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미래 - 라다크로부터 배운다
헬레나 노르베리-호지 지음 / 녹색평론사 / 199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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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벳고원에 자리잡은 라다크. 3,000∼4,000m 고원지대에 인간 저 근원에 자리잡은 공동체문화라는 체온이 느껴지는 생활이 이어지고 있다. 자연과 유리되지 않으면서, 인간과 유리되지 않으면서, 비록 서구적 관점에선 풍요롭지는 않지만 아무 것도 부럽지 않게 정신적, 심리적 안정을 누리면서 생활하는 라다크 사람들이 있다.

도대체 행복과 풍요의 기준은 무엇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서구의 관점으로 재단하는 것은 주관적일 수 있으며, 이를 과단할 바는 아니다.

<오래된 미래 - 라다크로부터 배운다>의 책 저자 헬레나 노르베리-호지는 라다크를 16년 동안 깊이 지켜보고서 이 책을 썼다. 단순한 관찰자라기보다 라다크 인의 숨결을 서구의 언어를 빌려 씌되, 구체적인 희망 가능성까지 비춰 줄려 노력하고 있다.

책을 읽어 나가면 나갈수록 그들의 정서에 놀랍기도 하고, 어떻게 그런 심성들을 누리며 살아갈 수 있는지 존경스럽기도 하다. 다른 한편으로는 그런 삶이 나에게 주어진다면, 또는 그런 삶을 찾아갈 수 있겠느냐는 질문을 받게 된다면 나는 어떤 대답을 할지 자신이 없어진다.

이미 문명사회의 이기(利器)의 단맛에 흠뻑 젖고, 그 그물의 포로가 되어 있는지라, 그 그물 한 켠 한 켠이 떨어져 나간다면 불안감과 두려움에 사로잡힐 것이다. 막상 그물을 끊는 꿈을 항상 꾸지만 실제 어느 순간에도 결단하기는 상당히 어렵다.

그 사슬이 끊어지길 두려워하면서, 자신의 발을 여러 군데 뻗는 가운데 조금씩 편입되어가고, 이상과 현실의 차이는 더욱 더 넓어지고 그럴수록 꿈은 현실에서 더욱 유리되면서 커지기도 한다.

이런 책을 읽으면 참 기쁘면서도 괴롭다. 그들이 불어 넣어주는 생기 있는 삶에 기쁘고, 내가 뻗고 있는 여러 촉수들을 거둘 자신이 없기에 괴롭다. 라다크 인의 숨결이 개발화 속에서 살아남길 기원하면서, 이 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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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야 나무야 - 국토와 역사의 뒤안에서 띄우는 엽서
신영복 지음 / 돌베개 / 199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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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 씹으면 또 한번 씹고 싶고
씹으면 씹을수록
또 다른 단 물이 배어나는
롯데껌과는 질적으로 다른

한 바가지 우러내면
또 한 바가지 뜨고 싶고
떠내도 떠내도 조금씩 어느새 고이고마는
펑펑 쏟아지는 수돗물과는 비교할 수 없는

신영복님의 글이
담겨져 있습니다.

보이면 보고, 느끼면 느끼고
본 만큼 느낀 만큼
더도 말고 욕심부리지 말고
가져가지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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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직한 관객 학고재 산문선 2
유홍준 / 학고재 / 199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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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글을 읽고 '시원하다'라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이는 그 글이 어떤 고리를 통하든 사물의 근본적 본질에 다가들고 있다는 느낌이 들 때이다. 즉 하나의 사물이나 사건을 통해 사물간의 관계 및 근원을 단편 단편 보여줄 때이다. 반면 이를 무리하게 보이려 하다 보면 거칠게 느껴짐은 물론 설익은 독단까지 드러나게 된다.

유홍준 교수의 글이 맛깔스러운 것은 해설의 무리한 확장을 자제하면서 그 속에서 얘기할 수 있는 것을 차분히 제시한다는 것이다. 우리에게 다소 낯설을 수 있는 답사, 예술비평, 문화재 등의 소재를 통해 사물의 본질을 읽히게 해준 것도 한 요인이 될 것이다. 유홍준 교수의 글은 우선 독자의 손 위에 '요리'할 사물을 올려 놓아준다. 그리고 요모조모 뜯어보는 과정에서 사고의 확장을 도와주는 묘미를 부릴 줄 안다.

<정직한 관객>은 네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다. 첫번째는 신문이나 잡지에 실린 시평들이고, 두번째는 각 화가, 판화가 등에 대한 간략한 평이다. 세번째는 미술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한 소논문 비슷한 글들이 선택되어 있다. 네번째는 한국미술사 고전들에 대한 서평이다.

개인적으로는 첫번째 단원을 가장 재미있게 보았다. '유홍준의 글쓰기'의 전형이 나타나는 부분이자, 미술 주변 얘기를 통해 '사회'를 읽게 해주는 부분이다. 사람의 가슴을 콕 찌르는 맛이 곳곳에 숨어있는 글들이다.

두번째 단원은 내가 아는 미술가나 그림에 대한 평이 나올 때는 글이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으나, 그렇지 않은 경우는 조금 지루했다. 단지 한 장의 사진과 세 페이지 정도의 해제를 가지고는 그 미술가를 알기 힘들었다.

세번째, 네번째는 다소 숨이 긴 글들이다. 몇몇 미술 주제들을 가지고 알기 쉽게 풀어쓴 글들이다. 다소 따분할 수도 있지만 화랑문제, 미술비평 문제를 바라보는 유홍준 교수의 시각이 새로운 지식 습득 차원을 넘어 그런 분야를 바라보는 시각을 짧게나마 전달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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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꾸로 읽는 그리스로마신화 거꾸로 읽는 책 22
유시주 지음 / 푸른나무 / 199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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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때 이 책의 저자처럼 고전읽기부에서 활동할 때 <그리스 로마 신화>는 밤 10시까지 남아서 열심히 외워야 하는, 괴로운 책 중의 하나였다. 그 뒤 다시 꼼꼼히 읽어야 되겠다는 생각은 했으나, 그것은 마음뿐이었다. 그러다가 요즘 이런 '요약본'을 얌체같이 읽게 되었다.

그러나 이 책은 단순한 요약본은 아니다. '신화 속에서 인간 찾기'라는 부제에서 보여지듯 그리스로마신화에 나타나는 군상들을 우리 인간사에 비추어서 재구성하였다. 사실 그리스로마신화 자체가 현실의 반영으로 재구성되었기에, 이 속에는 인간의 여러 군상이 밀집되어 나타나 있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이런 것들이 서양문화의 한 정서를 형성했으리라고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서양철학, 문학, 음악, 미술 등등을 보다보면, 아니 일상적인 어느 인용 문구를 보다보면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막히는 부분이 종종 나타나 나를 괴롭히기도 했다. 나와 같은 경험이 있다거나, 또는 그리스 로마 신화를 체계적으로 읽고 싶은 마음은 없으나 대충이라도 훑고 싶은 사람이라면 이 책을 읽어 보면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은 들지 않을 것이다.

한편, 단점도 있다. 그것은 유시주씨의 편협한 사고에서 기인하고 있다. 유시주씨는 거의 대부분의 단편 글에서 그리스 신화와 '진보'를 연계시키는 작업을 하고 있다. 즉 '진보적 시각'에서 그리스 신화를 재해석해내려는 강박관념이 느껴지는 부분도 있다. 이러한 과정에서 다소 몇 편의 글에서는 '무리함'이 느껴져 개운치 않는 부분도 있다. 일부분에서는 고개가 끄덕거리기도 하지만….

대체적으로 유시주씨가 알기 쉽게 그리스 로마 신화를 전달하려 했고, 최소한 나에게는 그 점이 먹혀 들었다. 이것만으로도 큰 만족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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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기와 우연의 역사 1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안인희 옮김 / 자작나무 / 199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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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독일의 문학가 슈테판 츠바이크가 저술했다. 문학가가 쓴 책이라 여느 역사책과는 달리 역사의 현장의 숨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츠바이크는 인류 역사를 바꾼 역사적 현장을 찾아 시대적 정황과 그 위인들의 내면세계까지 섬세한 필치로 그려낸다.

역사는 주관의 오류만 극소화할 수 있다면 역사를 문학가가 쓰면 더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일견 든다. 우리 인간사가 그렇듯 어디 한 사건을 얘기하는 데 경찰서 조서 쓰듯 얘기될 수 있던가. 인간의 마음 속을 자로 잰듯 표현해내기가 어디 쉽던가.

이 책은 흔히 상상하듯 '그 때 그렇게 되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류의 책은 아니다. 그리고 역사적 순간을 과장되게 미화시켜 놓지도 않았다. 그런데 오히려 미화시켜 놓는 것보다 얽히고 얽힌 정황들을 담담히 들려주는 게 감동적일 수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위인들의 이야기가 구름 속을 걷듯 얘기하면 오히려 우리와는 거리가 먼 달나라 얘기가 되기 십상이니까.

변증법을 얘기할 때 우연과 필연은 중요한 화두였다. 변증법에서는 우연은 상대적이고 필연은 절대적이며, 필연은 우연을 통해서 관철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어디 모든 사건을 그렇게 단정지을 수 있는가. 어찌 건달 발보아가 태평양을 발견하게 된 게 필연이라 할 수 있겠는가. 무하마드가 동로마제국을 멸망시킬 수밖에 없었다고 단언할 수 있겠는가.

인간은 여러 정황을 최소한 예측 가능하게 할 수 있기 위해서 노력할 뿐, 필연을 찾아가지는 않을 것이다. 어쩌다 찾아든 우연성을 자신의 능력에 맞게 해석하고 그에 맞게 조절해내려 노력할 뿐이다.

그 과정에서 좀 더 현명한 사람은 더 많은 가능성을 열어놓은 채 그 가능성을 예측하고 준비하고 가꾸어나갈 수 있을 뿐이다. 우연을 배제하거나 우연을 이용할 줄 아는 능력이 좀 더 뛰어날 뿐이다. 그리고 인간은 이를 통해 꾸역꾸역 역사를 만들어 갈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괴테가 말한 '역사는 신의 작업장'이란 명제는 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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