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락방님이 보내주신 반쯤 읽다 만<코끼리의 등>을 배낭 뒤에 쑤셔넣고 공항에 도착했다.
3시간이나 일찍 도착하여 시간을 죽일 구석자리를 찾는다.
루이비통 짐가방, 에르메스 핸드백, 저 빛나는 머리결...럭셔리가 온 몸을 휘감고 있는 그녀의 뒤에 앉는다.
향수 냄새가 폴폴 풍긴다.
'샤넬인가? 랑콤인가?' '물어볼까?' 온갖 생각이 머리를 어지럽힌다.
한국인이 등장할 때마다 그녀는 사람들을 붙잡고 말을 건다. 한류팬인가보다.
티켓팅이 시작되고 그녀가 자리를 뜬다.
나는 다시 책에 머리를 파묻고 읽기 시작한다.
'흠, 언제 눈이 번쩍 뜨이는 내용이 나올까? 심심한 내용이구만... '
뱅기에 올랐다.
내 앞에는 준수한 한국 청년이 앉았고, 한국 청년 앞자리는 이런~럭셔리한 그녀가 앉아 있다.
그녀. 고개를 뒤로 돌려 준수한 한국 청년과 대화를 한다.
그것도 1.5배속 빠른 오사카 사투리로...목소리 대빵 크다!
럭셔리한 그녀의 환상이 와르르 무너지는 순간...
나는 1시간 반의 그나마 짧은 비행시간 내내 쉬지 않고 그녀의 목소리를 들었다.
뵨사마, 아이리스...
책 속에서 주인공은 추억의 사람들을 만나고 있건만 나의 눈은 책을 향하고, 나의 귀는 그녀의 대화를 향하고 있으니...깔끔하게 하나만 하자.
창문을 통해 구름을 보면서 그녀의 침 튀기는 한국 드라마 예찬에 귀를 기울이며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이 있나 귀를 기울이기로 했다.
비행기가 공항 활주로에 바퀴를 내린다.
사람들이 짐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날 때, 그녀가 청년에게 "이야기 들어줘서 고마워요. 실례했어요."라는 말을 남기고 총총총 사라진다.
나는 그녀보다 이 준수한 한국 청년에게 마음 속으로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