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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키너의 심리상자 열기 - 세상을 뒤바꾼 위대한 심리실험 10장면
로렌 슬레이터 지음, 조증열 옮김 / 에코의서재 / 2005년 7월
평점 :
“열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라는 말이 전해주듯이 사람의 심리를 꿰뚫어 보기는 정말 힘들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의 내면 세계를 다루는 심리학이 매력적으로 다가오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가 접하는 심리학 책들은 거의 대부분이 어려운 전문적인 용어로 가득하고, 거기다가 각종 그래프와 도표까지 더해져 그야말로 신성불가침(?)의 영역처럼 보여 접근 자체를 막아 버린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접하게 된 이 책은 ‘심리학도 이렇게 재미나게 읽혀질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을 가지게 만들었다.
이 책은 부제에서도 밝히고 있듯이 당시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대담한 가설과 이론으로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한 20세기 대표적인 심리학자와 정신 의학자들의 심리 실험 10장면을 소개하고 있는데, 이야기 하듯이 에세이 형식으로 쓰여져서인지 여섯 편의 단편을 한 권으로 묶은 추리 소설을 읽는 느낌 내지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보는 느낌을 주었다.
지은이는 글의 사실성과 정확성을 기하기 위해 직접 발로 뛰며 글에 생명력을 불어 넣고 있다. 스키너 박사를 고소하고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고 알려진 박사의 딸 데보라 스키너를 찾아 다니는가 하면, 스탠리 밀그램의 전기 충격 실험에 참가한 피실험자를 만나 당시 상황에 대해서 들어 보고, 심지어는 마약 중독의 실제 원인을 확인하기 위해 마약을 직접 복용해 보기도 한다. 자신의 글에 대한 애착을 넘어 집착으로 보여지기까지 할 정도로 열정적인 모습을 보여 주었다.
인간의 행동은 보상을 받으면 강화되고, 처벌을 받으면 소멸된다는 스키너의 상자 실험, 인간이 불합리한 명령에 복종하는 것은 성격보다는 상황에 있음을 밝혀낸 스탠리 밀그램의 전기 충격 실험, 1964년 캐서린 제노비스가 살해 당하는 현장을 목격한 38명이 방관한 것에 의문을 품고 동일한 조건 하에서 실험을 통해 개인의 책임은 집단 규모에 반비례한다는 것을 밝혀낸 달리와 라티네의 실험, 스킨쉽의 중요성을 강조한 해리 할로의 가짜 원숭이 실험, 인간은 자신의 마음속에서 양립 불가능한 생각들이 심리적 대립을 일으킬 때 행동에 따라 믿음을 조정하는 동인을 형성한다는 레온 페스팅거의 실험, 약물 중독이 약의 문제인지 아니면 사회의 문제인지에 관한 브루스 알렉산더의 마약 중독 실험, 우리의 기억이 사실인지 허구인지를 밝히려 한 엘리자베스 로프터스의 가짜 기억 이식 실험 등 한 시대를 풍미했던 충격적인 실험들을 통해 우리는 인간의 심리와 내면을 들여다 보게 된다.
현재는 널리 알려진 이야기일 수 있지만 당시로서는 위와 같은 실험이 사회에 몰고 온 파장은 엄청난 것이었다고 한다. 개인적으로는 이 책에 실린 내용들이 그저 놀랍기만 할 따름이었다. 어떻게 이런 실험을 할 생각을 했는지... 특히 스탠리 밀그램의 제노비스 사건 실험이나 레온 퍼스팅거의 인지부조화 이론, 엘리자베스 로프터스의 가짜 기억 이식 실험은 신기한 정도를 넘어서 인간인 우리 자신도 인식하지 못하는 인간의 본성을 알게 되어 어떤 면에서는 섬찟하기도 했다. 10개의 챕터로 이루어져 있지만 일단 책을 잡으면 놓기가 쉽지 않을 정도로 흥미진진하다. 하나의 챕터에서 다음 챕터로 넘어갈 때마다 다음 챕터에는 어떤 이야기가 들어있을지 궁금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물론 위와 같은 실험을 통해 인간 심리 내지는 본성이 다 밝혀진 것은 아닐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어느 실험실에서는 인간의 내면세계를 파헤칠 획기적인 실험이 진행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기 보다는 비난의 대상이 되었던 실험들을 통하여 우리는 인간 심리 내지는 본성의 새로운 면을 보게 되었다. 이 책이 가지는 강점은 이러한 실험이 지은이의 경험까지 곁들여 재미난 이야기체로 서술하였다는 점도 있지만, 실험에 이르게 된 학자들의 끊임없는 탐구 정신과 굽힐 줄 모르는 신념이 보여주는 드라마틱한 서술 구조도 이 이야기에 빠져 들게 만드는 흥미 요인이 되었다. 이 책이 많이 이들로부터 호응을 얻은 것은 지은이가 심리학과 같은 딱딱하고 건조한 학문에 쉽게 접근하지 못하는 독자들의 심리를 잘 파악하고 자신만의 스타일로 이야기를 녹여 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은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