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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문화의 패러다임 ㅣ 한나래 언론문화총서 22
원용진 지음 / 한나래 / 2000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얼마전 우리 사회는 개그맨 출신의 심형래 감독이 연출한 “디 워”에 대한 논쟁으로 뜨거웠다. 한편에서는 한국 영화계의 현실을 고려한다면 영화 “디 워”에서 보여주는 특수효과는 대단한 것으로 헐리우드 영화에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잘 만들었다고 하는데 비해, 다른 한 편에서는 스토리도 엉성하고 특수효과도 조잡하기 이를데 없다며 논할 가치가 없는 영화라고 혹평을 하였다. 이는 비단 네티즌들만의 논쟁에 그치지 않고 진중권이라는 대중문화 비평가가 가세하면서 네티즌과의 설전은 극에 치달으며 영화 “디 워”에 대한 논의를 넘어 문화를 소비하는 대중들의 문화 의식 수준에 대한 논의로 까지 이어졌다. 근래 보기 드문 과잉반응이었다.
하지만 위와 같은 논의가 갑작스러운 것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이러한 현상은 그간 우리 대중 문화에 대한 진지한 논의가 없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대량 생산에 의한 대중 소비가 가능해지고 인터넷이라는 대중 매체가 활성화되면서 대중 문화에 대한 논의가 많은 사람들에 의해서 이루어지고 있는 와중에서 영화 “디 워”가 그 불씨를 지핀 것이라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대중 문화라고 하면 고급 문화에 반대되는 저급 문화로서, 때로는 상업 문화로 치부되면서 그다지 좋지 않은 방향으로 내몰려 온게 사실이었다. 그래서인지 대중 문화를 향휴하는 대중 자신들도 대중 문화를 심지어는 천박한 것으로까지 여겼던 것이다. 이런 사회적 풍조는 대중들만이 아니라 대중 문화를 연구하는 학자들에게도 일정 부분 책임이 있다. 지은이는 그러한 점을 통감하고 이 책에서 대중 문화를 읽는 눈을 제시하고 있다.
19세기 말 20세기 초반 사회의 급격한 변화로 인해 대중은 역사의 무대 위로 부상한다. 이는 대중 매체의 등장과 궤를 같이 하는데, 대량 복제 기술을 통한 문화의 대량 생산, 대량 소비가 가능해지면서 문화의 소비가 대중에게까지 확대되기 시작한 것이다. 예전에는 생산자 중심의 문화였다면 이제 바야흐로 소비자 중심의 문화가 형성되기 시작한 것이다. 소비자의 기호를 읽어야 하는 것이다. 바로 이 점이 대중 문화를 곱게 바라보지 않는 부분이기도 하다. 대중들의 기호에 영합하려는 기획은 대중 문화의 질을 하향평준화 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대중 문화를 싸잡아 평가절하할 수만은 없다. 좀 더 많은 대중들이 문화의 소비자로 등장하면서 문화는 다양성을 기하게 되고, 대중들의 관심으로 인해 문화 생산자도 안일하게만 있을 수 없게 되었다. 대중들의 관심은 활력소이자 채찍으로 다가온 것이다. 우리 대중 문화가 더욱 풍성해질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면 대중 문화는 무엇인가? 이에 대해서는 다양한 논의가 존재한다. 대중 문화를 처음으로 분석한 대중 사회론부터, 마르크스주의 문화론, 문화주의 문화론, 구조주의 문화론, 여성 해방주의 문화론, 후기 구조주의와 포스트모더니즘 등 각자가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대중 문화는 여러 모습으로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지은이는 문화를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읽히는 대중 문화론에 대해 이 책의 대부분을 할애하면서 설명하고, 마지막 장에서 변화하는 시대에 맞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지은이는 대중 문화에 대한 본질을 찾는 일은 큰 의미가 없고, 시대적 상황에 따라 어떻게 변화해 왔는가, 그리고 지금 이 시점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를 살펴보는 일이 더 의미 있는 일이라고 한다. 그와 같은 대중 문화 연구에서는 갈등이나 경쟁 등과 같은 역동성이 강조되어야 하고, 또한 역사적 환경이 항상 강조되어야 하며, 생산 과정과 소비 과정 그리고 전 과정을 총체적인 모습에서 살펴보아야 한다고 한다.
대중 매체 특히 디지털 매체는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고, 개방성과 상호 의존성을 특성으로 하는 디지털 매체의 특성상 대중들의 문화 참여 현상은 전에 없이 많아졌다. 대중 문화가 우리의 일상 안으로 들어와 있는 이상 대중 문화에 대해 적극적으로 논의하고 이를 통해 능동적으로 그 문화를 거부하거나 참여토록 할 필요성이 증대되었다고 하겠다.
하지만 이러한 지은이의 의도와 달리 책자체는 이해하기가 쉽지만은 않다. 만연체의 서술에다가 일정 부분은 이해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서술된 부분들도 많으며, 도저히 지은이가 이해하고 썼다고 보기에는 힘들 정도로 정리가 안되는 부분들이 많이 눈에 뛴다. 다만 이 책을 통해 급변하는 21세기 디지털 문화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대중 문화를 보는 시각에 대해서 한번쯤 생각하게 하는 기회를 준다는 점에서는 의미가 있지 않나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