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할일도 많을 때 꼭 쓰고 싶은 얘기가 생각나는 이유는? ㅠ_ㅠ

같은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직원 중에 M이라는 일본여성이 있다.
나이는 30대 후반쯤, 미국인 남편과 결혼했고 이제 3살쯤 되는 아기의 엄마.
이렇게 보면 뭐 평범한 스토리.
듬직한 미국인 남편과 자그마하고 이쁜 동양인 부인,
미모의 (혼혈이라서 미모가 벌써부터 웬만한 이쁜 아가씨 뺨친다;) 딸이 이루는 단란하고 행복한 가정. 
쩝.  나도 그런 줄 알았다. 그집 사정을 알기 전까지는...

M은 소위 가족의 경제를 혼자서 어깨에 지고 있다고 한다.
그 듬직한 미국인 남편은 뭐하냐고? 물론 화려한 흰손이시다;
아니 영어도 자유롭지 않은 와이프는 남의 나라에서 뼈빠지게 일을 하는데
(물론 영어로 의사소통을 못할 정도는 아니지만 미국인 남편과 연애+결혼 합쳐 15년을 함께 보내고
또 그동안 미국에서만 살았다는 것을 감안하면 그녀의 언어감각은 결코 뛰어나다고 할 수 없다.) 
멀쩡하게 대학 나온 미국인 남편은 왜 집에서 노느냐...그건 며느리도 모른다.

물론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나라고 남편은 무조건 밖에 나가서 돈벌어와야 하고
아내는 무조건 집에서 살림하고 애를 키워야 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최소한 가장으로써 책임 의식은 있어야하지 않나.
일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집에서 살림을 도와주거나 아이를 봐주는 것 같지도 않다.
맨날 살림때문에, 아이때문에 잠을 못잤다는 얘기를 하는거보면.
보다못한 같은 그룹 사람들이 하도 M이 안됐어서 남편에게 일자리를 알아봐준 일도 적지 않다고 한다.
그런데 공립학교 선생님 일은 종교적인 신념이 맞지 않아서 거들떠보지도 않고
(과학시간에 진화론을 언급하는 공립학교에서 돈을 받을 수는 없다고 한다 ㅠ_ㅠ)
하다못해 서빙이라도 해서 가계에 좀 보탬이 되면 좋으련만
그것도 소개시켜주면 한두달이 고작이라고 한다.

거기다 한술 더 떠서 집에서 따분하셨는지 커뮤니티 칼리지 (교양대학 정도)에서
뭔 교양수업을 듣는대나 뭐래나 수업료까지 가져간다고 한다.  -_-;;;;
(일자리나 기술에 관련된게 아니라 '교양'이다 '교양' !)
나야 혼자 사니까 사치는 못하더라도 외식도 좀 하고 가끔 여행도 하고  쬐애끔 저금도 하고 살지만
M의 월급은 나보다도 훨씬 적은데 대체 세 식구가, 거기다가 남편이 수업료 가져가지,
M이 회사에서 일하는 동안 애기 봐줄 보모 월급줘야지, 도대체 어떻게 생활을 하느냔 말이다. ㅠ_ㅠ
그래서 M은 일주일이면 월화수목금 내내 도시락이다.
가끔 누가 회사를 그만두거나 해서 친했던 동료들끼리 밖에 나가서 점심을 먹을 일이 있어도
메뉴를 놓고 10분은 고민한다. 제일 싼건 6불이지만 7불짜리를 먹고싶은거다.
1불을 가지고 그렇게 고민하는걸 보면 안쓰러워서 그냥 내가 내줬으면 딱 좋겠구만 그건 또 이상하고..
'에이..이게 1불 비싸네..우리 신랑 수업료 생각하면 1불쯤 아무것도 아니지만서도..' 하며 배시시 웃고는
꼭 제일 싼걸 시킨다 ㅠ_ㅠ 어휴 복장터져
옷은 어디 변변한걸 입고 다니나. 내가 동대문시장에서 산 만원짜리 옷 입고가면 맨날 디게 부러워한다.
이쁘다..이쁘다..이것도 한국에서 산거야? 하면서...

그나마 회사에선 나랑 얘기가 통해서 가끔 수다를 많이 떤다.
물론 나랑은 영어로 얘기할 필요가 없고 격식 안차리고 아줌마 토크를 할 수 있어서 편하기도 하겠지만
내가 보기에 진짜 이유는 그룹 사람들 중 아무도 진지하게 M을 상대해주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그룹 매니저는 일 못한다고 대놓고 구박하지 ㅠ_ㅠ
직속 매니저는 말은 안하지만 아예 상대를 안해주지
그러다보니 사람들이 다들 M이 하는 얘기를 은근히 무시하고 별로 진지하게 생각하질 않는다.
나보다 훨씬 오래 일했는데도 월급이 적은 이유가 그동안 월급이 오르질 않아서라고 한다. ㅜ_ㅜ 
(이건 사실 개인 비밀인데 매니저가 다른 사람한테 얘기한걸 전해들었다;;;;)
그러면서도 궂은 일 (생일 챙기기, 밖에 나가서 뭐 사오기 등등)은 몽땅 맡겨버린다.

근데 참 신기하다.
나같으면 가사일이나 회사일이나 남편일이나 뭐 하나 속시원한게 없고 짜증만 나고
내가 남의 나라까지 와서 왜 이러고 사나 한숨만 푹푹 쉬고 살 것 같은데 
언제나 얼굴에 웃음이 가득이다.
정은 또 얼마나 많은지 항상 초콜렛 한쪽만 있어도 나눠먹자고 하질 않나
내가 어디 아파서 조퇴하면 꼭 다음날 괜찮냐고 물어봐주고 기도해준다고 해주고
(난 날라리 천주교고 M은 기독교지만 어쨌든 기도해준단다 ㅋㅋ)
나뿐만 아니라 자기 상대도 안해주는 그룹 사람들 생일카드는 혼자서 다 챙긴다.

어제 밤새도록 아파서 잠 한숨 못자고 오늘 병원에 가려고 일찍 퇴근하는 길에
뒤늦게 출근하는 M을 마주쳤다. 뭐가 그렇게 좋은지 얼굴에 웃음을 가득 띠고
예의 도시락 봉지를 들고 문을 들어서면서 '어머나 안녕~~~' 하고 인사를 하는 모습을 보고
화장기 하나 없지만 참 예쁘다는 생각을 했다. 
사람들은 어디가 하나 모자라서 저러고 힘들게 살지 않느냐고 하지만...(너무하다 ㅠ_ㅠ)
긍정적으로 열심히 사는 게 저런거 아닐까.
나도 한 낙천주의자라는 말 많이 듣고 살았는데 요새 비실거리다보니 인상만 벅벅쓰고 살았다.
웃고 살자. 힘들어도, 이러다가는 굴러들어올 복도 내 얼굴 보고 놀라서 도망가겠다.
항상 선생님은 가까운 곳에 있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세실 2006-04-01 14: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겉으로 내색 안하려고 하니 속으로는 얼마나 힘들겠어요......
주위 사람들이 따뜻하게 감싸주면 좋으련만....에공 먼 먼 이국땅에서 불쌍하네요...
역시 키티님은 맘이 따뜻하시군요~~~~~

하루(春) 2006-04-01 15: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쓸쓸하네요.

Koni 2006-04-01 15: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럼에도 불구하고, 뭔가 사랑이 있는 거라면, 그 M씨는 굉장한 로맨티스트일지도 모르겠네요.

하늘바람 2006-04-01 19: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엠이 이해되네요.

LAYLA 2006-04-01 2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분이시네요...

Kitty 2006-04-03 09: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실님/ 사람들이 좀 막 대합니다. ㅠ_ㅠ 보고있으면 제가 다 무안하여요 흑흑

하루님/ 남편이 빨리 직장을 잡으면 좋으련만..참 갑갑합니다요;

냐오님/ 사랑하니까 저렇게 웃으며 살지 않을까요? 남편한테 굉장히 잘해요..-_-;;;
회사 모임에 멀쩡히 얼굴들고 나타나는 남편도 신기 -_-;;

하늘바람님/ ㅠ_ㅠ 전 이해는 잘 안되지만 그냥 잘해주려고 노력합니다.
하늘바람님 이해심이 넓으셔요~

라일라님/ 넹 그래서 친하게 지내려구요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