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소라의 노래를 듣고 있다. 이곳은 널찍하다. 누군가와 부대낀 채 나는 엎드려 누워 있다. 건물 밖으로 나서면 주위는 온통 산이다. 아직 곧게 뻗어 있는 나무들은 죄 헐벗었다. 날이 흐렸기에 처음 이곳에 당도했을 때, 나는 이공간에 들어선 줄 알았다. 공상 영화에서나 볼 법한 어두운 산의 위압이 기를 죽였다. 때마침 비가 내리기 시작해 우리는 황황히 뛰었다. 머리를 털며 옷을 벗었다. 통로를 지나면 수영장이 있고, 그 너머에는 사우나가 있다. 노천 온천이 딸려 있었기에 추위를 무릅쓰고 낭만을 즐겼다. 그래, 나는 지금 감기를 호되게 앓고 있다.
너를 부르는 것조차 몹시 오랜만이어서 나는 조금 주저된다. 여전히 공기가 따뜻한 곳에서 너는 나와 멀어진 채 살아가고 있다. 지하철이 스치는 걸 보며 종종 그런 생각을 한다. 찰나의 순간에 지나간 저 남자도 그만의 발걸음을 떼겠구나. 그도 그만의 숨을 쉬고, 그만의 생활을 이어 나가겠구나. 왜인지 그럴때면 나는 먹먹함을 느낀다. 이 비어 있는 삶의 공간이 나만의 것으로 채워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타인의 생각을 읽을 수 없는 것과 동일한 정도로 아득하다. 너도 그곳에서 나와 있을 때보다 더 많이 웃고, 내가 아닌 다른 사람과 걷고 있을 테지.
노천 온천 곁으로 설치된 울타리를 넘어다보았다. 땔감으로 쓰기 위해 숲의 나무를 베어내고 있었다. 이제는 비어버린 자리가 어쩐지 쓸쓸했다. 부끄러운 것도 잊고 울타리에 매달려 그곳으로 손을 뻗었다. 혹여 만져질까, 쓰다듬을 수 있을까, 하는 마음에서. 함께 있던 사람은 내 옆에 가만히 머물다가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나 또한 곧 그 뒤를 따랐다. 네가 내게서 빠져나간 후로, 의외로 나는 잘 지내고 있다. 스스로 적응 기간을 거쳤기 때문일까. 아픈 마음에 혼자 너를 밀어내야만 하는 시간을 보냈기 때문일까. 너보다 나를 챙겨주는 사람을 만났고, 그래서인지 너와 있을 때보다 웃음이 많아졌다. 네가 내 웃음을 싫어했던 탓에 감추었던 것을 이제는 마음껏 드러낼 수 있다.
한 시간이 넘도록 차안에 앉아 오면서 우리는 노래를 들었다. 최대한 시끄럽지 않은 음악을 골랐다. 창문에 조심히 몸을 기댔다. 노랫말처럼 텅 빈 풍경이 불어오는 것을 맞으며 바깥을 응시했다. 바람, 너는 내게 마지막 바람이었을까. 네가 모든 것을 휩쓸어 나가고 나는 빈틈없이 마음을 틀어막았다. 너조차 파고들지 못할 만큼 세게 조였다. 붉게 타올랐다 이젠 불씨도 붙을 수 없는 그을음으로 나는 남았다. 바람은 내게 스미지 못하고 잿가루만 쓸어갈 것이 분명하다. 이것을 너의 탓으로 치부해야 할까. 네가 내 곁에 있었다는 것을 원망해야 할까.
이어폰을 뺀다. 희미하게 비치는 불빛밖에 남지 않았기에 곧 눈을 감을 것이다. 늦은 시각이다. 옆에 누운 사람은 이미 잠들었다. 내가 쓰는 것에 흥미를 가지고 몇 문장 지켜보더니 얼마 안 가 돌아누웠다. 너에 관한 이야기를 읽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생각해야겠다. 보내지 않을 편지를 쓰는 일은 언제나 즐겁고, 그만큼 아프다. 몸이 아파서 더 그렇게 느껴지는 것인지 모르겠다. 너는 어느 외로운 밤 불현듯 피어오른 대상이 아니다. 너는 내 육체를 이루고 있고, 정신을 떠받들고 있다. 너는 감상적일 수 없다. 필연적인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서서히 너를 벗어내야 한다는 것을 안다. 그저 옷처럼 남겨두고 싶은 마음도 있다. 어떻게 해야 할까. 너는 어떻게 생각하니.
이만 자야겠다. 나와 다른 밤을, 너는 무심코 흘려버리지 않기를 바라며, 나는 팔을 늘어뜨려야겠다.
2015년 겨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