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장 한 켠을 난자하는 잔혹한 사건은 끊일 생각을 않는다. 윤 일병이 사망한 날도 벌써 일 년이 지났다. 무감각하게 관련 기사를 읽어내려가던 나는 어느 구절에서 손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구타 당하는 병사가 의식을 잃으면 수액까지 맞게 하며 때렸다는 것이다. 심장이 반으로 쪼개지는 듯했다. 기사를 읽어내려가며 나는 정신을 거의 잃었고 마침내는 온몸에 힘이 빠져 잠시 누워 있어야 했다. 윤 일병이 쓰러지기 전에 읍소했던 한 마디가 살려달라, 였다고 한다. 대체 왜. 나는 상상할 수조차 없는 고통을 견디고 또 견뎌야 했을 그가 너무도 억울하고 미안해서 속절없이 손으로 얼굴을 막고 흐느꼈다. 그 사건이 있고 일 년 사이 군 내에서는 무수한 사건사고가 일어났다. 끊임없는 가혹행위, 탈영 후 총기난사를 자행한 임 병장 사건, 그리고 지금의 예비군 총기 사건. 군대에서 일어나는 사망 사고는 늘 어딘가 먹먹하다. 군대란 남자들에게 있어 제대로 된 인생을 꽃피우기 위한 통과의례라고 할 수 있다. 아직 날개 한 번 활짝 펼쳐보지 못한 자들이기에 그들의 죽음은 더 안타깝고 슬프게 들린다. 이번 사건에서 최 씨가 어떤 과정을 통해 이 끔직한 사건을 저지르게 되었는지는 차치하고 가장 우리를 아프게 하는 것은 무고한 청년들이 또 목숨을 잃었다는 사실이다. 나는 이번에도 아침을 먹으며 대수롭지 않게 기사를 읽었는데 하나의 사실을 깨닫고는 경악하며 숟가락을 놓았다. 중상을 입거나 사망한 이들이 모두 엎드린 채로 최 씨의 총을 맞았다는 점이다. 그들의 등을 겨누는 최 씨의 모습이 뇌리에 번득 그려졌다. 그리고 피와 어둠. 나는 이 상황에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있을까.


글을 손에서 놓고 지낸 지도 석 달이 가까워간다. 국문과에 오면 질릴 정도로 책을 많이 읽고 하다못해 글을 쓰는 데에 통달하게 될 줄 알았는데 놀라울 정도로 글과 멀어지고 있다. 전공 수업을 두 개 듣는데 국어학과 시창작 수업이 그것이다. 국어학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어렵고 난해해서 일단은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그것을 내가 끝까지 완수해낼 수 있을는지 모르겠다. 시창작 수업이 내가 고대했던 것인데 그 실상은 무척 실망스럽다. 나는 시창작 수업에 들어가기에 앞서 오래전에 활동했던 합평 카페에 들어가서 예대 선배들이 어떻게 합평을 주고 받았는지를 톺아보았다. 시를 굉장히 잘 쓰는 누나가 한 명 있었고, 그 누나가 날카로우면서도 오류를 정확히 짚어내는 평가를 해주었던 기억이 있어 주로 그를 위주로 시합평의 방법을 내게 주입했다. 그러나 학생들의 시는 전부 내 기대에 못 미쳤다. 실기로 들어온 학생들이 소수인데다 대부분은 글을 한 번도 써보지 않았거나 가까이 하지 않았던 정시생들이었기 때문인지 시의 수준이 썩 좋지는 않았다. 내게 주입한 시합평의 방법으로는 이건 시가 아니다, 갖다 버려, 라고 외치고 싶을 정도로 한심하게 느껴진 적이 많았다. 나도 관념적인 시를 쓰기 때문에 학생들의 관념적인 부분을 건드리는 것에는 너그럽지만 그들의 시는 내 아량을 가볍게 뛰어넘었다. 4주 정도 지났을까 나는 그 자리에 앉아 있는 것조차 괴로웠다. 마음 같아서는 이건 아니다, 이건 쳐내라, 하고 쏘아주고 싶지만 주위에서는 다들 따듯한 말씨로 조곤조곤하게 합평을 진행하고 있었고 내 주제에 다른 이의 시를 주무른다는 것도 학생에 대한, 시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느껴졌다. 결국 나는 끓어오르는 마음을 억누르며 최대한 장점 위주로 쏟아내듯 비평을 건네곤 했는데, 도무지 읽어줄 수도 없을 것 같다고 생각하는 시에는 눈길조차 줄 수 없었다. 그런 시가 지금껏 두 편 있었다.

 

시창작 수업에서 나는 첫 주 차 발표를 맡았고 그걸 끝내고 나니 한가로워졌다. 다른 수업도 널널한 편이어서 여가 시간이 상당해졌는데 나는 그 시간을 허투루 보내왔다. 게다가 공강일도 이틀이나 되어서 휴일이 나흘이나 된다. 엄청난 시간이 주어졌음에도 효과적으로 쓰지 못한 것이다. 도서관이 기숙사 바로 옆에 있는데 자주 나가지 않았고 책을 한 무더기나 싸들고 왔지만 몇 번 펴보지 않았다. 대신 내가 열중한 것은 영화였다. 어느 때였던가 나는 영화에 매력을 느끼기 시작했다. 되짚어 보건대, 지적 자존심 때문이었던 것 같다. 나와 함께 지내던 방짝 친구가 영화를 무척 좋아했기 때문에 하교 후에는 으레 영화를 보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나는 친구가 본 영화 편수를 넘어서고자 했다. 알량한 자존심이었다. 나는 어떠한 분야에서 남들보다 조예가 깊고자 하는 사람인데 그 대상이 그전까지는 책이었다면 책에서 영화로 옮겨간 것이다. 하지만 나는 하고자 하는 욕구만 충만하지 제대로 미치지는 못하여서 그저 말로만 영화 너무 좋아! 하고 내뱉기 일쑤였다. 그러다 수첩을 하나 사서 영화 노트라고 이름 붙이고 거기에 본 영화를 혼자만의 별점을 달아 기록하기 시작하면서 영화 보기에 본격적인 흥미를 붙였다. 작년 12월부터 입때껏 본 영화가 90편에 달하는데 언제 이만큼 봤지 싶으면서도 내심 아쉬웠다. 좀더 미치도록 볼 수 있었을 텐데, 더 열중할 수 있었을 텐데. 내 열의의 한계를 눈으로 목격한 것 같아서 미웠다.

 

 

 

 

가장 최근에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울음을 비오듯 쏟아냈다. 보통 영화를 보고 흘리는 눈물은 한시적에 불과한데 나는 이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한참동안 멈추지 않는 울음 때문에 마음이 괴로웠다. 마침 룸메이트도 나가 있었기 때문에 나는 속죄하는 마음으로 엉엉 울었다. 나중에는 마츠코의 얼굴을 떠올리는 것조차 마음이 아려 생각을 접어버리고 침대에 누웠다. 나는 분명히 마츠코의 일생에 대해 잘못을 범한 사람이고 그에 대한 죄책감을 항상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문창과 입시 준비를 할 때 한 남자 아이에 관한 이야기를 구상한 적이 있었다. 주마다 다른 주제를 두고 글을 썼는데 그 주의 주제는 사진을 보고 그 사진에 맞게 이야기를 꾸리는 것이었다. 담당자가 내어 놓은 사진은 몽환적인 느낌이 물씬한 사진이었다. 푸른 빛깔이 사진을 덮고 있었고 중앙에 놓인 푸른 침대 위에 남자 아이가 누워 있었다. 아이는 너무 하얘서 푸른 빛이 났다. 침대 주위로 금붕어가 몇 마리 부유하고 있었다. 마치 그 공간이 어항 속인 듯했다. 나는 속에서 푸르게 누워 있는 아이에게 눈길이 갔다. 그 아이가 시리도록 푸르러서 그 아이를 정말 시리게 만들고 싶었다. 그렇게 내가 꾸린 이야기는 남자 아이를 불행의 극치까지 몰아붙이는 것이었다. 늘 그랬듯 남자 아이는 성소수자였고 그 사실을 고백한 후 아버지와 의절하게 된다. 아이의 어머니는 이미 어릴 적 죽었고 아버지는 폭력적인 사람이었다. 아이는 고등학교 때 친구에게서 이상한 감정을 느낀 후로 성정체성을 확신하게 되었는데 그것에 대해서는 크게 마음을 쓰지 않았었다. 집에서 쫓겨난 아이는 갈 곳이 없어지자 자연스럽게 사창가로 흘러들게 되었다. 피부가 푸르게 하얬던 아이는 한 창부에 눈에 들어 남창으로 활동하게 된다. 작은 체구였던 아이는 오랜 기간 고통을 감내해야 했다. 푸르게 하얬던 아이의 몸은 갈수록 푸르게 물들었다. 그 뒤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 아이에 관한 소설은 결국 쓰지 못했지만 아이의 잔상은 자꾸만 남아 나를 쿡쿡 찔러댄다. 푸른 멍자국과 물이 가득 고인 눈동자가 두개골 어딘가에 갇혀 증발하지 못한 채 나를 덮고 있다. 이 아이의 삶을 내가 망쳤다는 생각에, 내가 무슨 권리로 이 아이를 비참으로 몰아세운 것인가, 하는 자책감에 나는 불행한 사람을 보면 죄송함에 눈물만을 흘린다. 테스가 그랬고, 마츠코가 그랬다. 테스, 오 테스. 테스의 삶을 하나의 단어로 정의해야 한다면 그것은 물론 비통일 것이다. 테스의 삶은 하나의 비극이다. 테스는 사랑했지만 사랑 때문에 죽은 여자다. 아버지의 말을 죽인 후로 테스의 삶은 꼬이기 시작했다. 가정부로 일을 나간 집의 아들에게 처녀성을 빼앗긴 뒤, 그녀는 에인젤이라는 남자를 사랑했지만 정조를 지키지 못했다는 이유로 버림받았다. 그러나 테스는 에인젤을 잊지 못했고 에인젤 또한 그녀의 마음을 뒤늦게서야 깨달았지만 그 때문에 테스는 자신의 처녀성을 빼앗은 남자를 죽이게 된다. 테스의 가혹한 삶은 처형으로 종지부를 찍는다. 마츠코의 삶은 테스와 얼마나 닮아 있는가. 그토록 사람을 사랑했지만 결국 그녀를 사랑해주는 사람은 없었다. 그녀가 의지하고 사랑했던 사람들은 그녀의 헌신을 이용하거나 짓밟기 일쑤였다. 친구로서 사랑을 주었던 이들은 그녀를 이해해주지 못했고 마츠코는 외로움에 찌들어 갔다. 여러 남자에게 차이고 구타 당하는 마츠코의 비참한 모습만으로도 족할 텐데, 감독은 재기하려는 마츠코의 가련한 싹까지 쥐어뜯어버린다. 마츠코의 죽음은 서럽다. 분하다. 이렇게까지 마츠코를 짓눌러야 하는가. 이렇게까지 마츠코를 밀어붙여야 하는가. 



여수, 그 앞바다의 녹슨 철선들은 지금도 상처 입은 목소리로 울부짖어 대고 있을 것이다. 여수만의 서늘한 해류는 멍든 속살 같은 푸릇푸릇한 섬들과 몸 섞으며 굽이돌고 있을 것이다. 저무는 선착장마다 주황빛 알전구들이 밝혀질 것이다. 부두 가건물 사이로 검붉은 노을이 불타오를 것이다. 찝찔한 바닷바람은 격렬하게 우산을 까뒤집고 여자들의 치마를, 머리칼을 솟구치게 할 것이다. 얼마만큼 왔을까. 통곡하는 여자의 눈에서 쉴 새 없이 뿜어져 나오는 것 같은 빗물이 객실 차창에 여러 줄기의 빗금을 내리긋고 있었다. 간간이 벼락이 빛났다. 무엇인가를 연달아 부수고 무너뜨리는 듯한 기차 바퀴 소리, 누군가의 가슴이 찢어지고 그것이 영원히 아물지 않는 것 같은 빗소리가 아련한 뇌성을 삼켰다. 음산한 하늘 아래 나무들은 비바람에 뿌리 뽑히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젖은 줄기와 가지가 금방이라도 부러질 듯 휘어졌다. 노랗고 붉게 탈색된 낙엽들이 무수한 불티처럼 바람 부는 방향으로 흩날렸다. 조금 큰 활엽수들은 의연하게, 줄기가 여린 묘목들과 갈대 숲은 송두리째 제 몸을 고통에 바치며 흔들리고 있었다. 그들도, 그들의 뿌리를 움켜 안은 대지도 놀라운 힘으로 인내하고 있었다. 무수한 보릿잎 같은 빗자국들이 차창과 내 충혈된 눈을 할퀴었다.




자투리 시간에 도서관에 가 한강의 책을 집어 들었다. 당연히 그래야 한다는 듯 자연스럽게 책을 꺼내어 자리를 잡았다. 한강의 소설은 어떠한 적막이 인물들을 짓누르고 있는 듯 답답한 느낌을 주는데 이 작품은 특히 그렇다. 이 적막한 중편 소설을 읽는 데에 굉장한 시간이 들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읽어내는 데에 든 시간보다 첫 장을 넘기기까지의 시간이 길었다. 첫 구절부터 감정 소모가 상당했기 때문에 나는 자신이 없었다. 겨우 읽어낸 소설은, 역시 아팠다. 두 여자의 이야기를 읽어가는 동안 나는 내가 예민해져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마치 자흔을 신경질적으로 대하는 정선처럼 나는 이 소설을 히스테릭하게 읽어내고 있었다. 이것은 경험이라고도 표현할 수 있는데 나는 이 경험이 불쾌하게 느껴졌다. 따라서 나는 이 소설에 대한 감상을 심장 저편 어딘가에 꽁꽁 숨겨두었으나 다시 읽으며 그것이 혈관 위로 떠오르는 것을 알아차렸다. 불쾌와 적막이 묵직하게 가슴이 마쳐 연거푸 한숨을 내쉬지 않고선 책장을 넘기기 힘들었다. 자흔은 한강이 추구하는 여성상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다. 한강의 인물들이 대체적으로 불쾌하게 그려지는 반면 자흔은 발랄하고 여리다. 여름이 가까워 오는 날씨에 두꺼운 코트를 입고 짐보따리를 가득 들고서도 온화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자흔은 그럼에도 자전거와 부딪히는 사고가 있었을 때 고통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강경함을 지니고 있다. 아기새의 모습 같다. 나는 언젠가 한강의 장편 소설을 감상하며 한강의 인물들은 아기 새 같다고 표현한 적이 있는데 자흔이 이를 대표한다. 여리지만 생에 관한 한 누구보다도 강직한. 때문에 자흔이 정선에게 내민 손길이 거절당했을 때 나또한 마음이 무너져 내리는 것만 같았다. 자흔이 받아냈을 상처의 무게가 얼마나 컸을지 짐작이 갔기 때문에.


결국 자흔은 떠나고 정선은 혼자 남는다. 자흔은 여수로 떠났을 것이다. 정선 또한 여수로 향했다.


두 여인이 만났을까. 소망컨대, 두 여인이 만났으면 좋겠다. 그러나 만나지 않는 편이 더 나을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