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나에게 술 한잔 사주지 않았다
정호승 지음 / 현대문학북스 / 200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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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집 <모닥불>을 읽으면서 정호승 시인의 감수성에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강가에 서 있는 나룻배, 자물쇠 등 일상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사물을 가지고 그러한 동화를 그려내는 사람이라면 산문집에서도 감동을 주리라 생각해서 집어든 책이 <인생은 나에게 술 한잔 사주지 않았다>이었다.

그러나 이 산문집에서는 <모닥불>의 감수성도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의 명징한 울림도 없었다. 앞의 반절 정도의 글은 좀 심하게 말하면 시간에 쫓겨 제출한 숙제 같았다. 그냥 스쳐지나가다 떠올린 영감을 가지고 쓴 글이라기보다 어떠한 주제를 정해놓고 그에 맞춰 써내려간 글인가 싶을 정도였다.

중간에 책을 덮을 뻔 하기도 했으나 그래도 부담없이 읽히는 글이라 계속 읽어내려갔다. 전반부를 읽고 덮었더라면 약간의 후회를 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후반부의 글에서 정호승 시인의 오십이라고 생각하기에는 너무나도 부러운 감성의 소유자라는 것을 몇 편의 글에서 절실히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진정 마음이 따뜻하고 항상 자기 자신을 돌이켜보면서 채근하는 사람만이 시인이 될 수 있는가 하는 생각마저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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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사이더를 위하여 - '아웃사이더' 편집진 산문모음
김규항 김정란 진중권 홍세화 지음 / 아웃사이더 / 199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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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를 위시한 극우파에 대항하는 전투적 글쓰기를 한다는 4인이 모여 책을 냈다. 홍세화씨의 글에 있듯이 그들은 보수라 통칭되는 개념에서 보수와 극우를 구분해내고 그 중 극우에 자신들의 펜 끝을 겨눴다. 그들은 스스로를 아웃사이더로 지칭했다. 그리고 글로써, 책으로써, 자신의 사상을 밝혀나감으로써 극우를 배척하려는 운동을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의 잡지가 빨리 역할을 다하여 쇠망하기를 고대하고 있다. 잡지의 힘은 이미 몇 개의 전형이 있다. <녹색평론>이 그랬고, <인물과 사상>이 그렇다. 모두 이를 눈물겹게 움직인 사람들의 노력이 있었기에 나름의 물줄기를 형성할 수 있었다.

<인물과 사상>의 조류에 동의하는 사람들이 그 책에 많은 기고를 하기 시작했듯이 <아웃사이더> 역시 이러한 하나의 조류를 형성할 것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없다. 그러나 이는몇몇 지식인의 연대에 불과한 조류로 남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든다. 그것은 <아웃사이더> 편집진의 글에 그 단초가 있다. 편집진 4인, 즉, 김규항, 김정란, 진중권, 홍세화씨의 글 성격은 4인 4색이다. 따라서 각인에 대한 평론 대신 전체에 대한 평을 할 때 각인에 대해서는 오류를 낳을 수 있지만, 이의 위험을 무릅쓰고 말하자면, 그들의 글에는 '전투'만 있지 '건설'은 없다. 한껏 바람이 부풀려진 풍선을 놓으면 풍선 안에 있는 바람이 빠져나오면서 풍선은 요동을 친다. 그들의 글을 볼 때 그러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먼저, 그들은 극우세력을 향해 일관적으로 포문을 열었다고 하지만, 나에게 느껴지는 바로는 '나 아닌 다른 것에 대한 냉소'가 느껴졌다. 진정한 아웃사이더는 항상 변방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중앙을 향하려는 노력이 있을 때 의미가 있는 것이다. 극우세력을 적으로 한다면 극우이지 않은 많은 이들을 끌어들일 수 있어야 하는데 과연 그들의 글이 그러한 깊이를 갖출 수 있는지 의문이다. 또 하나, 그들의 대립전선은 너무나도 단선적으로 이분법적일 때가 많으며, 이의 과정에서 비약, 속단도 있어보인다. 그러나 현실세계는 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복잡하게 얽혀있다는 생각이다.

이상화 시비에 표징비를 세우면서 문인단체 이사장 이름을 넣었다 해서 이를 두고 '문학을 허명을 위한 도구로 생각하는 사람들'이라 규정하는 것은 그들의 이분법의 폐해이자 비약의 조그만 한 예이다. 극우세력에 대해 포문을 연 전투적 글쓰기라 하여 박수를 칠 준비를 하고 책을 읽기 시작했으나 미안하지만 박수를 거둘 수밖에 없었다. 그들에게는 날카로운 침은 있으나 그 침은 만인을 포용하기에는 너무나 멀리 있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홍세화씨 글은 여전히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Fact에 근거하면서 여기에 논리적인 설득력은 갖춘 그의 글은 여전히 힘이 있었다. 거기에 그는 시어질 때까지 사병으로 끝까지 싸우겠다는 전의를 보이고 있다. 그에게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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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무처럼 살고 싶다 - 나무에게서 배운 인생의 소금같은 지혜들
우종영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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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박사로 통하던 이 책의 저자 우종영씨가 한번은 나무가 죽어간다는 어느 나무농장에 치료차 갔다. 주인은 계속 약의 강도를 높여가며 나무를 살리려 하는데 우종영씨는 약 대신에 인내력만 있으면 살릴 수 있다고 진단한다. 그 방법은 벌레를 잡기 위해 새와 해충을 잡아먹는 벌레를 불러들이는 것이고, 그러기 위해서 새집과 새 먹이를 주고, 거미 알이 숨어있는 볏짚을 바닥에 깔아 생태계를 복원하는 것이었다.

우종영씨가 나무박사인 것은 나무에 대해 많이 안다는 것보다 나무에 대한 애정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는 미관만을 고려하여 가기치기를 하기 전에 먼저 나무의 삶을 생각한다. 또 자살하려는 나무나 죽어가는 나무에게는 억지로 손을 대지 않고 그의 삶을 마무리할 수 있도록 오히려 도와준다.

서른살, 너무도 초라한 자신의 모습 때문에 자살하려던 그를 돌아세운 것은 나무였다. 그리고 그 나무에 그는 18년의 세월을 묻혀 보냈다. 온 산야를 돌아다니고, 나무의 모습을 사진 찍고, 죽어간다는 나무를 찾아 전국을 다녔다. 그 과정에서 나무에 대한 그 나름의 철학을 깨달았고 그 나름의 시각을 완성했다. 이의 결과가 <나는 나무처럼 살고 싶다>이다. 이 책에서 그는 나무에 대한 따뜻한 애정으로 나무를 얘기할 뿐만 아니라, 그 속에서 인생의 진리를 자연스럽게 끌어낸다. 그 애정이 너무나 따뜻하여 그가 말하는 인생이 잔잔하게 가슴에 스며든다.

두 나무가 서로 가까이에 뿌리를 내려 영양분과 햇볕의 부족으로 두 나무 중 한 그루는 죽게될 운명이라면 두 나무의 가지가 합쳐지는 현상이 발생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이른바 연리지(蓮理枝)라는 것이다. 합쳐져도 서로의 성격과 기질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연리지를 보면서 저자는 '사랑한다면 연리지처럼'이라는 얘기를 자연스럽게 끌어낸다. 또 과일을 맺는 나무들에는 이런 현상이 있다. 지난해에 열매를 많이 맺을 경우 그 다음해에 열매를 거의 맺지 않는 것이다. 이를 해거리라고 한다.

저자는 이를 에너지 활동의 속도를 늦추면서 오로지 재충전하는 데만 신경을 쓰는 나무의 지혜를 얘기하면서 삶의 휴식의 중요성을 얘기한다.그 외에도 자작나무, 주목나무, 등나무 등 나무에 대해 얘기하면서 그 속에서 우리 인생의 여러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나무에 대한 얘기도, 그 나무에서 가지쳐서 나온 인생의 얘기도 모두 재밌게 다가온다.이 책을 읽고 주변의 나무를 한번 다시 보게된다면, 그것은 저자의 나무사랑이 조금 전염된 것일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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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씨앗을 심는 사람들
폴 플라이쉬만 지음, 김희정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0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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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를 여의고 클리블랜드에 사는 아홉 살 난 베트남 소녀 킴이 베트남에 있을 때 농부였다고 하는 아버지를 한편으로는 그리워하고 한편으로는 기쁘게 해주고 싶은 마음에 쓰레기더미가 쌓여 있는 버려진 공터에 강남콩 씨앗을 심는 것으로 <작은 씨앗을 심는 사람들>은 시작된다. 베트남 소녀는 이렇게 책장을 열었지만 다시 나타나지는 않는다. 이 책은 모두 13명의 주인공이 단락마다 화자로 나오기 때문이다. 그 13명의 주인공은 세계 각지 사람들이다.

고집스러운 백인 할머니, 고향을 떠나 외로운 할아버지를 돌보는 과테말라의 아이, 시민의 권리 주장에서 물러서지 않는 흑인 아주머니,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는 백인 할아버지, 택시기사를 하면서 악착같이 돈을 벌려는 아버지를 둔 하이티에서 이민온 소녀, 강도 당한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한국 아주머니, 우람한 몸매를 자랑하는 흑인 청년 등 13명이 이 책의 한 장씩을 맡아 얘기를 전개하는 주인공들이다. 클리블래드에 산다는 것 말고는 공통점이 하나도 없어 보일 정도로 각각 사는 모습이 너무나도 다른 사람들이다. 이들이 무슨 일로 하나의 이야기로 모여들까 싶을까마는 탐정소설에서 흩어진 사건들이 하나로 모여드는 것처럼 이들 13명의 얘기가 버려진 쓰레기 공터를 둘러싸고 하나 하나 모여든다.

베트남 소녀가 강남콩 몇 개를 심은 것이 점차 확장되어 그 더럽고 추한 공터가 아름다운 채마밭으로 바뀌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여러 군상들이 쏟아내는 이야기가 독자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인다. 이민 사회의 명암과 갈등이 존재하는 클리블랜드, 그 클리블랜드 중에서도 이민자가 많이 사는 곳, 그 곳 중에서도 버려진 땅에서 희망이 씨앗이 싹트고 자라는 것이다. 그 채마밭은 클리블랜드의 축약판이자 이민사회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주는 곳이었다. 각자 다른 목적으로 이 채마밭에 찾아든 사람들이었지만, 같이 일하고 같이 생산해내면서 서로 마음을 열기 시작하고 이 채마밭은 그야말로 생명이 숨쉬는 공간으로 바뀌게 된다.

가장 복잡한 갈등관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 전개 과정이 저자의 살아 있는 듯한 인물 묘사와 깔끔한 이야기 전개로 금방 이야기에 빨려들어가고 만다. 인간 군상 간의 화해와 인간과 자연과의 교감을 이렇게 자연스럽고 강한 느낌으로 전해주는 책은 드물 것이다. 책을 덮은 순간 도시의 오아시스 같은 그런 채마밭이 우리 도시에도 있었으면 하는 즐거운 상상을 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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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김용택 지음 / 이레 / 200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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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 대해 얘기하면서 김용택 시인의 서문을 옮기지 않을 수 없다. 이 서문이야말로 모든 서평을 대신하고도 남을 만하다. 조금 길어 일부밖에 옮기지 못하는 것이 아쉬울 뿐이다. '나는 평생 동안 강을 보며 살았다. ...나는 강가에 서 있는 산처럼 늘 흐르는 물에 목이 말랐다. 그러면서도 나는 흐르는 강물에 죽고 사는 달빛 한 조각 건지지 못했다. 들여다보면 강물은 얼마나 깊고 인생은 또 얼마나 깊은가. 손 내밀어 삶은 그 얼마나 아득한가...'

지난 50여년 동안 단 몇 년을 제외하고는 섬진강 진메마을을 떠나지 않고 그 강을 노래하고 있는 시인 김용택씨에게 강은 곧 인생이요, 그의 스승이요, 그의 가슴을 적셔주는 샘물이었을 것이다. 김용택 시인은 진메마을을 떠난 적이 거의 없다. 그 흔한 여행도 제대로 해본 적이 없다. 책 말미에 쓰여진 김훈씨의 평에 의하면 '진짜 촌놈'이다. 가슴을 들뜨게 하기 위한 목적이라면 여행을 안해본 게 아쉬움이겠지만, 가슴을 따뜻하게 어루만지기 위한 목적이라면 여행을 안해본 게 그리 아쉬울 게 없었을 것이다.

30년 동안 같은 길로 출근하는 그이지만 그 길에서 여전히 샘물 같은 시상이 떠오르고, 50년 보아왔던 뒷동산이지만 거기에서 아직도 인생을 읽어내는 그이기 때문이다. 글 어느 말미에 짧은 두 줄의 시귀가 있다. '오늘 그 강에 봄비가 오고 / 봄이 내 가까이 오고 있다' 강과 봄비와 자신을 이런 짧은 시귀에 하나로 일치시킬 수 있는 시인은 드물 것이다. 그의 이런 교감은 자연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없으면 안될 것이다. 그러한 따뜻한 시선을 던질 때 오늘의 자연은 어제의 자연이 아니고 항상 새롭게 다가오기만 한다.

따뜻한 시선을 던질 수 있을 때에야만 지난해나 어제 내린 봄비가 오늘 또 내리건만 다른 느낌으로 보일 수 있는 것이다. 같은 봄비라도 항상 새롭게 볼 수 있는 눈이 있다면 여행이 무슨 대수랴. 오십이 넘도록 시인으로서 또는 교사로서 한 길을 굳건히 걸어왔던 그이지만, 아직도 그는 인생을 묻는다. <인생>은 그가 그의 삶은 조용히 들려주는 글들이다. 아름다운 말들로 꾸민 산문집도 아니고, 그저 담담하게 그의 인생에 대한 사색과 자연에 대한 감상을 그려내고 있다. 화려하지 않는 그의 글이지만 오히려 그러한 글이기에 그의 인생 여정과 너무나도 어울려서 강한 느낌을 준다.

책 말미에 쓰여 있는 김훈씨는 이를 이렇게 표현했다. '용택이의 글들은 용택이네 엄마의 언어작용과 닮아 있다. 그것은 삶과 긴밀히 사귀는 언어의 건강함이다. 용택이의 문장 속에서 삶은 말에 기대어 있지 않고, 말이 삶에 기대어 있다.' '말이 삶에 기대어 있다'는 말만큼이나 <인생>을 잘 표현할 수 있는 문구는 없을 것이다. 그러니 그의 글에는 말에 삶이 자연스럽게 묻어나와 있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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