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말리 - 노래로 태어나 신으로 죽다
스티븐 데이비스 지음, 이경하 옮김 / 여름언덕 / 2007년 10월
평점 :
절판


레게 음악은 주류 음악은 아니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레게 음악이 차지하는 비중은 미약할 정도다. 레게 음악이라면 자메이카의 토속적인 리듬을 바탕으로 한 신나는 댄스 곡 정도로 생각하는 것이 전부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는 우리가 레게 음악이라고 하는 장르의 일부만을 본 것이다. 미국과 유럽을 제외한 제3세계의 토속 음악이 그렇듯이 레게 음악은 자메이카 하층민의 암울하고 핍박받는 삶을 대변하던 음악이었다. 신나는 댄스 리듬에 드리워진 우울함이 빚어내는 아름다움은 처절하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음악이 밥보다 더 중요하였던 학창시절 나를 사로잡은 음악은 하드 락이나 헤비메탈이었다. 그에 비하면 레게 음악이 가지는 파워는 약했다. 세련되지 않고 정제되지 않은 투박한 느낌의 음악이었다. 그런데 비쩍 마른 흑인 가수가 길게 땋은 머리를 휘날리며 무대 위를 껑충껑충 뛰어 다니며 휘젓고 다니는 모습은 당시 신선하게 다가왔다. 바로 밥 말리였다. 당시는 그의 무대 매너가 좋았다. 그리고 그의 독특한 음악적 스타일이 좋았다.

그런 밥 말리를 최근에 다시 접하고 그의 음악을 듣게 되었다. 자유와 평화를 노래하는 뮤지션 정도로 알았던 밥 말리와 레게 음악의 새로운 모습을 보게 되었다. “노래로 태어나 신으로 죽다”라는 부제가 붙은 책은 만만찮은 분량을 자랑하였다. 밥 말리와 그의 주변 사람들에 대한 방대한 인터뷰 내용, 그리고 당시의 시대상황에 대한 이야기들까지 지은이는 이 많은 자료들을 어떻게 구했나 싶을 정도다. 많은 분량의 책이었지만, 읽는 내내 사람으로 하여금 밥 말리의 삶과 인생, 그리고 음악 속으로 빠져 들게 만들었다. 모처럼 시디장 한켠을 차지하고 있던 밥 말리의 음반에 쌓인 먼지를 털어내게 하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밥 말리는 이디오피아 황제였던 ‘하일레 셀라시에’를 의미하는 자 라스타파리(Jah Rastafari)를 신으로 섬기며 자신들의 고향이자 약속의 땅인 아프리카 그 중에서도, 이디오피아로 돌아가자는 것을 교리로 하는 라스타파리아니즘을 숭배하고 이를 음악적으로 표현하고자 했다. 머리를 길게 땋은 드레드록(dreadlock), 녹색, 빨간색, 노란색이 들어간 옷이나 모자를 즐겨하고, 간자(마리화나)를 피우는 모습이나 자유분방한 연애는 결코 익숙한 모습이 아니다. 그의 이런 모습은 그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방해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하고, 기득권층이 그를 멀리 하는 하나의 요소로 작용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것이 그의 모습 전부는 아니다. 

본명 로버트 네스타 말리, 백인 아버지와 흑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아, 트렌치타운에서 성장. 밥 말리의 성장기를 본다면 그의 인생이 일반적인 사람들의 모습과는 많이 다를 것이라는 것은 어느 정도 짐작이 가는 부분이다. 그는 힘든 상황 속에서 레게 음악이라는 자메이카 토속리듬을 통해 자신만의 세계를 그려 내었고, 이는 곧 많은 젊은이들의 호응을 이끌어 내었다. 그의 음악은 단순히 흑인들만이 좋아하는 음악이 아니라, 전 세계의 젊은이들이 듣고 좋아하는 음악이 되었다. 자유와 평화, 정의에 대한 뜨거운 열정과 완벽을 추구하는 연주는 그의 기이한 행동이 단순한 것이 아니라, 그의 내면 세계를 대변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1978년 정치적으로 불안한 자신의 고향 자메이카로 돌아와 ‘사랑과 평화의 콘서트’를 통해 화해 분위기를 조성하는 등 그의 공연은 자메이카 국민들을 하나로 묶는 역할을 하여 정치인 이상의 신뢰를 주었다. 이러한 일로 해서 UN으로부터 평화 메달 수여하기도 한다. 그런 그의 행보는 뜻하지 않은 암이라는 병으로 36세라는 짧은 생을 마감하게 된다. 천재는 불운하다고 했던가. 그에게 딱 들어맞는 말이다. 짧은 기간 동안 그가 들려준 폭발적인 음악은 우리들의 뇌리에서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밥 말리에 대한 추도문에서 “지금 그의 목소리는 …전 세계, 모든 곳에서 울려 퍼지고 있으며, 그의 날카롭고 섬세한 이목구비와 장엄함으로 상대방을 압도하는 그의 머리, 활기차고 당당한 그의 몸짓은 우리들 마음 속에 생생하게 새겨질 것입니다…대부분의 사람들은 우리의 회고의 대상이 되지 않습니다. 밥 말리는 이해의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경험, 우리들 한명 한명의 뇌리에 결코 지워지지 않는, 신비로운 인상으로 남을 경험이었습니다. 그와 같은 경험은 절대 지워지지 않습니다. 그는 이미 이 나라의 일부, 우리 모두가 공유하는 집단의식 속의 일부가 되었습니다.”라고 하듯이 밥 말리는 나에게 있어 새로운 경험이었다.

밥 말리를 밥 말리 이상으로 과대포장하는 사람도 있다. 그렇다고 그를 폄하할 필요도 없다. 그는 뮤지션으로 우리 곁으로 왔다가 우리 곁을 떠나간 사람으로, 레게라는 음악을 통해 우리에게 새로운 경험을 안겨 준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가 우리에게 남겨 준 것은 우리가 해석하고 우리가 받아 들여야만 하는 과제인지도 모른다.

레게 음악이 우리에게 그다지 친숙하지 않았던 7, 80년대 나에게 잠시 흔적을 남기고 스쳐 지나갔는데, 21세기 대통령 선거를 앞둔 이 시점 대한민국에 밥 말 리가 되돌아 왔다. 그의 노래도 좋지만 그가 들려주고 행동하였던 의미가 남다르게 느껴지는 2007년 11월 겨울이다. 정의와 평화 자유를 토해내는 정치인들의 모습 위로 머리를 길게 딿은 드레드록을 하고 격정적으로 무대를 헤집고 다니는 밥 말리의 모습이 교차한다. 과연 누가 우리에게 필요한 사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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