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받은 사람들 도스토예프스키 전집 5
도스또예프스끼 지음, 윤우섭 옮김 / 열린책들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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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약 4일 동안 도스토예프스키의 '상처받은 사람들' 은 나를 지배했다! 나는 이 책이 너무 재밌어서 출퇴근 시간, 잠들기 전, 심지어 (사장님께는 좀 죄송하지만) 회사 근무 시간에도 몰래몰래 책을 읽었다. 구입할 당시 재밌을 거라 생각한 책은 아니었는데, 이 책이 올해 읽은 책 중 최고 재밌는 책 중 한 권이 될 줄이야!


  이 소설은 25살의 젊은 소설가였던 나 '이반 뻬드로비치' 가 군병원 침대에 누워 작년을 회상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무슨 병인지는 모르지만, 그는 이대로 죽을 수도 있다.

 만일 내가 곧 죽는다면, 이 회상기를 쓰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고 사람들은 말할 수도 있겠지?
  내 일생에 있어 매우 어려웠던 지난해가 나도 모르게 끊임없이 생각난다. 지금 나는 이 모든 것을 쓰고 싶고, 만일 내가 이 일거리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면 나는 아마 따분해서 죽었을지도 모른다. 그 모든 지나간 감정들이 이따금 나를 아프고 괴롭도록 흔들어 놓는다. 붓 아래서 그것들은 더 조용하고, 더 조화된 성격을 가질 것이며, 그럴 수록 잠꼬대나 불안한 꿈 같은 느낌은 덜해질 것이다. 나는 적어도 그렇게 여긴다. 글쓰기의 기계적인 활동은 이미 바람직한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그것은 사람을 진정시키고 냉정해지도록 만들며, 나의 내부에서 과거의 작가적 습관을 일깨우고 나의 회상과 병적인 몽환을 일, 즉 작업으로서 변환시켜 놓는다…….
-p.26


   소설의 화자인 이반은 '가난한 사람들' 데뷔했던 청년 시절 도스토예프스키와 닮은 인물이고그렇다 보니 위에서 발췌한 부분처럼 실제 도스토예프스키를 엿볼  있는 부분이 소설에  많이 나온다. 난 훌륭한 소설을 쓰는 것이 꿈인 '상처받은 사람들'의 이반과 소설가 도스토예프스키 둘 다 너무나 좋았다.


 
'상처받은 사람들  시기가 도스토예프스키가 고된 수용소 생활과 군역을 마치고 우여곡절 끝에 뻬제르부르그에 복귀한 때라고 하니죽음을 기다리고 있는 이반은 도스토예프스키가 군역  간질로 병상에 누워있던 때를 반영했으리라도스토예프스키는 언젠가는 뭔가를  쓰겠다는 신념으로 수용소와 군대에서의 모진 세월을 견뎠던 것으로 보인다. 이토록 치열하게 소설가이기를 원했던 사람을 어찌 싫어할  있을까.

 
내가 사랑한 인물 넬리에 대해 쓰기 위해 간략하게 줄거리를 소개하자면,
  
소설가로 성공적으로 데뷔했지만 여전히 가난한 이반은 뻬제르부르그에서 방세가 저렴한 방을 찾아다니다 스미트라는 기분 나쁜 노인의 죽음을 목격한다이반은 스미트의 장례를 치르고 유품을 정리하기 위해 그가 살던 방에 방문하는데  방이 글쓰기에 적당하고 방세도 저렴하여 자기가 사용하기로 한다. 방에서 글을 쓰던 어느 날  까만 머리카락과 눈동자를 가진 다소 이국적 분위기의 13살쯤  소녀 넬리(엘레나)가 스미트를 찾아오고 이러저러한 일 때문에 그녀와 함께 지내기로 한다.
  
한편 일찍 부모님을 여읜 이반을 친부모님처럼 키워준 양아버지 이흐메네프(니콜라이 세르게예비치) 그의 아내 안나 안드로예브나는 홀아비 공작 발꼬프스키(뾰뜨르 알렉산드로비치) 넓은 영지를 성실하게 관리해줬지만, 악랄한 발꼬프스키 공작은 이흐메네프에게 있지도 않은 횡령 혐의를 씌워 거액의 손해배상을 청구한다. 결국 부부는 하나밖에 없는 딸이자 이반의 유일한 사랑 나따샤와 함께 영지를 떠나 뻬제르부르그로 이주하고, 이반은 나따샤와 약혼한다. 하지만 이반의 기쁨도 잠시, 나따샤는 발꼬프스키의 아들 알료샤와 사랑에 빠지고부모님과 이반 모두를 배신하고 알료샤와 함께 야반도주를

  
줄거리를 보면 알겠지만, 이야기 자체는 그다지 복잡하지 않다. 물론 도스토예프스키가 만든 세상 속에서 인물들은 복잡하게 얽히고설켜 서로 질투하고 사랑하고 분노하고 화해하고 죽을 때까지 용서하지 않지만 전혀 어려운 소설은 아니다.   소설이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 중 걸작은 아닌지   같긴 하다나부터도 넬리와 이반 나오는 (chapter)  읽기 위해 다른 장을 읽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다른 인물들에 대해서는  매력을 느끼지 못했으니까 말이다. 아니 매력을 못 느꼈다기보다는 넬리 외 다른 인물들이 다 미웠다. 심지어 착하디착한 이반도 가끔 꿀밤을 때려주고 싶을 정도로 원망스러웠다. 이렇게 모든 등장인물이 밉상으로 보인 이유는 내가 넬리에게 감정이입을 심하게 했기 때문이다. 


  넬리는 겨우 13살 밖에 안됐지만 자기를 구해준 이반을 진심으로 사랑한다. 이 사랑은 존경, 우애 같은 성격의 사랑이 아니라, 남자와 여자의 사랑 바로 그것이다. 사실 넬리는 이반을 사랑할 수밖에 없다. 넬리에게 이반은 아빠이자 엄마, 그리고 친오빠, 친구 그리고 애인 그 모든 것이기 때문이다. 이반은 중고시장에 가서 넬리 옷도 사주고 아프면 의사도 불러주는 등 정성을 다해 넬리를 돌보지만, 이반이 넬리에게 느끼는 감정은 사랑이 아닌 동정과 연민이다. 왜냐하면 그가 사랑할 수 있는 여자는 오로지 단 한 명, 나따샤뿐이니까 말이다. 자기를 배신하고 다른 남자와 살고 있는 나따샤지만 이반은 끝내 나따샤를 사랑하며 그녀가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간다. 이렇게 바보 천치 같은 이반이 어찌나 야속하든지.


  그녀는 이 말을 하면서 사랑 어린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이날 아침 내내 그녀는 그런 시선으로 나를 보았고, 쾌활하고 상냥하게 보였다. 동시에 그녀에겐 뭔가 부끄러운, 심지어 소심한 태도까지 깃들어 있었다. (중략)

「저는, 저는 당신이 계시지 않을 때 당신의 책을 읽기 시작했어요.」 그녀는 작은 목소리로 말하고, 부드러우면서 꿰뚫는 듯한 시선을 나에게 향하고는 온통 얼굴을 붉혔다.

「아, 그래! 맘에 드니?」 나는 면전에서 칭찬받는 작가의 당황함을 느꼈지만, 내가 이 순간 그녀에게 입을 맞출 수 있었다면 그렇게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정말 불가능했다. 넬리는 잠시 침묵했다.

-p.304-305


  내가 이 부분을 발췌한 이유는 읽으면서 이반이 넬리에게 입을 맞췄다면 얼마나 좋았을까!!라는 생각에 무척 안타까운 마음을 가졌기 때문인데, 이건 나한테는 정말 놀라운 일이다. 내가 웬만하면 안 읽는 소설의 소재가 바로 미성년자와 성인의 사랑이다. 나는 그저 시간을 보내기 위해 책을 읽는 소시민이고, 이 세상에는 몇 개 책을 제외해도 좋은 책이 어마어마하게 많기 때문에 본능적으로 꺼려지는 이야기는 꼭 읽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미성년자와 성인의 사랑에 있어선 편협한 내가 24살의 장성한 이반이 넬리에게 입을 맞추지 않아 읽으면서 화가 날 지경이라니?! 그만큼 이 넬리라는 인물의 호소력이란 정말 대단한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난 이 인물을 창조한 도스토예프스키가 참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다. 세상에 그렇게 흉악하게  생긴 양반이 (미안합니다. 도선생님...) 누군가를 지극하게 사랑하는 13살 소녀의 마음을 참으로 잘 묘사해 놓으셨다.


  비련한 소녀 넬리 외에도 인물의 심리를 행동으로 형상화한 부분에도 여러 번 감탄했다. 특히, 소설 초반에 도망간 딸 나따샤를 없는 자식 취급하면서도 남몰래 그리워하는 이흐메네프가 어린 나따샤가 새겨진 메달을 발로 마구 밟다가 흠칫 놀라면서 눈물을 흘리며 메달에 미친 듯 입 맞추는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그 장면에서는 이흐메네프의 터질듯한 감정에 압도당하는 기분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대학시절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을 읽으려고 시도했다가 두 번이나 실패했던 터라, 그저 싼값에 중고책이 나왔다고 이 책을 샀다가 또 읽기에 실패하고 더불어 나한테 실망하는 것 아닌가 했는데, 그건 기우였다. (참고로 대학시절 실패했던 책은 '악령' 과 '미성년'이다. 뭔 배짱으로 '악령' 을 읽으려고 했던 건지 나 원. 아직도 책꽂이에 고이 꽂혀있다...)

  이 책과 함께하는 며칠 동안 진심으로 즐거웠다. 다 읽은 게 아쉬울 정도로.


P.S 1.

이 소설은 악당 발꼬프스키 빼곤 어느 누구도 완전히 행복해지지 못한다는 점에서 전체적으로 어두운 분위기인데, 딱 두 군데 조금 웃긴 부분이 있다. 첫 번째는 돈이라곤 벌어본 적 없는 알료샤가 이반에게 앞으로 소설을 써서 생계를 유지해볼까 한다고 말하는 장면이다. 그의 말을 들은 이반이 '너 까짓 게 소설을 써?'라는 생각에 황당해 하는 부분 좀 웃기고, 두 번째는 아래 부분인데,


그 속에는 최근에 나온 나의 소설에 관해서도 두어 마디 씌어 있었다.

  들여다보니 <통신원>이란 논문이었다. 욕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칭찬하는 글도 아니어서 나는 대단히 만족했다. 그렇긴 하지만 <통신원>은 나의 글에서 전반적으로 <땀 냄새가 난다> 고 말하고 있었다. 즉 내가 땀이 나도록 온 힘을 기울여 글을 쓰며, 정교하게 그 글을 다듬고 마무리 손질을 가하기 때문에 싫증이 날 정도라는 것이었다.

  출판업자와 나는 웃음을 터뜨렸다. 나는 그에게 지난번 소설은 이틀 밤 만에 썼고, 이번에는 이틀 낮과 밤 동안에 인쇄지 세 장 반을 썼다는 사실을 말해 주었다.

-p. 497

: 도스토예프스키가 자기는 소설 이틀 만에 썼는데도 이런 말 듣는다고 소설 속에서 이반을 통해 잘난 척하고 평론가들 비웃는 것 같아서 좀 웃겼다. ㅋ (근데 진짜로 이틀 만에 썼을 것 같음)


P.S 2. 내가 산 책은 2003년에 출판된 중고책으로 한 권으로 된 책이다. 따라서 표기한 페이지도 현재 판매되는 (상), (하) 로 나누어진 책과는 좀 다를 것이다.


P.S 3. 혹시 이 책을 읽기로 마음먹었다면, 맨 앞장 등장인물 소개 절대 보지 말고 바로 읽길 권하고 싶다. 내가 그것만 안 읽었어도 훨씬 더 재밌게 읽을 수 있었을텐데. 뭔가 억울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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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19-10-04 16: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등장인물 소개 정말 너무하죠! ㅎㅎ
그나저나 이 책이 합본이었었군요. 열린책들은 참.... 판형으로 장난 많이 쳐요. 그래도 이렇게 도스토예프스키 전집 내줬으니 뭐;; 용서합니다만... 음.

알료사 정말 ㅋㅋㅋㅋ 소설 쓰면서 먹고 살겠다고 했을 때 정말 너무 웃겼어요. 에휴. 그러면서도 그 자만심은 가진 자의 여유인가 싶어지기도 하고. ㅎㅎㅎ

악령은 아직 안 읽으셨나요? 저도 사두고 아직 도전 못했는데, 내년에는 읽어봐야겠어요. ㅎㅎ

케이 2019-12-09 16:06   좋아요 1 | URL
잠자냥님, 잠자냥님의 소중한 댓글을 이제서야 봤습니다요!
(알라딘 앱을 안깐데다 로그인도 잘 안해서)

ㅋㅋㅋㅋ 알로샤가 소설 쓴다고 하는 부분 읽다보면, 소설가로서 도스토예프스키의 자존심 같은 거 느껴지고 하여튼 정말 재밌는 인물이에요.
왜 그렇게 남의 속도 모르고 왜 맨날 마냥 신나고 들떠 있는지. 정말 대책없는 인물인데 이상하게 미워할 수 없는 인물 ㅋㅋㅋㅋ
 
왕자와 거지 펭귄클래식 55
마크 트웨인 지음, 남문희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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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렸을 때 읽은 동화책을 지금 다시 읽으면 어떨지 궁금하여 알라딘 중고서점에서 '왕자와 거지' 와 '피터팬'을 샀다. 그중 '왕자와 거지'부터 읽었다. 그리고 이 책과 함께 며칠 유쾌한 시간 보냈다.
  '왕자와 거지'의 줄거리는 당연히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긴 소설인지는 처음 알았다. 각 장마다 거지였다가 왕자가 된 톰 캔티, 왕자였다가 거지가 된 에드워드 튜더의 이야기가 아주 유려하게 전환된다. 이쯤에서 우리 똘똘한 톰이 궁금한데? 라고 생각하면 다음 장에 톰 얘기 나오고, 우리 불쌍한 에드워드는 또 무슨 고생을 하고 있을까? 라는 생각하면 틀림없이 다음 장에 에드워드 얘기가 나온다. 작가가 어쩜 이렇게 귀신같이 독자 마음을 잘 알까 싶어서 읽는 내내 진짜 신기했다.
 
  마흔을 향해가는 나도 참 재밌게 읽었지만, 책을 좀 좋아하는 고학년 어린이도 펭귄클래식 버전 그대로 재밌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전 연령대가 재밌게 읽을 수 있는 책 참 흔치 않은데 이 책이 바로 그런 책 중 하나다.
  16세기의 잉글랜드를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어, 주석을 참조해서 당시 왕실과 빈민의 생활상을 상상해 보는 것도 꽤 흥미로웠다. 특히 왕자 대신 매 맞아주는 '회초리 시동' 이 기억에 남는다. 관련 주석을 보니 작가가 지어낸 게 아니라 실존했던 것 같다. 근데 너무 불쌍하잖은가. 오로지 맞기 위해 궁에 있는 어린 소년이라니. 원래 소설에 포함되었다가 막판에 제외되어 부록으로 실린 '한 소년의 모험'이라는 에피소드는 온전히 회초리 시동의 이야기인데, 특별히 이런 에피소드까지 쓴 걸 보면 마크 트웨인 역시 왕 대신 매를 맞던 옛날 회초리 시동 소년이 딱했던 모양이다.
  주인공 아이 톰과 에드워드가 의젓한 왕 같다가도 결국 영락없는 어린이라 읽다 보면 그들의 귀여움에 절로 미소 짓게 된다. 에드워드가 죽을 위기에 처해 눈물을 줄줄 흘릴 땐 너무 안쓰럽고, 톰이 옥새로 호두 까먹었다고 말하는 장면은 또 너무 깜찍하다. 
  일단 '왕자와 거지'는 지루할 틈 없이 재밌었다. 부디 '피터팬'도 나를 실망시키지 않기를.


  톰은 녹초가 된 죄수 같은 기분이 들어, 혼자 하겠다는 눈짓을 보내고 장화를 벗으려고 했지만, 역시 대기 중이던 방해자가 잽싸게 무릎을 꿇고 시중을 들었다. 그 밖에 두어 가지를 더 혼자 해보려고 시도 했지만 번번히 방해를 받았고, 결국 톰은 포기하고 깊은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젠장, 숨도 나 대신 쉬어주겠다고 나서지 않는 게 용하네!"

-p.52


고향에 돌아가기만 하면 다들 그의 귀환에 기뻐 어쩔 줄 몰라 할거라고 기대했건만, 오히려 지독한 냉대 속에 죄수 신세가 되고 말았다. 기대와 현실의 격차가 너무나 벌어져, 넋이 나가고 만 것이다. 비극이라고 해야 할지 괴상하다고 해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무지개를 기대하며 어깨춤을 추고 나갔다가 벼락을 맞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p.216


이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소년은 마른 몸에 예의 바르되 잘 웃지 않는 아이로 유머 감각이 신통치 않을뿐더러 날 때부터 우울한 기질을 타고 났다.

-p.279 ('부록: 한 소년의 모험' 중)

: 앞에 말한 부록의 회초리 시동에 대한 마크 트웨인의 묘사. 잘 웃지 않고 우울한 기질을 타고난 마른 몸의 소년이 괜히 마음에 들어 적어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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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블린 사람들 마카롱 에디션
제임스 조이스 지음, 한일동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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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년 9월 어느날 난 더블린에 갔다. 그때가 내 인생 통틀어 가장 사치스럽게 보낸 일주일이었는데, 그 일주일 동안 나는 런던(잉글랜드)-에딘버러(스코틀랜드)-더블린(아일랜드) 이렇게 세 군데를 홀로 여행했다. 더블린은 보통 사람들이 안 가는 곳인데, 이상하게 꼭 하루라도 있고 싶었고, 딱 1박 2일 체류하다 왔다. 
  그때 더블린 공항에 내려 시내로 가던 버스 안에서의 기분 정말 잊지 못한다. 난생처음 느껴보는 순수하고 청량한 공기, 파란 하늘, 녹색 잔디, 아담한 건물들, 한가한 고속도로. 첫인상은 런던, 에딘버러보다 100배는 좋았다. 더블린의 가장 번화가에 호텔을 잡았는데, 나름 한 나라의 수도이고 어엿한 도시임에도 불구하고 더블린은 평화롭고 느긋하고 조용했다. 이 시골같은 도시가 한때는 영국에서 (독립 전에는 아일랜드도 영국의 일부였으니) 런던 다음으로 큰 도시였다니, 믿기지 않았다. 그런데 나는 더블린에서 뭘 할지 거의 정해놓질 않아서 정처 없이 떠도는 것 외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런던에 비해 여행책자도 너무 없었고, 1박 밖에 안돼서 본격적으로 뭘 하기엔 시간이 부족하기도 했다. 결국 나는 트리니티 칼리지에 있는 고도서관에 가는 것과 길을 걷다 우연히 발견한 오스카 와일드 생가를 보는 것외 특별히 한 일 없이 런던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더블린 사람들'을 읽으며 4년 전 괜히 더블린에 가서 쏘다닌 게 얼마나 잘한 일인가 싶었다. 물론 제임스 조이스가 살던 시대의 더블린과 내가 정처 없이 걸어다닌 더블린은 많이 다를 것이다. 하지만 소설 속 골목이나 공원 등 도시의 전체적인 분위기가 못 가본 도시를 배경으로 한 소설을 읽을 때보다 훨씬 더 실감 나게 느껴졌다. 그래서 러시아 소설에 줄기차게 나오는 상트 페테르부르그도 한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아주 오래전 로알드 달의 단편 '카티나' 읽었을 때처럼 '더블린 사람들'도 전철에서 다 읽은 후 주책맞게 눈물을 쏟았다.
  8월에 다 읽었으니 읽은 지 벌써 2개월이 넘었는데도 아직까지도 여운이 남아있다. 이 소설이 왜 그토록 슬펐을까... 곰곰이 생각해보면 도저히 행복해지지 않을 것 같은 소설 속 인물들의 인생이 너무 딱해서였던 것 같다. 대단한 행운 혹은 사건이 일어났을 때 흔히 사람들은 '소설같다.' 고 한다. 그런데 이 단편집에는 전혀 소설 같지 않은 삶을 살고 있는 인물들만이 등장한다. 주인공들은 백만장자가 아니라 백만장자 옆에 있는 어떤 젊은이, 잘 나가는 저널리스트가 아니라 그 저널리스트를 친구로 둔 사람, 선거에 출마한 사람이 아니라 선거 운동 사무실에서 일하는 사람들, 혹은 그냥 하숙인, 직장인, 학생 등 특별한 사람들이 아니다. 그들의 일상은 발전 없는 도시 더블린에서 어떠한 일도 없이 그저 흘러갈 뿐이고 그들은 또 그렇게 지겨운 오늘을 살아간다.   
  '더블린 사람들'의 등장인물들은 과거에도 현재에도 미래에도 아무런 일이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 확신하며 낙담해있고 뭔가를 시작도 하기 전에 포기해버리며, 어떠한 일에도 크게 기뻐하지도 슬퍼하지도 화를 내지도 않는다. 설령 그들에게 새로운 삶을 살 기회가 주어진다고 해도 절대 의욕적으로 나설 것 같지도 않다. 그들에겐 그럴만한 용기도 배짱도 의지도 없다. 
  '더블린 사람들'이 흥미진진한 소설이라고 말할 순 없다. 그래서 조금 지루하고 재미없게 느껴질 때도 있다. 제임스 조이스가 그려낸 무기력한 도시와 인간들을 보고 있노라면 피곤하고 우울해지기도 한다. 하지만, 누구도 의식하지 않고 행하는 사소한 행동과 그저 그런 일상을 이토록 잘 쓰고 또 한 권의 책으로 엮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더블린이 아니라 그 어느 곳에 사는 사람이라도 결국 대부분은 이 소설 속 주인공들처럼 살고 있다. 멋지고 폼 나게 비참하거나 행복한 삶을 사는 사람은 그렇게 흔치 않으니까. 
  제임스 조이스는 그 누구도 소설로 쓰고 싶지 않고 남루하고 하찮고 보잘 것 없지만 어쩔 수 없는 삶도 누군가는 알아줘야 한다는 생각으로 소설을 썼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일까. 도저히 희망이라곤 찾을 수 없는 이 소설을 다 읽은 뒤 오히려 나는 앞으로 남은 인생이 쭉 지금과 같더라도 나름대로 살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읽으면서 깊이 절망했지만 끝내 나에게 희망을 준 역설적 소설 '더블린 사람들' 을 아마도 난 영원히 사랑하겠지. 아...  더블린에 또 가고 싶어졌다. 


  아침마다 나는  응접실 마루에 누워 그녀의  문을 지켜보았다. 창틀에서 1인치 정도의 틈새만 남기고 차일을 내렸기 때문에 내가 남의 눈에  리는 없었다. 그녀가 현관 층계로 나올 때면  가슴은 마구 뛰었다. 나는 현관으로 달려가서 책을 움켜쥐고 그녀의 뒤를 따라갔다. 나는 한시도 그녀의 갈색 모습에서 눈을 떼지 못하다가, 길이 갈라지는 지점에 다다른다 싶으면 얼른 걸음을 재촉해서 그녀 곁을 지나쳤다. 이런 일이 매일 아침 일어났다. 어쩌다가 우연히  마디 말을 나눈  말고는 그녀에게 말을 걸어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그녀의 이름은 나의 온몸의 어리석은 피를 불러 모으는 소환장과도 같았다.
 -p.37 ('애러비' )


  그녀는 갑자기 겁에 질려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벗어나야 ! 벗어나야만 한다! 프랭크가 그녀를 구해 주리라. 그가 그녀에게  삶을, 그리고 아마 사랑 또한 주리라. 그녀는 살고 싶었다.  그녀가 불행해야 한단 말인가? 그녀에게도 행복할 권리가 있다. 프랭크가 그녀를  팔로 끌어안고,  감싸줄 것이다. 그가 그녀를 구해 주리라.
 -p.49 ('이블린' )


  " 그런데 내가 떠나기 전날  넌즈 아일랜드에 있는 할머니 댁에서 짐을 꾸리고 있는데, 누가 유리창에 돌은 던지는 소리가 나는 거예요. 유리창이 비에 젖었기 때문에 밖을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입고 있던 그대로 아래층으로 달려 내려가 뒤편 정원으로 나가 봤더니,  애가 가엾게도 정원 한구석에서 몸을 벌벌 떨면서  있는거예요."
 (중략)
  "즉시 집으로 돌아가라고 애원했지요. 이러다가는 비를 맞아 죽을 거라는 얘기도 했고요. 그랬더니 그는 살고 싶지 않다고 했어요. 그때  애의  눈이 지금도 눈에 선해요.  애는 나무 한그루가  있는 담벼락 끝에  있었어요."
 -p. 281 ('죽은 사람들' )


  P.S.  진짜 마지막 소설 '죽은 사람들' 에서 마이클 퓨리 죽는 부분 읽고 눈물 대폭발했다. 어쩌면  소설집 전체에서 분위기상 제일 이질적이라고도   있는 격정적(?) 부분인데 어찌나 슬프든지. 어린 것이 살고 싶지 않다고 하는 부분부터 슬펐는데 결국 그가 죽는 부분에선 수습불가 수준으로 울어버리고 말았다네...(원래 혼자 책.영화보다가 잘 운다. 거의 매번 운다고 봐도 무방할정도 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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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17-10-18 10: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더블린 사람들>을 다시 읽어보고 싶어지는 글이네요. ㅎㅎ

케이 2017-10-18 11:40   좋아요 0 | URL
솔직히 저는 이 책 배송료 안내려고 추가로 주문한 책이었는데... 너무 좋았습니다. 탁월한 선택이었어요.
 
살인, 미스터리 그리고 결혼 - 마크 트웨인 걸작선
마크 트웨인 지음, 김욱동 옮김 / 문학수첩 / 2008년 11월
평점 :
품절


  알라딘 중고서점에서 한번도 안 펼쳐본 것 같은 새책을 아주 싼값에 구입해서 읽었다.이 책에는 마크 트웨인이 쓴 다섯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첫번째 소설인 '해들리버그를 타락시킨 사나이' 에서는 정직하고 의젓한 주민들이 모여사는 것으로 유명한 마을 해들리버그 주민들에게 원한을 가진 어떤 젊은이가 기필코 그들의 마을을 망하게 만들겠다는 결심을 하고 교묘하게 어떤 사건을 꾸며 결국 마을 주민들을 온 세상에 망신시키는 이야기다. 그런데 이 소설 정말 신기한 게 젊은이가 왜 그렇게까지 주민들에게 원한을 갖게 되었는지는 나오지 않는다. 이 소설에서 중요한 건 젊은이가 원한을 품게된 이유가 아니라 근엄한 척 살고 있는 주민들이 얼마나 탐욕스럽고 가식적인지 생생하게 그려내는 데 있기 때문에 마크 트웨인은 과감하게 과거 사건에 대한 서술은 생략해 버렸다. 이 부분이 나에게는 굉장히 신선하게 다가왔다. 구구절절 서술하지 않고 오로지 한가지 확실한 주제에 집중하고 있다보니 굉장히 간결한 느낌이 든다.


  제일 기억에 남았던 작품은 '캘러버러스군(郡)의 악명 높은 점핑 개구리' 였다. 이 작품이 그 유명한 마크 트웨인의 데뷔 소설이라는데, 소설가로서 처음 내놓은 소설이 이 정도라니, 역시 인정받는 덴 다 이유가 있나보다. 다 합쳐 3장 정도 밖에 안되는 아주 짧은 소설인데,  요즘에도 가끔 이 소설의 주인공 '스마일리' 생각에 피식피식 웃는다. 켈러버러스군에 살고 있는 스마일리라는 젊은이는 내기에 미쳐 있는데, 하루종일 거의 모든 일에 푼돈을 건다. 이 스마일리가 얼마나 내기에 미쳐 있는지 써놓은 본문의 한 부분을 읽으면 내가 왜 피식피식 웃을 수 밖에 없는지 알 것이다.


  참으로 묘한 녀석이었다고. 언젠가 한번은 워커 목사님의 부인이 앓아누워 살아날 가망이 없는 것처럼 보였어. 어느 날 아침, 목사님이 나타나자 녀석이 다가가 그에게 사모님 소식을 물었지. 목사님이 상당히 좋아졌다고 대답했어. (중략) 그러자 스마일리 녀석은 아무 생각도 없이 불쑥 이렇게 말하는거야.

  "하면, 전 사모님이 완쾌되지 않는 쪽에 2달러 50센트를 걸겠습니다."


-p.177


  2달러도 아니고 2달러 <50센트>를 사모님이 완쾌되지 <않는다> 에 거는 이 부분 너무 웃기지 않은가. ㅋㅋㅋㅋㅋㅋ

  내기에 미친 이 얼간이 스마일리는 어떤 개구리를 잡아 멀리 점프하는 훈련을 시켜 가지고 다니면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개구리 멀리 뛰기 내기를 제안하고 다닌다. 상대방이 내기할 개구리가 없다고 제안을 거절하면 다른 개구리를 손수 잡아다주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는다. 정말 스마일리 이 캐릭터는 마크 트웨인 아니면 창조할 수 없는 인물이라는 생각을 했다. 


  나머지 '100만 달러 수표' ,'살인, 미스터리 그리고 결혼', '귀신 이야기' 도 읽으며 즐거웠다.  그가 이 소설들을 통해 꼬집고 싶었던 건 돈 앞에서는 영락없는 노예면서 아닌 척하는 당시 미국 사람들과 그 세태였을 것이다. 그런데 그가 풍자한 우스꽝스러운 사람들 모두 2017년 한국 어딘가에서도 분명히 한번쯤 본 적 있는 사람들이었다. 틀에 박힌 말이지만, 이 소설들 역시 시대를 초월했다는 표현이 부족하지 않은 작품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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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줄리언 반스 지음, 최세희 옮김 / 다산책방 / 2012년 3월
평점 :
판매중지


 소설을 이미 읽었기 때문에, 영화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를 무척 기다렸다. 우리나라에서 인기 많은 배우 한명 안나오는데도 정식 개봉을 할 수 있었던 건 순전히 줄리언 반스의 원작 소설의 인기 덕분이리라.

  영화를 보며 나는 정말 나의 기억력에 놀랐다. 아니 정확히 말한다면 나의 '망각력' 에 놀랐다. 분명 재밌게 읽은 책이었다. 강력한 책이었다. 그런데 소설의 내용이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도저히 잊을 수 없는 결말 외에는 기억나는 부분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서 다시 이 책을 읽었고, 이 영화를 기점으로 독후감을 제대로 쓰기로 마음 먹었다. 좀 밀리긴 했지만 아직까진 잘 지키고 있다.


  조금 두렵지만 또 어쩔 수 없이 각색을 거쳐 쓸 수 밖에 없겠지만, 약 10년 전 내가 겪은 일을 말해보고자 한다. 이 사건을 상기해내고 또 이렇게 쓰기까지 오래 걸렸다. 하지만 이제는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소설 속 베로니카처럼 어떤 남자에게 나를 저주하는 내용의 편지를 받은 적이 있다. 시대가 시대인만큼 내가 받은 건 이메일이었지만, 어쨌든 그가 나에게 품은 건 이 소설의 주인공 토니 웹스터가 베로니카에게 그랬던 것 처럼, 오로지 증오와 혐오 뿐이었다. 내가 그런 편지를 받은 이유는 내가 그에 대한 이야기를 블로그에 (익명이긴 해도) 썼기 때문이었다. 그 사람은 내가 오랜 시간 짝사랑했던 사람이었는데, 바보같이 난 그가 내 블로그를 보고 있는지도 몰랐다. 아무에게도 알려준 적 없는 블로그였으니까. 어떻게 내 블로그를 알게됐는지는 아직도 의문이지만, 이제와서 그게 다 무슨 소용이랴.

  그런데 참 신기한 게 내가 블로그에 그에 대해 뭐라고 썼는지는 하나도 기억 안나고 그가 나에게 쓴 편지 내용만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는 거다. 그 편지에 내가 답장을 했는지도 기억이 안난다. 역시 사람은 이기적이다. 내가 블로그에 쓴 글이 그에 못지 않게 지저분한 내용이었을 수도 있는건데 그건 전혀 기억이 안나니 말이다.


  베로니카와 비슷한 사건을 한번 겪고 보니, 내가 어린 나이에 치기어린 마음으로 써갈겨 친구 혹은 애인에게 건낸 수많은 편지를 근거로 누군가 나의 인생을 연구한다면 나는 얼마나 추하고 봐주기 힘든 인간일까... 라는 생각이 들면서 아찔해졌다. 내 필체와 완벽히 일치하는 그 증거들을 앞에 둔다면 사실은 내가 이 정도로 별로인 인간은 아니었다고 변명을 할 수도 없을 것이다.


  이렇게 수많은 헛발질과 실패를 하며 제법 나이가 들고보니 가끔 지인들이 나에게 고민을 상담할 때마다 내 대답은 거의 '하지마.' 가 되어버렸다. 솔직히 말하면 상대방의 고민이 뭔지 들을 필요도 없는 경우도 꽤 많다. 뭔가를 안한다면, 적어도 최악은 피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결국 이렇게 꼰대가 되어버렸다. 내 품위와 자존심을 다 버리면서 나는 왜 사랑을 했을까. 나는 왜 그딴 편지를 썼을까. 나는 왜 매달렸을까. 왜 울었을까. 왜 그런 말을 했을까. 한동안 나는 '왜 했을까?' 라는 생각에 수없이 괴로워했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의 토니도 이미 헤어진 베로니카가 자기의 공부잘하는 친구 에드리언 핀과 사귀든 말든, 조금만 참고 그냥 침묵을 지켰다면, 그들에게 편지를 쓰지 않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지만 그는 결국 썼고, 보냈고, 그 일을 의도적으로 완전히 잊고 살아왔다.


  줄리언 반스는 한 사람의 역사이든 한 나라의 역사이든 우리가 역사라고 부르는 '기억' 혹은 '추억'이라 불리는 것들이 얼마나 허술한지 '토니 웹스터' 라는 참으로 정떨어지는 주인공을 통해 뼈져리게 일깨워준다. 하지만 우리 모두 언젠가는 토니 혹은 베로니카 였음을 부정할 수 없다. 난 그런 적 없다고 말하는 건 어리석은 짓이다. 다들 어떤 기억은 남김없이 다 지웠거나 혹은 나에게 유리한대로 왜곡하여 기억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것 아닌가. 그래서 난 이 책을 읽고 또 한번 결심했다. 죽는날까지 자기 미화의 욕구와 싸우며 살겠노라고. 나란 인간은 내가 지금 기억과는 전혀 다른 인간일 가능성이 매우 높으므로.

"핀?"

"역사는 부정확한 기억이 불충분한 문서와 만나는 지점에서 빚어지는 ‘확신‘ 입니다."

(중략)

"그 일은 역사적 사건입니다. 사소하달 순 있지만요. 그러나 최근 일이지요. 따라서 역사로서 그리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어야만 할 것입니다. 우린 그가 죽었다는 것, 그에게 여자친구가 있었다는 것, 그녀가 현재 임신했다는 것, 아니면 과거에 그랬다는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 외에 우리가 뭘 알고 있을까요? 단 한장의 문서 ‘엄마 미안해‘ 라고 쓴 한 장의 유서가 있습니다. (중략) 선생님, 그러니까 오십 년의 세월이 흐른 후, 롭슨의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그의 여자친구도 사라져버리고, 어쨌거나 누구도 그를 기억하고 싶어하지 않을 때에, 어느 누가 롭슨의 이야기를 글로 쓸 수 있을까요? 문제점이 보이시나요, 선생님?"

-P. 3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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