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까지나 가정이지만, 인류를 행복하게 만들고 평화와 안정을 가져다줄 궁극의 건물이 가능하다고 치자. 그런데 그런 건물을
세우려면 단 한 명의 미약한 생명, 이를테면 아까 말한 조그만 주먹으로 자기 가슴을 치던 불쌍한 여자아이를 괴롭히는 것이 불가피한
일이라 치자. 무고한 아이의 보상받을 수 없는 눈물을 토대로 그 건물을 세워야 한다면, 너는 그런 조건하에서 건축가가 되는 것에
동의할 수 있겠니? 자 어디 솔직히 대답해 봐! 네가 건설한 건물 속에 사는 사람들이 어린 희생자의 보상 없는 피 위에 세워진
행복을 받아들이는데 동의하고 결국 받아들여서 영원히 행복해진다 하더라도, 너라면 과연 그따위 이념을 용납할 수 있겠니?”
평소 진짜 뜬금없는 데서 눈물을 콸콸 흘리곤 한다.
어쩔 땐 그게 단어 하나일 때도 있고, 짧은 수식어 하나일 때도 있다.
몇 년전에 체호프가 쓴 소설에서 엄마에게 아직 잠들지 않았음을 알리는 아이의 손길처럼 부드러운 잎사귀가 볼을 스쳤다는 내용의 문장을 읽고 눈물이 핑 돌았던 적이 있다. (회사라 정확히 쓸 수 없지만, 대충 이런 내용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중앙선데이에서 석영중 교수가 도스토예프스키에 대해 글을 연재하는데, 거기에 발췌된 글을 읽고 뜬금없이 월요일 아침부터 아침부터 눈물을 훔쳤다.
모두의 행복이라고 하지만 그들이 주장하는 모두의 행복이 진짜로 모두의 행복인 경우는 없었다. 그들이 말하는 모두의 행복은 자기들만의 행복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 누구도 타인에게 희생을 강요할 순 없으며, 그들의 행복추구권을 빼았을 순 없는건데, 사람들은 너무나도 당연하게 약자들을 짓밟곤 한다. 나는 항상 짓밟히는 쪽이라고 생각했지만, 글쎄... 아마 나도 누군가를 아프게 하고 무시한 적 있었겠지.
그런데 그게 어떤 일이었는지 언제 였는지 지금은 기억조차 못한다는 게 때론 부끄럽고 창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