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곰 선장의 13과 1/2의 삶>
제목부터 심상치 않은 이 책. 작년 여름엔가 알라딘의 한참 달구었던 <꿈꾸는 책들의 도시>의 작가 발터 뫼어스의 작품이다.
사실 나는 꿈꾸는 책들의 도시가 '그렇게까지' 재밌지는 않았는데
그래서 이 책도 1권만 먼저 샀다. 혹시나 하여.
그런데 빨리 2,3권을 주문해야겠다.
이 책에 나오는 이야기는 한글자도 빠짐없이 완전 거짓말, 뻥, 허풍이다.
그러나 그걸로 이렇게 사람을 즐겁게 해 줄 수 있다는 것, 그것이 바로 이야기의 힘 아닐까?
이야기란 어차피 다 거짓말 아니던가?
그 거짓말을 실제 있을 수 있을 것처럼 그럴듯하게 치느냐
아님 이렇게 대놓고 뻔뻔스럽게 나불대느냐의 차이.
작가는 이 책에서 대놓고 하는 뻔뻔스럽고 즐거운 거짓말의 극한을 보여주는 듯하다.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범위 내의 모든 괴물과 상상의 동식물이 등장한다.
이 책에서 그나마 평범한 존재는 주인공 '푸른곰' 뿐이다.
나머지는.....난쟁이, 괴물, 도깨비, 거인, 다른 차원에서 넘어온 놈 등등 모두 다 실존하지 않는, 인간이 상상이라는 걸 하면서 살게 된 이후 인간의 머릿속에서 나온 거의 모든 괴물이 이곳에 종합선물세트로 모여 있다.
그러나 그냥 모아놓기만 하면 시시하지.
그걸 요리 비틀고, 저렇게 바꾸고, 다르게 배치하고 하여
유쾌하고도 우스운 이야기를 만들어 놓았다.
이 책에서 무엇보다 돋보이는 건 유머다. 그 유머는 폭소를 터트리게 하지는 않지만.....하여간 시종일관 웃음을 제공한다. 책을 읽는 내내 작가의 '능청스러움'이 느껴진다.
난쟁이 해적에게는 지루함이 가장 견디기 힘든 일이었다. 그들 중 한 명이 아주 조금이라도 지루함을 느끼면, 그가 너무나 힘들어했기 때문에 다른 사람까지 가슴아파했다. 그는 신음 소리를 내며 한숨을 쉬고, 하늘을 향해 쇠갈고리 손으로 위협하면서, 머리카락을 쥐어뜯고 옷까지 찢어 버렸다. 그런데 그런 일은 사태를 더욱 나쁘게 만들 뿐이었다. 이번에는옷이 찢어졌다고 울부짖었다. 그러면서 완전히 비극적인 감정에 사로잡혔다. 그러나 바다에선 어떤 배에든 쉬지 않고 지루함이 찾아오는 법. 난쟁이 해적들 사이에선 언제나 탄식과 신음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그들은 신음하지 않으면 허풍을 떨었다. 신음도 안 하고 허풍도 안 떨 때면 해적노래를 불렀다. 나는 이런 분위기에서 자랐다.
이런 장면이 그렇게까지 웃긴 건 아닌데....그런데 난 왜 이렇게 좋아하지? 능청스러운 쌩거짓말, 엄청 말도 안되는 장면을 천연덕스럽게 웃지 않고 말하는 능력, 난 이런 걸 좋아하다 못해 존경한다.
지금 방금 든 생각인데, 만일 '말괄량이 삐삐'가 실존인물이라면 커서 이런 소설을 썼을 것 같다. 그 기집애도 엄청 능청스러운 거짓말쟁이거든. 이집트에서는 사람들이 다 거꾸로 서서 다닌다는둥, 아르헨티나 학교에선 공부를 하려 하면 엄청 혼나고 애들은 하루종일 선생님이 까주는 캬라멜만 먹는다는 둥. 맞다, 맞다. 삐삐가 소설을 쓰면 아마 이런 소설을 썼을 거다.
그리고 또 하나의 매력, <꿈꾸는 책들의 도시>를 본 분들은 아시겠지만 발터 뫼어스는 자기 책에 직접 삽화를 그린다. 엄청 무섭고 못생기고 기괴한 괴물을. 엄청 무섭고 못생기고 기괴하게 그려놓는데, 엄청 귀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