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방에 가서 책 세 봉지(!)를 샀다.
점원이 한 권은 덤으로 준다고 셈하지 않았다.
그동안 꼭 사보고 싶었던 책을 구할 수 있었는데, 덤까지 준다니 기분까지 상쾌해진다.
청어람미디어에서 심혈을 기울인 책 <현산어보를 찾아서>(전5권) 네 권을 구했으니,
그 출판사 매출에도 도움이 될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헌책방이니까...

돌아와 꺼내놓고 한권 한권 다시 들춰보는데,
선수들은 다 안다. 누군가 읽은 책인지, 아닌지를...
두어 권을 빼놓고는
전부 다 새 책이다.
책 외장에 다소 먼지가 뭍은 것을 헌책이라 하는가.
뭍은 먼지야 털고 닦아내면 되는데...
그리고 어쩌면 독자 누군가의 손때 묻은 정취가 그리워
헌책방을 찾기도 하는데...
헌책방의 책들도 대부분이 새책이라는 사실에
한순간 먹먹해지기도 한다.

왜 사놓고 보지도 않는가? 라고 생각하다가
어디 서점 하나가 땡처리했나 하고 생각도 하다가...



친구 어머님 영전에 향불 사르러 단양으로 나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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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8-10-31 2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향에 가면 배다리 헌책방 거리를 순례하겠다고 벼르다가 고작 한 군데 허둥지둥 들러오곤 합니다.
퀘퀘한 냄새가 처음에는 반갑지 않지만 한 두 시간 투자하면 절판도서나 품절도서를 횡재하죠.
가슴팍에 책 봉지를 품고 희색을 띄며 돌아오셨을 그림을 제 멋대로 상상합니다.

달빛푸른고개 2008-11-03 1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배다리라면 혹 동인천역에서 약간 떨어진 부근의 책방골목을 말씀하시는지요. 지나가며 그 풍경을 본 기억이 있습니다. 헌책방골목의 그 풍경은 아마도 앞으로도 크게 변하지 않겠지요. 평화시장 근처도 30년 전과 별로 달라지지 않았듯이..
 


마라도에 가면 시인의 자장면을 맛볼 수 있다
낮엔 자장면 만들고 밤엔 시 쓰는 류외향 시인의 사랑이야기

  강기희 (gihi307)


 




 







  
▲ 마라도. 천연기념물 제423호로 지정된 마라도. 곳곳이 비경이다.
ⓒ 강기희
마라도



 

그녀를 처음 만난 것이 언제인지 확실한 기억은 없다. 몇 해 전의 일인지도 기억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그녀를 자주 혹은 아주 가끔 만났다. 일년에 서너 번 만나는 일도 자주 만나는 편에 속하는 일이니 만남의 시간과 자리가 중요하진 않았다.

 

마라도 총각과 결혼한 류외향 시인 "저, 지금 마라도에 살아요"

 

작가들의 모임 자리에서 만난 적도 있고, 바닷가 어느 마을에서 만나기도 했다. 기억에 남는 그녀와의 만남은 평택 대추리였다. 당시 평택에 살고 있던 그녀는 미군기지 확장 반대 운동 진영에 발을 들여놓고 있었다. 대추리에 갈 때마다 그녀를 만나는 일은 자연스런 일이었다.

 

그녀는 시 잘 쓰는 류외향 시인이다.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 그녀는 미혼의 시인이었다. 지난해 여름 이후부터 결혼설이 심심찮게 들려오더니 급기야 그 해 겨울 결혼식을 올린다는 메일이 날라왔다. 하지만 나는 그녀의 결혼식에 가지 못했다. 그런 이유로 그녀의 마음을 훔쳐간 남자가 누구인지 더욱 궁금했다.

 

지난 일요일(7일) 한국문학평화포럼에서 진행한 <마라도문학축전>에 참가하기 위해 마라도에 갔다가 류외향 시인의 반려자인 원종훈씨를 드디어 만날 수 있었다. 국토 최남단인 제주 앞바다에 있는 마라도의 <마라원자장집>에서 였다. 그녀는 마라도에서 남편인 종훈씨와 자장면집을 운영하고 있었다.  

 

대구가 고향인 그녀. 도시 생활을 하면서도 버릴 수 없었던 경상도 사투리는 여전했다. 부산이 고향이라는 종훈씨 역시 경상도 사투리가 섞여 나왔다. 언어 소통에 문제가 전혀 없을 듯 싶은 두 사람. 우리는 간혹 알아 듣지 못하는 말이 있었지만 둘은 척척 알아 듣고 대답했다.

 

두 사람이 운영하는 자장면집은 남편 성을 따서 '마라원자장'이다. 마라도에서는 네번 째로 생긴 자장면집이며 지난 3월 가게 문을 열었다. 마라도 선착장에서 가장 가까운 집이라 눈에 금방 들어오는 두 사람의 집. 종훈씨는 자장을 볶고 그녀는 남편을 도와 손님을 맞았다.

 

결혼 이후 처음 만나는 시인 류외향. 헐렁한 옷차림이 시선을 오래 붙들고 있었다. 손님이 떠난 탁자를 치우는 모습이 조심스러워 보이는 것도 예전과 다른 모습이었다. 무슨 일이 있었을까.

 

"올 12월이 출산 예정이에요."

 

그녀는 임신 중이었다. 바다 바람에 얼굴이 푸석해진 것인 줄 알았더만 그것이 아니었다. 소중한 생명 하나 품고 있는 그녀가 겨울이면 아기 엄마가 된다고 했다. 결혼 한 지 1년 만의 일이니 경사가 따로 없다. 

 

등대 하나 성당이 하나, 교회가 하나 사찰이 하나, 초등학교가 하나인 마라도는 상주 인구라 해봤자 40여명 밖에 되지 않는다. 사람 걸어다니는 게 다 확인 될 정도로 작은 섬인 마라도는 천천히 걷는다 해도 30분이면 섬 일주를 할 수 있다. 그렇게 작은 섬이며 국토 끝인 마라도에 두 사람이 신접살림을 차린 것이다. 두 사람은 어떻게 만났으며 어떤 연유가 있어 마라도에 정착했을까.

 







  
▲ 시인의 마음을 훔친 남자. 류외향 시인의 발을 마라도에 묶어 둔 남자 원종훈씨. 자장을 볶고 있다.
ⓒ 강기희
자장면









  
▲ 시인의 집. 류외향 시인이 남편 종훈씨와 함께 신혼살림을 차린 곳인 마라원자장면집. 마라도에 오르면 가장 먼저 보이는 첫 집이다.
ⓒ 강기희
마라원자장



 

두 사람이 처음 만난 것은 2007년 1월 초. 당시 류외향 시인은 마라도의 유일한 사찰인 기원정사에 머물고 있었다. 2006년 기원정사는 작가들에게 절을 개방한다며 창작실로 내놓았다. 그때 류외향 시인이 마라도를 찾았다. 2006년 12월이었고, 2007년 1월 마라도를 떠났다.

 

마라도에 머물던 시인을 본 노총각 종훈씨 "첫눈에 꽂혔어예"

 

한 달 정도 기원정사에서 머문 그녀. 그녀의 인생은 그때 새로운 길을 걷기 시작했다. 당시 36살의 미혼인 류외향 시인과 46살인 총각과의 만남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당시 마라도에서 횟집을 하고 있던 종훈씨의 집에 그녀가 손님으로 찾았던 게 일의 발단이었다.

 

"다른 집은 다 문을 닫았는데 종훈씨 집만 불이 켜져 있었어요."

 

뭍에서 그녀를 만나러 몇몇 작가들이 마라도를 방문했을 때 그녀는 종훈씨의 횟집으로 갔다. 밤 늦은 시간까지 이어지는 술자리. 자연스레 처녀 총각은 안주거리가 되었고 일행들은 두 사람에게 잘해보라며 '작대기'를 놓기도 했다.

 

"세 번째 만났는데 이 사람이 제게 프러포즈를 했어요."

 

종훈씨가 술 기운을 빌어 그녀에게 청혼을 한 것이다. 그녀도 싫지만은 않았다. 하지만 그날은 그냥 웃어 넘겼다. 네 번째 다시 만났을 때는 그녀가 '진담이었냐'고 물었다. 종훈씨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녀가 마라도를 떠나기 전 일주일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다.

 

2007년 1월 그녀는 찬바람을 맞으며 마라도를 떠났다. 두 사람의 인연은 그렇게 끝나는가 싶었다. 그녀 자신도 여행지에서 일어날 수 있는 에피소드 정도로 생각하기로 했다. 그녀가 살고 있는 평택과 마라도는 너무도 먼거리였기 때문이었다.

 

답답했던 것은 종훈씨였다. 인연이라 생각했던 그녀가 떠나자 견딜 수 없었다. 종훈씨는 결국 횟집 문을 닫고 그녀를 만나기 위해 평택으로 갔다. 한 달 가량 머물 예정으로 종훈씨는 그녀의 집 근처에 방을 구했다. 

 

다시 만난 두 사람은 사랑의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사랑이 급속도로 진행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이젠 헤어지는 것도 싫었다. 밤이면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는 것도 의미가 없었다. 종훈씨는 방을 뺐고, 두 사람은 일주일 만에 한 방을 쓰기로 했다. 사랑의 완성이었다. 그리곤 양가 집안에 인사를 올리고 2007년 초겨울 결혼식을 올렸다. 

 

두 사람은 결혼식이 끝나자 종훈씨가 하던 횟집에 신접살림을 차렸다. 그리곤 지난 3월부터 메뉴 중에서 자장면을 추가했다. 기껏해야 한 시간 정도 머무는 것이 고작인 관광객이 허기를 채우기엔 자장면이 가장 효율적인 음식이기 때문이었다.

 







  
▲ 시인이 만든 자장면. 마라도 해물자장면 맛 한 번 보실래요?
ⓒ 강기희
자장면









  
▲ 저 이제 마라도에 살아요. 마라도에서 시도 쓰고 자장면도 만드는 류외향 시인.
ⓒ 강기희
마라도자장면



 

남편 종훈씨가 마라도에 살기 시작한 것은 10년 쯤. 마라도로 낚시를 왔다가 그냥 눌러 앉았다. 종훈씨가 횟집을 연 것은 7년 전쯤. 횟집을 할 때만 해도 경쟁이 아니었지만 자장면집으로 만들면서는 주변 자장면집과 경쟁도 시작되었다.

 

시인이 만든 해물자장면은 이제 마라도의 명물

 

그래서 만든 메뉴가 해물짬뽕과 해물자장면이다. 마라도에서 많이 나는 톳을 말려 가루로 낸 다음 그것을 이용해 만든 면이라 면발에서 싱싱한 바다 냄새가 깊이 배어 나왔다. 얼큰 한 것을 좋아하는 이들에겐 해물짬뽕 국물을 들이키는 것 만으로도 마라도에 온 보람이 있다.

 

오래 전 개그맨 이창명이 마라도 앞바다에서 '자장면 시키신 분~' 하는 광고로 인해 유명세를 타기 시작한 마라도표 자장면 가격은 현재 5천원. 운임비와 재료값이 올랐다지만 마라도의 자장면집이 받는 가격은 예전 그대로이다.

 

마라도에 가면 다른 것은 몰라도 자장면 만큼은 꼭 먹어야 마라도 다녀왔다고 말할 수 있는 마라도표 자장면 맛의 비결은 태평양에서 불어오는 상큼한 바람과 시인의 손에서 만들어지는 정성이겠다. 그녀에게 지금까지 가장 많이 팔아 본 게 몇 그릇이었냐고 물었다.

 

"지난 여름인데 200그릇 정도 팔았어요."

 

서울 동대문에서 순대국집을 하던 한 시인은 하루 매상이 10만원도 되지 않아 결국 문을 닫아야 했지만 류외향 시인의 자장면집은 적어도 그럴 일은 없을 듯 했다. 문득 처녀 시절의 그녀 모습이 생각나 자장을 볶고 있는 종훈씨에게 물었다.

 

"외향씨가 처녀 시절엔 가끔 울었는데 요즘은 울지 않나요?"

"그래예? 지금까지 그런 모습 한 번도 본 적이 없습니더."

 

시인 류외향은 처녀 시절 술자리에서 자주 울었다. 곁에서 보기엔 우는 이유가 없는 듯싶었지만 그녀는 어느 순간 두 무릎을 감싸 안고 소리없이 울었다. 누군가 우는 걸 말려야 하는 거 아니냐고 말하면 또 누군가는 "외향이 술 마시면 잘 우니까 그냥 둬"라고 말했다.

 

시인의 눈으로 바라보는 세상이 지겨워 울었던 것인지 혹은 답답하게 흘러가는 현실이 무거워 눈물을 흘린 것인지 그것도 아니면 지독한 외로움을 견디지 못하고 울었던 것인지, 어느 누구도 그녀가 우는 이유를 정확하게 이해하는 이는 없었다.

 







  
▲ 자장면집 벽의 낙서. 류외향 시인이 운영하는 마라원자장면 집 벽에 쓰여져 있는 낙서들.
ⓒ 강기희
낙서









  
▲ 국토 최남단비. 마라도에 가면 국토 최남단비가 있다.
ⓒ 강기희
마라도



 

류외향 시인 "행복해서 울 틈도 없어요"

 

종훈씨의 말대로 결혼 후 그녀가 한 번도 울지 않았다면 홀로라서 울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멀리 바다에 갔어. 죽으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어. 그 많은 물의 넘실거림이란. 외경이었어. 우린 모두 물고기의 자식이었어. 그 속에 들면 요나처럼 살 수 있을 것 같았어. 한 발을 내밀었어. 일생이 축축하고 흥건하게 젖어 들었어. 젖는다는 것. 표피 속으로 점령해 들어오는 물의 기억이었어. 한 발을 더 내밀었어. 이렇듯 저항 없이 감싸일 수 있다는 것. 갑각류의 외피가 벗겨지는 순간이었어. 찰나가 지나가고 비늘 없는 인어가 바다 속을 유영하는 걸 보았어.

 

사랑이 병처럼 깊었어

단지 그뿐이었어

 

- 류외향 시집 <푸른 손들의 꽃밭>에 수록된 시 '깊고 명료한 슬픔' 중에서

 

그 무렵 쓰여진 작품인 듯싶다. 사랑이 병처럼 깊었던 류외향 시인은 남편 종훈씨를 만나면서 그동안 단 한 번도 마음 내주지 않았던 지난 생을 접었다. 그리고는 그녀 스스로 외피를 벗고 비늘 없는 마라도의 인어가 되었다.

 

외로운 바다, 고독한 섬에서 만난 두 사람의 사랑이야기가 전설처럼 시작된 곳 마라도에 가면 시인이 살고 있는 자장면 집이 있다. 시인이 만든 자장면엔 해물만 들어있는 게 아니라 시인이 바다에서 건져 올린 시가 한 편씩 들어 있는 듯하다. 그래서인지, 류외향 시인이 만든 자장면을 먹고 나면 싱그런 바다향이 잔설처럼 오래 남는다.

 

모두가 떠나는 시간이 되면 손 꼭 잡고 떠나는 자를 배웅하는 사이, 그녀의 뱃속에 든 아기도 세상이 궁금해 발길질을 시작한다.

 

"우리가 가긴 힘드니 언제든 마라도로 찾아 줍서."

 

대한민국 국토 최남단 마라도에 가면 시 잘 쓰는 시인이 만든 자장면을 맛 볼 수 있다. 전날(6일) 밤 기원정사에서 묵는 날 그녀의 남편이 준비한 벵어돔 회를 멀미 때문에 한 점도 먹지 못했으니 언젠가 마라도를 다시 찾아 그 맛을 꼭 보리라.  

  







  
▲ 등대와 성당 마라도에서는 뭍에서처럼 종교간 갈등이 전혀 없다.
ⓒ 강기희
마라도







  
▲ 기원정사. 마라도에 있는 유일한 절집인 기원정사 마당. 류외향 시인의 인생이 바뀐 장소이다.
ⓒ 강기희
마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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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푸른고개 2008-09-18 09: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류외향, <푸른 손들의 꽃밭>(실천문학의 시집 172), 실천문학사. 2007

소나무집 2008-09-18 1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라도,
시댁이 제주라서 언젠가 한 번 가보리라 마음먹고 있었는데
시인이 살고 있는 줄은 몰랐네요.
류외향, 시인의 이름을 마음에 새겨둘랍니다.
마라도에 가면 꼭 자장면을 먹고 와야 한다는 이야기는 들었어요.
제주도 사는 큰댁 식구들도 먹었다고 하던데 어디서 먹고 왔는지는 모르겠네요.
님의 글을 읽고 나니
마라도가 우리나라 최남단에 있는 섬이 아닌
아름다운 사랑이 피어나는 시인의 섬으로 기억될 것 같아요.

달빛푸른고개 2008-09-18 13: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얼마전, 제주에 사는 후배 하나가 훌쩍 김포에 내려서 찾아왔습니다. 서울 생활을 접고 고향으로 내려가 학원운영을 시작했는데, 채 2년을 버티지 못하고 구직차 올라온 길이라고 합니다. 한치 앞을 내다보기가 쉽지 않은 세상정황에 대한(본인이던, 모든 사람들이던간에)한숨을 막걸리잔에 녹여보곤 했습니다. 사람살이가 어디라서 특별히 다르지는 않겠지만, 역시 제주의 빼어난 풍광만큼은 손색이 없겠지요. 저도 몇 번 찾아가본 적이 있었는데, 서귀포 앞바다가 저기쯤 보이는 서점이 꽤 인상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제가 사는 마을(물론 지리적인 의미는 아닙니다만)의 이장님이 올리신 글을 퍼나릅니다)

죄송합니다 2000원 더 올립니다


금요일 오전에 우체부 아저씨가 다녀갔다.
잡지다. '전라도닷컴'. 두번째 원고를 보낸 것이 얼마전이다.
8월에 곡성소수력발전소 관련한 기사가 나갔으니 연이어 두번째 글을 기고한 것이다.
뒤늦게 '대장장이 박경종' 인터뷰가 종이를 통해서 나가게 되었다.
수록된 원고 확인하고 휘리릭 책장을 넘기고 책상 위에 던져 두었다.
좋은 이야기도 자꾸 하면 지겨운데, 또 하는 소리지만 인쇄된 글을 거의 읽지 않는다.
내가 쓴 글이 수록된 잡지의 내 글도 읽지 않는다. '모양'만 확인한다.
몇 분 후 인터넷질이 지겨워 컴을 끄고 책상 위의 잡지를 다시 잡았다.
책을 보면 나는 항상 머릿글과 목차, 제일 뒷면의 발행 관련 정보를 먼저 읽는다.
책의 본론 보다 주변부 읽기를 더 즐긴다. 그러면 책 한 권 거의 읽은 것과 진배없다는
'배째라' 방식의 독서태도라 할 수 있다.
"죄송합니다. 2000원 더 올립니다." 는 편집장의 읍소가 있었다.
원래 얼마였는데? 3,000원이었다. 그렇군. 그럼 쪽수는? 표지 포함 84쪽이다.
책을 읽지 않으니 책값에 대한 감이 없다. 그렇다보니 이제껏 3,000원이었다면 제법 '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피우는 담배값에 500원 더하면 되는 것 아닌가. 본문을 읽어내려갔다. 어, 기사가 읽혀지네.
광고도 거의 없다. 광고 있다면 하긴 뭔 걱정이겠는가. 읽다보니 이 잡지 골때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부 읽을 내용으로 채워진 듯 하다. 그것은 음반을 한 장 샀는데 1번 트랙에서 10번 트랙까지 중간에
점프하지 않고 모두 들을 수 있는 현상과 같은 '희안한 일'인 것이다.









처음 전라도닷컴에서 원고 청탁이 들어왔을 때 뭐랄까, 워낙 조심스러운 기자의 요청에 '너무 저자세군'
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형식적인 주례사에 가름하는 성격의 요청이 아니었다.
때로 그런 내용의 편지는 불편하다. 나의 특이점인지 모르겠지만 상찬 앞에서 불편함을 느낀다.
그것은 아마도 글과 사진은 절반 사긴데, 편집의 본성은 사긴데, 그것을 통해 타인을 평가하는 일은 아주
위험스럽고 실패 확률 51%를 내장한 판단 방식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포괄적으로 글로 먹고 사는 사람이 기자 아닌가.
누구보다 이런 바닥의 포장지(글, 사진, 우아, 세련…)의 허망함에 대해 잘 알 것인데 말이다.
나의 경험은 그렇더라. 허명 가진 인간의 본성이 그가 가진, 그가 표현한 문장의 표면과 그림의 질감과
목소리의 결과 동일한 경우를 거의 보지 못했다. 평균 이하의 지성들이었다.
인간 지성의 측도는 가방끈의 길이와 우아와 세련을 구사하는 기술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예의에 있다.
만 명 앞에서의 언행이나 한 사람 앞에서의 언행, 강자 앞에서의 언행이나 약자 앞에서의 언행이
일치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지성이다. 또 장광설이지만 그래서 단순히 원고청탁이 너무 저자세라는 이유로
전라도닷컴의 원고 청탁에 대한 개인적인 소감은 그렇게 호의적이지 않았다.
당시로서는 곡성소수력발전소 문제를 한 사람이라도 더 알려야 했기에,
무엇보다 전라도닷컴이라는 제호에서 알 수 있듯이 주요한 독자층이 전라도 사람들일 것이란 판단으로
이미 만들어진 원고를 줄이기만 하는 작업을 응락했다.






전라도와 전라도 아닌 곳





원고 관련 메일을 주고 받다가 물었다.
"왜 전라도닷컴이요?" 딱히 답은 없었다.
물론 전라도닷컴은 전라도 사람, 자연, 문화를 다룬다.
어찌보면 아무 문제 없는 제호이지만 대한민국의 문화지형에서 그런 제호는 독자층까지 전라도로 한정시킨다.
이를테면 '서울닷컴' 이라는 잡지가 있다고 가정하자. 별 문제없다.
서울이야기겠지, 서울 구경하는데 정보라도 되나, 서울민국이니 한국닷컴이네...
하지만 대한민국에서 2008년 현재까지 '전라도' 라는 수식어는 가장 강력한 지역성과 편견을 내장하고
있는 단어에 해당한다. '전라도'라는 수식어는 전라도를 벗어난 지역에서는 그다지 큰 장점으로 작용하지 않는다.
오히려 특정한 조직이나 집단 내에서는 단점으로 작용한다. 그것은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자 사실이다.
선거개표방송이 저녁 8시만 넘어가면 화면의 전국 지도는 확연하게 '전라도'와 '전라도 아닌 곳'으로 나누어진다.
화면의 그 '색깔'이 스스로 지겨워, 때로는 울화통에 반작용으로 전라도에서 한나라당이 10 명 정도 당선되면
전라도에 대한 편견의 일각이라도 허물어질까. 그래서 '전라도닷컴' 이라는 제호에 대한 내 질문의 본의는
'정말 이렇게 까놓고 해 보잔 말이요?'일 것이다. 이런 불순한 본의는 전라도 땅에 전입신고한지 2년 지난
경상도 남자가 발언하기에 부적절한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전라도 사람이 의식적으로 전라도 욕을
하는 것과 경상도 사람이 의식적으로 전라도 사람을 칭찬하는 것 모두 듣기 싫은 사람이다.
전라도나 경상도나 좋은놈, 나쁜놈, 이상한놈들이 모두 섞여 살고 있을 뿐이다. 좀 더 부연하면
'전라도닷컴' 이란 제호는 시작부터 불이익을 감수하고 들어가는 것 아니냐는 것이 내 질문의 뼈다구다.









잡지 전라도닷컴이 힘들다.
잡지가 힘들단 소리는 계속 책을 만들 돈이 없단 소리다.
잡지 전라도닷컴이 발행되지 않는 것은 특별한 일인가? 아니다.
모든 잡지의 최종 모습은 폐간이다. 돈이 없어 당하는 폐간은 잡지의 자연死에 속한다.
잡지 전라도닷컴은 대단히 오래 버티었다. 통권 78호다. 종이 책으로 만든 것이 2002년 3월이다.
만으로 6년을 더 버티었다. 계간지도 아닌 월간지다. 잡지가 6년을 버틴다는 것은 아주 힘든 일이다.
잡지 만들어 본 사람들은 안다. 우리가 아는 귀에 익은 잡지는 누군가 큰손에 의해 돈을 공급받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지 않고서 잡지가 그 자체의 힘으로 6년을 버틴다는 것은 대한민국에서는 불가능하거나
만드는 사람들이 미쳤거나 둘 중 하나에 속한다.
잡지 전라도닷컴도 누군가로부터 돈을 지원받았다. 광주발 유통업체인 '빅마트'가 그 장본인이다.
잡지 전라도닷컴은 웹진 즉, 온라인 상의 하나의 사이트로 출발했다.
전남일보에 근무하던 황풍년, 남신희, 남인희, 임정희, 김한식 기자 등이 전라도닷컴이란 웹진을 만들었다.
듣자하니 아마도 전남일보에서 노조 어쩌구 하다가 짤린(게 아니라 집단사표로 판명) 모양이다.
그 싸움이 그리 격렬하지 않았는지 소문낼 일은 아니라고 한다.
2000년 초반에 제법 잘 나가던 빅마트 하상용 대표는 이익을 사회로 환원하는 문제를 고민할 무렵
바로 이 집단사표팀을 발견한다. 지원을 시작하고 웹진이 만들어지고 이어서 종이책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아주 독특하고 있을 수 없는 일이 있었는데, 70여호에 이르는 발행 기간 동안 잡지의 내용과 편집권에 대해
돈을 지원한 사람이 '단 한 글자도' 관여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한양 시절 아주 잠시 이상한 위성채널에서 일을 한 이장은 당시 3~4회 발행한 월간 잡지의 편성에 대해 경영진이
관여하기 시작하는 과정을 구경할 수 있었다. 누구를 인터뷰 해달라거나 무엇을 취재해 달라거나.
그렇게 되면 만들고 싶은 책을 만들 수 없다. 그러면 이장은 자신의 노가다에 영혼을 제공하기 힘들다.
그러면 가벼운 중이 무거운 절을 떠나는 수밖에 없다. 다행인지 떠남과 문 닫음이 동시였지만.

잡지 전라도닷컴은 그렇게 빅마트의 재정적 후원을 기반으로 1천원짜리 굴러다니는 잡지를 슬로건으로
세상에 나왔다. 이번에 나 온 9월호로 78호를 내기까지 두 차례 판형을 바꾸었다. 천 원 천 원 올린 것이
현재 3천원짜리가 되었고 다음 달부터는 5천원짜리가 된다. 박리박매의 시절은 끝이 났다.
지지하고 후원해 준 모기업 빅마트는 이제 아주 힘들다. 서울의 큰 유통회사들이 광주로 진입하면서
상대적으로 '구멍가게' 빅마트는 실질적으로 거의 넉다운 상태다.
홈플러스, 이마트, 전자랜드, 롯데마트 같은 이름은 동네 구멍가게들에게는 모르도르의 사우론 같은 이름이다.
'빅마트'는 역시 '전라도에서나 빅' 이었다. 16개 매장의 대부분을 큰손들에게 넘겼다. 그것은 사실 정해진 수순이었다.
빅마트 때문에 문 닫은 동네 골목 어귀의 진짜 구멍가게가 생기면서부터 큰 놈은 더 큰 놈에 의해 무너진다.
내가 빅마트에 대해서 아는 것이라곤 중간급 규모의 유통업체라는 사실과 파란색이었던 것 같은 간판 정도이다.
하지만 빅마트 하상용 대표의 전라도닷컴에 대한 지원과 No Touch 방침은 큰 박수를 쳐 줄 만한,
쉽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아마도 그런 원칙을 고수하는 모기업은 이후에도 시장경제 논리 속에서
살아 남기 힘들 것이다. 사실 전라도닷컴은 지독하게 돈 안되는 기사만 써는 잡지다.
더 이상의 후원을 기대하기에는 '염치없다는' 판단에 따라 전라도닷컴은 독립을 선언했다.
이 용감한 선언은 2007년 11월에 있었고 용감함에 비례해서 전라도닷컴 12월호는 발행되지 못했다.






지역 문화 권력과 손잡지 않았다





<전라도닷컴>은 지역 문화 권력과 손잡지 않았습니다.
지역 자본에 예속되지도 않았습니다. 지역 정치권력 따위를 '빨아주는' 짓도 하지 않았습니다.
가장 전라도스러운 말글로 가장 전라도다운 사람과 자연과 문화를 찾아 글과 사진으로 기록했습니다.
(저는 이보다 더 잘 <전라도닷컴>을 설명하는 표현을 찾지 못하겠습니다.)

기록이 없으면 기억도 없습니다.
지역 주민들의 기록이 없으면 지역 주민들의 기억은 이어지지 못합니다.
토호들만 기록을 하면 토호들 기억만 남게 됩니다. 이른바 '풀뿌리' 인간들은 갖가지 권력을
한 손에 틀어쥔 토호들로 말미암아 왜곡된 모습으로만 남게 됩니다.


김훤주(전국언론노동조합 경남도민일보지부 지부장)


이 인용문으로 처음 만나는 김훤주 기자의 글은 딱이다.
전라도닷컴이 어떤 잡지였고 전라도닷컴에서 다룬 내용이 무엇이었는지 가장 간명하고 강렬하게
표현하고 있다.
잡지 전라도닷컴은 전라도를 벗어나서 그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진 잡지는 아니다.
지리산닷컴의 주민들 중 70% 정도를 차지하는 '전라도 이외 지역' 사람들은 아마도 이런 잡지를
알지 못 할 것이다. 전국 모든 서점에 '깔려 있는' 잡지가 아니다.

작년(2007년)에 형이 사무실 책장에 전라도닷컴 과월호 몇 권을 들여 놓기 전에는 나 역시 그런 잡지를
알지 못했다. 책장 정리하면서 휘리릭 넘겨 보았다. '이것은 지리산닷컴이군.' 이라는 것이 나의 소감이었다.
지리산닷컴에서 다루고자 하는 컨텐츠 방향과 일치했던 것이다.
그리고 든 생각은 '몇 명이 만드니까 좋겠다.'는 것이었다. 뭔 개끈 풀린 똥개 마냥 혼자 하고 싶은대로
만드는 지리산닷컴으로서는 물리적인 이동의 한계를 가장 많이 절감하기 때문이다.
당시 지리산 동부권에서 사진과 글이 되는 인력을 찾으려 했던 시기였다.
좀 더 나아가, 책을 읽지 않는 이장이 하고 싶은 일 중 하나는 종이 잡지 '계간 지리산닷컴'을 만드는 것이다.
잡지는 팔리지 않는 것이 당연하고 이런 잡지는 절대 팔리지 않는 것이 정답인데도 인간은 때로 모니터가
아닌 어떤 촉감으로서의 결과물을 희망할 때도 있다. 그런데 이런 공상 보다 6년 앞서 지리산이 아닌
전라도라는 아이템으로 이미 잡지를 만든 사람들이 있었고 그 잡지가 전라도닷컴이었다.

K리그는 인기없지만 월드컵은 모두 열광적으로 보듯이 대중들의 기호는 '중앙' 또는 '서울'에서 일어나는
사건 사고가 자신의 하루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뉴스일 것이라는 착각 속에서 살아간다.
부산에서, 전라도에서 살면서 가끔 서울에서 송출되는 방송 중에 남산 터널이 정체중이라는 따위 소식이나
서울 날씨를 모든 지역의 사람들이 그때마다 듣고 보아야 하는 상황은 불합리하다.
세상을 바꾸는 일도 그러하다. 이명박이 돈놀이했다 안했다는 사실을 파헤치는 동안, 한정된 서울의 지면에
지방 군수가 돈 먹었다, 먹지 않았다는 논란이 자리할 여백은 없다. 문제는 '서울'에서 만들어지는 그 어떤
지면이건 사이트에서건 '나의 소식'이 올려지는 일은 '지방 사람들'에게는 사활적인 문제다.
그래서 언제나 지방의 문제는 사소한 문제다. 서울은 서울지방이 아니다. 서울을 제외한 모든 지역만 지방이다.
서울을 벗어난 지역에서 어떤 형태의 권력이건 그 힘에 맞서는 언론을 만나는 일은 쉽지 않다.
글이 권력에 맞서기 위해서는 자본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 이른바 지방에서 이런 독립성은 더욱 힘들다.
전라도닷컴이란 제호 때문에 이 잡지를 전라도의 어느 기관이건 지자체에서 후원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사실무근이다. 제발 지자체로부터 돈 한 푼이라도 지원받았으면 좋겠다.
전라도닷컴으로 인해 전라도를 찾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결과적으로 전라도닷컴의 진솔한 기사들이
전라도를 이해하는 작은 통로로 기능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문화수도 광주'의 문화, 정치, 돈을 가진
권력들은 이런 잡지 하나 지켜내지 못하는가? 문화수도는 뭔 개뿔이나… 수도꼭지다.









저는 신상에 변화가 있었습니다.
8개월의 실업급여기간이 끝났고
전라도닷컴에 다시 법적으로 고용이 돼야 하는 상황에서 '비정규직'을 택했습니다.
출근의 의무를 벗고 아주 작은 급여와 자유를 얻었습니다.


결례를 작정하고 내가 받은 메일 중 한 대목을 인용한다.
이 글을 위해 몇 가지 질문과 답변을 주고 받는 중에 나온 지나가는 이야기들이었다.
잡지 전라도닷컴은 2007년 12월호를 발행하지 못했다. 전라도닷컴을 아끼는 사람들이 나섰다.
자발적인 구독료 인상과 광고운동이 있었고 모금을 위한 행사도 있었다. 누군가는 자신 소유의 건물
2층을 사무실로 내어주기도 했다. 물론 무상이다.
2008년 1월호를 다시 볼 수 있었다. 잡지 전라도닷컴을 한번 발행하는 제작비는 1천만원 정도다.
그 자금 마련이 우선이었기에 위 메일 내용이 의미하는 '작전'을 알겠다. 8개월의 작전은 끝이 났다.
잡지는 만들어야 하고 복귀를 해야 한다. 하지만 모두가 복귀하면 최소한의 파이가 더 작아진다.
누군가는 외곽에 머문다. 지출을 줄이는 작전이다. 작전은 보통 멋있어야 하는데 이 작전은 처절하다.

아마 2005년 일일 것입니다.
어떤 분이 구독료를 한꺼번에 입금했는데 구독관리시스템에
구독종료기간이 201002라고 표기돼 있더군요
숫자를 보고 눈물을 흘린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을 것입니다.
손으로 꼽아보니 그게 96호가 나오게 될 달이더군요.
100호까지는 만들어 보자고… 그때 그런 결심을 했던 것 같습니다.


시사저널 사태의 결과로 '시사인'이 생겼다. 좋은 일이다. 서울에서 발생한 일이기에 '시사인'은 가능했다.
그런 도움의 10% 정도면 전라도닷컴은 계속 발행될 것이다. 그 10% 정도의 도움에 약간 힘을 보탤 요량으로
오늘 이 글을 쓰고 있다. 하지만 그런 도움의 10%는 달성하기 아주 힘든 십시일반이다.
전라도닷컴은 삼성 문제 정도의 특종을 할 가능성이 거의 없는 잡지이기 때문이다.






평민의 평민에 의한 평민을 위한 기록





높은 데보다 낮은 데를 주목할 것
화려한 것보다는 소박한 것을 찬미할 것
책상머리가 아니라 현장을 찾아갈 것
넥타이 맨 양복쟁이들은 피할 것
그 자신의 삶이 도서관이고 박물관인 노인들의 삶을 존중할 것
순 전라도말을 귀하게 받자올 것
개발보다 보존의 편에 설 것
인간과 생태계 전체의 온생명의 목소리를 동등하게 받아들일 것
장애인 여성 어린이 등 소수자들의 의견에 귀기울일 것
이 땅의 이른바 또라이들의 대변인이 될 것
들에서 바다에서 일하는 이들의 삶을 으뜸으로 받들 것
전라도 안에 취재의 근거를 두되 반듯이 전라도를 넘어서 보편타당한 이야기를 할 것
단지 박제된 과거의 향수가 아니라 오래된 미래를 이야기할 것…



역시 주고 받은 메일의 일부분이다. 잡지 전라도닷컴이 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길건 짧건 '알아먹기 쉽게' 설명해 달라는 나의 물음에 대한 답이다.
나는 평민의 평민에 의한 평민을 위한 기록이라는 한 줄로 받아들였다.
답신 메일을 좀 더 아래로 나열한다.


그리 등 두드려 주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내 좋아서 하는 일인데 말입니다.
전라도 골 깊은 곳에 이르는 실핏줄 같은 길을 더듬어 갈 때,
고샅길이든 밭두렁이든 아무데나 함부로 앉아
거기서 만난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얘기를 들을 때
가슴 속이 참 다수웠습니다.
책에서 읽지 않고 삶에서 체득한 대로 사는 어르신들의
꾸미지 않은 이야기를 받아 적을 수 있는 '특권'이 송구하기도 하였습니다.
구석진 마을의 착한 사람들을 만나러 다니는 일
그런 일들의 재미를 마다하기는 뉘라도 쉽지 않을 것입니다.


위에서 표현한 '특권'이라는 말에 깊이 공감한다. 나 역시 그런 특권을 누리는 사람으로서
그 기분에 120% 공감한다. 그것은 여행길에 우연히 주워 담을 수 있는 '말씀들' 아니다.
같은 말이라도 누구에게는 소리가 되고 누구에게는 말씀이 된다.
소리가 말씀이 되는 원리는 소리라는 표면 아래를 흐르는 진의를 이해할 때 말씀으로 진화한다.
같은 소리 '새끼'는 때로는 욕이 되고 때로는 지극한 사랑의 표현이 되기도 한다.
그 말씀들을 전하는 일은 귀한 일이다. 지리산닷컴이 하고 싶고 흉내 내고 있는 일이다.
그러나 지리산닷컴 보다 6년 먼저, 그것도 디지털이 아닌 종이로 그 일을 월등히 잘 수행해 온
잡지가 전라도닷컴이다. 이를테면 지리산닷컴의 선배님이시다.









전라도닷컴의 말씀들을 좀 더 살펴보자. 산만하지만 그냥 나열한다.


9월호, 해남 남창장.
다라이 속 문어를 가리키며 관광객 왈 "광주까지 가져가도 살까요?"
문어장시 할매 대답 "금방 디져"

숭어가 싸다. 숭어 찾는 이들이 많다.
30년 동안 어장을 했다는 김병진(64)씨는
"요즘 숭애(숭어)는 가시나하고 입맞추는 것보다 나아"라고 웃는다.
그만큼 단맛이 들어갈 때다. -해남 화원장

이갑순 할머니는 보름 얘기를 하면서 혀를 찬다. 안타까운 기억이 있다.
"보름에 말래에다 밥 노물해서 차려노믄 저녁에 밥 돌르러 오는 풍습이 있어.
상 들고 훈미네(후미진 데)가 갖고 차두에다 싹 비워 갖고 빈 상만 놔두고 가.
그러게 묵으믄 일년 내내 좋다고. 근디 동네 아그 하나가 우리집 밥 돌르러 왔는디
해필 내가 봐 불었어. 근게 내뺐는디 그 놈아가 그 해 월남 가서 죽어 불었네.
못 묵고 살 땐게 걸리고 우리집 밥을 묵었으믄 살아 돌아왔을 것 같기도 하고…."
조순자(71) 할머니가 “시상 탓이제, 언니 탓이요” 한다. -곡성 석곡장

완도 고금도 가교리에서 온 정간심(74) 할머니.
강진 마량까지 와서 버스 갈아타고 장에 왔다.
감태를 순식간에 팔아 해치웠다. ‘오지게’ 값이 쌌다. 한 재기에 천 원.
"갯창에서 주서 온 건게, 싸게 줬어."
다 팔고도 마음에 걸리는 게 하나 있다.
"감투(감태)지 담기가 애라. 잘못 담으믄 쓰고 뻐쳐.
애기씨 하나가 사갔는디, 갈쳐줬는디 잘 할란가 모르겄네."-장흥 대덕장

"광주에서 왔으믄 되게 고생했겄는디.
맨 오르막 길이제. (무주가)전라북도에서 젤로 높은 디여.
호박 따다가 떨어트리믄 군산까정 사정없이 달려가 불어.
호박 잊어분 사람이 많어. 돌아갈 때는 시동 꺼도 문제없이 가불 것이구만."
한 촌로의 입담에 한참을 달려온 노곤함이 온데 간데 없다. 무주장(1·6일)을 찾았다.


잡지 전라도닷컴을 넘기면서 사라진 잡지 '뿌리깊은나무'를 생각했다.
한창기라는 걸출한 사람과 그 사단에 의해 만들어진 그 잡지는 대한민국 잡지史의 전설이다.
글씨와 글과 꾸밈과 그 모든 생각들이 기념비적이라 할만 하다. 하지만 우리는 그 잡지를 잃었다.
서울사람들은 모르는,
부산사람들은 모르는,
대구사람들은 모르는,
대전사람들은 모르는,
원주, 수원, 춘천, 청주, 인제, 영월, 동탄, 신탄진, 경주, 영천, 안동… 사람들은 모르는,
잡지 전라도닷컴은 계속 발행되어야 할 것이다.









잡지 전라도닷컴의 외형은 한마디로 후지다.
우아와 세련과는 거리가 멀다. 제작비와 진행비 팍팍 쏘면서 만드는 잡지가 아니다.
트렌드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니 감각은 도시적이지도 않고 그것을 추구하지도 않았다.
디자이너의 눈으로 볼 때 제호 로고타입은 정체성이 없고 잡지는 너무 많은 서체를 사용하고 있고
사이트는 거칠고 정신없는 구시대 웹진 스타일의 전형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8년 10월부터 오천원이 되는 잡지 전라도닷컴을 지리산닷컴 주민들에게 권한다.
더구나 나는 이 잡지의 주요한 구독층은 전라도가 아닌 지역 사람들이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왜냐하면 잡지 전라도닷컴은 전라도의 진수와 진심을 전라도 아닌 곳으로 널리 멀리 알릴 때에
발행의 의미가 더 깊어진다는 판단 때문이다.
사족으로 전라도를 안내하는 가장 제대로 된 여행가이드북은 이 잡지의 내용이어야 하지 않을까?
오천 명의 정기구독자를 확보하면 잡지 전라도닷컴은 좀 안정적으로 만들어질 수 있다.
이천 명 정도는 더 힘을 보태어야 한다. 개인적으로는 대의에 공감하는 기업이나 지자체의
큰 돈 보다는 작은 돈들이 모여질 때 이 잡지의 독립성을 좀 더 강하게 지켜낼 수 있을 것이란 판단이다.
그래야 이 잡지의 기자들도 초심을 잃지 않는다.
자, 정리 들어갑니다.


1. 잡지 <전라도닷컴>이 계속 발행될 수 있도록 힘을 보태어 주세요.
2. 그 방법은 1개월에 오천 원(5,000원)을 지출하시는 결단을 내리는 것입니다.
3. 이 글을 끝까지 읽을 수 있었던 분들은 전라도닷컴의 기사 전체를 아주 만족스럽게
    구독하실 수 있을 것이라고 이장이 보장합니다.
4. 마음을 정하셨다면 http://jeonlado.com/v2/event02.html
    로 가셔서 즐거운 지출을 감행해 주세요.



이상 이장 마이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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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푸른고개 2008-09-12 16: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달빛푸른고개 : ('홍보'라고나 할까요?) 8월 30일자 '지리산편지'에서 소개해주신 '~ 안내서' 글을 보고, <전라도닷컴> 싸이트에 들어가 정기구독을 신청하니 구독료가 이전 가격인 1년 36,000원(월 3,000원)으로 되어있더군요.

그래서 전화를 넣어 '6만원이 아닌가요?' 하고 여쭸더니, 10월부터 인상한다고 하시더군요. '그러면 10월에 신청할까요?' 했더니 전화 받으신 분이 마냥 웃으시더군요.

전화를 끊고 어찌 할까 생각하다가 왠지 횡재한 기분이 들 것 같아 정기구독 신청을 했습니다.

혹, 구독을 생각중이신 분이 계시면 저처럼 '횡재한 기분'을 느껴보셔도, 아니면 10월까지 기다렸다가 더 큰 도움을 주고받으셔도 좋을듯 합니다.

전혀 모르고 있었던 좋은 책을 소개해주신 이장님의 권유에 감사드리며, 모든 분들 한가위 잘 쇠셨으면 합니다.

달빛푸른고개 2008-09-12 16: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장 : 항의 메일을 보내겠습니다. 시장 질서를 교란하는 행위네요.

소나무집 2008-09-18 1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님의 긴 글을 다 읽기도 전에 정기 구독 결정했습니다.
월급쟁이 마누라다 보니 지금 빨리 정기구독해야겠다는 마음에
지금 전화하러 갑니다.

달빛푸른고개 2008-09-18 19: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라도닷컴 잡지사가 감사를 드릴 것이며, 그리고 제게도 감동을 주신 님께 감사드립니다.
 

코스모스 하늘거리는 길을 따라 풍성한 고향추억 만들고 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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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유토론 ★촛불소녀★소녀들의 상쾌한(?) 아침을 공개합니다! [161]

  • 촛불주영촛불주영님프로필이미지



    • 번호 1906034 | 2008.08.30 IP 211.174.***.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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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강한 얼리버드형이 되고 싶은 소녀들!

    하지만 그녀들 앞을 가로막는 것이 있으니...

     

    야간강제학습과 더불어

    학생들의 자발적인 참여가 아닌 강제적으로 신청서를 걷어서 시키는 ... 아침 0교시

    그런 0교시가 얼마나 비효율적이고 학생도 힘들고 선생님도 힘든 시간이라는 결정적인 증거가 바로 여기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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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시는 이 사진이 그나마 수업을 잘 들을때 입니다.

    17살,18살 한창 꽃다운 나이들에 책상앞에 처박혀 살아온 그 흔적을 보십시오

    저 등이, 저 허리가 소녀들의 모습입니까?

    굽은 등을 보고 어떤 생각이 드세요?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이 앞에 친구 새우등 제대로 찍혔네요

    완전 직각!! = ㅁ=

    저기 가장 왼쪽에 턱 괴고 수업 겨우 듣는 친구를 보세요

    차라리 엎어져 자라고 등을 밀어주고 싶을 지경입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그래도 시험에 나오는건데... 하는 마음에

    싸대기를 스스로 때려가며 허벅지를 꼬집어가며...

    자꾸만 떨어지는 고개들을 한번 보세요...

    같은 반에서 지내는 친구인데도 너무나도 안쓰러워요..ㅜㅜ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0교시가 끝나갈 무렵입니다.

    거의 뭐이건... ㅡㅡ 초토화라고 해도 되겠네요

     

     

     

    얘네가 공부하기 싫어서 수업시간에 자는거다!! 라는 분들을 위해 반박 자료를 준비했습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2교시를 마친 뒤입니다

    이게 쉬는시간입니다.

    그나마 점수 깎일까봐 조마조마 하지 않고 맘 편하게 잘 수 있는 시간이죠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이건 비 오는날 0교시 직후의 사진

    이날은 자고 있는 아이들이 더욱 많아 안쓰러워서 그러셨는지

    수업하시던 선생님께서 나중에 정규수업시간에 마저 더하자며

    졸고 있는 애들을 자라고 수업을 중단하신 사태까지 벌어졌던 날이에요.

     

    저희 학교는 7시 30분까지 등교를 합니다.

    학교 근처에 사는 애들은 7시에 일어나 느긋하게 오지만

    저 처럼 학교에서 좀 떨어져 사는 아이들은 6시에 일어나서 후다닥 준비하고

    그마저도 조금 늦으면 아침을 포기하고 집을 나서야 합니다.

    버스 안에서 서서 졸기도 일쑤에요

    그나마 저는 야자를 겨우겨우 빼서 좀 여유 있는 케이스이지만

    야자 끝나고 10시부터 학원 가서 1시에 끝나는 애들도 수두룩 합니다.

    그렇게 된다면 평균 수면 4시간은 당연한 일이죠

     

    어떻게 생각하세요..?

    제가 아직 다른 반까지 조사할 여력이 되지 못해서 우리반밖에 못 찍었지만

    유독 우리반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저희는 학생이기 전에 사람입니다.

    심지어는 책상 앞에서 공부하다가 자고 또 깨서 공부하고 책상앞에서 밥도 먹어가며 지내는 친구도 있어요.

    이 친구는 벌써 척추층만증으로 병원을 다니고 있고요... 아예 요새는 침대에 누우면 잠이 안온다고 하더군요

    이게 사람이 사는 모습입니까?

    밖에 묶여서 천대받는 개 조차도 자기가 매달린 끈 범위 안에서는 움직이며 놀 수 있습니다.

    바깥 공기를 마시며 살 수 있습니다.

     

    내일을 위해 현재를 희생하라.. 마시멜로의 법칙을 생각하라는 좋은 말도 있습니다.

    하지만 현재는 지금 아니면 절대 돌아올 수 없는 시간이기에 똑같이 소중합니다.

    우린 옆을 가리고 앞만 보고 달리는 경주마가 아닙니다.

    잠깐이라도.. 우리에게 채찍질이 아닌 보살핌과 사랑을 주시면 안되겠습니까?

    다시 한번 우리를 지구에서 살아가는 하나의 생명체로, 하나의 인간으로 봐주세요.

     

    출처 : http://cafe.daum.net/candlegirls 촛불소녀의 코리아

    학교생활보고서 게시팜에서 더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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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노아 2008-08-30 1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진이 한 개도 안 보여요.

    달빛푸른고개 2008-08-30 16: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끔 보이기도 하고, 안 보이기도 하고... 죄송합니다. 서재꾸미기가 서툴러서...

    마노아 2008-08-30 22: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음 카페에서 바로 퍼오셔서 그래요. 가입한 사람만 보이거든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