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다니던 대학에서 1학년이면 꼭 이수해야 했던, 문장작법 과목의 시간강사가 소설의 다인칭기법을 설명하며 밀란 쿤데라를 거론하길래, '농담' 을 찾아 읽었다.

  나중에야 그 작품이 밀란 쿤데라의 데뷔작임을 알 게 되었다. 이런 거 보면 결국 글쓰기도 어느 정도는 타고나는 거란 생각하게 된다.


  '농담'이 워낙 재밌어서 학교 도서관에서 그의 작품을 찾아보다가 '히치하이킹 게임' 이라는 단편을 읽었는데, 읽은지 아주 오래 전이지만, 아직까지도 그 내용이 너무 생생하고 아직까지도 기분이 너무 더럽다.


  하지만, 밀란 쿤데라의 '히치하이킹 게임' 은 정말 탁월한 단편이다. 불편하지만 외면하고 싶은 사랑의 속성을 너무나도 절묘하게, 말 그대로 까발리는 작품. 정말 짧았던 단편으로 기억하는데, 여운이 아직까지도 있는 걸 보면 분명 잘쓴 단편이다. 


  이 작품의 남자 주인공은 밀란 쿤데라 소설 속에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고차원 잡놈의 엑기스 같은 놈이다. 대학 시절 이 소설을 처음 읽었을 땐, 여자가 불쌍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와서 생각해보면 여자 역시 아주 수동적으로 남자가 원하는 여자의 모습만을 보여주며 애인을 만났고, 결국 남자나 여자나 거기서 거기인 거였단 생각이 든다.


그런데 나는?? 과연 나는 안그런가? 결국 나도 그렇다.


  누군가를 정말 조건없이 사랑한다는 거 사실은 허상이란 생각이 든다. 난 정말 믿고 싶다. 진정한 사랑이 존재한다고. 작년에 본 '머드' 에서 주인공 소년이 진정한 사랑이 있다고 절박하게 믿고 싶어하는 걸 보면서 꼭 나같았다.


  하지만 나도 정말 아무 조건없이 누군가를 사랑할 순 없을 것이다. 어느 정도 내가 정한 기준에 부합하는 사람을 사랑하고 거기서 조금이라도 어긋나는 점이 보이면 죽도록 실망한다.


  밀란 쿤데라 작품을 '농담', '영원' 을 읽고 여기 말한 '히치하이킹 게임' 까지 읽은 후, 전혀 읽지 않고 있다. 사실 읽을 용기가 없다. 아무리 허구라고 해도 소설 속 남자 주인공들의 비열함을 감당할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아... 차라리 사람 때리고 약한 사람 괴롭히는 악동 같은 놈들 행각을 읽는 게 낫다. 밀란 쿤데라 소설 속 남자주인공 같은 놈들 얘기는 정말 읽고 있기 괴롭다.


  요즘 몇가지 책을 읽다가 다시 도스토옙스키 책을 읽고 있는데, 내가 도스토옙스키 책에 집착하는 이유도 이거와 연관시키면 일면 이해가 간다. 도스토옙스키 소설 속 사람들은 분명 병적이고 비정상적이지만, 보통은 남자가 여자를 아니면 여자가 남자를 죽도록 사랑하고 웬만해선 그 마음이 변하지 않으니까... (다들 사랑이 너무 안변해서 문제이신 분들만 등장하니 ㅋㅋㅋ) 읽으면서 내심 안심을 하게 되는 것이다.


  '농담' 을 다시 읽으려고 사놨는데, 첫 장을 펼치지도 않았고, 저 '히치하이킹 게임' 도 지금 읽어도 엄청난 명작일까? 궁금하여 다시 읽고 싶지만, 다행스럽게도(?) 절판이네. 다시 읽지 않는 게 내 정신건강에 이로울 것 같긴 하다. 또 다시 읽었는데 내 기억 속처럼 대단한 명작이 아니어서 실망할 수도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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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까지나 가정이지만, 인류를 행복하게 만들고 평화와 안정을 가져다줄 궁극의 건물이 가능하다고 치자. 그런데 그런 건물을 
세우려면 단 한 명의 미약한 생명, 이를테면 아까 말한 조그만 주먹으로 자기 가슴을 치던 불쌍한 여자아이를 괴롭히는 것이 불가피한
 일이라 치자. 무고한 아이의 보상받을 수 없는 눈물을 토대로 그 건물을 세워야 한다면, 너는 그런 조건하에서 건축가가 되는 것에
 동의할 수 있겠니? 자 어디 솔직히 대답해 봐! 네가 건설한 건물 속에 사는 사람들이 어린 희생자의 보상 없는 피 위에 세워진 
행복을 받아들이는데 동의하고 결국 받아들여서 영원히 행복해진다 하더라도, 너라면 과연 그따위 이념을 용납할 수 있겠니?”


평소 진짜 뜬금없는 데서 눈물을 콸콸 흘리곤 한다. 
어쩔 땐 그게 단어 하나일 때도 있고, 짧은 수식어 하나일 때도 있다. 
몇 년전에 체호프가 쓴 소설에서 엄마에게 아직 잠들지 않았음을 알리는 아이의 손길처럼 부드러운 잎사귀가 볼을 스쳤다는 내용의 문장을 읽고 눈물이 핑 돌았던 적이 있다. (회사라 정확히 쓸 수 없지만, 대충 이런 내용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중앙선데이에서 석영중 교수가 도스토예프스키에 대해 글을 연재하는데, 거기에 발췌된 글을 읽고 뜬금없이 월요일 아침부터 아침부터 눈물을 훔쳤다.

모두의 행복이라고 하지만 그들이 주장하는 모두의 행복이 진짜로 모두의 행복인 경우는 없었다. 그들이 말하는 모두의 행복은 자기들만의 행복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 누구도 타인에게 희생을 강요할 순 없으며, 그들의 행복추구권을 빼았을 순 없는건데, 사람들은 너무나도 당연하게 약자들을 짓밟곤 한다. 나는 항상 짓밟히는 쪽이라고 생각했지만, 글쎄... 아마 나도 누군가를 아프게 하고 무시한 적 있었겠지. 
그런데 그게 어떤 일이었는지 언제 였는지 지금은 기억조차 못한다는 게 때론 부끄럽고 창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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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관을 덮고 못을 박고 마차에 실었다. 나는 거리가 끝나는데까지만 그를 전송했다. 마부가 속력을 냈다. 노인이 그 뒤를 쫓아가면서 울부짖었다. 그의 울음소리는 달리는 속도에 따라서 떨리기도 하고 끊어지기도 했다. 가엾은 노인은 모자를 떨어뜨렸지만 그것을 줍기 위해 멈춰 서지도 않았다. 그의 울음소리는 달리는 속도에 따라서 떨리기도 하고 끊어지기도 했다. 가엾은 노인은 모자를 떨어뜨렸지만 그것을 줍기 위해 멈춰 서지도 않았다. 그의 머리가 비에 젖었다. 바람도 불어왔다. 찬 서리가 그의 얼굴을 때리고 찔렀다. 노인은 궂은 날씨도 느끼지 못하는지 마차 이쪽 저쪽을 번갈아 달리면서 울부짖었다. 그의 낡은 프록코트 자락이 날개처럼 바람에 펄럭였다.옷에 달린 주머니에서는 온통 책들이 비어져 나왔다. 그가 내내 꼭 쥐고 있던 커다란 책은 여전히 손에 들려 있었다. 길 가던 사람들은 모자를 벗고 성호를 그었다. 어떤 사람들은 가는 길을 멈추고 가여운 노인을 놀란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의 주머니에선 계속 책들이 빠져나와 진흙탕 속으로 떨어졌다. 사람들이 그를 멈춰 세우고 떨어뜨린 물건을 가르켜 보았다. 그는 그것을 주워 들고 다시 관을 쫓아 달렸다. 


생전 책을 좋아하던 대학생 아들이 죽었고, 아버지인 노인은 아들이 좋아하던 책을 주머니에 가득 넣고 울부짖으며 아들의 시체를 실은 마차를 따라 달리는 장면인데, 퇴근길에 이 부분 읽고 너무 슬퍼서 울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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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욕에 불타서 리뷰를 열심히 쓰던 기간은 겨우 한 달 남짓.

내가 하는 짓이 다 그렇긴 하지만, 회사가 너무 바쁘기도 했다.

언젠가는 감상문을 쓰리라 생각만 하면 죽어도 못쓸 것 같아, 성의 없게라도 그동안 읽은 책들에 대해 쓴다.


내가 원래 읽고 싶은 책은 '다시찾은 브라이즈헤드' 인데, 번역된 책이 없어 에벌린 워 책 중에 유일하게 번역된 이 책이라도 읽자 싶어서 읽었다.

빅토리아 시대에 남자들은 이혼을 할 때도, 내가 바람피운 거 마냥 속여서 했다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난 역사에 대해 잘 모르지만 대체로 영국 빅토리아 시대 사람들 다소 우스꽝스럽게 살았던 거 같다. 푸하하하. 쓸데없는 엄격진지근엄한 모습 있자면 진짜 같잖다. 에벌린 워가 그런 모습을 대놓고 풍자하는데 꽤 재밌었다.

읽다 보면 브랜다 때문에 짜증이 막 치미는데, 자기 아들이 말에서 떨어져 죽었는데 카드 놀이 하고 있는 토니 라스트도 그다지 정상은 아니다. 그리고 밑도 끝도 없이 저택에 집착하는 거 어쩔 거임... 하지만, 토니 라스트의 말년 삶은 너무나 충격과 공포였다. 작가양반! 거 너무 잔인한 거 아니오? 

페이지가 엄청 빨리 넘어가는 책이었고, 이 책을 보니 '다시찾은 브라이즈헤드' 도 재밌을 거 같은데, 출간 소식은 들리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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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서점에서 완전 새 책이 2천 원 이길래, 중학생 시절 추억도 떠올림 겸 사서 읽었다.

뜬금없이 터지는 포인트가 꽤 있었다. 특히 '딩크 포슨' 이라고 이름 계속 잘못 부르는 거 별거 아닌데 웃겼다 ㅋㅋㅋㅋㅋㅋ

거창하게 삶의 진리, 의미, 구원 이런 내용을 담고 있는 심오한 소설들은 아니지만 재밌었다.


내가 소설을 읽으며 감탄할 때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어쩔 수 없이 찌질하고 째째한 인간의 모습을 기막히게 묘사할 때인데, 오 헨리표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다들 착해서 조금 아쉽긴 했다.

미국 사람들이 왜 좋아하는 지 알 것 같긴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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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메튜 베리 좀 변태 같다.

웬디가 남자 동생들과 몇 살차이도 안 나는데 엄마처럼 바느질해주고 밥 차리고 하는 모습... 내가 여자라 그런가 읽다가 계속 짜증 났다.

그리고 예전에 셜록홈즈 읽으면서도 느낀건데, 그 시대 영국 사람들은 백인 외 다른 인종은 원숭이와 사람의 중간쯤 되는 존재로 규정하고,절대 인간으로 인정하지 않았던 것 같다. 

인종차별적인 내용이 너무 많이 나와서, 읽으면서 몇 번이나 정신이 아득해졌다. 

읽는데 진짜 힘들었다. 재미 더럽게 없었다... ㅜㅜㅜ

'피터팬' 읽다 보면 '왕자와 거지' 가 얼마나 대단한 책인지 사무치게 깨닫게 된다.

중고로 샀는데도 책값 아까웠다. 표지만 예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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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책이었다. 이보다 더 섬세할 순 없는 문장들.

나는 강원도 깡시골에서 태어나서, 거기서 7살까지 살았는데 하루 종일 나가서 엄마가 내 이름을 부르며 찾아 다닐 때까지 절대 집에 들어오지 않는 어린이였다.

어느 뜨거운 여름날, 다섯 살쯤의 나는 맨드라미가 피어있는 화단에서 채송화를 구경하다가, 채송화 씨를 따서 흙에 뿌렸고, 별안간 곱게 핀 채송화 꽃을 꺾어서 돌로 막 짓이겨버렸다. 별 것도 아니었던 그날, 그때 목덜미에 꽂히던 뜨거운 태양빛이 가끔 어제 있었던 일처럼 생생하다.

책을 읽으며, 시골에서 항상 혼자였던 그래서 때로는 작은 심술을 부리기도 했던 내 유년시절이 떠올라서 자꾸 눈물이 핑 돌았다.

모든 시절 얘기가 다 훌륭했지만, 개인적 경험 때문인지, 유년시절 이야기가 제일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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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14 15: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케이 2019-01-15 10:14   좋아요 0 | URL
요즘에는 포스팅 전혀 안하고 있어요. ㅜㅜ 올해는 할 수 있을지... 한두개씩이라도 쓰려고 노력해봐야겠어요. 댓글 감사해요~
 
미성년 - 상 열린책들 세계문학 108
도스또예프스끼 지음, 이상룡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4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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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생 때 도저히 도서관 대출기한을 못 맞출 것 같아 읽다 포기했던 소설, '미성년' 을 읽었다. (변명하자면, 그때 빌린 '미성년'은 어마어마하게 두꺼운 한 권짜리였다.) '상처받은 사람들' 을 읽고 바로 '미성년'을 읽었는데, '상처받은 사람들' 의 지극히 정상인 '이반'과 '미성년'의 약간 미친 '아르까지'(아르까지 마까로비치 돌고루끼)간 인물의 차이가 어마어마해서 어리둥절할 정도였다. 


  주인공인 아르까지는 귀족 '베르실로프'(안드레이 뻬뜨로비치 베르실로프) 와 베르실로프 가문의 하녀였던 '소피야 안드로예브나' 사이에 태어난 사생아로서, 그들에게 버려진 것이나 다름없이 외롭게 자랐다. 그는 엄마 소피야의 전남편 '마까르 돌고루끼'의 성을 물려받았는데, 공교롭게도 '돌고루끼' 란 성은 유명 귀족의 성이라 만나는 사람마다 아르까지에게 "그럼 돌고루끼 공작입니까?"라고 질문한다. 이 질문이 너무 싫은 아르까지는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거리낌 없이 자신을 베르실로프의 사생아라고 소개한다. 귀족이 아니란 이유로 하숙집 주인에게 구박당하고, 학교에서도 '람베르뜨'라는 동급생에게 괴롭힘당하는 아르까지는 결국 살짝 정신이 이상해지고 마는데, 본인은 그것을 전혀 자각하지 못한다. 오히려 자기는 남들은 가지지 못한 대단한 '이념'을 품고 있고, 그 '이념'을 이루기 위해 어린 나이부터 끊임없이 수행해왔음을 스스로 자랑스럽게 여긴다.

  하지만 이 아르까지가 품은 '대단한' 이념이란 결국 백만장자가 되는 것이었다. 물론 백만장자가 되려는 이유가 아무도 없는 곳에서 아무한테도 방해받지 않고 홀로 지내고 싶어서라고는 하지만, 이 미성숙한 젊은이가 '이념'이라고까지 말하면서 치켜세운 꿈이 한낱 백만장자라니 참 허무했다. 이 '이념'의 실체를 말해주지 않고 얼마나 많은 페이지에 걸쳐 아르까지의 두서없는 방백이 이어지는지.. 소설 읽은 독자들은 아시리라. 아르까지는 계속 혼자 있고 싶다고 말하지만, 이 젊은이가 미쳐버린 결정적 이유는 고독이었다. 사랑받고 싶고 관심받고 싶은데 아버지란 작자는 자기를 아들 취급도 안 해주고, 이에 대한 반발심리로 사랑해 마지않는 어머니에게도 차갑게 대한다. 하지만 난 하숙집 앞에 버려진 갓난 아이를 아무 대책도 없이 자기가 키우겠다고 나서고, 죽은 갓난 아이 때문에 밤새 울부짖는 이 아르까지에게 참 정이 갔다.


  끝없이 떠드는 아르까지 때문에 피곤할 때도 있는데, 진짜 신기한 게 어느 정도 지나면 이 아르까지가 말하는 것과 정반대의 소설 속 상황이 눈앞에 선하게 그려진다는 것이다. 소꼴스키 공작 앞에서 자기는 여자가 정말 혐오스럽다고 열정적으로 말한 지 얼마 안 지나, 소꼴스키의 딸 '까쩨리나'에게 첫눈에 반해 몸을 못 가눌 정도로 비틀거리며 황급히 저택을 떠나고, 제르가쵸프가 주도하는 정치 모임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겠다고 몇 번씩 다짐해놓고 갑자기 벌떡 일어나 아무도 안 궁금해하는 자기의 '이념' 에 대해 말하고, 이념을 이루기 위해 학창시절 굶는 연습을 했고 외투를 오래 입는 법을 연구했다고 해놓고선 미친 듯 룰렛과 도박에  빠져 밤을 지새우는 아르까지를 보다 보면, 아르까지가 말하는 것과 실제는 많이 다름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아르까지가 '나는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 라고 말하면, 너무 당황해서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이 그려지고, '나는 말하지 않으리라 다짐했다'고 하면 결국 말하겠구나 싶고, '걱정하지 않았다'고 하면 너무 걱정스러워서 초조하게 눈알을 이리저리 굴리는 모습이 보이는 듯했다. 이 역시 도스토예프스키가 의도한 바겠지.


  람베르뜨의 꼬임에 넘어가 자기가 어쩌면 까제리나와 혼인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진지하게 하는 안타까운 아르까지에게 "아르까지야! 또 속냐!!!" 라고 외치고 싶지만, 결국 그는 아주 시원하게 속아넘어가고, 베르실로프는 소피야를 세상에서 제일 사랑한다고 자화상에 키스까지 하며 난리쳐놓고선 갑자기 또 까쩨리나에게 눈이 멀어 한바탕 소동을 벌인다.

  모든 상황이 종료되고 아르까지는 소설 초반보다 한결 정상같아 지는데, 그렇다고 아르까지가 미성년 시절보다 훨씬 현명하게 남은 성년 시절을 살아갈 수 있을까? 그의 아버지 베르실로프를 보면 그렇진 않을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다혈질에 언제나 허둥대며 미숙한 아르까지가 아버지 베르실로프와는 달리 진심으로 사랑하는 여자를 만나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고 기원하며 책장을 덮었다.


  사실은 이렇다. 내가 처음 <이념>에 대해서 몰두한 것은 뚜샤르 사숙에 있을 때 그렇게 놀림거리가 되었던 사생아라는 내 신분 때문도 아니고, 홀로 우수에 잠겨 지내던 유년 시대의 아픈 기억 때문도 아니며, 내 상황에 대한 복수심이나 저항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도 전혀 아니다. 아마도 그것은 내 개인적 성격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내 생각으로는 열두 살쯤 됐을 때부터, 즉 자신에 관한 올바른 자각을 가지기 시작함과 거의 동시에 나는 사람들을 싫어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싫어했다기보다는 오히려 왠지 사람들이 무거운 짐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친한 사람들에게까지도 순진한 마음으로 생각하는 바를 있는 그대로 모조리 말하지 못하는 자신이, 물론 내키지 않으면 그렇게 할수도 있기는 하지만, 모든 것에 회의적이고 우울하며 비사교적인 자신이, 무엇 때문인지 항상 억제해 버리는 자신이, 때로는 내 자신도 아주 서글프게 느껴졌다.

-p.155-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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