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혹 아이가 나를 보고는 헤헤 웃으며 "어이~ 서진석! 진석아!" 하고 부른다. 특히 장난기 많은 작은녀석이 그렇다. 작은녀석은 장난기를 빌지만, 큰애는 제법 머리가 컸다고 농담을 한다. 친구의 뜻이 '친한 사이'라고 하면 나보고 "어이~ 친구! 우리 친구지! 그럼 진석아 하고 불러도 되겠네." 하고는 마치 한방 먹인 듯 즐거워 한다.

그 장난과 농담을 나 또한 즐기는 측면도 없지 않아 있지만, 그 장난과 농담 저편에는 아빠의 권위에 대한 도전이 있음을 안다.

그것만이 아니다. 하루는 출근했는데 목 뒤에 10cm 가량 되는 손톱자국을 보고는 동료들이 피도 상당히 났겠다, 무슨 상처냐고 물은 적이 있었다. 그 전날 작은놈이 내 목 뒤를 손톱으로 할퀴었길래 상당히 따끔하다 했는데, 그 상처가 그렇게 눈이 띌 정도였는지는 몰랐다.

그 상처 역시 도전이 남긴 흔적임을 안다. 다만, 상처라고 해서 똑같은 상처가 아니다. 상처도 두 가지 상처가 있다.

큰애는 몸싸움을 하거나 무슨 겨루기를 하면 진짜 자신이 나보다 강한 줄 아는 경향이 있다. 내 이럴적 기억으로 비추어보면 대나무를 가지고 형과 싸울 때 내가 무조건 휘두르면 형이 속수무책으로 피하곤 했다. 그 때 난 속으로 대나무싸움만큼은 내가 형보다 잘 하는 줄 알았다. 내가 컸을 때 문득 그 기억이 떠오르면 누가 옆에 없는데도 괜히 부끄러웠던 기억이 있다.

큰애가 지금 그 시기를 통과하는 거다. 내가 무슨 싸움에서 져주거나 하면 우쭐해하는 것이다. 그러다가 너무 아빠를 무시하는 것은 아닌가 싶으면 본때를 보여줘야겠다 싶을 때가 있다. 두 손과 발로 큰애를 꼼짝 못하게 한 후 항복을 받으려고 하면 갑자기 큰애가 발악을 한다. 약한 자는 사용 가능한 온갖 무기를 동원하는 법이다. 손톱과 이빨이 주 동원수단이다. 그런 예기치 못한 반칙공격에 몇 번 당하다 보면 팔과 발, 목 등에 상처를 입기 마련이다.

그 상처에는 왠지 지나친 경쟁이 낳은 상처로만 보이지 않는다. 아빠의 권위에 눌려 있다가도 그래도 자신이 아빠를 누르고 있는 부분이 있다는 생각이 은연중 있었는데, 그 부분마저 무참히 짓밟힐 때 느끼는 낭패감에서 나온 도전의 상처라는 생각이 든다.

또 하나의 상처는 자신이 스트레스를 해소할 때 간혹 엉뚱하게 생기곤 한다. 다른 데서 받은 격한 감정을 내가 다독거리고자 다가가 안으려 하면 갑자기 밥그릇 뺏긴 강아지마냥 나를 때리거나 심할 때는 할퀴는 거다. 특히 작은놈이 그렇다. 엉뚱한 행동에 당황스럽기도 하고 버릇 없음에 걱정되기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래 너희도 풍선마냥 어디서 누르면 다른 곳으로 분출하고 싶을 텐데 발길질하고 소리지를 곳도 없으니 풀어라, 풀어라, 하는 마음도 든다.

하여간 이런 상처든 저런 상처든, 상처가 생길 때마다 항상 갈등한다. 우선 가장 간단하게는 야단칠 것인가, 수용할 것인가에서 순간적인 갈등을 하고... 또 한편으로는 아이들의 도전에 대한 항전을 허용할 것인가, 때로는 완고하게 대할 것인가 하는 점에 대해서 갈등한다.

아이들을 대하는 것은 항상 어렵다. 마치 긴장과 갈등의 줄타기를 하는 것만 같다. 앞으로도 때로는 아이들 감정에 흥분하거나 혹은 내 감정을 억누르지 못해 줄에서 떨어지기도 하겠지만, 그래도 다시 올라 불안한 줄타기, 정답 없는 줄타기를 계속 해나가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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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규문 2009-11-22 17: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아이 가진 부모들의 심정은 매 한 가지... 사춘기를 통과하는 딸애와 집사람의 긴장과 갈등관계를 보고 있노라면... 100% 공감하는 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