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만화 형식을 빌린 학습서가 유행이다. <그리스로마신화>를 통해 한번 광풍이 불더니 요즘에는 <마법천자문>이 또 휩쓸고 있다. 대형서점에 가도 학습만화코너 앞에는 책 읽을 자리 잡기가 어려울 정도다. 우리집도 <그리스로마신화>의 광풍은 이런 저런 핑계 대고 피해갔지만, <마법천자문>은 결국 한 권이긴 하지만 아이들에게 안겨주지 않을 수 없었다.

학습만화 효과는 일견 대단하게 보인다. 우리집 둘째 나이가 여섯살인데도, 큰애랑 제법 마법천자문놀이를 하며 어울려 논다. 빛 광, 물 수, 불 화, 막을 방, 깨뜨릴 파, 얼음 빙, 바람 풍 등을 구사하며 큰애에게 제법 몇 합 정도 대응하는 것이다.

그래도 물론 작은애는 큰애의 대적상대는 되지 못한다. 큰애는 작은애가 구사하지 못하는 한자인 "죽을 사" 등을 써서 간단하게 제압하거나, 때로는 "착할 선" 등을 써서 상대방이 착해져야 한다고 그래서 공격하지 말아야 한다고 동생을 어리둥절하게 몰고가기도 한다.

어쩌면 작은애의 최대의 무기는 놀이의 방식을 무시하고 자기 나름의 방식대로 밀고나가는 것일 수 있다. 한번은 공세에 밀린 작은애가 이렇게 대적한다.

   "해피(happy) 해!"

옆에서 포복절도하는 우리들을 무시한채 작은애의 두번째 파상공격이 이어졌다.

   "앵그리(angry) 앵!"

이 두 방에 큰애는 간단하게 제압되고 말았다. 웃느라 방어나 공격을 못한 것이다.

작은애가 이러한 만화나 놀이를 통해 한자 몇 자 정도는 쉽게 익히게 된 것이 물론 처음에는 신기했다. 그러나 그뿐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이 개운하지 않은 게 사실이다.

학습만화라는 게 이득보다는 폐해가 훨씬 많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리스로마신화>만 해도 그렇다. 당장은 신화에 대한 흥미를 쉽게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신화의 깊이를 느끼는데 크게 제약요인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신화를 흥미위주로 접근하는 것도 그렇고, 언제까지 만화에 의존하여 신화의 세계로 걸어갈 수 있을지 의문이고, 결국에는 책을 읽는 습관이나 재미를 방해할 듯 싶다. 또 책에는 해석의 여백이 있지만 만화에는 그것이 적다는 점도 있을 것이다. 실제 근육질의 남성 신과 요염한 여성 신을 그림으로 나타내고 있는데 이는 얼마나 아이들에게 잘못된 이데올로기를 전달할 것인가.

<마법천자문>도 그렇다. 물론 당장 한 자 몇 자 익히는데는 좋을지 모르겠지만,  언제까지 만화에만 의존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또 한자를 떠올릴 때 전투적인 의미로 떠올려야만 한다는 것도 그리 유쾌하지는 않는다.

이미 이러한 것이 하나의 흐름이 되어 있고 아이들이 즐겁게 받아들이고 있어 끊이없이 주변에서 "해피 해"로 받아들일 것을 주문하지만, 내부에서는 그러한 흐름에 계속 "앵그리 앵"해야만 할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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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04-09-13 09: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도 만화그리스로마신화를 읽으면서 신이름을 줄줄 꿰면 흐뭇하지요?
저는 만화그리스로마신화는 정말 추천하고 싶은데요.
사실 그리스로마신화는 어려울 수도 있는 내용인데 아이들이 부담없이 접하는 사실 만으도.... 성공.
넘 만화만 읽은 것에 대해 걱정하지 마세요.
대신 엄마가 좋은 책 사놓고, 책상위에 펼쳐놓거나, 엄마가 오버해서 재미있게 읽으면 아이도 흥미를 갖게 된답니다. 호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