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이다 - 양장본
니콜라스네그로폰테 지음 / 커뮤니케이션북스 / 199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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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1996년에 출판되어서 다소 지난 책(80년대에는 10년전 책도 감지덕지하게 봤던 기억이 있는데, 워낙 정보통신 분야가 급변하다보니 2~3년 지난 책도 오래되었다는 느낌이 든다)이라 선뜻 손에 쥐어지지 않았지만, 심호흡 한번 하고 움켜쥐었다.

<디지털이다>는 미국 MIT 미디어랩 연구소장 니콜라스 네그로폰테가 AOL에 연재한 칼럼을 모아 편집한 책으로 디지털 혁명이 어떤 양상으로 다가오고 있는지에 대해 방대한 분야에 걸쳐 풍푸한 사례들을 펼쳐보이고 있다.

'기술 분야'와 '사회 분야'를 한데 모아 종합적으로 설명하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작업일 수 있으나 니콜라스 네그로폰테는 드물게 양자를 결합시켜 논지를 전개시키고 있다. 다만 나의 경우는 '기술'을 언급한 몇몇 부분에서 허우적거려야만 했으며, 다양한 사실들을 열거해 나갈 때 간혹 길을 잃고 관심을 잃기도 했다.

사실 나는 토플러의 3연작인 <미래의 충격>, <제3의 물결>, <권력이동>을 읽어 보았지만 일단 여러 사실들을 풀어헤쳐놓아 가면서 이들 사실들을 쫓아가다 보면 어느듯 염주 꿰듯 꿰어나가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 방식에는 익숙하지 않는 편이다. <디지털이다>도 이와 비슷한 서술 방식이어서 읽는 데 대단한 의지를 필요로 했다.

그러나 이 책이 서술하고 있는 분야가 폭넓고 또 짧게 짧게 단락을 지어놓고 있어 한 번쯤 건드려 볼 만하다고는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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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인 이야기 7 - 악명높은 황제들 로마인 이야기 시리즈 7
시오노 나나미 지음, 김석희 옮김 / 한길사 / 199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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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오노 나나미의 역사 서술 방법은 독특하다. <로마인 이야기> 7권 서두는 티베리우스가 말년에 칩거하며 통치하였던 카프리섬을 상세하게 묘사하는 것으로 시작하고 있다. 이러한 서술방식은 종종 자신의 상상과 추론을 단정적으로 묘사하곤 하기도 하지만, 반면 당시의 세계로 독자를 쉽게 이끄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이러한 이유로 1년마다 나오는 연작이지만 독자들은 쉽게 1년의 간극을 메우고 책에 빠져들게 된다.

7권은 이전의 저작들에 비해 흥미는 다소 떨어진다. 너무나 태평성대하여 권력간 이전투구가 최대의 이슈가 되는 1세기의 로마를 다루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티베리우스의 카프리 섬의 칩거, 칼리쿨라와 네로의 공포정치, 로마 제정, 로마 제국주의 정책, 권력의 세습 등에 대한 시오노 나나미의 몇몇 두둔성 서술에는 동의되지 않는 부분이 많다. 물론 '악명 높은 황제'에 대해 재해석한 공적은 크다할 것이다.

시오노 나나미는 수십번에 걸쳐 이런 표현을 쓰고 있다.

'카이사르가 청사진을 그리고, 아우구스투스가 구축하고, 티베리우스가 반석처럼 튼튼하게 만들고, 클라우디우스가 손질한 제정'

그러나 카이사르가 폈던 정책이 청사진일까. 불변의 진리일까. 아우구스투스나 이후의 황제들은 카이사르의 정책을 그냥 화두로만 담았어야 하지 않았을까. 그들은 정치의 창조성을 무시했던 것은 아닐까.

아직 여전히 왜 로마는 멸망할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해답은 나오지 않는다. 과거 도저히 지지 않을 해처럼 보였던 로마는 왜 멸망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알려면 8권이 나올 때까지 또 기다려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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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핑크스의 코
리영희 지음 / 까치 / 199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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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의 글을 보면 그 사람의 성격만이 아니라 그 사람의 인생역정도 담겨져 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많다. 리영희 교수의 글도 그렇다. 내가 보기에는 리영희 교수의 글은 '저널리즘'과 '아카데믹'한 성격이 결합된 것으로 느껴진다. 전자는 리 교수의 글이 탄탄하고 구체적인 Fact에 기반하여 쓰여진다는 점이고, 후자는 그 Fact를 논리적이고 거시적인 차원에서 가공하여 전달한다는 점 때문이다.

나는 이 중에서 전자(탄탄한 Fact)에서 리 교수의 글의 매력을 더더욱 느끼고 있다. 군비 축소, 반공 이데올로기, 남북 문제, 통일, 냉전, 이데올로기 대립 등의 문제에서 리 교수만큼 실사구시에 기반하여 논리적으로 통쾌한 글을 쓰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스핑크스의 코>는 리 교수가 95년부터 98년까지 3년 동안 불교 잡지나 기독교 잡지를 위시하여 각종 신문/잡지에 기고한 글을 모은 책이다.

아마 유물론자이면서 불교/기독교 잡지에 두루 기고를 한 사람은 아마 리 교수 외에 없지 않을까. 이렇게 기고를 하는 사람이라면 중립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거나, 양자 모두를 껴안는 사람이거나, 양자 모두를 비판하는 사람일 게다. 이중 리 교수는 두번째와 세번째 모두에 해당된다. 즉, 어정쩡한 중용이 아니라 양자의 장점을 모두 끌어 안을 수도 있고, 양자를 모두 질타할 수도 있는 그런 선상에 서 있다.

종교 잡지에 기고했다지만 꼭 종교만을 주제로 하지 않았다. 사회 전반에 관한 다양한 의견을 개진하고 있다. 이 책은 리 교수가 한양대 교수를 정년퇴임한 후 쓴 최초의 책이다. 이전에 <역정>에서도 좀 색다른 글을 썼는데, 이 때와는 또 다르게 퇴임 이후라는 상황이 좀 더 많은 주제에 대한 관심을 오히려 유발시키지 않았을까도 생각된다. 앞으로 또 나올 책들은 좀 더 다양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리 교수 개인의 상념을 더욱 많이 담긴 책이 나오지 않을까도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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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숲 1
신영복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199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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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숲 1, 2>를 읽고 책을 덮는 순간 내 기억에 있는 모든 글귀가 망각되고 가슴 속에 있는 느낌마저 공중에 산화되어버리는 두려움이 엄습한다. 사실 감흥의 여운은 글귀의 암송으로 보장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책을 읽되 암송하지 말고 느끼고 마는 게 올바를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헛된 지식 소유욕이 그걸 아쉬워 한다. 그리고는 책장을 덮자마자 기억에서 사라져간 글귀를 떠올리려고 바둥질한다.

<더불어 숲 1, 2>는 신영복 님이 전 세계를 2년간에 걸쳐 여행하면서 각지의 문화, 자연, 인간군상을 보며 느낀 점을 엮은 책이다. 단순한 여행기가 아니다. '새로운 세기의 길목에서 띄우는 신영복의 해외 엽서'라는 부제에서 느껴지듯 한 지성인이 세계 각지에서 띄우는 고뇌와 성찰의 기록이다.

신영복 님의 시선은 따뜻하기 그지없다. 그 따뜻함은 오만을 배제한 겸손함에서 나올 것이다. 그들의 역사와 문화와 자연을 알기 때문에 겸손하게 그들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낮추기 때문에 그들의 역사와 문화와 자연이 보이는 것이다.

앎이 먼저가 아니라 바라보는 시각이 먼저일 수밖에 없으나, 우리의 보통의 여행은 시각은 배제되고 사전 지식 습득에만 천착하기 쉽다. 여행은 익명성을 방패삼아 자신의 오만을 드러내는 과정이기 십상인데, 신영복님의 이 글을 읽으면 일단 다른 세계를 들여다보는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지가 먼저 느껴진다.

신영복님이 이 책을 통해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20세기가 남겨놓은 인류의 현주소이다. 인류의 문화유적, 인류의 집적된 풍요, 그리고 이들이 낳았던 고통의 근원들을 발품을 팔아 찾아다니며 현 시대가 고민하거나 해결해야할 점에 대해 화두를 던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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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
은희경 지음 / 문학동네 / 199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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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희경 씨의 최근 장편소설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를 읽어보려다 한번 덮어버리고, 또 다시 마음을 잡고 읽어보려 했으나 결국 두번째로 책장을 닫고 말았다. 내가 두 번째로 이 책을 열려 했던 것은 지난해 11월말 동아일보에 김형경 씨와 함께 인터뷰한 기사에서 다음과 같은 은희경씨의 말을 읽고서였다.

"한 출판사 편집회의에서 요즘 여성작가 작품은 이름만 가리면 누구 것인지 구분이 안된다고 비꼬았다더군요. 하지만 남성이 쓰면 인간성 탐구고 여성이 쓰면 무조건 자아정체성 탐구라는 식의 선입견이 있는 것은 아닐까요."

"역사나 사회를 다룬 거대 서사를 써야만 역량있는 작가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그리하여 이 책을 다시 100여 페이지 읽어나갔다. 그리고 읽어나가면 읽어나갈수록 나는 은희경 씨의 말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었다. 너무나 거부에 관한 강박관념을 갖는다는 것은 그것이 사실임을 오히려 반증하는 것일까?

나 역시 거대 서사를 써야만 역량있는 작가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으나 은희경 씨 소설은 자아정체성 탐구쪽에 가깝다는 생각은 지울 수 없었다. 소설을 읽다 보면 내가 왜 이혼 경력이 있는 30대 후반 여교수의 행적을 쫓고 있는지, 아니 쫓을 이유가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결국 책장을 두 번째로 덮고 말았다.

그러나 나는 이를 두고 은희경 씨의 작품을 폄하하고 싶지 않다.그는 90년대가 낳은 불세출의 작가임은 분명하다. 다만 그가 서 있는 문학적 폭이 방대하지 않을 뿐이다. 그게 나와 다소 맞지 않을 뿐이다. 그러나 또 다른 소설은 어떨는지에 대한 기대까지 버리지는 않고 있다. 그의 다음 작품은 또 어떨는지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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