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
스펜서 존슨 지음, 이영진 옮김 / 진명출판사 / 200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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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펜서 존슨이 쓴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는 '변화'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할 수 있도록 하는 하나의 짧은 우화다. 이 우화의 주인공은 스니프와 스커리라는 두 생쥐와 헴과 허라는 생쥐와 비슷한 꼬마인간이다.

스펜서 존슨은 동물과 인간의 행동양식을 빗대어 꼬집고 있기도 하지만, 가장 크게는 인간 사이에 존재하는 변화에 대응하는 행동양식의 차이를 크게 꼬집고 있다.

동물은 자신의 감각과 본성에 의거하여 위험을 판단하고 이에 따른 행동을 하지만, 때로는 인간은 이러한 동물에도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이성의 판단에 의지한다면서 오히려 감성보다 우둔하게 변화에 대처하기도 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서 (일부) 인간의 진정한 우둔함이 빛을 발하는 것은 변화가 일어났을 때이라고 스펜서 존슨은 이 책에서 얘기하고 있다. 치즈가 고갈된 순간, 헴과 허는 이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치즈가 없어진 사실에 대해서 그러한 일이 있어났다는 사실에서 자신을 피해자라고 생각하는 대목은 너무나도 현실적이어서 읽는 사람 스스로 씁쓸해지도록까지 만든다.

여기서 헴과 허의 대처방법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한다. 여전히 과거의 기준에 의거해서 변화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헴과 변화를 인정하고 새로운 치즈를 찾아나서겠다고 결심해가는 허 간에 차이가 극명히 커지기 시작한다.

허가 치즈를 찾아가는 과정이 백미다. 그 과정에서 허가 느끼게 되는 두려움, 깨달음, 자신감을 묘사하는 것이 가슴에 콕 다가온다. 대비되어 헴의 대처방안에 대한 묘사 역시 강한 대비가 되어 다가온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간명한 우화를 통해서 현실의 문제를 너무나도 실제적이고 생동감있게 묘사해주고 있다는 점이다.

이 책은 모두 3개의 장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우화를 설명하기 위해서 넣은 1장과 3장은 고리타분한 교과서식 훈계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 우화에 대한 해석은 책을 읽는 독자 각인의 몫으로 남겨두는 것이 훨씬 좋다는 생각이 든다. 이를 직장에서는 어떻게, 가정에서는 어떻게 하는 식으로 꼭 설명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이 책에 실린 주요 문구를 그냥 한번 쭉 적어본다.

- 변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
- 두려움을 없앤다면 성공의 길은 반드시 열린다
- 치즈 냄새를 자주 맡아보면 치즈가 상해가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 새로운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은 새 치즈를 찾는데 도움이 된다
- 두려움을 극복하고 움직이면 마음이 홀가분해진다
- 새로운 치즈를 마음속으로 그리면 치즈가 더 가까워진다
- 사라져버린 치즈에 대한 미련을 빨리 버릴수록 새 치즈를 빨리 찾을 수 있다
- 빈 창고에서 기다리는 것보다 미로 속에서 찾아다니는 것이 안전하다
- 과거의 사고방식은 우리를 치즈가 있는 곳으로 인도하지 않는다
- 새 치즈를 찾아 맛있게 먹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 행동의 방향을 바꾸라.
- 작은 변화를 일찍 알아차리면 큰 변화에 쉽게 적응할 수 있다
- 치즈를 따라 움직여라, 그리고 맛있게 먹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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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내 일기를 엿보게 될 사람에게
최영미 지음 / 사회평론 / 200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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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은 나름대로 고독이 있다. 그 사람의 고독까지 그 사람의 마음의 내면 깊숙히 들어가서 그것을 들여다보고 그것을 이해하고 다독거려주기까지 할 수 있다면 그 때 비로소 그 사람을 진정 이해한다 할 수 있을 것이다.

최영미 시인의 최근 산문집 <우연히 내 일기를 엿보게 될 사람에게>란 책을 집어들었을 때, 나는 최영미 시인을 이해하고 싶었다. 그의 시가 베스트셀러가 되었을 때 '베스트셀러'란 이름에 짓눌려 그 책을 몇 번이나 들쳐 보았지만, 제대로 몇 편을 보지 못했다. 그 시어들이 잘 다가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시인을 이해하지 않고, 시를 이해하려 했으니 시어가 잘 다가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 마음의 '빚'을 푸는 심정으로 이 책을 집어들었다. 그래, 한 사람을 알지 않고 어떻게 그 사람의 작품을 알 수 있겠다 할 수 있을까 하는 심정으로...

이 책은 크게 두 장으로 나뉘어진다. 첫번째 장에서는 최영미 시인의 개인사나 현재의 모습이 많이 들어간 얘기를 가지고 일기 쓰듯 써내려간 글들이고, 두번째 장에서는 그동안 여러 잡지나 신문에 쓴 영화평이나 서평, 그외 산문을 모은 글들이다.

첫번째 장이나 두번째 장이나 글의 내용은 달라 다소 이질적인 묶음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두번째 장에 실린 글 역시 편하게 이야기 하는 방식으로 써내려가고 있어 그 주제를 통해 최영미 시인의 모습이 그대로 투영되어 있다는 점에서 두 장의 글이 사실 그리 어색하게 다가오지만은 않는다.

그러나 그 직설적이고 둔중한 시어들이 산문으로 펼쳐졌을 때 좀 생명력을 잃은 듯한 느낌은 지울 수 없었다. 시인이란 범부가 보지 못하는 사물의 이면을 날카라운 시선을 통해 전달해주는 것이라면 산문 역시 개인사를 쓰든 생활의 일상사를 쓰든 그러해야 할 것 아닌가 하는 생각 때문인지(기대가 너무 높았기 때문인지) 그리 가슴 절절히 다가오지는 않았다.

그래도 소득이 있다면 시인 최영미씨의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는 점이 아닐까. 그 직설적인 시어들은 거칠 것 없는 자신의 드러냄으로 나타나고 있어 그녀의 글에 따뜻한 시선 하나를 던질 수 있었다.

이제 새삼 그녀의 시집 <서른, 잔치는 끝났다>를 깊은 애정을 가지고 읽을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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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치혀
홍경호 지음 / 흥부네박 / 200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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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호의 이야기 춘추라는 부제가 달린 <세치혀>는 중국의 춘추전국시대를 풍미했던 인물들에 얽힌 13편의 얘기를 담고 있다.

'천하를 움직이고 세상을 바꾸는 것은 사람이지만, 그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세 치 혀에서 비롯된다'고 이 책은 자신을 선전하고 있지만, '세치혀'에 관한 얘기들만 담겨 있지는 않다. 춘추전국시대의 흥미진진한 얘기와 거기에서 파생되는 고사성어 얘기도 있고, 삼국지에 버금가는 책략에 관한 얘기도 있고, 제갈공명이 흠모했다는 안영의 '세치혀'에 관한 얘기도 있다.

만약 흥미 위주로 이 책을 선택한다면 만족할 수 있겠지만, 이 책의 선전대로 고대의 지혜와 책략을 통해 오늘을 사는 지혜를 배운다는 생각으로 이 책을 집어들었다면 조금은 후회할 수 있겠다.

다만 삼국지를 흥미진진하게 읽었던 사람이라면 이 책 역시 재미있게 느낄 수 있다. 이 책을 읽다보면 삼국지가 굳이 어느 누구의 글재주 때문에 빛나기 보다는 중국의 역사, 문화적 토양 때문에 빛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할 수 있다. 삼국지의 이야기 전개 방법은 이미 춘추전국시대의 풍미했던 이야기에서도 그 단초들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 흥미진진함 외에도 춘추전국시대를 느끼기에도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책이다. 중국은 오히려 백가쟁명시기에 흥한다는 생각이 드는데 그 원인이 어디에 있을까 하는 점을 느낄 수 있다. 공자가 10여개의 나라를 돌면서 자신의 명망을 떨칠 수 있었던 것도 결국은 춘추전국시대의 인재 중용 분위기가 작용하지 않았다면 불가능했으리라.

백가쟁명시대에 우리를 의아스럽게 만드는 것은 두가지다. 하나는 선악의 구분의 모호함이고, 또 하나는 지역색의 비존재다.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이라면, 자신을 중용해줄 수 있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뜻을 펼칠 수 있는 나라라면 어디든지 찾아갈 수 있다는 점이 오히려 백가쟁명시기에 여러 사상이 발달할 수 있는 토양이겠지만, 한편으로는 진리와 비진리의 경계가 무엇인지, 또 전제주의가 이러한 토양을 발달시키는 한편 썩게 만드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의아심을 준다.

기원전 4-6세기. 동양의 춘추전국시대와 서양의 아테네, 로마이즘의 차이는 너무나도 극명하게 대비되어 느껴진다.

<세치혀>에 또 하나 아쉬운 것은 연대 표시나 이야기를 도울 수 있는 글이 전혀 없다는 점이다. 춘추전국시대의 연대표 하나라도 사족으로 달아줬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책을 읽는 동안 계속 들었다. 결국은 고등학교 사회과부도 뒷 편의 연대기를 참조하면서 읽을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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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를 심은 사람
장지오노 지음, 김경온 옮김 / 두레 / 200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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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의 힘이 얼마나 강인하고 영향력이 있을까. 세계를 움직인 여러 위인들을 얘기할 때 보면 세계를 움직이는 중추적인 힘이 있을 듯 하고, 세계사에 묻힌 수많은 범부를 보면 미약할 듯도 하다. 그러나 전자의 위인일지라도 그 혼자만의 힘은 아닐 것이다. 그 당시의 민중들과 수많은 교감을 하면서 때로는 그들의 어깨 위에, 때로는 민중이 미처 보지 못한 곳에 눈을 두면서 그들보다 한 발 앞서나가면서 길을 개척하기도 할 것이다. 어떤 형태든 다른 사람과 커뮤니케이션을 하면서 다른 사람의 힘과 합쳐져서 큰 힘을 낼 것이다.

그러한 영웅들 말고 순수하게 개인의 힘은 얼마나 강인할 수 있을 것인가. 보통은 조직이나 세월의 흐름 속에서 개인은 좌절하거나 그 흐름에 자신의 몸을 내맡기기 일수 아니겠는가.

우공이산(愚公移山)의 우(愚)를 '우직하다'보다는 '어리석다'로 해석하는 것이 현명한 처세술 아니겠는가.

<나무를 심은 사람>은 중국식 우공이산과는 비교할 수 없는 큰 울림을 주는 프랑스식 우공이산이다. 중국식 우공이산에는 교훈만이 뼈대로 남아있는 반면, <나무를 심은 사람>에는 인류의 가치, 환경, 생명 사랑, 개인에게도 세계를 변화시킬 수 있는 무한한 힘이 있다는 등의 많은 얘기를 육중하게 담고 있다.

프랑스 소설가 장 지오노가 1953년 리더스 다이제스트에 발표한 이 소설은 주인공이 1910년대 우연히 남프랑스 고원지대를 도보로 여행하다 만난 '나무를 심는 사람' 엘제아르 부피에에 관한 얘기다. 지오노는 부피에에 대한 기록을 1950년대까지 담담하게 40여년간 기록해간다. 부피에의 삶이 땅에 대해, 생명에 대해 경건하듯이, 지오노의 필체 역시 아무 가식 없이, 미사여구 없이, 순수의 땅에 대한 순수의 경배의식처럼 담담하다. 그러나 순수의 힘은 대단한지 그 요란하지 않는 삶의 기록에 뭉클한 메시지를 전달되어진다.

단지 이 책에 대해 한 사람의 꾸준한 노력으로 프로방스의 황무지가 거대한 숲으로 바뀐 기적이 실현되었다는 식으로 간단히 얘기할 수 없다. 흔히 얘기하는 환경이나 생명의 시각으로 접근하는 것도 좀 협소하다는 생각도 든다. 부피에가 심은 것은 단지 나무가 아니라 인간이었으며, 변화시킨 것은 생태계가 아니라 인간사였다.

몇십년 묵묵히 한 길을 걸어온 사람을 만나면 인생의 무게가 느껴진다. 이러한 인생의 무게를 묵중하게 느껴보길 원하는 사람에게 이 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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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것은 무엇을 남길까
박완서 지음 / 세계사 / 200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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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것은 무엇을 남길까>. 최근 나온 박완서씨의 산문집이다. 그러나 여기에 실린 글은 최신작은 아니다. 그동안 박완서씨가 출간한 책이 수십 권에 이르렀는데, 그 중 다섯 권 정도가 절판되었다고 한다. 이 다섯 권에 실린 글 중을 추스려서 한 권의 책으로 묶은 것이다. 이 책의 출판사는 '박완서 문학 30주면 기념!'이라는 거창한 이름을 붙였으나, 여기에는 동의 못해도 의미 있는 작업이자 다행스런 산문집이라는 느낌은 지울 수 없다.

그동안 박완서씨의 책을 많이 읽어왔다고 생각했기에 그래도 몇 편의 글은 예전에 읽지 않았을까 하는 했으나, 모든 글이 새롭게만 느껴진다. 아무리 많이 읽었어도 그 이상으로 박완서씨가 다작하는 작가라는 생각이 새삼스럽게 든다.

박완서씨의 시선은 거창한 주제나 범인이 쉽게 보지 못하는 사물에 초점을 맞추지는 않는다. 그저 삶을 살아가는 과정에서 쉽게 눈에 뜨이고 누구나 고개를 끄덕거릴 수 있는 주제를 잡아 얘기의 실타래를 끌어낸다. 그 얘기는 생활의 향기가 묻어난 얘기이기도 하고, 고향의 향기가 묻어난 얘기이기도 하고, 사회문제에 대한 단상이기도 한다. 이러한 얘기를 요술 항아리에서 쌀 퍼내듯 술술 끌어낸다. 이게 박완서씨 글의 최대의 매력이다.

<아름다운 것은 무엇을 남길까>는 이 매력 외에 또 하나의 즐거움을 건질 수 있다. 바로 박완서씨의 70년대, 80년대, 90년대 글을 한꺼번에 섭렵할 수 있다는 점이다. 오래 전 얘기라 할지라도 생동감이 떨어진 점은 거의 없다. 간혹 7,80년대의 옛적 분위기가 느껴지는 글이 있으나, 전혀 고리타분하지 않다. 왜냐하면 우리가 읽는 것은 7,80년대의 사실이 아니라 박완서씨의 남다른 시각, 감칠 맛 나는 글 맛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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