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사는 마을(물론 지리적인 의미는 아닙니다만)의 이장님이 올리신 글을 퍼나릅니다)
죄송합니다 2000원 더 올립니다
금요일 오전에 우체부 아저씨가 다녀갔다.
잡지다. '전라도닷컴'. 두번째 원고를 보낸 것이 얼마전이다.
8월에 곡성소수력발전소 관련한 기사가 나갔으니 연이어 두번째 글을 기고한 것이다.
뒤늦게 '대장장이 박경종' 인터뷰가 종이를 통해서 나가게 되었다.
수록된 원고 확인하고 휘리릭 책장을 넘기고 책상 위에 던져 두었다.
좋은 이야기도 자꾸 하면 지겨운데, 또 하는 소리지만 인쇄된 글을 거의 읽지 않는다.
내가 쓴 글이 수록된 잡지의 내 글도 읽지 않는다. '모양'만 확인한다.
몇 분 후 인터넷질이 지겨워 컴을 끄고 책상 위의 잡지를 다시 잡았다.
책을 보면 나는 항상 머릿글과 목차, 제일 뒷면의 발행 관련 정보를 먼저 읽는다.
책의 본론 보다 주변부 읽기를 더 즐긴다. 그러면 책 한 권 거의 읽은 것과 진배없다는
'배째라' 방식의 독서태도라 할 수 있다.
"죄송합니다. 2000원 더 올립니다." 는 편집장의 읍소가 있었다.
원래 얼마였는데? 3,000원이었다. 그렇군. 그럼 쪽수는? 표지 포함 84쪽이다.
책을 읽지 않으니 책값에 대한 감이 없다. 그렇다보니 이제껏 3,000원이었다면 제법 '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피우는 담배값에 500원 더하면 되는 것 아닌가. 본문을 읽어내려갔다. 어, 기사가 읽혀지네.
광고도 거의 없다. 광고 있다면 하긴 뭔 걱정이겠는가. 읽다보니 이 잡지 골때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부 읽을 내용으로 채워진 듯 하다. 그것은 음반을 한 장 샀는데 1번 트랙에서 10번 트랙까지 중간에
점프하지 않고 모두 들을 수 있는 현상과 같은 '희안한 일'인 것이다.
처음 전라도닷컴에서 원고 청탁이 들어왔을 때 뭐랄까, 워낙 조심스러운 기자의 요청에 '너무 저자세군'
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형식적인 주례사에 가름하는 성격의 요청이 아니었다.
때로 그런 내용의 편지는 불편하다. 나의 특이점인지 모르겠지만 상찬 앞에서 불편함을 느낀다.
그것은 아마도 글과 사진은 절반 사긴데, 편집의 본성은 사긴데, 그것을 통해 타인을 평가하는 일은 아주
위험스럽고 실패 확률 51%를 내장한 판단 방식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포괄적으로 글로 먹고 사는 사람이 기자 아닌가.
누구보다 이런 바닥의 포장지(글, 사진, 우아, 세련…)의 허망함에 대해 잘 알 것인데 말이다.
나의 경험은 그렇더라. 허명 가진 인간의 본성이 그가 가진, 그가 표현한 문장의 표면과 그림의 질감과
목소리의 결과 동일한 경우를 거의 보지 못했다. 평균 이하의 지성들이었다.
인간 지성의 측도는 가방끈의 길이와 우아와 세련을 구사하는 기술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예의에 있다.
만 명 앞에서의 언행이나 한 사람 앞에서의 언행, 강자 앞에서의 언행이나 약자 앞에서의 언행이
일치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지성이다. 또 장광설이지만 그래서 단순히 원고청탁이 너무 저자세라는 이유로
전라도닷컴의 원고 청탁에 대한 개인적인 소감은 그렇게 호의적이지 않았다.
당시로서는 곡성소수력발전소 문제를 한 사람이라도 더 알려야 했기에,
무엇보다 전라도닷컴이라는 제호에서 알 수 있듯이 주요한 독자층이 전라도 사람들일 것이란 판단으로
이미 만들어진 원고를 줄이기만 하는 작업을 응락했다.
전라도와 전라도 아닌 곳
원고 관련 메일을 주고 받다가 물었다.
"왜 전라도닷컴이요?" 딱히 답은 없었다.
물론 전라도닷컴은 전라도 사람, 자연, 문화를 다룬다.
어찌보면 아무 문제 없는 제호이지만 대한민국의 문화지형에서 그런 제호는 독자층까지 전라도로 한정시킨다.
이를테면 '서울닷컴' 이라는 잡지가 있다고 가정하자. 별 문제없다.
서울이야기겠지, 서울 구경하는데 정보라도 되나, 서울민국이니 한국닷컴이네...
하지만 대한민국에서 2008년 현재까지 '전라도' 라는 수식어는 가장 강력한 지역성과 편견을 내장하고
있는 단어에 해당한다. '전라도'라는 수식어는 전라도를 벗어난 지역에서는 그다지 큰 장점으로 작용하지 않는다.
오히려 특정한 조직이나 집단 내에서는 단점으로 작용한다. 그것은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자 사실이다.
선거개표방송이 저녁 8시만 넘어가면 화면의 전국 지도는 확연하게 '전라도'와 '전라도 아닌 곳'으로 나누어진다.
화면의 그 '색깔'이 스스로 지겨워, 때로는 울화통에 반작용으로 전라도에서 한나라당이 10 명 정도 당선되면
전라도에 대한 편견의 일각이라도 허물어질까. 그래서 '전라도닷컴' 이라는 제호에 대한 내 질문의 본의는
'정말 이렇게 까놓고 해 보잔 말이요?'일 것이다. 이런 불순한 본의는 전라도 땅에 전입신고한지 2년 지난
경상도 남자가 발언하기에 부적절한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전라도 사람이 의식적으로 전라도 욕을
하는 것과 경상도 사람이 의식적으로 전라도 사람을 칭찬하는 것 모두 듣기 싫은 사람이다.
전라도나 경상도나 좋은놈, 나쁜놈, 이상한놈들이 모두 섞여 살고 있을 뿐이다. 좀 더 부연하면
'전라도닷컴' 이란 제호는 시작부터 불이익을 감수하고 들어가는 것 아니냐는 것이 내 질문의 뼈다구다.
잡지 전라도닷컴이 힘들다.
잡지가 힘들단 소리는 계속 책을 만들 돈이 없단 소리다.
잡지 전라도닷컴이 발행되지 않는 것은 특별한 일인가? 아니다.
모든 잡지의 최종 모습은 폐간이다. 돈이 없어 당하는 폐간은 잡지의 자연死에 속한다.
잡지 전라도닷컴은 대단히 오래 버티었다. 통권 78호다. 종이 책으로 만든 것이 2002년 3월이다.
만으로 6년을 더 버티었다. 계간지도 아닌 월간지다. 잡지가 6년을 버틴다는 것은 아주 힘든 일이다.
잡지 만들어 본 사람들은 안다. 우리가 아는 귀에 익은 잡지는 누군가 큰손에 의해 돈을 공급받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지 않고서 잡지가 그 자체의 힘으로 6년을 버틴다는 것은 대한민국에서는 불가능하거나
만드는 사람들이 미쳤거나 둘 중 하나에 속한다.
잡지 전라도닷컴도 누군가로부터 돈을 지원받았다. 광주발 유통업체인 '빅마트'가 그 장본인이다.
잡지 전라도닷컴은 웹진 즉, 온라인 상의 하나의 사이트로 출발했다.
전남일보에 근무하던 황풍년, 남신희, 남인희, 임정희, 김한식 기자 등이 전라도닷컴이란 웹진을 만들었다.
듣자하니 아마도 전남일보에서 노조 어쩌구 하다가 짤린(게 아니라 집단사표로 판명) 모양이다.
그 싸움이 그리 격렬하지 않았는지 소문낼 일은 아니라고 한다.
2000년 초반에 제법 잘 나가던 빅마트 하상용 대표는 이익을 사회로 환원하는 문제를 고민할 무렵
바로 이 집단사표팀을 발견한다. 지원을 시작하고 웹진이 만들어지고 이어서 종이책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아주 독특하고 있을 수 없는 일이 있었는데, 70여호에 이르는 발행 기간 동안 잡지의 내용과 편집권에 대해
돈을 지원한 사람이 '단 한 글자도' 관여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한양 시절 아주 잠시 이상한 위성채널에서 일을 한 이장은 당시 3~4회 발행한 월간 잡지의 편성에 대해 경영진이
관여하기 시작하는 과정을 구경할 수 있었다. 누구를 인터뷰 해달라거나 무엇을 취재해 달라거나.
그렇게 되면 만들고 싶은 책을 만들 수 없다. 그러면 이장은 자신의 노가다에 영혼을 제공하기 힘들다.
그러면 가벼운 중이 무거운 절을 떠나는 수밖에 없다. 다행인지 떠남과 문 닫음이 동시였지만.
잡지 전라도닷컴은 그렇게 빅마트의 재정적 후원을 기반으로 1천원짜리 굴러다니는 잡지를 슬로건으로
세상에 나왔다. 이번에 나 온 9월호로 78호를 내기까지 두 차례 판형을 바꾸었다. 천 원 천 원 올린 것이
현재 3천원짜리가 되었고 다음 달부터는 5천원짜리가 된다. 박리박매의 시절은 끝이 났다.
지지하고 후원해 준 모기업 빅마트는 이제 아주 힘들다. 서울의 큰 유통회사들이 광주로 진입하면서
상대적으로 '구멍가게' 빅마트는 실질적으로 거의 넉다운 상태다.
홈플러스, 이마트, 전자랜드, 롯데마트 같은 이름은 동네 구멍가게들에게는 모르도르의 사우론 같은 이름이다.
'빅마트'는 역시 '전라도에서나 빅' 이었다. 16개 매장의 대부분을 큰손들에게 넘겼다. 그것은 사실 정해진 수순이었다.
빅마트 때문에 문 닫은 동네 골목 어귀의 진짜 구멍가게가 생기면서부터 큰 놈은 더 큰 놈에 의해 무너진다.
내가 빅마트에 대해서 아는 것이라곤 중간급 규모의 유통업체라는 사실과 파란색이었던 것 같은 간판 정도이다.
하지만 빅마트 하상용 대표의 전라도닷컴에 대한 지원과 No Touch 방침은 큰 박수를 쳐 줄 만한,
쉽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아마도 그런 원칙을 고수하는 모기업은 이후에도 시장경제 논리 속에서
살아 남기 힘들 것이다. 사실 전라도닷컴은 지독하게 돈 안되는 기사만 써는 잡지다.
더 이상의 후원을 기대하기에는 '염치없다는' 판단에 따라 전라도닷컴은 독립을 선언했다.
이 용감한 선언은 2007년 11월에 있었고 용감함에 비례해서 전라도닷컴 12월호는 발행되지 못했다.
지역 문화 권력과 손잡지 않았다
<전라도닷컴>은 지역 문화 권력과 손잡지 않았습니다.
지역 자본에 예속되지도 않았습니다. 지역 정치권력 따위를 '빨아주는' 짓도 하지 않았습니다.
가장 전라도스러운 말글로 가장 전라도다운 사람과 자연과 문화를 찾아 글과 사진으로 기록했습니다.
(저는 이보다 더 잘 <전라도닷컴>을 설명하는 표현을 찾지 못하겠습니다.)
기록이 없으면 기억도 없습니다.
지역 주민들의 기록이 없으면 지역 주민들의 기억은 이어지지 못합니다.
토호들만 기록을 하면 토호들 기억만 남게 됩니다. 이른바 '풀뿌리' 인간들은 갖가지 권력을
한 손에 틀어쥔 토호들로 말미암아 왜곡된 모습으로만 남게 됩니다.
김훤주(전국언론노동조합 경남도민일보지부 지부장)
이 인용문으로 처음 만나는 김훤주 기자의 글은 딱이다.
전라도닷컴이 어떤 잡지였고 전라도닷컴에서 다룬 내용이 무엇이었는지 가장 간명하고 강렬하게
표현하고 있다.
잡지 전라도닷컴은 전라도를 벗어나서 그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진 잡지는 아니다.
지리산닷컴의 주민들 중 70% 정도를 차지하는 '전라도 이외 지역' 사람들은 아마도 이런 잡지를
알지 못 할 것이다. 전국 모든 서점에 '깔려 있는' 잡지가 아니다.
작년(2007년)에 형이 사무실 책장에 전라도닷컴 과월호 몇 권을 들여 놓기 전에는 나 역시 그런 잡지를
알지 못했다. 책장 정리하면서 휘리릭 넘겨 보았다. '이것은 지리산닷컴이군.' 이라는 것이 나의 소감이었다.
지리산닷컴에서 다루고자 하는 컨텐츠 방향과 일치했던 것이다.
그리고 든 생각은 '몇 명이 만드니까 좋겠다.'는 것이었다. 뭔 개끈 풀린 똥개 마냥 혼자 하고 싶은대로
만드는 지리산닷컴으로서는 물리적인 이동의 한계를 가장 많이 절감하기 때문이다.
당시 지리산 동부권에서 사진과 글이 되는 인력을 찾으려 했던 시기였다.
좀 더 나아가, 책을 읽지 않는 이장이 하고 싶은 일 중 하나는 종이 잡지 '계간 지리산닷컴'을 만드는 것이다.
잡지는 팔리지 않는 것이 당연하고 이런 잡지는 절대 팔리지 않는 것이 정답인데도 인간은 때로 모니터가
아닌 어떤 촉감으로서의 결과물을 희망할 때도 있다. 그런데 이런 공상 보다 6년 앞서 지리산이 아닌
전라도라는 아이템으로 이미 잡지를 만든 사람들이 있었고 그 잡지가 전라도닷컴이었다.
K리그는 인기없지만 월드컵은 모두 열광적으로 보듯이 대중들의 기호는 '중앙' 또는 '서울'에서 일어나는
사건 사고가 자신의 하루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뉴스일 것이라는 착각 속에서 살아간다.
부산에서, 전라도에서 살면서 가끔 서울에서 송출되는 방송 중에 남산 터널이 정체중이라는 따위 소식이나
서울 날씨를 모든 지역의 사람들이 그때마다 듣고 보아야 하는 상황은 불합리하다.
세상을 바꾸는 일도 그러하다. 이명박이 돈놀이했다 안했다는 사실을 파헤치는 동안, 한정된 서울의 지면에
지방 군수가 돈 먹었다, 먹지 않았다는 논란이 자리할 여백은 없다. 문제는 '서울'에서 만들어지는 그 어떤
지면이건 사이트에서건 '나의 소식'이 올려지는 일은 '지방 사람들'에게는 사활적인 문제다.
그래서 언제나 지방의 문제는 사소한 문제다. 서울은 서울지방이 아니다. 서울을 제외한 모든 지역만 지방이다.
서울을 벗어난 지역에서 어떤 형태의 권력이건 그 힘에 맞서는 언론을 만나는 일은 쉽지 않다.
글이 권력에 맞서기 위해서는 자본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 이른바 지방에서 이런 독립성은 더욱 힘들다.
전라도닷컴이란 제호 때문에 이 잡지를 전라도의 어느 기관이건 지자체에서 후원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사실무근이다. 제발 지자체로부터 돈 한 푼이라도 지원받았으면 좋겠다.
전라도닷컴으로 인해 전라도를 찾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결과적으로 전라도닷컴의 진솔한 기사들이
전라도를 이해하는 작은 통로로 기능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문화수도 광주'의 문화, 정치, 돈을 가진
권력들은 이런 잡지 하나 지켜내지 못하는가? 문화수도는 뭔 개뿔이나… 수도꼭지다.
저는 신상에 변화가 있었습니다.
8개월의 실업급여기간이 끝났고
전라도닷컴에 다시 법적으로 고용이 돼야 하는 상황에서 '비정규직'을 택했습니다.
출근의 의무를 벗고 아주 작은 급여와 자유를 얻었습니다.
결례를 작정하고 내가 받은 메일 중 한 대목을 인용한다.
이 글을 위해 몇 가지 질문과 답변을 주고 받는 중에 나온 지나가는 이야기들이었다.
잡지 전라도닷컴은 2007년 12월호를 발행하지 못했다. 전라도닷컴을 아끼는 사람들이 나섰다.
자발적인 구독료 인상과 광고운동이 있었고 모금을 위한 행사도 있었다. 누군가는 자신 소유의 건물
2층을 사무실로 내어주기도 했다. 물론 무상이다.
2008년 1월호를 다시 볼 수 있었다. 잡지 전라도닷컴을 한번 발행하는 제작비는 1천만원 정도다.
그 자금 마련이 우선이었기에 위 메일 내용이 의미하는 '작전'을 알겠다. 8개월의 작전은 끝이 났다.
잡지는 만들어야 하고 복귀를 해야 한다. 하지만 모두가 복귀하면 최소한의 파이가 더 작아진다.
누군가는 외곽에 머문다. 지출을 줄이는 작전이다. 작전은 보통 멋있어야 하는데 이 작전은 처절하다.
아마 2005년 일일 것입니다.
어떤 분이 구독료를 한꺼번에 입금했는데 구독관리시스템에
구독종료기간이 201002라고 표기돼 있더군요
숫자를 보고 눈물을 흘린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을 것입니다.
손으로 꼽아보니 그게 96호가 나오게 될 달이더군요.
100호까지는 만들어 보자고… 그때 그런 결심을 했던 것 같습니다.
시사저널 사태의 결과로 '시사인'이 생겼다. 좋은 일이다. 서울에서 발생한 일이기에 '시사인'은 가능했다.
그런 도움의 10% 정도면 전라도닷컴은 계속 발행될 것이다. 그 10% 정도의 도움에 약간 힘을 보탤 요량으로
오늘 이 글을 쓰고 있다. 하지만 그런 도움의 10%는 달성하기 아주 힘든 십시일반이다.
전라도닷컴은 삼성 문제 정도의 특종을 할 가능성이 거의 없는 잡지이기 때문이다.
평민의 평민에 의한 평민을 위한 기록
높은 데보다 낮은 데를 주목할 것
화려한 것보다는 소박한 것을 찬미할 것
책상머리가 아니라 현장을 찾아갈 것
넥타이 맨 양복쟁이들은 피할 것
그 자신의 삶이 도서관이고 박물관인 노인들의 삶을 존중할 것
순 전라도말을 귀하게 받자올 것
개발보다 보존의 편에 설 것
인간과 생태계 전체의 온생명의 목소리를 동등하게 받아들일 것
장애인 여성 어린이 등 소수자들의 의견에 귀기울일 것
이 땅의 이른바 또라이들의 대변인이 될 것
들에서 바다에서 일하는 이들의 삶을 으뜸으로 받들 것
전라도 안에 취재의 근거를 두되 반듯이 전라도를 넘어서 보편타당한 이야기를 할 것
단지 박제된 과거의 향수가 아니라 오래된 미래를 이야기할 것…
역시 주고 받은 메일의 일부분이다. 잡지 전라도닷컴이 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길건 짧건 '알아먹기 쉽게' 설명해 달라는 나의 물음에 대한 답이다.
나는 평민의 평민에 의한 평민을 위한 기록이라는 한 줄로 받아들였다.
답신 메일을 좀 더 아래로 나열한다.
그리 등 두드려 주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내 좋아서 하는 일인데 말입니다.
전라도 골 깊은 곳에 이르는 실핏줄 같은 길을 더듬어 갈 때,
고샅길이든 밭두렁이든 아무데나 함부로 앉아
거기서 만난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얘기를 들을 때
가슴 속이 참 다수웠습니다.
책에서 읽지 않고 삶에서 체득한 대로 사는 어르신들의
꾸미지 않은 이야기를 받아 적을 수 있는 '특권'이 송구하기도 하였습니다.
구석진 마을의 착한 사람들을 만나러 다니는 일
그런 일들의 재미를 마다하기는 뉘라도 쉽지 않을 것입니다.
위에서 표현한 '특권'이라는 말에 깊이 공감한다. 나 역시 그런 특권을 누리는 사람으로서
그 기분에 120% 공감한다. 그것은 여행길에 우연히 주워 담을 수 있는 '말씀들' 아니다.
같은 말이라도 누구에게는 소리가 되고 누구에게는 말씀이 된다.
소리가 말씀이 되는 원리는 소리라는 표면 아래를 흐르는 진의를 이해할 때 말씀으로 진화한다.
같은 소리 '새끼'는 때로는 욕이 되고 때로는 지극한 사랑의 표현이 되기도 한다.
그 말씀들을 전하는 일은 귀한 일이다. 지리산닷컴이 하고 싶고 흉내 내고 있는 일이다.
그러나 지리산닷컴 보다 6년 먼저, 그것도 디지털이 아닌 종이로 그 일을 월등히 잘 수행해 온
잡지가 전라도닷컴이다. 이를테면 지리산닷컴의 선배님이시다.
전라도닷컴의 말씀들을 좀 더 살펴보자. 산만하지만 그냥 나열한다.
9월호, 해남 남창장.
다라이 속 문어를 가리키며 관광객 왈 "광주까지 가져가도 살까요?"
문어장시 할매 대답 "금방 디져"
숭어가 싸다. 숭어 찾는 이들이 많다.
30년 동안 어장을 했다는 김병진(64)씨는
"요즘 숭애(숭어)는 가시나하고 입맞추는 것보다 나아"라고 웃는다.
그만큼 단맛이 들어갈 때다. -해남 화원장
이갑순 할머니는 보름 얘기를 하면서 혀를 찬다. 안타까운 기억이 있다.
"보름에 말래에다 밥 노물해서 차려노믄 저녁에 밥 돌르러 오는 풍습이 있어.
상 들고 훈미네(후미진 데)가 갖고 차두에다 싹 비워 갖고 빈 상만 놔두고 가.
그러게 묵으믄 일년 내내 좋다고. 근디 동네 아그 하나가 우리집 밥 돌르러 왔는디
해필 내가 봐 불었어. 근게 내뺐는디 그 놈아가 그 해 월남 가서 죽어 불었네.
못 묵고 살 땐게 걸리고 우리집 밥을 묵었으믄 살아 돌아왔을 것 같기도 하고…."
조순자(71) 할머니가 “시상 탓이제, 언니 탓이요” 한다. -곡성 석곡장
완도 고금도 가교리에서 온 정간심(74) 할머니.
강진 마량까지 와서 버스 갈아타고 장에 왔다.
감태를 순식간에 팔아 해치웠다. ‘오지게’ 값이 쌌다. 한 재기에 천 원.
"갯창에서 주서 온 건게, 싸게 줬어."
다 팔고도 마음에 걸리는 게 하나 있다.
"감투(감태)지 담기가 애라. 잘못 담으믄 쓰고 뻐쳐.
애기씨 하나가 사갔는디, 갈쳐줬는디 잘 할란가 모르겄네."-장흥 대덕장
"광주에서 왔으믄 되게 고생했겄는디.
맨 오르막 길이제. (무주가)전라북도에서 젤로 높은 디여.
호박 따다가 떨어트리믄 군산까정 사정없이 달려가 불어.
호박 잊어분 사람이 많어. 돌아갈 때는 시동 꺼도 문제없이 가불 것이구만."
한 촌로의 입담에 한참을 달려온 노곤함이 온데 간데 없다. 무주장(1·6일)을 찾았다.
잡지 전라도닷컴을 넘기면서 사라진 잡지 '뿌리깊은나무'를 생각했다.
한창기라는 걸출한 사람과 그 사단에 의해 만들어진 그 잡지는 대한민국 잡지史의 전설이다.
글씨와 글과 꾸밈과 그 모든 생각들이 기념비적이라 할만 하다. 하지만 우리는 그 잡지를 잃었다.
서울사람들은 모르는,
부산사람들은 모르는,
대구사람들은 모르는,
대전사람들은 모르는,
원주, 수원, 춘천, 청주, 인제, 영월, 동탄, 신탄진, 경주, 영천, 안동… 사람들은 모르는,
잡지 전라도닷컴은 계속 발행되어야 할 것이다.
잡지 전라도닷컴의 외형은 한마디로 후지다.
우아와 세련과는 거리가 멀다. 제작비와 진행비 팍팍 쏘면서 만드는 잡지가 아니다.
트렌드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니 감각은 도시적이지도 않고 그것을 추구하지도 않았다.
디자이너의 눈으로 볼 때 제호 로고타입은 정체성이 없고 잡지는 너무 많은 서체를 사용하고 있고
사이트는 거칠고 정신없는 구시대 웹진 스타일의 전형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8년 10월부터 오천원이 되는 잡지 전라도닷컴을 지리산닷컴 주민들에게 권한다.
더구나 나는 이 잡지의 주요한 구독층은 전라도가 아닌 지역 사람들이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왜냐하면 잡지 전라도닷컴은 전라도의 진수와 진심을 전라도 아닌 곳으로 널리 멀리 알릴 때에
발행의 의미가 더 깊어진다는 판단 때문이다.
사족으로 전라도를 안내하는 가장 제대로 된 여행가이드북은 이 잡지의 내용이어야 하지 않을까?
오천 명의 정기구독자를 확보하면 잡지 전라도닷컴은 좀 안정적으로 만들어질 수 있다.
이천 명 정도는 더 힘을 보태어야 한다. 개인적으로는 대의에 공감하는 기업이나 지자체의
큰 돈 보다는 작은 돈들이 모여질 때 이 잡지의 독립성을 좀 더 강하게 지켜낼 수 있을 것이란 판단이다.
그래야 이 잡지의 기자들도 초심을 잃지 않는다.
자, 정리 들어갑니다.
1. 잡지 <전라도닷컴>이 계속 발행될 수 있도록 힘을 보태어 주세요.
2. 그 방법은 1개월에 오천 원(5,000원)을 지출하시는 결단을 내리는 것입니다.
3. 이 글을 끝까지 읽을 수 있었던 분들은 전라도닷컴의 기사 전체를 아주 만족스럽게
구독하실 수 있을 것이라고 이장이 보장합니다.
4. 마음을 정하셨다면 http://jeonlado.com/v2/event02.html
로 가셔서 즐거운 지출을 감행해 주세요.
이상 이장 마이크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