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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기와 우연의 역사 1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안인희 옮김 / 자작나무 / 1996년 5월
평점 :
품절
이 책은 독일의 문학가 슈테판 츠바이크가 저술했다. 문학가가 쓴 책이라 여느 역사책과는 달리 역사의 현장의 숨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츠바이크는 인류 역사를 바꾼 역사적 현장을 찾아 시대적 정황과 그 위인들의 내면세계까지 섬세한 필치로 그려낸다.
역사는 주관의 오류만 극소화할 수 있다면 역사를 문학가가 쓰면 더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일견 든다. 우리 인간사가 그렇듯 어디 한 사건을 얘기하는 데 경찰서 조서 쓰듯 얘기될 수 있던가. 인간의 마음 속을 자로 잰듯 표현해내기가 어디 쉽던가.
이 책은 흔히 상상하듯 '그 때 그렇게 되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류의 책은 아니다. 그리고 역사적 순간을 과장되게 미화시켜 놓지도 않았다. 그런데 오히려 미화시켜 놓는 것보다 얽히고 얽힌 정황들을 담담히 들려주는 게 감동적일 수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위인들의 이야기가 구름 속을 걷듯 얘기하면 오히려 우리와는 거리가 먼 달나라 얘기가 되기 십상이니까.
변증법을 얘기할 때 우연과 필연은 중요한 화두였다. 변증법에서는 우연은 상대적이고 필연은 절대적이며, 필연은 우연을 통해서 관철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어디 모든 사건을 그렇게 단정지을 수 있는가. 어찌 건달 발보아가 태평양을 발견하게 된 게 필연이라 할 수 있겠는가. 무하마드가 동로마제국을 멸망시킬 수밖에 없었다고 단언할 수 있겠는가.
인간은 여러 정황을 최소한 예측 가능하게 할 수 있기 위해서 노력할 뿐, 필연을 찾아가지는 않을 것이다. 어쩌다 찾아든 우연성을 자신의 능력에 맞게 해석하고 그에 맞게 조절해내려 노력할 뿐이다.
그 과정에서 좀 더 현명한 사람은 더 많은 가능성을 열어놓은 채 그 가능성을 예측하고 준비하고 가꾸어나갈 수 있을 뿐이다. 우연을 배제하거나 우연을 이용할 줄 아는 능력이 좀 더 뛰어날 뿐이다. 그리고 인간은 이를 통해 꾸역꾸역 역사를 만들어 갈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괴테가 말한 '역사는 신의 작업장'이란 명제는 틀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