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난 남들은 다 읽었다는 책 중 안 읽은 책이 의외로 많은데, <페스트>도 그중 한 권이었다. 코로나 시대를 살면서 읽어보면 재밌을까 싶어서 읽었는데, 별로 재미는 없었다. 페스트가 창궐하여 수많은 사람이 죽어나가는 오랑시의 시민들이 나에겐 너무 평온하게 느껴졌고, 주인공 리외도 너무 이상적인 인물이라.... 공감이 가지 않았다. 아무래도 내 개인적 사정 때문인지, 가족을 잃은 비탄에 울부짖고 거대한 질병 앞에 무력한 인간의 모습을 보고싶었나 보다. 근데 웬걸. <페스트>는 아주 건조한 문장의 소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와닿은 문장이 있어 이렇게 페이퍼를 쓴다.


  정오에 열은 절정에 달했다. 뱃속에서 나오는 듯한 기침이 환자의 몸을 뒤흔들었고 환자는 피를 토하기 시작했다. 림프절은 더이상 부어오르지 않았지만, 관절의 오금마다 나사처럼 단단히 박혀 없어지지 않았다. 리외가 판단컨대, 절제 수술은 불가능했다. 열이 오르고 기침을 하면서도 타루는 아직도 간간히 친구들을 쳐다보았다. 오래지 않아 눈을 뜨는 횟수가 점점 줄어들었고, 황폐해진 그의얼굴은 햇빛에 드러날 때마다 더욱 창백해졌다. 그의 온몸이 폭풍에 휩쓸린 듯 발작적으로 경련을 일으키더니, 그의 모습을 비추던 번개도 이제 점점 드물어졌다. 타루는 폭풍 깊은 곳으로 서서히 표류해가고 있었다. 리외 앞에는 이제 미소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움직이지 않는 하나의 가면만 존재할 뿐이었다. 그에게 그토록 친근했던 한 인간이 지금은 창에 찔리고, 인간의 능력을 뛰어넘는 병 때문에 불태워지고, 하늘에서 불어오는 증오에 찬 바람에 온몸을 뒤틀면서 그의 눈앞에서 페스트의 물결 속으로 가라앉고 있었다. 하지만 난파를 막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는 재앙에 대항할 무기도 없이 절망적인 심정으로 기슭에 머물러 있어야만 했다. 그에게는 또다시 빈손과 고통스럽고 애달픈 마음뿐이었다. 결국에는 무기력한 눈물이 앞을 가려 타루가 갑자기 벽 쪽으로 돌아눕는 것도, 그의 몸 어딘가에서 근원적인 줄 하나가 끊어지기라도 한 듯 힘없이 신음 소리를 내며 숨을 거두는 모습도 보지 못했다. 


  죽음을 폭풍 깊은 곳으로 서서히 표류해가고 있다고 표현한 부분에서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사람이 죽어갈 때 이젠 정말로 혼자라는 생각에 얼마나 외롭고 무서울까. 나중에 우리 엄마도 그러시겠지 싶어서 많이 울었다. 페이퍼를 쓰는 지금도 눈물이 고인다.



P.S 원래 처음에는 문예출판사 버전으로 읽다가 도저히 번역이 참을 수 없어 중간에 문학동네로 책을 다시 사서 읽었다. 문예출판사의  <페스트> 에 대해 어떤 알라디너가 참혹한 번역이라고 썼던 거 같은데 공감한다. 다른 분들의 선택에 도움이 되시라고 문예출판사 <페스트>에 실린 글을 친히 적어놓는다. 3부 제일 마지막장의 문장들인데, 몇 번을 반복해서 읽었는데도 내 머리로는 죽어도 이해 불가능. 대체 뭔 말이야??????


  왜냐하면 이상하게도 그때 아직 햇빛을 받고 있는 테라스 쪽으로 올라오고 있는 것은, 으레 도시의 언어가 된 차량과 기계 소리들이 없어진 결과 둔한 발소리와 목소리가 빚어내는 거대한 소음이었다. 그것은 무겁게 내리깔린 하늘에서 나오는 윙윙거리는 재화(災禍)의 아우성 소리에 리듬이 맞추어진 구두창들이 몇천 개 미끄러져 가는 소리였으며, 차츰차츰 온 시가를 채워가는 끝없고 숨막히는 발버둥질치는 소리, 그리고 당시에 우리의 마음속에서 사랑을 대신하고 있던 맹목적인 집념에게 저녁마다 가장 충실하고도 가장 음울한 자신의 목소리를 전해주던 숨막히게 발을 구르는 소리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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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0-09-18 10: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 문예출판사 버전 저 문장 대체 뭐예요??? 번역기 돌려도 이보다 나을 듯.... 와......ㅋㅋㅋㅋㅋㅋㅋ 10번 읽어도 모를 문장입니다.

케이 2020-09-18 11:34   좋아요 0 | URL
처음부터 이상했지만, 계속 참고 읽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적어드린 문장을 읽곤 도저히 더 읽을 수 없더군요. 번역가도 문제지만 이따위 번역을 그대로 출판한 문예출판사에도 실망했습니다. 심해요. 심해. <페스트>를 읽고자 하는 분들은 문예출판사 버전은 반드시 걸러야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