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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 ㅣ 살림지식총서 207
박명덕 지음 / 살림 / 2005년 10월
평점 :
충남 아산군 외암리 민속마을. 냇가가 흐르고 그 건너편에 약 80채의 한옥과 초가로 이루어진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다른 민속마을과 다른 점은 관광을 위해 일부러 조성한 마을이 아니라 500년 전부터 예안 이씨 집성마을로 형성된 부락을 그대로 보존해오고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그래서 가옥의 배치나 돌담길, 가구 내 살림살이 이 모든 것이 인위적인 것이 아니라 실제 우리 선조의 삶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는 것이 정겹다. 복원한 가옥을 둘러보거나 옛날 충청도 양반가옥을 담 너머로 구경하다 보면 한옥의 멋과 과학,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이제 한옥이 ‘삶’에서 한켠 물러나 ‘보존’의 대열에 들어서버린 것이 무척이나 아쉽게 느껴진다.
무엇보다 한옥은 자연과 어울리게 지었다. 뒤로는 산을 등지고 앞으로는 개울물이 흐르는 곳에 자연을 닮은 형태로 지었다. 집을 짓기 위해 터를 그리 파헤치지도 않는다. 약간 땅을 다진 다음 그 위에 바로 올린다. 그렇기에 마루나 방이 높이 올라가는데, 대신 자연을 해치지 않게 된다. 또 차경(借景)의 정신은 얼마나 자연친화적인가. 선조들은 자연을 집 안으로 끌어 들여 요란하게 조경을 하기 보다는 외부 자연의 수려한 풍경을 정원의 일부로 생각했다. 마루에 앉아 보면 곧 산야가 정원이었던 셈이다. 자연친화적인 요소는 그 외에도 곳곳에 배어 있다. 창이나 문에 바른 한지만 해도 그렇다. 한지는 함습기능이 있어 여름철 습기를 차단할 뿐 아니라 문을 닫아도 집 밖의 풀벌레소리, 빗소리를 들을 수 있는 자연친화적인 구조를 갖고 있기도 하다.
한옥에는 우리 선조들의 멋과 과학 역시 서려 있다. 한옥 하면 우선 온돌과 대청이 생각난다. 온돌은 겨울용 시설이고 대청은 여름용 공간이다. 온돌은 적은 연료로 효과적으로 방을 따뜻하게 하고 있어 서양에도 그 가치가 알려지고 있으며, 대청은 앞뒤가 일직선으로 트여 있어 바람이 이 통로를 따라 빠른 속도로 지나갈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어 여름에 시원하다. 좀 더 세밀히 관찰해보면 더 재미있다. 양옥집과는 달리 한옥은 안방과 대청의 높이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안방은 주로 앉아서 생활하는데다 따뜻한 난방을 하려다보니 천장이 낮고, 대청은 서서 다니는 공간인데다 시원한 느낌을 주려다보니 천장이 높아진 것이다. 참으로 과학적인 구조인 셈이다.
이런 대청마루에 누워 바람을 은은하게 맞으면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여유로움과 시원함이 느껴진다. 누워서 서까래와 대청 옆 벽면을 통해 그대로 드러나는 한옥 구조의 아름다움을 감상하는 재미도 빼놓을 수 없다.
처마 역시 보면 볼수록 즐거움을 준다. 처마를 앞에서 보면 양쪽 끝이 조금 올라갔을 뿐만 아니라 앞쪽으로도 좀 더 튀어나오면서 부드러운 곡선미를 그리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처마 끝의 높이가 올라간 것은 ‘귀솟음’, 끝이 앞으로 튀어나온 것은 ‘안쏠림’이라고 하는데, 이는 처마를 일직선으로 할 경우 양쪽이 쳐져 보이는 착시현상을 막기 위한 의도도 있다고 하니 참으로 깊은 뜻이 담겨 있는 셈이다. 한옥 역시 알면 알수록 즐거움이 눈으로 익혀지는 법이다.
한옥에는 또 ‘비어있음’의 철학이 많이 반영되어 있다. 공간의 경우 중국은 화려하고 일본은 인공적으로 꾸미는데 비해, 우리나라는 마당을 비어있는 공간으로 생각하여 나무 심는 것을 피했다. 마당에서 다양한 일과 놀이를 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마루 역시 여러 기능을 할 수 있는 다목적공간으로 만들어졌다. 비어있음이 오히려 더 많은 것을 채울 수 있는 법이다.
또 한옥은 ‘열린 구조’를 가지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서양의 집들은 옥외공간과 옥내공간이 뚜렷하게 구분되고 내부공간도 벽과 문으로 철저하게 폐쇄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는 반면, 한옥은 열려 있다. 각 마당은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있으며, 문은 떼어내거나 완전히 들어 올릴 수 있도록 되어 있기도 하다. 서양 집 현관에 들어서면 집 구조가 한 눈에 들어오지 않으나, 한옥의 대문에 들어서면 가옥 구조가 한 눈에 들어온다. 이러한 열린 구조는 가족끼리 만나 어울리는 문화와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안방 창호문에 달린 조그만 유리 역시 안과 밖이 소통하는 재미있는 소도구이다.
『한옥』을 읽다 보면 고즈넉한 고가에서 하룻밤 묵고 싶어진다. 그런 고가의 툇마루에 앉아 차 한 잔 마시면 시간의 흐름이 느려지는 느낌이 들 것이며, 밤에는 창호문을 열어놓고 밤하늘 별을 감상할 수도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