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 - 나의 동양고전 독법
신영복 지음 / 돌베개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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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복씨의 글을 기다려온 독자들이 많을 것이다. 1998년 『더불어 숲』을 내놓은 뒤 한동안 자취를 감추더니 최근 『강의』란 책을 통해 오랜만에 글향기를 다시 퍼뜨렸다. 부제가 '나의 동양고전 독법'이듯 중국의 고전을 소재로 삼았다. 항상 시대의 담론을 명징하게 펼쳐내던 신영복씨가 고전을 화두로 삼았다고 하니 다소 의아스러웠을 수 있다. 그러나 신영복씨가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책으로 항상 『자본론』과 더불어 『논어』를 들어왔다거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서도 고전이 많이 인용되었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쉽게 수긍이 갈 것이다.

『강의』는 저자가 성공회대에서 한 강의 내용을 정리하여 묶어낸 책이다. 기원전 7세기부터 기원전 2세기에 이르는 춘추전국시대의 사상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시경』, 『주역』, 『논어』, 『맹자』, 『노자』, 『장자』, 『묵자』, 『순자』, 『한비자』, 『대학』 등 중국사상의 골간을 이루는 사상을 망라하고 있다.

저자가 이 시대를 주목한 것은 그 시대가 사회변혁기이기 때문이다. 사회 변혁기에는 사회의 본질에 대한 근본적인 담론들이 쏟아져 나온다. 이 시기에 중국 사상의 핵심이 되는 공자의 사상이 탄생했다. 중국은 사상사적인 측면에서 공자 이전 2,500년과 공자 이후 2,500년으로 나눈다고 할 정도다. 이 시기 이후 중국의 사상은 지배담론인 유가사상과 비판담론인 노장사상이 두 개의 축을 이루며 발전해 왔다. 전자가 나아가는 것(進)이라면 후자는 되돌아가는 것(歸)이다.

저자는 이들 사상을 접하기 이전에 동양사상의 접근방법에 대해 먼저 논하고 있다. 서양 교과서는 'I am a boy'로 시작하지만 동양은 '검을 현, 누를 황'으로 시작한다. 서양은 개인의 존재 가치를 고양시키는 것이 목적이지만, 동양은 천지와 우주의 원리를 천명하고 궁극적으로 인간관계를 인간적으로 만드는 것이 목적이다. 저자는 관계론의 관점에서 동양사상을 접할 것을 주문하는 것이다.

저자는 또 하나의 주의를 주고 있다. 과거의 담론을 현재의 가치 의식으로 재단하는 것만큼 폭력적인 것이 없다는 것이다. '시제 일치'를 통해서 사상을 평가하는 것은 냉정한 자세가 필요할 것이다. 이에 의거해 저자는 공자를 제3 계급의 사상 또는 중도사상으로 규정하거나, 맹자의 논리를 민(民)에 의한 혁명의 논리로 바라보고 있다. 분서갱유 역시 '시제 일치'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시각이 새롭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관점은 다른 저자를 통해서도 접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넘어서 『강의』에는 신영복씨만의 접근방법과 독특한 혜안이 묻어 있다.

그것 중 하나는 시각의 전환이다. 최근까지 우리나라는 중국 사상이 잘못 전달되어 왔다는 것이 저자의 시각이다. 지배계층인 양반의 시각에 의해서 선별되어 소개되어 왔다는 것이다. 하나의 예로 논어에 나오는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을 보자. 우리는 그동안 옛것을 강조하는 것으로 이 글귀를 해석해 왔지만, 저자는 고(古)를 딛고 신(新)으로 나아가는 뜻으로 읽는 게 맞다고 얘기한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는 그동안 수신에서 평천하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을 순차적인 과정으로 이해해왔는데, 이는 『대학』을 봉건적 관점에서 잘못 해석한 것이라고 한다. 개인, 가(家), 국(國), 천하가 서로 통일되어 있고, 개인의 수양과 해탈도 전체 체계를 구성하는 한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는 얘기를 하는 것이라고 한다. 이 얼마나 큰 차이인가.

또 하나는 신영복씨 고유의 문체와 사물을 파고드는 혜안이다. 하나의 예를 보자. 저자는 맹모보다는 한석봉의 어머니가 더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자식을 지도하는 방법면에서, 맹모는 환경을 제공해주지만 한석봉의 어머니는 몸소 모범을 보여주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고전에 대해 '시제 일치'의 관점에서 냉철하게 사고하되, 항상 온고창신(溫故創新)의 긴장감을 놓지 않으려는 신영복씨의 글을 오랜만에 만날 수 있었다는 것은 큰 기쁨이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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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아낭자 2005-05-31 16: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6월 3일부터 8일까지 코엑스에서 서울국제도서전이 열립니다.
이 기간 중에 신영복 선생님의 사인회가 있을 예정입니다.
많은 관심과 참여, 그리고 홍보를 바랍니다.

사인회 일시: 6월 5일(일) 1시~3시(2시간)
장소: 코엑스 이벤트홀 태평양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