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하우스
스티븐 J. 굴드 지음, 이명희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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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제이 굴드, 당신 말이야, 나한테 꼭 찍혔어!

과학자가 이렇게 글을 재밌게 써도 되는거야! 물론, 대한민국에도 과학자이면서 글도 재밌게 쓰는 마모님이란 분이 계시긴 하지만. 난 그런 사람은 전세계에 그분 하나 뿐인 줄 알았다구.

그런데 이렇듯 과학적 지식과 새로운 주장을, 능청스러운 유머라는 양념을 넣고 반죽하여, 먹기좋고 보기좋은 빵을 만들어내는 솜씨라니! 게다가 그 엄청 오만한 자신감은 어찌 보면 뻔뻔스럽기까지 한데, 난 왜 그것까지 마음에 들어버린 거지!

하여간 난 지금부터 당신의 스토커가 되기로 했으니 각오하셔. 아니, 각오는 내가 해야 하나. 책값이 만만치 않을 텐데ㅡ..ㅡ;

 

저자에 대한 애정고백은 이 정도로 하고, 이 책에 대해 말하자면 이 책의 주제는 '진화란 어떤 특정한 방향을 향한 목적의식적인 사다리 오르기(진보)가 아니라 다양성의 증가이다. 인간은 우연의 산물이다' 라는 것이다.

사실 난 이 책을 읽기 전부터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주장이 별로 놀랍진 않았고, 그렇게 간단한 주장으로 책한권을 써내려간 능력이 존경스러웠을 뿐인데, 굴드가 이렇게까지 흥분하면서 글을 쓴 걸 보면 반대쪽의 주장이 상당히 있는 듯하다. 그래서 그는 논박을 위해 아주 여러가지 알아보기 쉬운 도표와 그래프와 그림들을 이용하는데(그리고 야구기록도. 진화를 얘기하는 책에 야구 얘기가 삼분지 일이다), 대단한 건 그런 도표 및 그래프마저도 이 아저씨가 사용하면 유머러스하게 보인다는 것이다. 특히 술주정뱅이 모델을 보면 폭소가 터진다.

왼쪽에는 벽이 있고 오른쪽에는 도랑이 있는 길을 가면 술주정뱅이는 결국은 도랑에 빠질 수 밖에 없다는 얘긴데(갈짓자로 비틀거리다가 말이다) 이것을 그는 생물이 왜 점점 더 복잡성을 증대시키는 방향으로만 진화해 왔는지에 대한 너무나도 적절한 비유로 사용한다. 왜 생물이 점점 더 복잡해지는가? 그것은 무슨 목적의식이 있거나 그것이 생존에 더 유리해서가 아니라 그쪽 방향만 뚫려 있기 때문이다. 가장 단순한 모습으로 시작했기 때문에 다양해지기 위해선 복잡해지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다양성이야말로 생명이 추구하는 바다. 

그것을 복잡성의 정점에 있는 인간이 오해하여 '진화는 인간이란 고등동물을 만들어내는 방향으로 진행된다'고 교만을 떠는 것이라는 것이다. 마치 진화의 정점에 인간이 있다는 듯.

굴드 아저씨는 코웃음을 치면서 '인류는 운 좋게 당첨된 것 뿐이지 생명의 방향성이나 진화 메커니즘의 필연적인 결과가 아니다' 라고 단언한다. 그 말은 즉, 옛날로 되돌아가서 새롭게 진화의 수순을 밟는다면 인간은 절대 생겨나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다. 잘난척하지 말란 얘기다.

그러면서 그는 '그래도 인간이 가장 고등동물이며 지구를 지배하고 있지 않는가?'란 애처로운 마지막 하소연조차 '우리의 행성은 35억년 전 화석으로 보존된 최초의 생물(물론 박테리아)이 출현한 이래 언제나 <박테리아>의 시대였다' 고 못을 박는다. 박테리아는 35억년이란 긴 기간동안 살아왔으며, 지구의 구석구석 없는 곳이 없고, 심지어는 그 전체량을 따져도 인간은 물론 지구상 어떤 생물보다 더 많다. 그리고 인간이 핵을 '가지고 놀다가' 절멸한 후에도 여전히 지구를 지배할 것이다.  

사실 목적의식적으로 인간이 생겨났건 그냥 우연히 생겨났건 이 지구상에 인간이 생겨난 건 엄연한 사실이다. 뭐 그걸 가지고 니가 옳으냐 내가 옳으냐 할 건 없지 않나 싶지만 굴드는 그 주장을 통해 다음과 같은 결론을 이끌어낸다.

풀하우스의 모델은 우리에게 변이와 다양성을 그 자체로서 존중하라고 가르쳐 준다.........우수성은 특정한 점이 아니라 넓게 퍼져 있는 차이들이다. .....우리는 변화로 가득 찬 각각의 자리에서 우수해지기 위해 분투해야 한다. 하지만 이 사회는 끊임없이, 그리고 무의식적으로 획일적인 평범함으로 이전의 빼어난 것들이 가졌던 풍요로움을 대체하려고 한다. 맥도날드가 지역 식당을 밀어내고, 대형 슈퍼마켓 체인점들이 구멍가게들을 내쫓고 있다. 이런 사회에서 변이와 다양성 전체를 자연의 현실로 이해하고 방어하는 것은 이러한 풍조에 경종을 울리고 진화하는 시스템에는 필수적인 원료인 다양성과 변이를 보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예전에 진화론자들이 '잘못' 이해했던 적자생존과 생존경쟁의 법칙을 사회에 도입하여 이런 무한경쟁사회가 된 것에 대해 굴드는 매우 유감인 듯 하다. 그는 자연과 생명을 이해하는 새로운 방식으로 인간세계도 다시 보자고 말한다. 나는 그가 생각해 보자고 하는 방향이 매우 마음에 들었다.

그래도 그가 자신의 신념을 주장하기 위해 약간의 '오버'를 하지 않았나 하는 의구심도 갖고 있는데, 그것을 확인하기 위해 그의 다른 저서들과, 그와 대립항에 있는 다른 과학자들(리처드 도킨스 같은)의 책도 읽어볼 예정이다. 

 

 

그리고 책을 덮으며 마지막에 한 생각 : 그래도 난 박테리아가 되고 싶진 않아........그러나 뭐.....박테리아라고 딱히 인간이 되고 싶은 건 아닐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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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g 2006-01-09 17: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그렇게 재미있어요?
덜덜

하이드 2006-01-09 17: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근데, 나는 이런책을 줄줄이 사 놓고 못읽고 있으니, 그게 문제에요. 아, 또 욕심나네요. -_-;;;;;;

깍두기 2006-01-09 18: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몽님, 재밌습니다. 제 스타일이어요^^
제가 교양과학서적을 좋아하는데, 가장 감명깊게 읽은 건 중3때 읽었던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이고요, 이 책도 아주 재미있군요. 코스모스는 교향곡, 이 책은......뭔가 좀더 유쾌하고 가볍고 신랄한 무엇이어요^^

하이드님, 님의 욕심을 누가 막으리.....사 놓은 책으로 대여점 하면 안될까?^^

하루(春) 2006-01-09 18: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은 아직 안 샀는데... 저도 사게 되면 아주 재미있게 읽을게요. 계속 기대는 하고 있어요. ^^

깍두기 2006-01-09 2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제 리뷰가 좀 부추김이 되었나요?^^

마늘빵 2006-01-09 2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안지릅니다.

마늘빵 2006-01-09 2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르면 안돼~

깍두기 2006-01-09 2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프락사스님^^
비명 같아요^^

바람돌이 2006-01-09 2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관함에 넣어두고 지를 때마다 손이 왔다 갔다.... 결정적 한방이군요. 지난번에 페미니즘의 도전도 결정타를 날리시더니....^^;;

깍두기 2006-01-10 0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후후훗, 성공^^
저자의 생각에 동의를 하건 반대를 하건
아마 그의 말빨에는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못할 것이어요^^

산사춘 2006-01-12 0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연말지름땜시 연초는 참고있는데 넘 하셔요. 흑

깍두기 2006-01-12 18: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호호, 질러요 질러~~~~

2006-06-27 10:47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