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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
신경숙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5월
평점 :
오랫만에 신작가님의 소설을 읽었다.예전에 몇 권을 통해서 작가의 문체,작법,스타일등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는데,이번 도서 안에서도 문체나 그녀만이 갖고 있는 스타일은 크게 변하지는 않았다라는 느낌을 받았는데,그녀의 대학시절의 주변 이야기로 가득 차 있음을 발견했고,저 자신도 같은 세대이다 보니 시대적인 상황이나 감정등은 어느 정도 일치하고 동감을 얻어가는 듯해서 작품을 이해하는데 어렵지는 않았다.
나이 40이 넘고 중년의 불혹이라는 걸쭉하면서도 묵직한 시기에,누구든지 지나간 시절의 희미하고 빛이 바랜 흑백사진 속의 웃고 울고 있는 추억이 서려있을 것이다.좋아하고 고백하고 헤어지고 부딪히면서 영원히 시간이 멈추지 않을거 마냥 부풀었던 꿈과 희망이 몇 십년이 흐르고 삶에 쫓기면서 고단했던 과거를 들추어 마치 허물이 없는 친구에게 그런 시절이 있었다라고 고백이라도 하는냥 작가는 섬세하고 서정적이며 애잔한 감성으로 독자들에게 다가옴을 물씬 느끼게 한 이야기였다.
1970대말,80년대초 암울했던 시대적 상황과 민주화의 열망이 용솟음치던 그 시절,작가는 배움을 향해 고향을 떠나 낯선 도회지로 오게 되는데,이종 사촌언니댁에서 붙박이로 생활하지만,어머니를 여의고 삶에 대한 회의와 우울함으로 사촌언니집에선 오래 기거를 못하며 새로운 둥지(동숭동)를 틀면서 벗들과의 소소하면서도 울림이 있는 이야기를 전개해 나간다.
대학강의실에서 뵙게 된 윤교수,늘 호주머니에 두 손을 집어 넣고 고개를 숙이고 말이 없던 미루,그녀의 친구 윤서,소꿉놀이 친구 단이등이 스승이자 친구로서 흠모와 우정을 쌓아 나가는데,1980년대초 민주화운동의 한 가운데에 서울의 한복판은 늘 시위로 최루탄과 곤봉이 난무하며,미루는 언니 남자친구가 시위대의 주모자로 연행되어 행방이 묘연해지며 사회에 불만을 품고 분신자실을 하게 되면서 미루는 화염에 손에 데여 손등이 하얗게 변해가고,단짝 단이는 군대에 입대하고 사격장에서 오발사고로 의문사하게 되며,존경해 마지않던 윤교수는 교수들에게 강제해직사태에 분연히 사직을 하면서 열정적이고 희망에 가득찬 젊은이들의 앞날이 회색으로 물들어 가는 사회상을 되돌아보기도 했다.
작가는 시골의 어머니가 암투병으로 돌아가시며 홀로 남게 된 아버지와 생활을 통해 외롭고 쓸쓸함을 달래주는등 천륜의 정을 보여주기도 함을 진하게 느꼈으며,투병의 와중에서도 험난한 세파를 헤쳐나가라고 한푼 두푼 모아 적금한 통장을 그녀의 유산으로 물려주게 되는데,부모자식간의 끈끈한 사랑과 정을 되새겨 보곤 했으며,그녀는 조그만 옥탑방을 삶의 둥지를 틀면서 미루,윤서,단이등과의 서울 생활을 이어 나간다.
윤이가 좋아하고 가까이 지냈던 미루,단이는 불행하게도 자살과 의문사로 생을 마감한 슬픈 사연을 들려 주면서도 어두웠던 시절이 있었기에 앞으로는 밝은 시절만 오기를 갈망하는 작가의 의도도 엿보였다.80년대의 전국이 민주화를 갈망하던 시절이라 학업보다는 거리로 뛰쳐나와 그들의 요구를 관철하려 했고,작가는 주변인물로서 이리 쏠리고 저리 쏠리면서 사회의 단면을 읽어냈던 것이고,한편으로는 가까웠던 친구들과의 우정담이 잔잔하면서도 섬세하고,상처와 상흔은 남아 있지만 흘러가 버린 시간을 주워 담을 수 없기에 또 다시 오는 시간만이라도 밝은 시간이 되어 주기를 바라고 있는거 같다.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모든 만물이 멸하여 가고,인생의 비탈길을 향해 가는 시간이지만 한번쯤 과거의 희미한 기억을 되살려 보는 것은 어떠한 의미에서든 자신이 살아온 괘적이며,성장의 요소이자 기억이 저편에 있는게 아니라 현실과 함께 있음을 깨닫는 시간이 되기도 했다.작가가 말한것처럼 유수같은 시간을 커다란 물병 속에 담아서 쓰고 싶은 만큼만 조금씩 따라 부어 쓰면 얼마나 좋겠냐마는 현실은 그렇지 않으니 어쩌란 말인가?
물질적으로나 환경적으로 이전보다 훨씬 풍요로워진 온실속에서 성장하는 요즘의 청소년들이 그리 멀지 않은 과거의 선배들이 겪었던 아픔과 회한,상처,상흔,추억들을 살펴보고 잔잔한 울림이 그들에게 갔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