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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싹 뽑기, 어린 짐승 쏘기 문지 스펙트럼
오에 겐자부로 지음, 유숙자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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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랜만에 전자책이 아닌 실물 책으로 읽었다. 재밌었지만 읽기 유쾌한 책은 아니었다.
 2차 세계대전 중의 일본, 감화원에 버려진 10대 소년들은 시답잖은 잘못을 저질렀다는 이유로 갖은 폭력을 견디며 이 마을 저 마을을 떠돌며 노역을 제공한다. 그들은 어디서든 경멸의 대상이고 머무는 마을 사람들에게 아주 작은 배려를 받은 적도 없지만, 묵묵히 모욕을 견디며 그들끼리의 하루하루를 살아내고 있다. 때로 탈출을 시도하는 소년도 있지만 대부분은 흠씬 두들겨 맞고 잡혀오고 만다.
 어느 날 당도한 어떤 마을에서 아이들은 산처럼 쌓인 가축의 사체 처리를 하게 되고, 마을에 몹쓸 전염병이 돌고 있다는 걸 알게 된다. 하지만 비정한 마을 주민들은 전염병이 만연한 마을에 소년들만 남기고 퇴거하고 심지어 자기네 임시 거주지에 소년들이 쳐들어 올까 봐 총을 든 보초까지 새워 아이들을 텅 빈 마을에 완전히 고립시킨다.
 난 고립 이후 감화원 소년들이 파리대왕처럼 동물에 가까운 상태가 될까 봐 긴장했는데 (그런 내용을 글로 읽는 걸 꺼려 하기에) 웬걸 텅 빈 마을은 오히려 그전보다 살기 좋아진다. "나"는 조선인 리와 진정한 우정을 나누며 사냥도 하고 조선인 부락에 숨어있던 탈영 군인도 만나고 또 마을에 남겨진 소녀와 난생처음 사랑의 감정도 느낀다. 하지만 호시절도 잠시, 동생이 키우던 개에게 물려 전염병이 옮은 소녀는 비참하게 죽고, 소녀를 간호해 준 탈영병은 돌아온 마을 사람들에 의해 무참하게 살해당한다. 마을에 돌아온 주민들은 뻔뻔하게도 소년들에게 그동안 벌어진 모든 일에 함구하라고 협박하지만 "나"는 끝까지 반항하다 혼자 숲속으로 도망친다.
 그다음에 소년은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 죽지 않았을까. 그 소년이 살아남을 방도가 달리 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년이 마을 사람들에게 굴복하지 않았기를, 살아남았기를 바라고 또 바라게 된다.
 이 책으로 인해 다소 거창하지만 인류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어떤 면으로는 엄청 우울하기도 하고 또 어떤 면에선 다행이란 생각도 들었다.
 '새싹 뽑기, 어린 짐승 쏘기'에서 최소한의 인간다움을 보여준 조선인 부락의 주민들과 탈영 군인은 거대한 일본 사회에서 철저하게 배제되거나 죽고 만다. 살아남은 주류는 어떤 사람들인가. 소년들이 죽든지 말든지 상관 안 하고 자기들만 살겠다고 안면몰수하는 이기적인 인간들 아닌가. 죽창에 내장이 튀어나와 죽어야 할 사람은 전염병의 위험을 무릅쓰고 소녀를 간호한 탈영 군인이 아니라 도와달라고 부탁하는 소년의 목을 조른 의사 같은 놈인데. 그런 인간들은 버젓이 살아남는다.
 일본만 그럴까. 난 아니라고 생각한다.
 영화 '조조 래빗'에서도 몰래 유대인을 숨겨준 독일인을 광장에 목매달아 죽이는 장면이 나온다. 인류가 조금이라도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려면 광장에서 처형당한 사람들이 살고, 무지성으로 나치에 동조한 사람들이 죽어야 마땅한데, 안타깝게도 이 세상은 그렇지가 않다.
 이 점이 참 우울하기도 하고 다행이란 생각이 드는 것이다.
 어쩔 수없이 인류는 용기 없는 다수에 의해 굴러가지만 또 언제나 용감하고 선량한 사람이 아주 적게라도 있다는 것. 모든 사람이 다 나쁘기만 하다면 이 세상은 원시에 가까운 상태가 되어가겠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 인간은 절대 절대 간단하지 않다는 것. 등등... 이 책으로 인해 오랜만에 내 앞에 닥친 육아, 직장 생활 외 다른 생각을 해보게 되어 좋았다.
 나도 어려운 순간에 힘든 선택을 할 수 있다고 장담할 수는 없지만, 아주 가끔이라도 약한 사람 편에 서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나같이 소심한 사람이 그러기는 정말 어렵더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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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4-07-02 13: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와 오랜만에 케이 님 리뷰다!
이 책 진짜..... 인간은 악하고 이기적이지만 모두가 다 그렇지는 않다...는 위로를 주는;; 그런 작품이었던 것 같아요....
종이책 앞으로 또 더 많이 볼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ㅎㅎㅎㅎ

케이 2024-07-02 14:26   좋아요 1 | URL
누추한 곳에 별것 아닌 리뷰를 반가워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리뷰에도 썼지만, 마을 사람들의 행태에 치를 떨게 되면서 또 한편으로는 다 그런 건 아니라는 생각에 안도하게 되는 책이었어요.
작고 가벼워서 들고 다니면서 읽기 좋았어요. 역시 책은 종이책이 제일이여요.
독서만큼 고차원적이고 경제적인(도서관에서 빌려 읽을 수도 있으니) 활동도 없는 것 같아요.
책은 정말 완전무결한 무언가입니다. 돈도 안 들어 배터리도 필요 없어 얻는 것 많고 심지어 변하지도 않습니다.
게으른 저는 요즘 많이 못 읽고 있어요. 쓰는 건 더더욱 못하고요. 매일같이 꾸준한 잠자냥님이 존경스러울 뿐입니다.
궂은 날씨 안전 퇴근하세요!
 
더블린 사람들 마카롱 에디션
제임스 조이스 지음, 한일동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 2015년 3월
평점 :
절판


난 읽었던 책을 다시 읽는 게 좋다. 보통은 내가 제일 좋아했던 페이지를 표시해두고 그 부분만 또 읽는 편인데, [더블린 사람들]은 어쩐지 전체를 한번 더 읽고 싶었다.
재독할만큼 좋아했던 책인데도 몇몇 소설은 처음 읽는 것처럼 새로웠다. 하지만 실린 단편 중 제일 좋아했던 [이블린]은 다시 읽어도 내 기억과 내용이 일치했다. 워낙 짧은 소설이고 등장인물이 적어서 그랬는지도 모른다.
[이블린]을 처음 읽었을 때, 그녀가 영영 행복해지지 않을 것 같아 슬펐다. 젊은 그녀가 살아가야 할 길고 긴 시간 동안 그녀에겐 뜻밖의 행운도 다정한 남자도 다신 나타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서 더더욱 부에노스 아이레스로 떠나지 못한 그녀가 안타까웠다. 그런데 마흔이 되어보니 이블린은 프랭크를 따라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갔으면 더 불행했을 수도 있겠구나...싶었다.
왜냐하면 프랭크의 사랑이 영원하다는 보장이 없고 또 그가 어떤 사람인지도 확실치 않기 때문이다. 아무리 더블린이 지긋지긋하다고 한들 언제든지 변할 수 있는 사람 마음만 믿고 말 한마디 안 통하는 타국으로 무작정 떠날 순 없는 노릇이다. 만에 하나 프랭크가 이블린의 친아빠처럼 가정폭력을 일삼는 최악의 남자일 수도 있고 말이다.
이블린은 더블린에 주저앉음으로써 현재의 불행을 타파하진 못했지만, 현재보다 더 불행할지도 모를 미래에 자신을 내던지지는 않았다. [더블린 사람들]을 처음 읽을 당시의 나는 끝내 용기를 내지 못한 이블린이 답답했지만, 지금의 나는 이블린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한다. 난 이블린이 어느 날 갑자기 혼자 떠나 행복해지길 간절히 바랐지만, 제임스 조이스는 절대 그럴 리 없다고 말하는 듯 허망하게 소설을 끝낸다.
사랑 특히 남녀간의 사랑은 어떤 식으로든 끝나기 마련이다. 남녀가 사랑하여 결혼하고 가정을 이루는 것 역시 또 다른 모습의 끝아닌가.
[더블린 사람들]에 실린 사랑 이야기들이 전부 별다른 사건도 없이 시답잖게 끝남에도 불구하고 내 마음을 울리는 이유는 바로 모든 사랑은 결국 끝이 난다는 사랑의 진실을 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소설의 영원한 주제인 사랑에 대하여 내가 읽고 싶은 건 언제나 사랑이 끝으로 가는 이야기, 끝난 후의 이야기지 사랑이 꽃 피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그런 의미에서 마지막 소설인 [죽은 사람들] 역시 좋을 수밖에. 이모인 모컨 자매가 해마다 개최하는 크리스마스 댄스파티에 참석한 가브리엘과 작년이 올해 같고 내년도 올해 같을 그렇고 그런 더블린 사람들. 소설에서 내내 그들의 특별할 것 없는 행동과 대화만 계속 묘사되기에 대체 왜 제목이 [죽은 사람들]일까 궁금했다. 그러다 파티가 끝나고 호텔에 간 가브리엘의 아내 그레타가 어린 시절 자기 때문에 죽은 마이클 생각을 하며 남편 앞에서 흐느껴 울고 그제서야 난 왜 이 소설의 제목이 [죽은 사람들]인지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17살의 그레타와 마이클은 노래 부르며 같이 걸었고, 그 이상은 없었다. 하지만 마이클은 고작 그런 소박한 시간만으로 그레타를 '죽도록' 사랑했다. 차가운 비를 맞으며 더 이상 살고 싶지 않다고 말하던 마이클. 그러다 정말로 죽어버린 가련한 마이클. 첫사랑이 죽는 이야기는 너무 반복돼서 좀 심드렁해질 법도 한데 어째서 읽을 때마다 울게 될까.
나도 그레타처럼 며칠 전 크리스마스이브 밤에 눈물을 철철 흘렸다. 누군가는 즐겁고 들떠서 맛있는 것이나 먹고 있을 크리스마스이브에 내 남편은 백신을 맞고 드러누웠고, 이럴 때 곁에 있으면 좋았을 엄마는 돌아가시고 없었다. 그렇게 밤 11시가 넘도록 안 자는 아기를 3시간 넘게 안고 서있자니 사무치게 고독하고 무릎과 허리 손목이 미치도록 아팠다.
모컨 자매의 파티에 참석한 사람들도 즐겁게 술 마시며 웃고 떠들었지만 다들 집으로 가선 가브리엘의 아내처럼 혹은 나처럼 죽은 이를 떠올리며 울다 잠들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아무리 보잘것없는 사람이라도 나이가 들면 죽음으로 인한 이별을 경험하고 마음속에 죽은 이 하나씩은 품고 살고 있으니 말이다.
단편집 [더블린 사람들]은 내가 언급한 [이블린]과 [죽은 사람들]외에 다른 소설들도 하나같이 음울하고 어두침침하다.
[더블린 사람들]을 처음 읽을 당시 나도 이 책처럼 우울했다. 내 앞에 예정된 미래가 암담하게만 느껴졌다. 자살하면 엄마가 슬퍼할 테니 그럴 엄두까진 못 냈지만, 할 수만 있다면 모든 이의 기억에서 나를 완전히 지우고 죄책감 없이 죽고 싶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의 결혼 예물이었던 오래된 시계를 고치러 혼자 종로까지 갔다가 곧장 집으로 오기 서운하여 시계방과 가까운 종묘에 갔다. 8월의 무더운 날씨에 종묘는 마치 딴 세상처럼 고요했다. 종묘를 다 구경하도록 사진 찍으러 온 남자 한명밖에 못 봤던 것으로 기억한다. 꽤 넓은 종묘를 다 둘러보고 쉬는 중에 갖고 온 [더블린 사람들]을 펼쳤는데 때마침 [죽은 사람들]을 읽을 차례였다.
죽은 왕의 위패를 모셔놓은 종묘에서 [죽은 사람들]을 읽으며 혼자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그 상황이 참 묘했다. [죽은 사람들]의 절반은 종묘에서 절반은 인천으로 오는 전철에서 다 읽었고, 마이클이 죽는 부분이 뒤에 있는 탓에 난 사람 많은 전철 안에서 눈물을 쏟을 수밖에 없었다. 언제나처럼 사람이 가득한 1호선 인천행 열차였고 또 언제나 그랬듯 나에게 아무도 관심이 없어서 편히 울었다.
책을 다 읽고 집에 왔을 때 난 심각했던 감정적 위기를 그럭저럭 넘겼음을 느꼈다. 책 한 권 다 읽었다고 내 미래가 별안간 밝아지진 않았다. 다만, 혼자 있는 시간에 내 곁에 책이 있었을 뿐이었다. 그렇게 또 책에 나의 시간이 덧입혀졌고, 어쩔 수 없이 살아보자고 스스로를 토닥이며 힘든 시간을 지나 그 시절보단 행복하게 2022년을 맞이했다.


다들 새해에도 즐거운 독서하시고 건강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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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2-01-03 13: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더블린 사람들 다시 읽고 싶어지게 하는 리뷰입니다. 케이 님 새해엔 육아 덜 힘들어지시고~ 책 읽고 글 쓸 시간 더 많아지길 기원해 봅니다. ㅎㅎㅎ 쌍둥이들도 건강하길 바라고요!

케이 2022-01-03 21:16   좋아요 1 | URL
어린 시절의 새해에는 뭔가 좋은 일이 일어나게 해달라고 기도했던 거 같아요. 근데 요즘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하게 되더라고요.
육아도 더 좋아지는 건 바라지도 않고 여기서 더 힘들어지지만 않았으면 좋겠어요.ㅜㅜ 휴. (이 댓글을 쓰는 와중에도 둘째가 안 자겠다고 아기 띠 안에서 발버둥 치네요.)
잠자냥님 새해에도 건강하시고 지금까지 해오셨던 것처럼 멋진 리뷰도 계속 부탁드릴게요~~~~
 

마침내 관을 덮고 못을 박고 마차에 실었다. 나는 거리가 끝나는데까지만 그를 전송했다. 마부가 속력을 냈다. 노인이 그 뒤를 쫓아가면서 울부짖었다. 그의 울음소리는 달리는 속도에 따라서 떨리기도 하고 끊어지기도 했다. 가엾은 노인은 모자를 떨어뜨렸지만 그것을 줍기 위해 멈춰 서지도 않았다. 그의 울음소리는 달리는 속도에 따라서 떨리기도 하고 끊어지기도 했다. 가엾은 노인은 모자를 떨어뜨렸지만 그것을 줍기 위해 멈춰 서지도 않았다. 그의 머리가 비에 젖었다. 바람도 불어왔다. 찬 서리가 그의 얼굴을 때리고 찔렀다. 노인은 궂은 날씨도 느끼지 못하는지 마차 이쪽 저쪽을 번갈아 달리면서 울부짖었다. 그의 낡은 프록코트 자락이 날개처럼 바람에 펄럭였다.옷에 달린 주머니에서는 온통 책들이 비어져 나왔다. 그가 내내 꼭 쥐고 있던 커다란 책은 여전히 손에 들려 있었다. 길 가던 사람들은 모자를 벗고 성호를 그었다. 어떤 사람들은 가는 길을 멈추고 가여운 노인을 놀란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의 주머니에선 계속 책들이 빠져나와 진흙탕 속으로 떨어졌다. 사람들이 그를 멈춰 세우고 떨어뜨린 물건을 가르켜 보았다. 그는 그것을 주워 들고 다시 관을 쫓아 달렸다. 


생전 책을 좋아하던 대학생 아들이 죽었고, 아버지인 노인은 아들이 좋아하던 책을 주머니에 가득 넣고 울부짖으며 아들의 시체를 실은 마차를 따라 달리는 장면인데, 퇴근길에 이 부분 읽고 너무 슬퍼서 울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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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욕에 불타서 리뷰를 열심히 쓰던 기간은 겨우 한 달 남짓.

내가 하는 짓이 다 그렇긴 하지만, 회사가 너무 바쁘기도 했다.

언젠가는 감상문을 쓰리라 생각만 하면 죽어도 못쓸 것 같아, 성의 없게라도 그동안 읽은 책들에 대해 쓴다.


내가 원래 읽고 싶은 책은 '다시찾은 브라이즈헤드' 인데, 번역된 책이 없어 에벌린 워 책 중에 유일하게 번역된 이 책이라도 읽자 싶어서 읽었다.

빅토리아 시대에 남자들은 이혼을 할 때도, 내가 바람피운 거 마냥 속여서 했다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난 역사에 대해 잘 모르지만 대체로 영국 빅토리아 시대 사람들 다소 우스꽝스럽게 살았던 거 같다. 푸하하하. 쓸데없는 엄격진지근엄한 모습 있자면 진짜 같잖다. 에벌린 워가 그런 모습을 대놓고 풍자하는데 꽤 재밌었다.

읽다 보면 브랜다 때문에 짜증이 막 치미는데, 자기 아들이 말에서 떨어져 죽었는데 카드 놀이 하고 있는 토니 라스트도 그다지 정상은 아니다. 그리고 밑도 끝도 없이 저택에 집착하는 거 어쩔 거임... 하지만, 토니 라스트의 말년 삶은 너무나 충격과 공포였다. 작가양반! 거 너무 잔인한 거 아니오? 

페이지가 엄청 빨리 넘어가는 책이었고, 이 책을 보니 '다시찾은 브라이즈헤드' 도 재밌을 거 같은데, 출간 소식은 들리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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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서점에서 완전 새 책이 2천 원 이길래, 중학생 시절 추억도 떠올림 겸 사서 읽었다.

뜬금없이 터지는 포인트가 꽤 있었다. 특히 '딩크 포슨' 이라고 이름 계속 잘못 부르는 거 별거 아닌데 웃겼다 ㅋㅋㅋㅋㅋㅋ

거창하게 삶의 진리, 의미, 구원 이런 내용을 담고 있는 심오한 소설들은 아니지만 재밌었다.


내가 소설을 읽으며 감탄할 때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어쩔 수 없이 찌질하고 째째한 인간의 모습을 기막히게 묘사할 때인데, 오 헨리표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다들 착해서 조금 아쉽긴 했다.

미국 사람들이 왜 좋아하는 지 알 것 같긴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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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메튜 베리 좀 변태 같다.

웬디가 남자 동생들과 몇 살차이도 안 나는데 엄마처럼 바느질해주고 밥 차리고 하는 모습... 내가 여자라 그런가 읽다가 계속 짜증 났다.

그리고 예전에 셜록홈즈 읽으면서도 느낀건데, 그 시대 영국 사람들은 백인 외 다른 인종은 원숭이와 사람의 중간쯤 되는 존재로 규정하고,절대 인간으로 인정하지 않았던 것 같다. 

인종차별적인 내용이 너무 많이 나와서, 읽으면서 몇 번이나 정신이 아득해졌다. 

읽는데 진짜 힘들었다. 재미 더럽게 없었다... ㅜㅜㅜ

'피터팬' 읽다 보면 '왕자와 거지' 가 얼마나 대단한 책인지 사무치게 깨닫게 된다.

중고로 샀는데도 책값 아까웠다. 표지만 예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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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책이었다. 이보다 더 섬세할 순 없는 문장들.

나는 강원도 깡시골에서 태어나서, 거기서 7살까지 살았는데 하루 종일 나가서 엄마가 내 이름을 부르며 찾아 다닐 때까지 절대 집에 들어오지 않는 어린이였다.

어느 뜨거운 여름날, 다섯 살쯤의 나는 맨드라미가 피어있는 화단에서 채송화를 구경하다가, 채송화 씨를 따서 흙에 뿌렸고, 별안간 곱게 핀 채송화 꽃을 꺾어서 돌로 막 짓이겨버렸다. 별 것도 아니었던 그날, 그때 목덜미에 꽂히던 뜨거운 태양빛이 가끔 어제 있었던 일처럼 생생하다.

책을 읽으며, 시골에서 항상 혼자였던 그래서 때로는 작은 심술을 부리기도 했던 내 유년시절이 떠올라서 자꾸 눈물이 핑 돌았다.

모든 시절 얘기가 다 훌륭했지만, 개인적 경험 때문인지, 유년시절 이야기가 제일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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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14 15: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케이 2019-01-15 10:14   좋아요 0 | URL
요즘에는 포스팅 전혀 안하고 있어요. ㅜㅜ 올해는 할 수 있을지... 한두개씩이라도 쓰려고 노력해봐야겠어요. 댓글 감사해요~
 
미성년 - 상 열린책들 세계문학 108
도스또예프스끼 지음, 이상룡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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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생 때 도저히 도서관 대출기한을 못 맞출 것 같아 읽다 포기했던 소설, '미성년' 을 읽었다. (변명하자면, 그때 빌린 '미성년'은 어마어마하게 두꺼운 한 권짜리였다.) '상처받은 사람들' 을 읽고 바로 '미성년'을 읽었는데, '상처받은 사람들' 의 지극히 정상인 '이반'과 '미성년'의 약간 미친 '아르까지'(아르까지 마까로비치 돌고루끼)간 인물의 차이가 어마어마해서 어리둥절할 정도였다. 


  주인공인 아르까지는 귀족 '베르실로프'(안드레이 뻬뜨로비치 베르실로프) 와 베르실로프 가문의 하녀였던 '소피야 안드로예브나' 사이에 태어난 사생아로서, 그들에게 버려진 것이나 다름없이 외롭게 자랐다. 그는 엄마 소피야의 전남편 '마까르 돌고루끼'의 성을 물려받았는데, 공교롭게도 '돌고루끼' 란 성은 유명 귀족의 성이라 만나는 사람마다 아르까지에게 "그럼 돌고루끼 공작입니까?"라고 질문한다. 이 질문이 너무 싫은 아르까지는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거리낌 없이 자신을 베르실로프의 사생아라고 소개한다. 귀족이 아니란 이유로 하숙집 주인에게 구박당하고, 학교에서도 '람베르뜨'라는 동급생에게 괴롭힘당하는 아르까지는 결국 살짝 정신이 이상해지고 마는데, 본인은 그것을 전혀 자각하지 못한다. 오히려 자기는 남들은 가지지 못한 대단한 '이념'을 품고 있고, 그 '이념'을 이루기 위해 어린 나이부터 끊임없이 수행해왔음을 스스로 자랑스럽게 여긴다.

  하지만 이 아르까지가 품은 '대단한' 이념이란 결국 백만장자가 되는 것이었다. 물론 백만장자가 되려는 이유가 아무도 없는 곳에서 아무한테도 방해받지 않고 홀로 지내고 싶어서라고는 하지만, 이 미성숙한 젊은이가 '이념'이라고까지 말하면서 치켜세운 꿈이 한낱 백만장자라니 참 허무했다. 이 '이념'의 실체를 말해주지 않고 얼마나 많은 페이지에 걸쳐 아르까지의 두서없는 방백이 이어지는지.. 소설 읽은 독자들은 아시리라. 아르까지는 계속 혼자 있고 싶다고 말하지만, 이 젊은이가 미쳐버린 결정적 이유는 고독이었다. 사랑받고 싶고 관심받고 싶은데 아버지란 작자는 자기를 아들 취급도 안 해주고, 이에 대한 반발심리로 사랑해 마지않는 어머니에게도 차갑게 대한다. 하지만 난 하숙집 앞에 버려진 갓난 아이를 아무 대책도 없이 자기가 키우겠다고 나서고, 죽은 갓난 아이 때문에 밤새 울부짖는 이 아르까지에게 참 정이 갔다.


  끝없이 떠드는 아르까지 때문에 피곤할 때도 있는데, 진짜 신기한 게 어느 정도 지나면 이 아르까지가 말하는 것과 정반대의 소설 속 상황이 눈앞에 선하게 그려진다는 것이다. 소꼴스키 공작 앞에서 자기는 여자가 정말 혐오스럽다고 열정적으로 말한 지 얼마 안 지나, 소꼴스키의 딸 '까쩨리나'에게 첫눈에 반해 몸을 못 가눌 정도로 비틀거리며 황급히 저택을 떠나고, 제르가쵸프가 주도하는 정치 모임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겠다고 몇 번씩 다짐해놓고 갑자기 벌떡 일어나 아무도 안 궁금해하는 자기의 '이념' 에 대해 말하고, 이념을 이루기 위해 학창시절 굶는 연습을 했고 외투를 오래 입는 법을 연구했다고 해놓고선 미친 듯 룰렛과 도박에  빠져 밤을 지새우는 아르까지를 보다 보면, 아르까지가 말하는 것과 실제는 많이 다름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아르까지가 '나는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 라고 말하면, 너무 당황해서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이 그려지고, '나는 말하지 않으리라 다짐했다'고 하면 결국 말하겠구나 싶고, '걱정하지 않았다'고 하면 너무 걱정스러워서 초조하게 눈알을 이리저리 굴리는 모습이 보이는 듯했다. 이 역시 도스토예프스키가 의도한 바겠지.


  람베르뜨의 꼬임에 넘어가 자기가 어쩌면 까제리나와 혼인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진지하게 하는 안타까운 아르까지에게 "아르까지야! 또 속냐!!!" 라고 외치고 싶지만, 결국 그는 아주 시원하게 속아넘어가고, 베르실로프는 소피야를 세상에서 제일 사랑한다고 자화상에 키스까지 하며 난리쳐놓고선 갑자기 또 까쩨리나에게 눈이 멀어 한바탕 소동을 벌인다.

  모든 상황이 종료되고 아르까지는 소설 초반보다 한결 정상같아 지는데, 그렇다고 아르까지가 미성년 시절보다 훨씬 현명하게 남은 성년 시절을 살아갈 수 있을까? 그의 아버지 베르실로프를 보면 그렇진 않을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다혈질에 언제나 허둥대며 미숙한 아르까지가 아버지 베르실로프와는 달리 진심으로 사랑하는 여자를 만나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고 기원하며 책장을 덮었다.


  사실은 이렇다. 내가 처음 <이념>에 대해서 몰두한 것은 뚜샤르 사숙에 있을 때 그렇게 놀림거리가 되었던 사생아라는 내 신분 때문도 아니고, 홀로 우수에 잠겨 지내던 유년 시대의 아픈 기억 때문도 아니며, 내 상황에 대한 복수심이나 저항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도 전혀 아니다. 아마도 그것은 내 개인적 성격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내 생각으로는 열두 살쯤 됐을 때부터, 즉 자신에 관한 올바른 자각을 가지기 시작함과 거의 동시에 나는 사람들을 싫어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싫어했다기보다는 오히려 왠지 사람들이 무거운 짐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친한 사람들에게까지도 순진한 마음으로 생각하는 바를 있는 그대로 모조리 말하지 못하는 자신이, 물론 내키지 않으면 그렇게 할수도 있기는 하지만, 모든 것에 회의적이고 우울하며 비사교적인 자신이, 무엇 때문인지 항상 억제해 버리는 자신이, 때로는 내 자신도 아주 서글프게 느껴졌다.

-p.155-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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