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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카지마 아츠시 소설 전집
나카지마 아츠시 지음, 김유동 옮김 / 서커스(서커스출판상회)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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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2002년에 20살이었다. 2002년을 기억하시는 분은 알 것이다. 전 국민이 월드컵 열기에 빠져 대한민국을 외치고 환희에 젖었다는 것을. 그 시기 20살이었는데도 길거리 응원 한번 안 나간 사람? 바로 나다. 
남들과 다르게 살겠다고 다짐한 것도 아니고 특별하고자 그런 것도 아니다. 그냥 난 못 어울리는 인간인 것이다. 세상에는 정규분포 표 양 끝단의 사람도 있는 거니까. 이런 이유로 나츠메 소세키의 <행인>을 읽고 많이 울었다. 특별히 뛰어나지 않으면서 일평생 사람들과 못 섞이는 자로서 느낀 슬픔과 고뇌였다. 30대 초반까지만 해도 이런 나의 성향으로 인해 날려버린 수많은 기회들과 초라한 현실을 생각하며 원통할 때도 많았지만, 지금은 그냥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행인>을 읽으며 느꼈던 감정을 나카지마 아츠시의 소설들을 보면서 다시 한번 느꼈다. 소세키 소설은 가끔씩  아주 잠깐이나마 헛웃음으로 웃기는 장면이 나올 때가 있는데 정말 이 사람 소설은 단 한 줄의 유머도 등장하질 않는다.


지병인 폐병을 고칠 생각으로 간 팔라우에서 혼자 민가를 돌아다니다 노골적으로 자기를 유혹하는 젊은 아기 엄마를 보며 내가 저 여자의 기대를 충족시킬만한 몸 상태가 아님을 자각하는 장면 이거 하나 조금 웃기고 실린 모든 소설이 다 진지하다.  

몸도 허약한 양반이 이역만리 팔라우까지 고생스럽게 갔는데 병에 차도가 있기는커녕 뎅기열 이질 등 각종 질병에 시달리다 일본으로 돌아와선 결국 33살에 명을 달리한 나카지마 아츠시. 중학생 때 밤새 기침에 시달리며 자기의 수명이 길지 않을 것임을 예감하면서도 끝까지 병을 고치려고 노력했고 학교 선생 등의 생업을 하면서 틈틈이 소설을 써 내려간 사람. 불행한 가정환경과 허약한 체질임에도 불구하고 쉽게 인생을 비관하지 않고 타인의 인생을 (그것이 식민지의 사람일지라도) 비웃지 않았던 그의 태도에서 어떠한 품격을 느꼈다. 특히 난 끝까지 처자식 딸린 가장으로서 돈을 벌고 또 무책임하게 본인의 생을 스스로 끝내지 않았다는 점을 높이 사고 싶다. 또 잠도 못 자게 아픈 와중에도 중국 대련을 배경으로 한 장편 소설을 구상하고 있었다는 게 안타까우면서 좀 슬펐다.  

사춘기를 서울 용산에서 보내 한국과도 인연이 있는 나카지마 아츠시는 일본인으로서는 특이하게 조선인 관점에서 쓴 소설도 실려 있는데, 한국인으로서 아무래도 편히 읽기는 쉽지 않다. 다만 식민지의 사람들을 무조건 딱하게 보지 않았다는 것이 특별하다고 생각한다. 지나친 동정이 오히려 지배국 시민으로서 시혜를 베푸는 듯한 모양새가 될 수도 있고 또 그런 시선을 가진다면 소설이 유치해질 수도 있었을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폴리네시아 시절 경험을 바탕으로 쓴 소설들을 읽을 땐 지배국 출신 사람이 써 내려간 글을 한국인인  내가 편히 읽어도 되는 것인가 하는 약간의 식민통을 느꼈다. 분명히 일본인들이 그 지역 사람들에게도 말 못 할 짓들을 많이 했을 텐데 소설에는 전혀 등장하질 않으니 말이다. 

이미 문예출판사 <산월기>에서 읽었던 작품들을 제외하고는 <D 시의 7월 서경> 을 가장 인상 깊게 읽었다. 중국 대련에 주재한 남만주철도주식회사의 간부, 그 회사에 다니는 평범한 일본인, 그리고 대련에 원래 살던 피지배층 세 명의 관점에서 중국 대련시의 상황을 묘사한 소설인데 장편으로 구상했던 <북방행>의 시초 격이 아니었을까 싶다. <D 시의 7월 서경>을 읽고 나니 장편소설을 완성하고 죽었다면 좋았을 텐데라는 아쉬움이 더했다.   

마지막에 실린 소설가 스티븐슨이 폴리네시아 사모아에서의 살던 시절을 쓴  <빛과 바람의 꿈> 은 아무래도 전자책이라 잘 안 읽히는 것 같아 종이책을 샀다. 다시 읽을 예정이다. 

사후에 제2의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라고 칭송받았다는데 뭐 나 같은 사람이 말할 자격은 없지만 나는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소설보다 훨씬 좋게 읽었다. 전집을 읽었으니 이제 더는 나카지마 아츠시의 새로운 소설은 못 읽겠지만, 앞으로도 종종 다시 읽을 것 같다. 내가 <행인>이나 <그 후>의 좋아하는 페이지를 아직도 찾아 읽는 것처럼. 

사족. 책에 대한 불만. 
1. 번역이 너무 성의 없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라든가.라는 말이 너무너무 자주 진짜 한 페이지에 어쩔 땐 거의 열 번 이상 등장한다. 예를 들면 <빛이라든가, 어둠이라든가.>라는 일본어 문장이 있다고 치자. 한국어로 번역할 땐 그냥 <빛과 어둠>이라고 써도 되는 것 아닌가? 왜 굳이 굳이 라든가를 쓴 것인지 모르겠다. 
이 책 읽다 보면 <라든가> 노이로제 걸려버려.ㅋㅋㅋㅋㅋㅋㅋ 읽다가 너무 열이 받아 <라든가>가 세 번 이상 나오는 페이지 표시해놨는데 귀찮으니 여기 쓰진 않겠다. 번역가님이 의대 수료하신 분이고 잘난 분이니 내가 말한다고 보실 리는 없겠지만 앞으로는 <라든가>쓰는 것 좀 자중해 주셨으면. 
번역은 확실히 문예출판사의 <산월기>가 좋다. 


2. 소설가 자신이 모델인 <산조>라는 인물이 어려번 등장하고 또 그 인물의 중고등학교 시절, 대학 시절, 선생 시절, 팔라우 시절을 바탕으로 한 소설이 많이 등장하는데 실린 순서가 뒤죽박죽이고 오히려 역순으로 되어 있다. 
일본에서 출판된 전집이 이런 순서인 건지 아니면 뭐 다른 의도가 있었는진 모르겠지만 내가 출판사 직원이라면 중고등-대학-선생-팔라우 이렇게 시간순으로 단편소설을 썼을 것 같다. 
아니면 소설가의 자전적 이야기만 모아놓은 장을 하나 더 만들든지. 
소설의 화자가 팔라우에 있다가 갑자기 중학생이 되었다가 학교 선생님 하다가 또 갑자기 대학시절이 나오니 읽기 조금 힘들었다. 
나중에 다시 읽을 땐 자전소설만 따로 모아 시간순으로 읽어보려고 한다.

계류가 흘러 깍아지른 절벽 가까이까지 오면, 한 번 소용돌이를 치고 나서 이번에는 폭포가 되어 떨어진다. 오정이여, 너는 이제 그 소용돌이 한 발짝 앞에서 머뭇거리고 있는 것이다. 한 발짝 나가 휩쓸려 버리고 나면, 나락까지는 단숨. 그 도중에 사색이나 반성이나 머뭇거릴 틈은 없다. 겁쟁이 오정아. 너는 소용돌이치며 떨어져 가는 자들을 공포와 연민을 가지고 바라보고 있으면서도, 자신도 결단해서 뛰어들 것인가 말 것인가 주저하고 있는 것이다. 조만간 자신이 바닥으로 떨어져야 한다는 것은 충분히 알고 있으면서.
휩쓸리지 않는다고 해서, 결코 행복하지 않다는 것도 알고 있으면서. 그러면서도 너는 방관자의 위치에 연연해서 떠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냐. 엄청난 생의 소용돌이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는 무리들이 의외로 곁에서 보는 것처럼 불행하지는 않다는 것(적어도 회의적인 방관자보다는 몇배나 행복하다)을, 어리석은 오정이여 너는 알지 못하느냐.
-<오정출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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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5-09-17 16: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ㅎㅎ 2002년에 스무살이었던 케이 님! ㅎㅎ
케이 님 나이 대충 짐작은 했는데 이번에 확실히 알았습니다. 저도 그때 20대이긴 했습니다...만..... 저는 응원 내내 나갔어요. 길거리는 아니고 주로 호프집에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지금의 저를 보면 좀 놀랍죠? 근데 그게 회사 생활 막 시작했을 때라, 게다가 신입으로 들어가서 막내일 때라 ㅋㅋㅋ 가서 호프집 빨리 예약해! 하면 냅다 가야만 했던 ㅋㅋㅋㅋ

암튼 나카지마 아츠시 소설 읽으면 <행인> 떠오른다는 말씀에 정말 공감해요. 쓸쓸하고 고독하고....... 저도 류노스케보다는 아츠시쪽이 좀 더 좋아요. 그리고 조선인에 대해서 동정이나 내려다보는 시선이 없었던 점도 좋았고요.

<빛과 바람의 꿈> 아아.. 전자책으로 읽으셨구나. 저는 종이책으로 읽어서 좋았었나 봅니다. 나중에 종이책으로 다시 꼭 만나보세요.

아무튼 ~라든가 노이로제에서는 빵 터졌습니다. ㅋㅋㅋㅋㅋ

케이 2025-09-18 11:00   좋아요 1 | URL
네 저는 02학번이었답니다. 저는 잠자냥님이 어떤 수준을 생각하든 훨씬 더 심한 아웃사이더였답니다 ㅋㅋ 일단 나가서 놀 돈도 없었고요. 혼자 한달에 10만원 이내로 쓰기 도전하면서 10원 20원 단위까지 용돈기입장 쓰면서 살았으니까요.
제가 사회 초년생이었으면 어땠을지 궁금하네요. 시키면 어쩔 수 없이 같이 보면서도 미치도록 싫었을 것 같아요. 영화감독 박찬욱이 2002년 월드컵때 사람들 다 미친 것 같아서 미국 가 있었단 얘기 듣고 내적 친밀감이 생겼습니다. ㅋㅋㅋㅋ
<그 후>인가 어디에서 다이스케가 길에서 막 소리지르면서 즐거워 하는 사람을 보며 어떻게 저렇게 무자비하게 기뻐할 수 있단 말이냐. 라고 생각하는 장면 나오는데 저도 그런 생각이었던 것 같아요. 한편으론 좋겠다 저렇게 손쉽게 희열에 젖을 수 있어서 뭐 이런 삐딱한 생각도 했고요 ㅋㅋㅋ
저는 이번 전집 읽고 나카지마 아츠시가 더 좋아졌어요. 대단한 얘기를 쓰는 사람은 아니지만 그 쓸쓸하고 조용하고 담담한 정서가 맘에 들어요.

근데 정말 번역가님 이 책에서 <~라든가> 남용은 심하게 선 넘었다고 봅니다.
자기가 번역한 이 책을 읽어는 봤을까요? 한 문장에 <~라든가>가 5번 이상 들어가는 문장이 즐비하고 주석에 구글링을 해도 아무 정보가 안나온다. 라는 말까지 ㅋㅋㅋㅋ 저 출판된 책에서 구글링이라는 말 처음 봤어요
출판해주셔서 감사하긴 하지만 ㅋㅋㅋ ㅜㅜ 너무 심하셨어요. 흑흑.
그래도 좋은 책이었습니다. (급한 마무리)
 



"무슨 일이야?"
"아니. 아무것도 아니예요......"
아내는 겨우 얼굴을 들고 억지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건 아닌데, 그냥 어쩐지 당신이 혹시 죽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그것은 내 일생 중에서도 가장 무서운 경험이었다. 나는 이미 이 글을 써내려갈 힘이 없다. 이런 기분 속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무어라 말할 수 없는 고통이다. 누군가 내가 잠든 사이에 가만히 목을 졸라 죽여줄 사람은 없을까. 

- 단편소설 <톱니바퀴> 마지막 페이지- 


전철에서 읽으며 참으로 우울해졌던 소설.

죽고 싶긴 한데 또 죽을 용기도 없는 사람의 마음, 상태를 천천히 읽었더니 못된 맘을 먹었던 과거의 나를 어느 정도는 용서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결국 작가는 자살하였지만, 혹시 이 글을 읽는 사람 중 죽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그래도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조금 더 살아보셨으면 좋겠다.

공허하게 들리겠지만, 아무리 큰 고통도 조금씩은 덜해지는 때가 오긴 오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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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경애의 마음
김금희 / 창비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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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변덕 덕분에 어린 시절 이사를 많이 다닌 나는 고향이 없다. 부모님 두 분 다 전라도 분이라 마음의 고향은 전라도라 생각하고 쌀은 무조건 호남평야 쌀만 구입하는 나이지만, 실상 나는 강원도에서 태어났고 전라도에는 2년 반 살았을 뿐이다.

그래도 굳이 니 고향이 어디냐 묻는다면 아마도 동인천 아닐까. 마흔 남짓한 인생에서 17년을 동인천에서 살았으니 이 정도면 꽤 오래 살았다. 그래서 난 동인천이 배경이라고 하면 웬만하면 다 찾아보려고 한다. 팔스타프님 리뷰에서 경애의 마음이 동인천 배경임을 알고 찾아 읽었다.


요즘 한국 소설답게 술술 잘 읽힌다. 다음 장이 궁금해서 빨리빨리 페이지가 넘어간다. 이 책은 1999년에 일어난 동인천 호프집 화재사건을 중심으로 한 인물들의 이야기인데 고등학생이 술 마시다 죽었다고 책망하는 그때나 젊은 것들이 이태원에서 헤프게 놀다 죽었다고 고인이 된 그들을 동정하지 않는 지금이나 대체 달라진 게 무언가 싶어서 눈물이 찔끔 났다. 내가 가진 원칙은 죽을만한 죄를 짓지 않은 사람은 죽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술 한번 마신 게 죽을 죄인지 묻고 싶다.

소설에서 경애의 첫사랑 은총이 다녔던 학교는 제물포고로 추정된다. 동인천 화재 사건에서 주요 희생자가 제물포고, 인성여고, 인천여상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다 내가 뻔질나게 지나다니던 곳이다. 언젠가는 동인천을 지나다니다 문제의 그 건물을 일부러 찾아간 적이 있다. 다른 동인천 건물들처럼 낡았지만 여전히 장사를 하고 있었다. 기분이 너무 이상했다. 이런 데서 장사를 하고 싶나? 란 생각에. 하긴 그 장사도 누군가의 생업이니 내가 뭐라 할 순 없겠지.

재미는 있었지만, 경애와 산주, 상수와 은총이 아무리 소설이라지만, 엄연히 남인데 이렇게 우연히 그리고 긴밀하게 얽힐 수 있나?라는 점이 못내 아쉬운 소설이었다. 내가 납득할 수 있는 아무 접점 없는 타인과 얽히는 최대치는 영화 매그놀리아 정도다. 이 정도로 서로 만수산 드렁칡처럼 얽히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고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인공 경애가 꽤나 비참한 상황에서도 씩씩하고 남 탓 안 하고 최선을 다해 자기 앞가림하는 게 맘에 들었다. 경애 친구들도 호들갑 떨지 않고 또 무엇보다 경애를 진심으로 위하는 느낌이라 좋았다. 경애가 평범하게 못돼 처먹은 산주에게 끝까지 끌려다니지 않는 점도 좋았고.


상수라는 청렴하고 어딘지 모르게 건전한 이 남자는 작가의 바람이 담긴 인물이라 생각한다. 요즘 이런 젊은 남자가 어디 있어? 란 심드렁한 생각이 들었지만 그 점 때문에 이 소설이 공전의 히트가 가능했단 생각이 든다. 현실을 100% 반영한 젊은 남자 등장인물을 읽고 싶은 여성 독자가 있을까? 이미 뉴스로도 여성 독자들은 지치고 지쳤다.


이 세상에는 존재하지 않는 내 또래의 경애지만, 상수 씨랑 앞으로 건강하고 행복했으면 하는 착한 생각을 하며 독후감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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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변 세계문학의 숲 13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지음, 양윤옥 옮김 / 시공사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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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책을 다 읽기까지 정말 오래 걸렸다.

오래 걸린 첫 번째 이유. 중간까지 책이 지독하게 재미없었다. 재미가 없다 보니 다음 장이 궁금하지 않고 그러다 보니 계속 시간이 지체되었다. 두 번째 이유. 책이 너무 무거웠다. 전자책이 없는 책이라 하는 수없이 실물 책을 읽었는데 만만찮은 두께의 책을 매일 출퇴근길에 들고 다니다 어깨 병이 도져서 한동안 들고 다니지 못했다.

실물 책을 읽는 게 전자책을 읽는 것보다 훨씬 잘 읽히고 성취감이 드는 건 사실이지만, 우리 집 책장에 더 이상 공간이 없고 내 어깨가 책을 매일 가지고 다닐만하지 않다는 걸 확실히 알게 되어 앞으로도 괜히 실물 책 욕심내지 말자고 다짐하였다.


애들 동화책을 읽어주다 보면 그나마 우리와 정서가 비슷하다 느끼는 책을 보면 일본 작가인 경우가 많았다. 벨기에, 프랑스 이런 나라 동화책을 읽다 보면 그림은 예쁜데 네??? 갑자기요??? 왜요???? 이런 심정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프랑스 영화 보다가 느끼는 당혹스러움과 비슷한 감정) 그런데 이번에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책을 읽으면서 일본도 우리나라 정서와는 정말 거리가 멀다 느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애기들한테 한국 작가 동화책을 더 가까이하고 많이 읽어주고 싶다. 한국 동화책 작가님들 정말 사랑하고 응원한다. (갑자기요? ㅋㅋㅋ)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이 양반이 산 시대가 말도 안 되는 시대 아닌가. 특히 이 시절 우리나라로 치면 이보다 더 비참할 수 없는 시대인데, 이 양반 책에는 그런 시대 상에 대한 개인의 감정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워낙 부잣집 도련님이라 그런 것일까? 그런데 생각해 보니 이건 소세키 선생도 비슷했네. 그 선생에 그 제자인가? 소름 ㅋㅋㅋ

뭐 작가가 꼭 시대상을 반영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고, 식민지였던 나라의 국민으로서 너만의 피해의식이라고 해도 할 말 없지만, 난 그다지 기분이 좋지 못하였다.

수능 언어영역 때문에 억지로 읽은 게 전부지만 우리나라의 이 시절 작가들의 소설은 주요섭 제외하고는 그 어떤 이야기를 써도 분노 비통 같은 게 느껴지지 않나? 난 매일같이 내 조국 대한민국을 지독히도 증오하며 살고 있지만,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은 어쩔 수가 없나 보다. 나 뼛속까지 한국인 맞는 듯.

근데 내가 고작 한 권 읽고 감히 평가하면 안 되는 것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가하자면) 아쿠타가와 류노스케가 그 시절 우리나라 작가들보다 잘 썼단 생각도 별로 안 든다. 난 일제강점기 우리나라 작가들 소설을 읽으면 너무 우울해져서 일부러 안 읽는 편인데, 차라리 우리나라 소설 읽으면서 우울한 게 낫겠단 생각도 좀 했다.


표제작인 <지옥변> 에선 젊고 예쁜 여자가 쉰 넘은 주인집 늙은이 사랑을 안 받아줬다는 이유만으로 가마 안에서 불타 죽는다. 그런데 그 여자의 아버지는 자기 딸이 고통스럽게 불타 죽는데도 주인한테 한마디 못하고 그리던 지옥도 완성하고 자기 혼자 목매달고 죽는다.

이거 진짜 말이 된다고 생각하는가? 우리나라 소설 같으면 불타고 있는 자기 딸보고 기함하며 아버지가 바닥에 있는 흙이든 모레든 미친 듯이 뿌리다가 결국 죽어버린 자기 딸을 안고 주저앉아서 통곡하는 내용이었을 것이다. 적어도 내 상식에서는 이게 정상이고 또 대한민국의 정서다.

난 이 소설을 읽으며 법치주의의 소중함, 그리고 신분제의 불합리함 같은 걸 생생하게 느꼈다. 저 나쁜 주인은 사람 하나 불태워 죽이고도 잘 먹고 잘 살았음을 암시하는데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세상인가.

우리나라 많은 국민들 작년 12월 사건 이후 그 어떤 법치도 내란 세력에게 작동하지 않는 것을 목격하며 얼마나 무력하고 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시위에 뛰쳐나왔는가? 일본인들은 위와 같은 상황에 대해 그 어떤 화도 안 나는 것인지, 일본인 하나 데려다가 물어보고 싶다. 일본어는 못하지만.

진짜 개뜬금포 같은 소리지만, 그런 의미에서 조선시대에 나온 <홍길동전> 은 얼마나 위대한 소설인지. 비록 그지같을 때도 많지만, 대한민국 만세!! (지옥변 읽다 홍길동전까지 이어지는 미친 전개 ㅋㅋㅋ)

내가 저 시절에 살았다면 아쿠타가와 류노스케한테 "당신 소설 읽고 기분이 너무 나빠!!! "라고 엽서 썼을지도 모름.


중간까지 재미없었지만, 마지막쯤에 나오는 <톱니바퀴>를 읽다가는 울컥해서 좀 울었다.

예전에 한동안 삶의 의지가 전혀 없었던 적이 있다. 이 세상에 태어나지도 않은 것처럼 그냥 존재 자체가 지워지고 싶다는 생각. 당신은 해봤나?

<톱니바퀴>는 내가 정말 죽고 싶었던 시절의 마음이 고스란히 쓰여있어 마음이 아팠다. 난 운 좋게 이렇게 극복하고 살고 있는데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이 양반이 끝내 죽어버렸다는 게 슬펐다. 좀 더 살았으면 그래도 살길 잘했다는 생각을 했을지도 모르는데...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을 가진 이후로 틈만 나면 빨리 결혼해서 애 낳으라고 들들 볶는 엄마 때문에 너무 힘이 들었다. 그런데 우리 엄마는 나를 간파했던 것 같다. 내가 꼭 키워내야만 하는 자식 정도의 큰 계기와 책임이 아니면 주어진 명까지 못 살 정도로 우울한 인간이라는 것을. 신기하게도 난 애를 낳고 어깨도 망가지고 살도 찌고 기미도 많이 생겼는데 죽어야겠다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엄마 원대로 귀여운 애들 보는 재미로 살맛 난다는 게 뭔지 알게 되었는데 그 모습을 전혀 못 보고 돌아가시다니. 참 사람 인생 뜻대로 되는 거 없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는 제일 좋았던 <톱니바퀴> 외에도 <밀감> <파>도 괜찮았다. 이 사람이 과연 잘 쓰는 작가는 맞는 것 같지만, 나와 정서가 맞지 않아 다음에 찾아 읽을 것 같진 않다.

그래도 위대한 <홍길동전> 생각도 하고 우리 엄마가 도대체 나한테 왜 그랬는지 어렴풋이 깨닫게 해준 책이니 읽길 잘했단 생각은 한다. 독서는 역시 너무 이로운 행위이다. 올해도 틈틈이 읽고 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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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5-04-08 14: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홍길동 만세! ㅋㅋㅋㅋㅋㅋ
그나마 헌법재판소가 제대로 작동해서 다행이었지만 오늘 한덕수가 이상한 인물들을 문형배/이미선 후임으로 지명했더라고요?! 다시 스트렛스.........-_-
그나저나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저 책, 시공사 저 시리즈인데도 두껍다고요?! 의외네요.
저는 류노스케 작품 중엔 <귤>을 좋아하는데, 아마도 <밀감>인 것 같아요.

케이 2025-04-08 14:35   좋아요 0 | URL
홍길동 만세!!!! 그 시절에 체제 전복적인 소설을 쓴 사람이 우리나라 사람이라는 게 자랑스럽습니다. ㅋㅋㅋ
<귤>이 <밀감> 맞아요. 저도 대학시절 <귤> 이라는 제목으로 읽었는데 여기에는 <밀감>으로 실려 있습니다.
시공사 책인데 종이 질이 좋아서 그런건지 아니면 제 어깨가 심하게 약한건지 저에겐 무거웠습니다. 흑흑흑. ㅜㅜㅜㅜ
이 책을 한창 읽을 때는 그 세력들이 아무 처분도 받지 않고 있던 때라 더 무력했는데 그래도 천만 다행입니다. 대선까지 그들이 죄값을 치룰 때까지 힘냅시다!!
 
어린이라는 세계
김소영 지음 / 사계절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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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대가 있는 잡동사니 방에는 우리 엄마 아빠가 50대 초반에 찍은 사진이 있다. 엄마가 암과는 거리가 멀던 시절, 카메라만 갖다 대면 무표정이었던 우리 엄마가 희미하게 웃고 찍은 사진이어서 책장에 두었다.  

며칠 전 우리 첫째가 화장대 뒤에 서서 그 사진을 보더니
"엄마, 외할머니 보고 싶어?"라고 물었다.
그래서 "그럼~~ 보고 싶지."라고 답했더니
"그렇다고 보러 가면 안 돼. 사진으로만 봐."
라고 나에게 당부하는 게 아닌가.
나는 마음이 찡해졌다.
이제 2월이 되면 겨우 48개월이 되는 어린 애인데, 평소에 애들을 과소평가했단 생각이 들었다.

결혼을 하고 애를 낳고 키우면서 나의 새로운 면을 발견하게 된다. 모르고 살았으면 더 좋았을 나의 나쁜 면들.
제일 대표적인 건 아마도 내 목소리 크기일 것이다.
난 내가 이렇게 크게 소리 지를 수 있는 인간인 거 애 낳기 전엔 미처 몰랐다.  
또 나는 내가 이렇게 가시 돋친 말을 잘하는 인간인 것도 몰랐다.  
예를 들면 "너 다른 엄마한테 키워달라고 해!! 엄마는 너 같은 애 못 키워." 같은. (반성합니다)

어쩌면 나는 이 아이들은 나를 절대로 버릴 수 없는 걸 알기에 함부로 대하는 것 아닐까.

애를 낳기 전에는 나는 애를 사랑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김소영 작가를 보니 애를 정말 사랑한다고 자신 있게 말하려면 내 애뿐 아니고 이 세상의 모든 애를 사랑해야만 하는 것 같다. 그런 면에서 생각해 보면 나는 애를 절대 사랑하는 건 아닌 것 같다. 작가님은 아니라고 하시지만 애를 정말 사랑하는 김소영 작가님의 다른 책도 다 구해서 읽고 싶다.

책을 읽으면서 제일 찔렸던 건 애들한테 "천천히 해."라는 말을 거의 하지 못한 것인데, 오늘 아침만 해도 난 빨리빨리라는 몇 번이나 했는지 모른다. 빨리 일어나. 빨리 씹어. 빨리 와, 빨리 신발 신어. 빨리 제발 빨리!!!

근거리 거주 건강한 친정 엄마의 도움이 전혀 없이 애 둘 등하원 다 시키는 나보고 대단하다는 사람도 많지만, (실제로 우리 어린이집 맞벌이 부부 중 친정엄마 없이 애 키우는 사람 나밖에 없음) 사실 지금 이 바빠 미쳐버리겠는 일상을 버텨주는 건 언제나 날 참아주고 용서해 주는 애들 덕분이란 걸 잊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을 잠시나마 했다.

내일 아침 되면 또다시 빨리빨리빨리!!!! 늦었어!!!!라고 소리칠 가능성이 높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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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5-01-13 12: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케이 님 목소리 커요?! 놀라운 정보 ㅋㅋㅋㅋㅋ
˝그렇다고 보러 가면 안 돼˝ ㅎㅎㅎㅎ 귀엽고 영특하네요.

케이 2025-01-13 12:55   좋아요 1 | URL
애들이 내 뜻대로 안하면 목소리가 기하급수적으로 커진답니다. ㅜㅜ 애들은 너무 느려요. 그게 당연한데도 항상 화가 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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