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탐정 김전일 1
가나리 요자부로 원작, 사토 후미야 작화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1996년 1월
평점 :
절판


<소년탐정 김전일>은 처음 잡으면 손에서 놓지 못한다. 외딴 섬, 학원, 호텔, 별장 등 다양한 조건에서 벌어지는 사건, 연이어 벌어지는 살인, 밀폐된 공간에서 교묘히 자행된 완전범죄, 주변 인물 모두가 용의자로 주목되는 정황 전개, 흥미를 고조시켜가다 모든 단서들을 하나로 묶으면서 정문일침의 해결책으로 범인을 잡는다. 이 과정이 너무나도 후련하고 통쾌하여 독자로 하여금 곧 다음 책을 집어들게 만든다.

그러나 <소년탐정 김전일>에 수록된 많은 사건들은 비슷한 궤를 돌고 있다. 격리된 공간, 밀실 사건, 전래동요가 암시하는 살인, 모두가 용의자로 지목되는 사건 전개 등이 그것이다. 대단한 스토리라는 생각이 들지만 한편으로는 애거사 크리스트의 추리소설 등으로부터 상당한 영향을 받지 않았나 하는 느낌도 지울 수 없다. '오페라극장 살인사건'은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설야차 전설사건'은 <0시간으로> 등이 연상된다.

애거사 크리스트는 <오리엔트 특급살인>에서 '추리소설의 모든 사건은 살인을 향하여 치닫고 최종 연결된다'고 말하고 있다. 애거사 크리스트 소설은 그런 점에서 사건을 풀어가는 사람은 포와로형사만이 아니라 독자 자신도 된다. 그러나 <소년탐정 김전일>에서 사건을 풀어가는 사람은 김전일 혼자다. 왜냐하면 살인을 향하여 치닫는 모든 사건을 독자에게 보여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김전일은 갑자기 단서와 해답을 같이 제공하며 '깜짝쇼'를 하는 듯한 느낌까지 주기도 한다.

그러나 만화로서 이만한 추리만화는 보기 드물 것이다. 애초에 애거사 크리스트와 비교하는 것 자체가 무리인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 1 - 신화를 이해하는 12가지 열쇠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 1
이윤기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0년 6월
평점 :
일시품절


같은 이야기를 두고 '그리스로마신화'처럼 여러 이야기로 엮어진 책도 드물 것이다. 서양문화의 한 시원을 이루고 있다는 점에서 지적 욕구를 추구하고자 하는 사람에서부터, 사실 신들의 얘기이지만 결국은 인간사의 축소이기에 이러한 내면을 들여다보고자 하는 사람에까지 이 신화를 접하는 독자층의 욕구는 다양할 것이다. 그 다양성만큼 '그리스로마신화'는 여러 각도에서 각색되어 출판되었다.

그 많은 '그리스로마신화'이지만 책 제목 앞에 소설가이자 번역가인 '이윤기의'라는 수식어가 붙으면 묘한 끌림을 받는다. 더군다나 이 책은 '신화를 이해하는 12가지 열쇠'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이윤기씨가 안내하는 그리스로마신화라니 어찌 끌리지 않겠는다.

이윤기씨는 서문에서 신화는 이 의미를 읽으려고 애쓰지 않는 사람에게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면서 그 의미를 여는 가장 큰 열쇠는 상상력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서는 신화를 12가지의 주제로 분류하여 책을 써내려가고 있다. 그 무수히 등장하는 신들에 질려 신화에 담겨져 있는 수많은 뜻과 암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는 독자라면 12가지 주제로 던져주는 열쇠가 자신의 이해를 선명하게 밝혀줄 것이라는 기대를 하기 마련이다.

첫번째 열쇠인 '잃어버린 신발을 찾아서'를 읽을 때만 해도 그렇다. 테세우스의 신표나 신데렐라의 신발까지 한 궤를 꿰어서 의미를 쫓는 이윤기씨를 따라가다보면 무언가를 상상하게 된다. 물론 이윤기씨는 답을 내주지 않는다. 다만 독자로 하여금 상상하게 만든다. 첫번째 열쇠를 읽고나서는 곧 두번째 열쇠는 또 어떤 것인지, 나로 하여금 무엇을 고민하게 해 줄 것인지 궁금하게 만든다.

그러나 기대는 금물이다. 이 책의 부제인 '12개의 열쇠'는 단지 '12개의 주제 분류'일 뿐이다. 방대한 신화의 얘기를 주제별로 묶은 것일 뿐이다. 여기에는 <거꾸로 읽는 그리스로마신화>처럼 해석도 그리 없다. 상상력을 통해서만 이해를 할 수 있는 단서도 그리 없어보인다. 최소한 나에게는 그렇다. 다만 '흥미'만이 있을 뿐이다. 그리스로마신화가 내포하는 세계, 실상은 인간세계의 반영인 그 세계의 흥미진진함만이 계속하여 책장을 넘기게 할 뿐이다. 사랑을 주제로 '아프로디테'와 '에로스와 프쉬케' 얘기를 쓰고 있다. 이 주제를 관통하여 이윤기씨가 독자로 하여금 무엇을 상상하게 만들려는 것인지는 잘 들어오지 않는다. 단지 사랑의 그러한 다양한 속성과 달콤함만이 전해질 뿐이다.

차라리 그리스로마신화의 원저를 읽거나 해제서를 원한다면 해제서를 읽는 것이 훨씬 낫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윤기의'라는 수식어의 이름값을 제대로 해내지 못한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우리 아이가 미운 짓을 시작했다 엄마 글방 27
김숙경 지음 / 한울림어린이(한울림) / 2000년 6월
평점 :
절판


어린이를 기르는 것은 부모로 하여금 때로는 성인군자가 되도록 하고, 때로는 심리학자가 되도록 하고, 또 때로는 모진 사람이 되도록 한다. 특히 아이가 미운 짓을 하기 시작하면서부터는 더더욱 그렇다.

아이가 말을 하기 시작하고, 자신의 의사를 분명히 밝히기 시작하면서 아이와의 커뮤니케이션 량이 늘기 시작한다는 것은 곧 부모의 할 일을 갑절로 늘어나기 시작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보통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하다는 것은 서로를 이해할 수 있고 관계를 편하게 이끌어 갈 수 있다는 것이나 이것이 아이와의 관계로 적용되면 전혀 그렇지 않다.

아이가 커갈수록 아이의 표현, 의사전달, 행동이 더욱 다양해지므로 이를 대하는 부모 역시 이를 수용하고 아이의 행동과 표현이 더욱 발현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자신의 가슴을 점차 넓혀나가야만 할 것이다.

그러나 이는 이성적인 생각일 뿐 아이의 늘어나는 욕구와 그에 상응하는 미운 짓에 부모는 지치기 십상이다. 이렇게 지치다 보면 아이의 미운 짓이 더욱 미워보이게 되고, 아이에 대한 보살핌이 안일해지기 마련이다.

개인적으로 육아책을 보는 이유는 내가 잘 하고 있는 것인가, 그리고 내가 어떻게 잘 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을 알아보기 위한 이유도 있지만, 이런 안일함과 지침을 일깨우기 위함도 있다.

아이 둘의 어머니이기도 한 김숙경씨의 <우리 아이가 미운 짓을 시작했다>는 이런 안일과 피로함을 일깨워주기에 좋은 책이다. 보통의 육아정보를 다룬 책을 읽을 때 나는 한가지 불만이 있다. 아이를 대상화시키고 이렇게 대상화된 아이를 다루는 팁(Tip)을 일깨워주는 방식에 대한 불만이다. 아이에 대한 사랑이나 귀여움이 깔려있지 않은 건조체의 육아서적을 읽다보면 그 내용이 체화되어 잘 다가오지 않는 것이다.

<우리 아이가 미운 짓을 시작했다>는 그런 점과는 거리가 멀다. 모두 42개 주제를 가지고 썼는데 모든 글들에 육아에 대한 상세한 사례가 풍부히 담겨 있다. 대체로 대화체로 쓰여져 있는 사례들을 읽다 보면 저절로 '아이식 대화방법'이 이런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나도 이런 방식으로 아이와 대화를 풀어가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잔소리 대신 아이 마음을 움직이자는 저자의 주장을 접하다 보면 은연중 물을 다스리는 것은 물을 무조건 막는 것이 아니라 물꼬를 통해 물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유도해내는 것이라는 비유가 생각나기도 한다.

부록인 '아이 마음 움직이는 엄마의 말 99'도 부모라면 한번쯤 꼭 읽어서 새겨둘만한 말들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연어 어른을 위한 동화 2
안도현 지음 / 문학동네 / 1996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안도현의 <연어>에는 '어른을 위한 동화'라는 말이 딸려 다닌다. 어른들을 위한 동화라 하면 나는 맨 처음 떠오르는 책들이 <어린 왕자>, <갈매기의 꿈> 등이다. 동화는 아니지만 주인공이 다섯 살 난 어린이라는 점에서 <나의 라임오렌지나무> 역시 함께 연상된다. 이 모든 책들은 두 번 이상씩 읽었다.

두 번 이상 읽게 되는 것은 이들 책들이 읽기 쉬우면서도, 실상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들 주인공들이 나보다 어리거나 열등한 존재인 듯 하지만, 실상은 나보다 어른이고 우월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들 주인공들이 주변의 일상적 삶을 얘기하는 듯 하지만, 그 일상 속에서 꿈과 일탈을 얘기하기 때문이다. 아무 얘기도 하지 않는 듯 하지만, 책을 덮고 나면 많은 얘기가 남기 때문이다. 단어와 문장으로는 얘기하는 것 같지 않지만, 행간에는 그 이상 무한한 것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 책들이 짧은 얘기인 듯 하지만, 실상은 길게 음미해볼만한 긴 얘기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이러한 책은 선물도 참으로 많이 했다. <나의 라임오렌지나무>는 열 권은 선물한 듯 하다. 이렇게 선물하는 이유는 단지 '공감'하기 위한 것이고, 그 책의 '여백'을 같이 얘기하거나 느끼기 위한 것이다.

이들 책들은 굳이 '어른'을 대상으로 했지만 세계 어느 곳, 어느 사람까지 폭넓게 사로잡았다. 그러나 어른을 대상으로 했다는 안도현의 <연어>는 정작 어른을 사로잡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는 동화를 어른 버전으로 옮겨놓았기 때문이다. 어른의 용어를 쓰고 있을 뿐 구성이나 전개는 동화의 틀의 제약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여백'도 없고 '음미'도 없다. 은빛연어에 몰입되지도 않고 결말이 뻔히 보이기까지 한다. 나아가 자아 확인과 환경문제, 그리고 자연과 인간과의 관계 등 여러 주제가 섞이기까지 한다.

이런 책이 베스트셀러라는 사실이 그저 놀라울 뿐이다. <갈매기의 꿈>이 그리울 뿐이다. 어찌 조나단과 은빛연어는 그리 다를 수 있는가. 내가 비교 대상을 잘못 잡은 것인가. 내가 눈이 너무 높은 것인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음식문화의 수수께끼 오늘의 사상신서 157
마빈 해리스 지음 / 한길사 / 1992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마빈 해리스의 문화인류학 3부작의 마지막 작품인 <음식문화의 수수께끼>는 이전 책들인 <문화의 수수께끼>나 <식인과 제왕>에 비해 우리의 생활과 보다 밀접한 연관이 있는 주제를 다루고 있으면서 이전 책들을 총괄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우리가 먹는 음식에 대해 우리는 보통 그 사회의 문화라고 얘기한다. 프랑스 여우 BB가 우리나라 개고기 먹는 것에 대해 동물보호론과 미개론을 주창할 때 우리는 보통 우리의 문화라고 너희들은 말고기를 먹지 않냐고 항변한다.

문화의 상대성론은 많은 것을 얘기해주는 듯 하지만 단지 명제로서만 얘기할 수는 없다. '우리는 우리다'는 식으로 타자와 구별하는 것만으로는 타자에게 우리를 납득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마빈 해리스는 상대성론의 이론적 근거를 밝혀주고 있어 읽는 이를 후련하게 해준다. 20세기 중반에 <슬픈 열대>의 '레비 스트로스'가 있었다면, 20세기 후반에는 <문화의 수수께끼>의 마빈 해리스가 있다고 한다면 마빈 해리스에 대한 지나친 칭찬일까.

단백질 공급원에 대한 대체재가 있었는가, 그리고 해당 동물이 음식을 둘러싸고 인간과 얼마나 경쟁적 관계에 있었는가, 또 단백질을 사냥할 때 어떤 효용론에 의거해 사냥 선호 동물이 결정되는가(최적 먹이찾기 이론) 등의 분석에 의거하여 마빈 해리스는 다양한 음식문화를 분석하고 있다. 이에 의거해 인도인이 왜 소고기를 먹지 않고, 아랍인이 돼지고기를 기피하고, 유럽에서 왜 말고기를 좋아했고, 많은 나라에서 개고기를 먹고 있고, 미국에서 선호도가 돼지고기에서 소고기로 바뀌었고, 식인문화의 원인이 무엇인지를 흥미있게 전개하고 있다.

'혐오하기 때문에 안먹는 것이 아니라 안먹기 때문에 혐오하는 것이다'라는 마빈 해리스의 말 또한 비단 음식문화와 관련해서가 아니라 전반적인 주제 관련하여도 음미해볼 만 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