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밀은 사고뭉치 동화는 내 친구 72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지음, 햇살과나무꾼 옮김 / 논장 / 199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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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내가 좋아하는 린드그렌 할머니의 저학년용 동화

 

2.

실제로 내가 만나는 개구쟁이들, 사고뭉치들은 정말 미운데 책에서 만나는 개구쟁이들은 왜 이리 귀엽고 이쁜 걸까. 그건 아마도 린드그렌 할머니가 어린이들을 따뜻한 마음으로 사랑을 담아 봐주기 때문인 것 같다. 이 할머니의 눈으로 아이들을 보면 나도 잠시 착한 어른이 된다니까.

 

3.

제일 웃겼던 에피소드.

에밀은 수프단지에 머리를 박고 수프를 먹다가 단지가 머리에 끼어버린다. 엄마는 단지를 깨자 하지만 아빠는 단지는 4크로나, 진찰료는 3크로나라며 의사에게 가자한다. 그러자 엄마 생각하기를 '남는 1크로나로 뭘하지?'

병원에 가서 에밀이 의사에게 인사를 하다 단지가 책상에 부딪혀 깨진다. 아빠,"4크로나 버렸군"  의사"무슨 소리, 진찰료는 5크로나인데, 1크로나 번 거지"  엄마 "우리가 1크로나를 벌었어요. 그걸로 뭘사죠?" 아빠 "사긴 뭘, 저금해야지. 에밀이 1크로나 벌었으니 에밀에게도 용돈을 줍시다"

정말 유쾌한 가족 아닌가? 인생의 셈은 이렇게 하는 거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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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다리 아저씨 네버랜드 클래식 12
진 웹스터 글 그림, 이주령 옮김 / 시공주니어 / 200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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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내 생각에 모든 순정만화는 신데렐라 아니면 키다리 아저씨가 그 원조이다.

주인공이 청순가련에 고생 무지하고 주위의 구박을 받다 괜찮은 남자를 만나면 신데렐라.

주인공이 명랑쾌활에 정체를 알 수 없는 손이 뒤에서 도와주는데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손은 주위에 있는 누구다, 나중에 그와 사랑에 빠진다 - 키다리 아저씨.

때로는 저 둘이 섞여 있을 때도 있다.

키다리 아저씨가 순정만화의 원조가 되는 건 그만큼 그 이야기가 여자애들의 심리와 희망사항을 효과적으로 표현했기 때문일거다.

 

2.

주디는 어찌보면 건방지다 싶을 정도로 하고 싶은 말 다하고 사는 주관이 뚜렷한 소녀다.(처녀인가?) 그럼에도 밉지 않은 건 너무 솔직하고 위선적이지 않고 자기 장점과 단점을 잘 알면서 그걸 이용해먹으려고 하지 않는 태도 때문이다. 자기 단점을 인정하거나, 장점을 드러내면서도 잘난척하거나 겸손한척(둘 다 싫다) 하지 않기가 참 어렵다는 걸 알기에 이런 인물은 소설 속에만 존재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주디와 비슷한 여러 여주인공들이 떠오른다. 빨강머리 앤, 캔디, 폴리아나..... 틴에이저 시절에 동경하며 읽었던 책들....인생을 긍정적으로 살고 에너지가 충만한 여자애들....

 

3.

완역본으로 읽으며 새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주디와 키다리 아저씨는 점진적 사회주의자다. (옛날 책엔 이거 없었다. 사회주의자=빨갱이 이던 시절에 아마 번역하면서 빼먹었을 것이다)

주디는 여성에게 참정권이 없던 시절에 신식교육에 눈을 뜬, 말하자면 신여성이다. 사회적 이슈에 관심이 많다. 작가의 정치적 경향을 엿볼 수 있다.

주디는 다 큰 처녀였다.(난 지금까지 주디가 중고등학생 쯤 되는 소녀인줄 알았다. 내가 읽었던 옛날 책이라고 해서 나이를 틀리게 번역했을 리는 없고 이건 아마 내가 어렸을 때 이 책을 읽으면서 나와 주디를 동일시했기 때문이 아닐까)

 

4.

나이 들어서 읽으니 다소 만화 같은 내용이긴 하지만 완역의 향기를 느낄 수 있어서 새로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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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금술사
파울로 코엘료 지음, 최정수 옮김 / 문학동네 / 200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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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내가 좀더 어릴 때 -10대나 20대 초반-  이 책을 읽었다면 꽤 감동했을 것이다.

이제 나는 자아의 신화를 찾기에는 너무 늙어 버렸는지 별 감흥이 없다.

 

2.

작가가 하려는 중요한 말, <세상 만물은 모두 한가지라네. 자네가 무언가를 간절히 원할 때 온 우주는 자네의 소망이 실현되도록 도와준다네>  이것을 비롯하여 책 중간중간에 나오는 교훈적인 말들은 부처님이나 예수님이 몇천년 전에 하신 말씀이 아닌가. 나는 나를 가르치려는 의도가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글이 싫다. 적어도 소설이라는 형식을 빌었다면 이야기와 문체로 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교훈은 읽고 난 후 내가 다시 곱씹어보며 느낄 수 있게. 소설 시작부터 끝까지 나오는 교훈적인 말들은 마치 생쌀을 씹은 느낌이 들게 한다.

 

3.

세상을 오래 살진 않았지만 세상은 이런 식으로 거하게 신비한 게 아니다. 아주 소소하고, 쩨쩨하고, 보잘것 없으면서 신비한 거다. 자아의 신화란 순례여행으로 얻어지는 게 아니라 치사한 꼴 다 겪고 그 속에서 한 송이 연꽃을 피워 얻어지는 거다. 작가도 그 점을 모르진 않겠지. 책의 내용은 다만 비유일 뿐일 테니까. 그래도 추함과 더러움이 없는 순수한 주인공의 내면은 내 마음에 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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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져 2004-09-04 2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와 같은 느낌이셨군요. 반가워서 덥석 추천했습니다.
내가 어릴 때 이 책을 읽었더라면 감동했을 것이다 라는 말씀...동감입니다.
그런 책들이 몇 권 있는데 (언뜻 떠오르지는 않지만...^^;;) 연금술사도 그런 종류였어요.
좀 더 빨리 읽었다면 코엘료 아저씨처럼 멋있을 수도 있었을텐데...ㅎㅎ
보잘 거 없으면서 신비하단 말씀 가슴에 꾹 눌러놓고 갑니다...

깍두기 2004-09-05 0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한참 전에 쓴 글에 댓글이 달리니 왜 이리 반갑고 감사한 겁니까?^^
근데 내 주변의 사람들은 다 이 책이 좋다고 하여 나는 나혼자 심술쟁이가 된 기분이랍니다ㅠ.ㅠ

돌바람 2005-06-07 23: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슬쩍 추천만 누르고 가려다, 저도 플레져님처럼 반가워서 총총 글자 남깁니다. 만두님이 말씀하신 깍두기님이 님인 모양이어요. 헌책방에서 받아본 책 보고 깍두기님은 좋아하실 거라 하셨더랬는데. 역쉬~~. 저도 코엘료의 책이 별로더라구요. 별로(?) 정도가 아니라 유쾌하지도 그렇다고 정면으로 그게 아니라고 하기도 좀 그렇다더라구요. 님이 말한 1, 2, 3에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그리고 기분 좋네요. 후, 나만 이상한 게 아니었다고 생각하니. 또 뵐께요. 첫인사를 대신합니다. 리뷰 밑에 첫인사를 몇 남겨봤는데, 시간 지난 리뷰는 또 안 보는 모양이어요. 괜히 님은 보실 것 같아, 그러면 얼마나 반가울까 인사하고 갑니다.
 
빵가게 찰리의 행복하고도 슬픈 날들
다니엘 키스 지음, 김인영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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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이 좋았고, 내가 산 책을 주위 사람들이 먼저 읽었는데 아주 괜찮다고들 하길래 기대를 많이 하고 읽기 시작했는데, 지나친 기대는 책의 재미를 반감시킨다.

작가의 시도는 아주 새롭고 특히 주인공이 서술하는 형식은 아주 효과적으로 주인공의 경험을 간접경험하게 해준다. 어눌하고 순진한 정신지체자의 말투에서 지적 천재의 말투, 다시 정신지체자로 돌아가는 과정이 내용 뿐 아니라 글을 서술하는 방식, 맞춤법의 변화 등으로 확연히 나타나 충격적이기까지 하다.

작가가 우리에게 전하려고 하는 것은 무엇일까? 작가가 후기에 언급한 모티브 <나의 교양은 나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에 벽을 만든다>가 이 책의 주요한 갈등요인인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평소에 한번씩은 해봤음직한 생각, <똑똑하면 행복할까?>에 대한 대답을 작가가 하려한 것도.

<천재는 되었지만 어느덧 찰리는 예전의 찰리가 아닙니다. 그의 순진무구한 마음까지 어디론가 사라져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고독을 느끼고, 의심이 많아지며, 점점 불행해져 갑니다. 세상에는 지식은 많지 않더라도 항상 유쾌하고 멋있게 사는 사람들이 얼마든지 있는 법입니다. 저역시도 자기의 영악함을 선전하는 사람보다는 그런 이들이 훨씬 매력있게 느껴집니다. 이 책은 인간에게 과연 많은 지식의 섭렵만이 인생에 있어 최고의 가치라 할 수 있는지 사람들로 하여금 새삼 생각해볼 기회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번역자의 말이다. 이 말에 동의할 수 없어 찜찜하다. 만일 "행복한 바보로 살래, 고독하고 괴로운 천재로 살래?"라는 질문을 받는다면 나는 뭐라 대답할까? 아무래도 난 나중 것을 선택할 것 같아서 말이다.(평소에 아인슈타인이 본 세상을 나도 꼭 한번 보고 싶다는 바램을 가지고 있었던 나는-_-)  다른 사람들도 대부분 '상황을 인식하지 못하는 순진무구함에서 오는 행복'을 선택할 것 같지는 않은데...

역자가 말한 뻔한 교훈을 알려주려 작가가 이 글을 쓰지는 않았을 거라는게 내 생각(아니면 바램)이다. 바보인 찰리도 안쓰럽고 가슴 아프게, 천재인 찰리의 고뇌와 의심도 안타깝고 가슴 아프게 그냥 느껴질 뿐이다. 천재 찰리와 바보 찰리는 둘이 아닌 한 사람이니까. 그리고 찰리가 변화하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주변 사람들의 허위, 가식, 기만, 진실을 나에게 대입해보며 인간에 대한 희망과 절망을 동시에 떠올려본다.

**원제 <앨저넌에게 꽃을>을 <빵가게 찰리의 행복하고도 슬픈날들>로 바꾼 것에 반대 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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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돼지
고이즈미 요시히로 지음, 김지룡 옮김 / 들녘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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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보면 진리는 참 단순한 것이다.  이 시리즈 세권의 제목대로 우리는 모두 돼지이지만 있는 그대로가 참 좋고, 힘든 일들도 알고보면 아무것도 아니다.

그런데 그 말의 울림이 책을 읽기 전과 읽은 후가 다르다. 이 책을 따라 곰곰히 내 마음여행을 하고 나면 있는 그대로는 예전에 알았던 있는 그대로가 아니고 아무것도 아닌 것도 그냥 아무것도 아니지만은 않다.(뭔 소린지? 하여간 이렇게 밖에 설명할 수 없다)

우린 모두 행복하고 편안하게 지내고 싶어하는데 너무 편안하고 행복하게 지내고 싶어하는 나머지 불행해지고 불편해지는 것 같다. 살면서 그런 걸 참 많이 느꼈는데 이 책에서 너무 잘 비유를 해 준다. 귀여운 돼지들이 나와서 말이다.

모든 괴로움은 나자신이 만들고, 아무리 괴로운 일도 받아들이면 언젠가는 지나간다. 기대를 안하면 실망도 없다.

어쨌든 맘 편히 쉽게 읽을 수 있고(만화 무지 귀여움), 읽고나면 세상이 좀더 편안하고 쉬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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