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대중 문화를 싸잡아 평가절하할 수만은 없다. 좀 더 많은 대중들이 문화의 소비자로 등장하면서 문화는 다양성을 기하게 되고, 대중들의 관심으로 인해 문화 생산자도 안일하게만 있을 수 없게 되었다. 대중들의 관심은 활력소이자 채찍으로 다가온 것이다. 우리 대중 문화가 더욱 풍성해질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면 대중 문화는 무엇인가? 이에 대해서는 다양한 논의가 존재한다. 대중 문화를 처음으로 분석한 대중 사회론부터, 마르크스주의 문화론, 문화주의 문화론, 구조주의 문화론, 여성 해방주의 문화론, 후기 구조주의와 포스트모더니즘 등 각자가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대중 문화는 여러 모습으로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지은이는 문화를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읽히는 대중 문화론에 대해 이 책의 대부분을 할애하면서 설명하고, 마지막 장에서 변화하는 시대에 맞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지은이는 대중 문화에 대한 본질을 찾는 일은 큰 의미가 없고, 시대적 상황에 따라 어떻게 변화해 왔는가, 그리고 지금 이 시점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를 살펴보는 일이 더 의미 있는 일이라고 한다. 그와 같은 대중 문화 연구에서는 갈등이나 경쟁 등과 같은 역동성이 강조되어야 하고, 또한 역사적 환경이 항상 강조되어야 하며, 생산 과정과 소비 과정 그리고 전 과정을 총체적인 모습에서 살펴보아야 한다고 한다.

대중 매체 특히 디지털 매체는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고, 개방성과 상호 의존성을 특성으로 하는 디지털 매체의 특성상 대중들의 문화 참여 현상은 전에 없이 많아졌다. 대중 문화가 우리의 일상 안으로 들어와 있는 이상 대중 문화에 대해 적극적으로 논의하고 이를 통해 능동적으로 그 문화를 거부하거나 참여토록 할 필요성이 증대되었다고 하겠다.

하지만 이러한 지은이의 의도와 달리 책자체는 이해하기가 쉽지만은 않다. 만연체의 서술에다가 일정 부분은 이해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서술된 부분들도 많으며, 도저히 지은이가 이해하고 썼다고 보기에는 힘들 정도로 정리가 안되는 부분들이 많이 눈에 뛴다. 다만 이 책을 통해 급변하는 21세기 디지털 문화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대중 문화를 보는 시각에 대해서 한번쯤 생각하게 하는 기회를 준다는 점에서는 의미가 있지 않나 하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밥 말리 - 노래로 태어나 신으로 죽다
스티븐 데이비스 지음, 이경하 옮김 / 여름언덕 / 2007년 10월
평점 :
절판


레게 음악은 주류 음악은 아니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레게 음악이 차지하는 비중은 미약할 정도다. 레게 음악이라면 자메이카의 토속적인 리듬을 바탕으로 한 신나는 댄스 곡 정도로 생각하는 것이 전부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는 우리가 레게 음악이라고 하는 장르의 일부만을 본 것이다. 미국과 유럽을 제외한 제3세계의 토속 음악이 그렇듯이 레게 음악은 자메이카 하층민의 암울하고 핍박받는 삶을 대변하던 음악이었다. 신나는 댄스 리듬에 드리워진 우울함이 빚어내는 아름다움은 처절하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음악이 밥보다 더 중요하였던 학창시절 나를 사로잡은 음악은 하드 락이나 헤비메탈이었다. 그에 비하면 레게 음악이 가지는 파워는 약했다. 세련되지 않고 정제되지 않은 투박한 느낌의 음악이었다. 그런데 비쩍 마른 흑인 가수가 길게 땋은 머리를 휘날리며 무대 위를 껑충껑충 뛰어 다니며 휘젓고 다니는 모습은 당시 신선하게 다가왔다. 바로 밥 말리였다. 당시는 그의 무대 매너가 좋았다. 그리고 그의 독특한 음악적 스타일이 좋았다.

그런 밥 말리를 최근에 다시 접하고 그의 음악을 듣게 되었다. 자유와 평화를 노래하는 뮤지션 정도로 알았던 밥 말리와 레게 음악의 새로운 모습을 보게 되었다. “노래로 태어나 신으로 죽다”라는 부제가 붙은 책은 만만찮은 분량을 자랑하였다. 밥 말리와 그의 주변 사람들에 대한 방대한 인터뷰 내용, 그리고 당시의 시대상황에 대한 이야기들까지 지은이는 이 많은 자료들을 어떻게 구했나 싶을 정도다. 많은 분량의 책이었지만, 읽는 내내 사람으로 하여금 밥 말리의 삶과 인생, 그리고 음악 속으로 빠져 들게 만들었다. 모처럼 시디장 한켠을 차지하고 있던 밥 말리의 음반에 쌓인 먼지를 털어내게 하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밥 말리는 이디오피아 황제였던 ‘하일레 셀라시에’를 의미하는 자 라스타파리(Jah Rastafari)를 신으로 섬기며 자신들의 고향이자 약속의 땅인 아프리카 그 중에서도, 이디오피아로 돌아가자는 것을 교리로 하는 라스타파리아니즘을 숭배하고 이를 음악적으로 표현하고자 했다. 머리를 길게 땋은 드레드록(dreadlock), 녹색, 빨간색, 노란색이 들어간 옷이나 모자를 즐겨하고, 간자(마리화나)를 피우는 모습이나 자유분방한 연애는 결코 익숙한 모습이 아니다. 그의 이런 모습은 그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방해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하고, 기득권층이 그를 멀리 하는 하나의 요소로 작용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것이 그의 모습 전부는 아니다. 

본명 로버트 네스타 말리, 백인 아버지와 흑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아, 트렌치타운에서 성장. 밥 말리의 성장기를 본다면 그의 인생이 일반적인 사람들의 모습과는 많이 다를 것이라는 것은 어느 정도 짐작이 가는 부분이다. 그는 힘든 상황 속에서 레게 음악이라는 자메이카 토속리듬을 통해 자신만의 세계를 그려 내었고, 이는 곧 많은 젊은이들의 호응을 이끌어 내었다. 그의 음악은 단순히 흑인들만이 좋아하는 음악이 아니라, 전 세계의 젊은이들이 듣고 좋아하는 음악이 되었다. 자유와 평화, 정의에 대한 뜨거운 열정과 완벽을 추구하는 연주는 그의 기이한 행동이 단순한 것이 아니라, 그의 내면 세계를 대변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1978년 정치적으로 불안한 자신의 고향 자메이카로 돌아와 ‘사랑과 평화의 콘서트’를 통해 화해 분위기를 조성하는 등 그의 공연은 자메이카 국민들을 하나로 묶는 역할을 하여 정치인 이상의 신뢰를 주었다. 이러한 일로 해서 UN으로부터 평화 메달 수여하기도 한다. 그런 그의 행보는 뜻하지 않은 암이라는 병으로 36세라는 짧은 생을 마감하게 된다. 천재는 불운하다고 했던가. 그에게 딱 들어맞는 말이다. 짧은 기간 동안 그가 들려준 폭발적인 음악은 우리들의 뇌리에서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밥 말리에 대한 추도문에서 “지금 그의 목소리는 …전 세계, 모든 곳에서 울려 퍼지고 있으며, 그의 날카롭고 섬세한 이목구비와 장엄함으로 상대방을 압도하는 그의 머리, 활기차고 당당한 그의 몸짓은 우리들 마음 속에 생생하게 새겨질 것입니다…대부분의 사람들은 우리의 회고의 대상이 되지 않습니다. 밥 말리는 이해의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경험, 우리들 한명 한명의 뇌리에 결코 지워지지 않는, 신비로운 인상으로 남을 경험이었습니다. 그와 같은 경험은 절대 지워지지 않습니다. 그는 이미 이 나라의 일부, 우리 모두가 공유하는 집단의식 속의 일부가 되었습니다.”라고 하듯이 밥 말리는 나에게 있어 새로운 경험이었다.

밥 말리를 밥 말리 이상으로 과대포장하는 사람도 있다. 그렇다고 그를 폄하할 필요도 없다. 그는 뮤지션으로 우리 곁으로 왔다가 우리 곁을 떠나간 사람으로, 레게라는 음악을 통해 우리에게 새로운 경험을 안겨 준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가 우리에게 남겨 준 것은 우리가 해석하고 우리가 받아 들여야만 하는 과제인지도 모른다.

레게 음악이 우리에게 그다지 친숙하지 않았던 7, 80년대 나에게 잠시 흔적을 남기고 스쳐 지나갔는데, 21세기 대통령 선거를 앞둔 이 시점 대한민국에 밥 말 리가 되돌아 왔다. 그의 노래도 좋지만 그가 들려주고 행동하였던 의미가 남다르게 느껴지는 2007년 11월 겨울이다. 정의와 평화 자유를 토해내는 정치인들의 모습 위로 머리를 길게 딿은 드레드록을 하고 격정적으로 무대를 헤집고 다니는 밥 말리의 모습이 교차한다. 과연 누가 우리에게 필요한 사람일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스키너의 심리상자 열기 - 세상을 뒤바꾼 위대한 심리실험 10장면
로렌 슬레이터 지음, 조증열 옮김 / 에코의서재 / 2005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열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라는 말이 전해주듯이 사람의 심리를 꿰뚫어 보기는 정말 힘들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의 내면 세계를 다루는 심리학이 매력적으로 다가오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가 접하는 심리학 책들은 거의 대부분이 어려운 전문적인 용어로 가득하고, 거기다가 각종 그래프와 도표까지 더해져 그야말로 신성불가침(?)의 영역처럼 보여 접근 자체를 막아 버린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접하게 된 이 책은 ‘심리학도 이렇게 재미나게 읽혀질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을 가지게 만들었다.

이 책은 부제에서도 밝히고 있듯이 당시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대담한 가설과 이론으로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한 20세기 대표적인 심리학자와 정신 의학자들의 심리 실험 10장면을 소개하고 있는데, 이야기 하듯이 에세이 형식으로 쓰여져서인지 여섯 편의 단편을 한 권으로 묶은 추리 소설을 읽는 느낌 내지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보는 느낌을 주었다.

지은이는 글의 사실성과 정확성을 기하기 위해 직접 발로 뛰며 글에 생명력을 불어 넣고 있다. 스키너 박사를 고소하고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고 알려진 박사의 딸 데보라 스키너를 찾아 다니는가 하면, 스탠리 밀그램의 전기 충격 실험에 참가한 피실험자를 만나 당시 상황에 대해서 들어 보고, 심지어는 마약 중독의 실제 원인을 확인하기 위해 마약을 직접 복용해 보기도 한다. 자신의 글에 대한 애착을 넘어 집착으로 보여지기까지 할 정도로 열정적인 모습을 보여 주었다.

인간의 행동은 보상을 받으면 강화되고, 처벌을 받으면 소멸된다는 스키너의 상자 실험, 인간이 불합리한 명령에 복종하는 것은 성격보다는 상황에 있음을 밝혀낸 스탠리 밀그램의 전기 충격 실험, 1964년 캐서린 제노비스가 살해 당하는 현장을 목격한 38명이 방관한 것에 의문을 품고 동일한 조건 하에서 실험을 통해 개인의 책임은 집단 규모에 반비례한다는 것을 밝혀낸 달리와 라티네의 실험, 스킨쉽의 중요성을 강조한 해리 할로의 가짜 원숭이 실험, 인간은 자신의 마음속에서 양립 불가능한 생각들이 심리적 대립을 일으킬 때 행동에 따라 믿음을 조정하는 동인을 형성한다는 레온 페스팅거의 실험, 약물 중독이 약의 문제인지 아니면 사회의 문제인지에 관한 브루스 알렉산더의 마약 중독 실험, 우리의 기억이 사실인지 허구인지를 밝히려 한 엘리자베스 로프터스의 가짜 기억 이식 실험 등 한 시대를 풍미했던 충격적인 실험들을 통해 우리는 인간의 심리와 내면을 들여다 보게 된다.

현재는 널리 알려진 이야기일 수 있지만 당시로서는 위와 같은 실험이 사회에 몰고 온 파장은 엄청난 것이었다고 한다. 개인적으로는 이 책에 실린 내용들이 그저 놀랍기만 할 따름이었다. 어떻게 이런 실험을 할 생각을 했는지... 특히 스탠리 밀그램의 제노비스 사건 실험이나 레온 퍼스팅거의 인지부조화 이론, 엘리자베스 로프터스의 가짜 기억 이식 실험은 신기한 정도를 넘어서 인간인 우리 자신도 인식하지 못하는 인간의 본성을 알게 되어 어떤 면에서는 섬찟하기도 했다. 10개의 챕터로 이루어져 있지만 일단 책을 잡으면 놓기가 쉽지 않을 정도로 흥미진진하다. 하나의 챕터에서 다음 챕터로 넘어갈 때마다 다음 챕터에는 어떤 이야기가 들어있을지 궁금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물론 위와 같은 실험을 통해 인간 심리 내지는 본성이 다 밝혀진 것은 아닐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어느 실험실에서는 인간의 내면세계를 파헤칠 획기적인 실험이 진행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기 보다는 비난의 대상이 되었던 실험들을 통하여 우리는 인간 심리 내지는 본성의 새로운 면을 보게 되었다. 이 책이 가지는 강점은 이러한 실험이 지은이의 경험까지 곁들여 재미난 이야기체로 서술하였다는 점도 있지만, 실험에 이르게 된 학자들의 끊임없는 탐구 정신과 굽힐 줄 모르는 신념이 보여주는 드라마틱한 서술 구조도 이 이야기에 빠져 들게 만드는 흥미 요인이 되었다. 이 책이 많이 이들로부터 호응을 얻은 것은 지은이가 심리학과 같은 딱딱하고 건조한 학문에 쉽게 접근하지 못하는 독자들의 심리를 잘 파악하고 자신만의 스타일로 이야기를 녹여 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은 아니었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