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숲 1
신영복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199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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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본절판


<더불어 숲 1, 2>를 읽고 책을 덮는 순간 내 기억에 있는 모든 글귀가 망각되고 가슴 속에 있는 느낌마저 공중에 산화되어버리는 두려움이 엄습한다. 사실 감흥의 여운은 글귀의 암송으로 보장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책을 읽되 암송하지 말고 느끼고 마는 게 올바를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헛된 지식 소유욕이 그걸 아쉬워 한다. 그리고는 책장을 덮자마자 기억에서 사라져간 글귀를 떠올리려고 바둥질한다.

<더불어 숲 1, 2>는 신영복 님이 전 세계를 2년간에 걸쳐 여행하면서 각지의 문화, 자연, 인간군상을 보며 느낀 점을 엮은 책이다. 단순한 여행기가 아니다. '새로운 세기의 길목에서 띄우는 신영복의 해외 엽서'라는 부제에서 느껴지듯 한 지성인이 세계 각지에서 띄우는 고뇌와 성찰의 기록이다.

신영복 님의 시선은 따뜻하기 그지없다. 그 따뜻함은 오만을 배제한 겸손함에서 나올 것이다. 그들의 역사와 문화와 자연을 알기 때문에 겸손하게 그들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낮추기 때문에 그들의 역사와 문화와 자연이 보이는 것이다.

앎이 먼저가 아니라 바라보는 시각이 먼저일 수밖에 없으나, 우리의 보통의 여행은 시각은 배제되고 사전 지식 습득에만 천착하기 쉽다. 여행은 익명성을 방패삼아 자신의 오만을 드러내는 과정이기 십상인데, 신영복님의 이 글을 읽으면 일단 다른 세계를 들여다보는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지가 먼저 느껴진다.

신영복님이 이 책을 통해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20세기가 남겨놓은 인류의 현주소이다. 인류의 문화유적, 인류의 집적된 풍요, 그리고 이들이 낳았던 고통의 근원들을 발품을 팔아 찾아다니며 현 시대가 고민하거나 해결해야할 점에 대해 화두를 던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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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
은희경 지음 / 문학동네 / 199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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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희경 씨의 최근 장편소설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를 읽어보려다 한번 덮어버리고, 또 다시 마음을 잡고 읽어보려 했으나 결국 두번째로 책장을 닫고 말았다. 내가 두 번째로 이 책을 열려 했던 것은 지난해 11월말 동아일보에 김형경 씨와 함께 인터뷰한 기사에서 다음과 같은 은희경씨의 말을 읽고서였다.

"한 출판사 편집회의에서 요즘 여성작가 작품은 이름만 가리면 누구 것인지 구분이 안된다고 비꼬았다더군요. 하지만 남성이 쓰면 인간성 탐구고 여성이 쓰면 무조건 자아정체성 탐구라는 식의 선입견이 있는 것은 아닐까요."

"역사나 사회를 다룬 거대 서사를 써야만 역량있는 작가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그리하여 이 책을 다시 100여 페이지 읽어나갔다. 그리고 읽어나가면 읽어나갈수록 나는 은희경 씨의 말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었다. 너무나 거부에 관한 강박관념을 갖는다는 것은 그것이 사실임을 오히려 반증하는 것일까?

나 역시 거대 서사를 써야만 역량있는 작가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으나 은희경 씨 소설은 자아정체성 탐구쪽에 가깝다는 생각은 지울 수 없었다. 소설을 읽다 보면 내가 왜 이혼 경력이 있는 30대 후반 여교수의 행적을 쫓고 있는지, 아니 쫓을 이유가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결국 책장을 두 번째로 덮고 말았다.

그러나 나는 이를 두고 은희경 씨의 작품을 폄하하고 싶지 않다.그는 90년대가 낳은 불세출의 작가임은 분명하다. 다만 그가 서 있는 문학적 폭이 방대하지 않을 뿐이다. 그게 나와 다소 맞지 않을 뿐이다. 그러나 또 다른 소설은 어떨는지에 대한 기대까지 버리지는 않고 있다. 그의 다음 작품은 또 어떨는지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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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평론선집 1
김종철 엮음 / 녹색평론사 / 199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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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평론>은 잘 알려진대로 한 문학평론가가 주관하는 생태학 교양잡지다. 발행인이 김종철 영남대 교수다. 91년부터 지금까지 격월간지로 8년째 발행하고 있다. 얼마전 <인물과 사상> 8권에서 김종철 교수를 다루었는데 이 글을 읽어보면 <녹색평론>과 김종철 교수에 대해서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강준만 교수가 <인물과 사상>으로 화려하게 스폿라이트를 받고 있다면, 김종철교수는 <녹색평론>으로 거북이 걸음을 하는 셈이나 마찬가지다. 두 잡지 모두 1인이 주축이 되어 만들어지는 잡지이지만 그 방식이나 분야나 독자층은 판이하게 다르다.

<녹색평론>이 다루는 주제는 제호에서 느껴지는 환경 관련 부분만은 아니다. 교육, 문화, 과학 등의 문제 역시 주요한 한 부분으로 다루고 있다. 그러나 이 글들은 하나의 흐름으로 묶여지고 있다.

여기에 있는 글들은 사실 '소수의 아름다운 외침'이다. 사회의 본류를 형성하지 못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소수'이고, 그렇지만 우리 미래를 담고 있기에 '아름답고', 이러한 내용을 계속하여 알려나가고자 운동하기에 '외침'이다.

<녹색평론>이 추구하는 세상은 '작은 세상'이지 않을까 싶다. 이는 인류가 '진보, 발전'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질풍노도처럼 달려나가는 세상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그 질풍노도에서 거리낌 없이, 아니 아예 논의하지 않고 지나치는 문제에 천착하고 있다. 보다 거대한 발전으로 보다 거대한 세상에서 사는 것이 결국은 우리 미래의 불투명성을 가져다 줄 수 있기에 오히려 보다 작은 걸음으로 만드는 작은 세상이 더 나은 미래를 보장해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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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초는 없다
윤구병 지음 / 보리 / 199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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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초는 없다>는 전 충북대 철학과 윤구병 교수가 일구고 있는 '변산 공동체'에 관한 윤 교수의 글이다. 변산공동체는 현재 10여가구가 모여 공동체 생활을 하고 있다. 모든 생산은 유기농법으로 이루어진다.

<잡초는 없다>라는 문구는 윤 교수가 '잡초와의 전쟁'을 치르면서 깨달은 화두다. 기르려 하는 곡식과 기르려 하지 않는 잡초 사이에서 지긋지긋한 전쟁을 치르다가 자신이 제거한 잡초가 사실은 잡초가 아니라 모두 귀중한 약초이자 식용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윤 교수는 이런 잡초까지 유용한 약초/식용으로 보듬어 안는다. 그러면서 '잡초는 없다'라고 말한다. 이쯤되면 이제 우리는 호칭을 바꿔야 한다. 윤 교수가 아니라 농사꾼 윤씨다.
그들의 작업은 '고행' 그 자체였다. 우리 땅을 살리는 일은 분명하지만 우리 농법을 30년 뒤로 돌리는 일이었다. 그러나 현재의 농법이 현실문제의 대안이 될 수 없듯이, 변산공동체의 농법 역시 대안으로 자리 잡기에는 많은 한계를 안고 있다는 생각만은 지울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산공동체는 하나의 출발점을 이루고 있다는 점에는 마음 깊이 공감한다. 현재 우리는 패러다임이 상당히 변화했다는 것을 절감한다. 새로운 패러다임을 짜는 것은 다방면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변산공동체는 또 하나의 축의 한 꼭지점을 이루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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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와의 대화
송두율 지음 / 한겨레출판 / 199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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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와의 대화>는 '발상의 전환을 위한 20가지 테마'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진보,지구화,정보사회, 여성론, 대학, 인문학, 통일 등 우리를 둘러싼 거의 모든 정치,경제,사회,문화의 주제가 망라되어 있다.이런 포괄적인 주제를 다루었는데 한 사람이 썼다고는 잘 믿기지 않을 정도로 그 주제들이 깊이가 있다.

이 여러글에서 하나의 화두를 굳이 꼽으라면 '지구화'라는 단어를 꼽고 싶다. 굳이 하나 더 꼽으라면 '통일'을 들고 싶다. 송두율 교수는 20가지 테마를 통해 새로운 전환,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한 시기라는 점을 강론하고 있다. 물론 이 패러다임은 송두율 교수만이 주창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는 현재 시점에서 우리를 둘러싼 모든 문제를 이러한 패러다임에 입각해서 전체적으로 조명해주고 있는 것이다.

나는 사실 첫 테마인 '우리 시대의 진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에서부터 좀 당혹스러웠다. 역사를 보는 유형 중에 이제는 나선형이 퇴출되고 미로형이 대세를 이룬다는 것을 읽으면서 '아, 나의 관심이 이다지도 정지해 있었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다. 이는 다른 주제에서도 마찬가지로 드러났다. 그리하여 오랜만에 여성론이든, '남한 모델'이든, 민주주의든 예전에 이미 사고를 정지시켜왔던 주제들에 관한 생각을 다시 한번 할 수 있게 되었다.

19번째 테마에 등장한 윤이상 선생님의 얘기는 감동스러웠다. 윤이상 선생님의 명복과 송두율 교수의 빠른 시일 내의 귀국을 진심으로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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