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가게 찰리의 행복하고도 슬픈 날들
다니엘 키스 지음, 김인영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4년 3월
평점 :
절판


서평이 좋았고, 내가 산 책을 주위 사람들이 먼저 읽었는데 아주 괜찮다고들 하길래 기대를 많이 하고 읽기 시작했는데, 지나친 기대는 책의 재미를 반감시킨다.

작가의 시도는 아주 새롭고 특히 주인공이 서술하는 형식은 아주 효과적으로 주인공의 경험을 간접경험하게 해준다. 어눌하고 순진한 정신지체자의 말투에서 지적 천재의 말투, 다시 정신지체자로 돌아가는 과정이 내용 뿐 아니라 글을 서술하는 방식, 맞춤법의 변화 등으로 확연히 나타나 충격적이기까지 하다.

작가가 우리에게 전하려고 하는 것은 무엇일까? 작가가 후기에 언급한 모티브 <나의 교양은 나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에 벽을 만든다>가 이 책의 주요한 갈등요인인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평소에 한번씩은 해봤음직한 생각, <똑똑하면 행복할까?>에 대한 대답을 작가가 하려한 것도.

<천재는 되었지만 어느덧 찰리는 예전의 찰리가 아닙니다. 그의 순진무구한 마음까지 어디론가 사라져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고독을 느끼고, 의심이 많아지며, 점점 불행해져 갑니다. 세상에는 지식은 많지 않더라도 항상 유쾌하고 멋있게 사는 사람들이 얼마든지 있는 법입니다. 저역시도 자기의 영악함을 선전하는 사람보다는 그런 이들이 훨씬 매력있게 느껴집니다. 이 책은 인간에게 과연 많은 지식의 섭렵만이 인생에 있어 최고의 가치라 할 수 있는지 사람들로 하여금 새삼 생각해볼 기회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번역자의 말이다. 이 말에 동의할 수 없어 찜찜하다. 만일 "행복한 바보로 살래, 고독하고 괴로운 천재로 살래?"라는 질문을 받는다면 나는 뭐라 대답할까? 아무래도 난 나중 것을 선택할 것 같아서 말이다.(평소에 아인슈타인이 본 세상을 나도 꼭 한번 보고 싶다는 바램을 가지고 있었던 나는-_-)  다른 사람들도 대부분 '상황을 인식하지 못하는 순진무구함에서 오는 행복'을 선택할 것 같지는 않은데...

역자가 말한 뻔한 교훈을 알려주려 작가가 이 글을 쓰지는 않았을 거라는게 내 생각(아니면 바램)이다. 바보인 찰리도 안쓰럽고 가슴 아프게, 천재인 찰리의 고뇌와 의심도 안타깝고 가슴 아프게 그냥 느껴질 뿐이다. 천재 찰리와 바보 찰리는 둘이 아닌 한 사람이니까. 그리고 찰리가 변화하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주변 사람들의 허위, 가식, 기만, 진실을 나에게 대입해보며 인간에 대한 희망과 절망을 동시에 떠올려본다.

**원제 <앨저넌에게 꽃을>을 <빵가게 찰리의 행복하고도 슬픈날들>로 바꾼 것에 반대 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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