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김용택 지음 / 이레 / 2000년 12월
평점 :
절판


<인생>에 대해 얘기하면서 김용택 시인의 서문을 옮기지 않을 수 없다. 이 서문이야말로 모든 서평을 대신하고도 남을 만하다. 조금 길어 일부밖에 옮기지 못하는 것이 아쉬울 뿐이다. '나는 평생 동안 강을 보며 살았다. ...나는 강가에 서 있는 산처럼 늘 흐르는 물에 목이 말랐다. 그러면서도 나는 흐르는 강물에 죽고 사는 달빛 한 조각 건지지 못했다. 들여다보면 강물은 얼마나 깊고 인생은 또 얼마나 깊은가. 손 내밀어 삶은 그 얼마나 아득한가...'

지난 50여년 동안 단 몇 년을 제외하고는 섬진강 진메마을을 떠나지 않고 그 강을 노래하고 있는 시인 김용택씨에게 강은 곧 인생이요, 그의 스승이요, 그의 가슴을 적셔주는 샘물이었을 것이다. 김용택 시인은 진메마을을 떠난 적이 거의 없다. 그 흔한 여행도 제대로 해본 적이 없다. 책 말미에 쓰여진 김훈씨의 평에 의하면 '진짜 촌놈'이다. 가슴을 들뜨게 하기 위한 목적이라면 여행을 안해본 게 아쉬움이겠지만, 가슴을 따뜻하게 어루만지기 위한 목적이라면 여행을 안해본 게 그리 아쉬울 게 없었을 것이다.

30년 동안 같은 길로 출근하는 그이지만 그 길에서 여전히 샘물 같은 시상이 떠오르고, 50년 보아왔던 뒷동산이지만 거기에서 아직도 인생을 읽어내는 그이기 때문이다. 글 어느 말미에 짧은 두 줄의 시귀가 있다. '오늘 그 강에 봄비가 오고 / 봄이 내 가까이 오고 있다' 강과 봄비와 자신을 이런 짧은 시귀에 하나로 일치시킬 수 있는 시인은 드물 것이다. 그의 이런 교감은 자연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없으면 안될 것이다. 그러한 따뜻한 시선을 던질 때 오늘의 자연은 어제의 자연이 아니고 항상 새롭게 다가오기만 한다.

따뜻한 시선을 던질 수 있을 때에야만 지난해나 어제 내린 봄비가 오늘 또 내리건만 다른 느낌으로 보일 수 있는 것이다. 같은 봄비라도 항상 새롭게 볼 수 있는 눈이 있다면 여행이 무슨 대수랴. 오십이 넘도록 시인으로서 또는 교사로서 한 길을 굳건히 걸어왔던 그이지만, 아직도 그는 인생을 묻는다. <인생>은 그가 그의 삶은 조용히 들려주는 글들이다. 아름다운 말들로 꾸민 산문집도 아니고, 그저 담담하게 그의 인생에 대한 사색과 자연에 대한 감상을 그려내고 있다. 화려하지 않는 그의 글이지만 오히려 그러한 글이기에 그의 인생 여정과 너무나도 어울려서 강한 느낌을 준다.

책 말미에 쓰여 있는 김훈씨는 이를 이렇게 표현했다. '용택이의 글들은 용택이네 엄마의 언어작용과 닮아 있다. 그것은 삶과 긴밀히 사귀는 언어의 건강함이다. 용택이의 문장 속에서 삶은 말에 기대어 있지 않고, 말이 삶에 기대어 있다.' '말이 삶에 기대어 있다'는 말만큼이나 <인생>을 잘 표현할 수 있는 문구는 없을 것이다. 그러니 그의 글에는 말에 삶이 자연스럽게 묻어나와 있지 않을 수 없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