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씨앗을 심는 사람들
폴 플라이쉬만 지음, 김희정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01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버지를 여의고 클리블랜드에 사는 아홉 살 난 베트남 소녀 킴이 베트남에 있을 때 농부였다고 하는 아버지를 한편으로는 그리워하고 한편으로는 기쁘게 해주고 싶은 마음에 쓰레기더미가 쌓여 있는 버려진 공터에 강남콩 씨앗을 심는 것으로 <작은 씨앗을 심는 사람들>은 시작된다. 베트남 소녀는 이렇게 책장을 열었지만 다시 나타나지는 않는다. 이 책은 모두 13명의 주인공이 단락마다 화자로 나오기 때문이다. 그 13명의 주인공은 세계 각지 사람들이다.

고집스러운 백인 할머니, 고향을 떠나 외로운 할아버지를 돌보는 과테말라의 아이, 시민의 권리 주장에서 물러서지 않는 흑인 아주머니,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는 백인 할아버지, 택시기사를 하면서 악착같이 돈을 벌려는 아버지를 둔 하이티에서 이민온 소녀, 강도 당한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한국 아주머니, 우람한 몸매를 자랑하는 흑인 청년 등 13명이 이 책의 한 장씩을 맡아 얘기를 전개하는 주인공들이다. 클리블래드에 산다는 것 말고는 공통점이 하나도 없어 보일 정도로 각각 사는 모습이 너무나도 다른 사람들이다. 이들이 무슨 일로 하나의 이야기로 모여들까 싶을까마는 탐정소설에서 흩어진 사건들이 하나로 모여드는 것처럼 이들 13명의 얘기가 버려진 쓰레기 공터를 둘러싸고 하나 하나 모여든다.

베트남 소녀가 강남콩 몇 개를 심은 것이 점차 확장되어 그 더럽고 추한 공터가 아름다운 채마밭으로 바뀌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여러 군상들이 쏟아내는 이야기가 독자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인다. 이민 사회의 명암과 갈등이 존재하는 클리블랜드, 그 클리블랜드 중에서도 이민자가 많이 사는 곳, 그 곳 중에서도 버려진 땅에서 희망이 씨앗이 싹트고 자라는 것이다. 그 채마밭은 클리블랜드의 축약판이자 이민사회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주는 곳이었다. 각자 다른 목적으로 이 채마밭에 찾아든 사람들이었지만, 같이 일하고 같이 생산해내면서 서로 마음을 열기 시작하고 이 채마밭은 그야말로 생명이 숨쉬는 공간으로 바뀌게 된다.

가장 복잡한 갈등관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 전개 과정이 저자의 살아 있는 듯한 인물 묘사와 깔끔한 이야기 전개로 금방 이야기에 빨려들어가고 만다. 인간 군상 간의 화해와 인간과 자연과의 교감을 이렇게 자연스럽고 강한 느낌으로 전해주는 책은 드물 것이다. 책을 덮은 순간 도시의 오아시스 같은 그런 채마밭이 우리 도시에도 있었으면 하는 즐거운 상상을 해봤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