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23일 이후로 지금까지 전혀 글을 쓰지 못했다. 그 사이 내겐 어떤 일들이 있었던 걸까. 후배의 사고, 그리고 진행했던 회사일... 그리고...  다시 서재에 글을 써본다. 친구들과 함께 하는 카페에 올린 글인데... 앞으로는 서재 관리 잘 할 수 있을까?) 

 

따뜻하고 커피향 같은 글일지는 모르겠습니만, 어제 느꼈던 푸근한 기억 하나를 새겨봅니다.

 

세상은 벗들과 함께 살아가는 것인데, 이러한 소중한 친구 가운데 한 명으로부터 전화를 받았습니다. 뇌출혈을 극복하고 다시 사회생활을 시작한 친구인데, 지금은 직원이 몇 안되는 작은 제조업체에서 제조와 영업, 그리고 배달까지 도맡아하고 있는 친구입니다. 아시다시피 최근까지 제가 조금 바쁘게 돌다보니, 1년 남짓 가끔 전화로 소식만 주고받고 만나지는 못했던 사이였지요.

 

"날도 쌀쌀해지는데 언제 저녁이라도 한번 하자."

"그래, 한번 봐야지."(바다, 그 카페에서 제 닉네임이 '바다'입니다)

"그런데 다른 얘들은 잘 있나?"

"글쎄, 얼마전에 A하고 통화했는데, 학원일이 바쁜 모양이야. 그리고 지난 주에 B한테 전화왔는데, 특별한 내용은 없었어."

"야, 그런데 우리 홍교수 모시고 동기들 송년회한 게 몇 년이나 지났지?"

"글쎄, 그게... 2003년인가 4년인가? 내가 파주로 이사온 전후였던 것 같은데..."

 

옛기억을 떠올리다가 제 장난기가 발동했습니다.

 

"내일, 너 시간 어때."(바다)

"엉, 강원도에 제품 배달하고 올 일이 있는데, 늦지 않게 올라올 거야."

"그럼, 너희 집 근처인 안양문예회관 앞에서 내일 7시쯤 보자."

"어, 너 건너올 수 있어?"

 

그 친구에 대한 미안함도 있었지만, 남들이 하는 '번개'라는 것을 해보자는 꾀가 발동했습니다. 휴대폰에 내장된 연락처를 일별하면서, 외국에 있거나 먼 지방에 있는 녀석들을 제외하고, 수도권에 있는 동기들을 세어보니 열 명 가량 되더군요.

 

'번개. 국문 84 모임. 11월 11일(수) 저녁 7시, 명학역 근처 안양문예회관. 문의는 바다에게..'

 

그리고 답신을 기다려보았습니다. 한 두 명 정도가 내일은 어렵다는 둥, 아무리 번개라도 며칠 시간을 두고 해야지 깰 수 없는 선약이라서..(그래서 번개야 임마^^) 등의 연락이 있었습니다. 그러면 나머지 여덟 정도는 어떨지...

 

한참 공사중이라 어수선한 안양문예회관 앞에 제일 먼저 닿아서 누가 저 골목길을 돌아올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맨 처음 연락했던 친구는 용인 근처에서 길이 막혀서 30분쯤 기다려달라고 하더군요.

 

낙엽이 떨어지듯 시간도 툭툭 지나가고...

한 친구가 골목길을 돌아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내가 중국에서 돌아오는 걸 어찌 알고 날을 이렇게 잡았냐. 기특하다."

중국과 평택공장을 오가며 바쁘게 살고 있는 벗이었습니다.
한 건 성공!

 

"오는 녀석들은 전화할테니, 우선 당구라도 한 게임..."

말 그대로 당구 한 게임이 끝나도 제 전화는 조용했습니다. 그리고는 용인에서 부랴부랴 올라온 친구가 들어왔지요.

 

"니 온다 해서 내 단골식당에 상을 봐놓으라고 했으니 가자."

 

셋은 같이 단골식당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정말 단골이었는지 메뉴판에도 없는 성찬이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통통한 생굴회에 미나리무침, 그리고 보쌈고기와 얇게 썬 사과, 맛있는 된장, 그리고 생태탕까지... 집 나갔던 입맛이었더라도 되돌아왔을 음식을 나누며, 서로 살아온 이야기를 나누었지요.

 

"월초에 교통사고가 있었네. 그리 불편하지 않아서 드러눕지는 않았어."(미안하다! 친구야)

"그래도 나이 생각해서 며칠 쉬면서 진찰을 받아보지 그랬어."(바다)

"내가 안 나가면 회사 문 닫는 거나 마찬가지라서..."

"그래도 인마, 너 성한 몸 아니야."

 

중국쪽에서 활동중인 벗은 그쪽 근황을 전하기도 하고, 교과서 이야기도 하고...

다들 아시겠지만, 이럴 때 시간은 화살 같이 지나갑니다. 시간이 흐르고, 역시 갑자기 번개 치면 어려울 나이들이야. 아줌마들은 한창 아이들 저녁 챙겨야 하고... 하는 이야기를 나누며, 자리를 옮기려고 생각하는 즈음이었습니다.

 

나이를 곱게 먹은 듯한 여인 한 명이 식당문을 열고 들어오더군요.

 

그 순간, 25년전 강의실 문을 열고 들어오던 모습이 영화처럼 오버랩되면서, 긴가민가 하는 찰나!

 

"야, 바다! 넌 도대체..."

"누구신데요? 어, 어, 너.... 넌!"

"그래, 나야. 그런데 너 엉뚱한 건 예나 지금이나 똑같구나. 우리 몇 년만이지? 그리고 너는 00이고, 넌 00이지? 너희들은 정말 이십 년만에 보는구나."

 

그 얼굴 속에서 예전의 모습이 찾아지더군요. 15년전에 마포 사무실 앞에서 한번 만난 적이 있었던 기억도 다시 떠오릅니다. 그때 어머님이 많이 아프시다는 소식을 듣기도 했는데...

 

"야, 근데 니들 정말... 내일이 무슨 날인지 알어? 우리 아들 수능시험 보는 날이야. 그런데 이렇게 불러내면 어떡해!"

 

사내녀석들은 아직 아이들이 초중등생들이라 생각하지 못했는데, 그렇지요. 여자동기들은 대개가 그렇지요. 그렇구나.....

 

"그리고 바다, 너! 그때 15년전에 만나고 나서 한번 연락이 없냐? 난 수첩을 잃어버려서 그랬는데, 너는?"

"나도 잃어버려서...^^ 하지만 우리 회사로 전화하면 알려줄텐데, 네가 먼저 연락하지!"

 

만나자마자 투닥투닥.

 

내일이 아들 수능일인데, 마다않고 찾아와준 친구가 고마웠습니다.

 

"난 오래 있지는 못해."(당연하지요)
하면서도 석 잔의 술을 나누기도 한 동기.

세상 사는 이야기를 나누던 세 명의 친구들은 그녀의 출현으로 인해 예전의 추억 속으로 빠져들었습니다.

 

수업시간에 가장 안 들어간 동기가 나인지, 너인지.(물론 접니다)

무기고 속의 권총은 누가 더 많았는지.

그리고 그때 누가 누구를 좋아했던 것 같다든지.

술 취해 학교 벽에 페인트로 썼던 문장이 누구의 시였는지.

 

그렇게 과거 추억 속에 놀다 보니, 그때의 그 청순함을 떠올리다 보니 이제 내 앞에 앉아 있는 그녀 눈가의 잔주름이 보이더군요. 작은 가게를 하다가 힘들어서 지금은 부업 삼아서 친구 가게로 일을 나간다고 하네요. 거친 손마디도 보이더군요. 술잔을 기울이고... 자작을 하려하니 "야, 아무리 나이가 들었어도 그래도 술은 여자가 따라주는 게 낫단다." 하며 잔을 채워주는 넉살도 느껴집니다. 예전과 똑같은 것도 많지요. 나이가 두 살 많다는 이유로 그때나 지금이나 '누나라고 불러라' 하는 충고투는 마치 25년 전에 들었던 소리가 환청으로 다시 살아나는 듯 하더군요. 같이 늙어가는 처지에...

 

아이 때문에 먼저 일어서며,

 

"다음 만날 때는 미리 상의해서 일정을 잡아. 이렇게 공치지 말고... 그리고 너무 반가웠다."

 

하는 그녀 눈가에 환한 웃음으로 피어나는 잔주름이 아름다웠습니다.

 

남은 친구들끼리 맥주 한 잔을 더 나누고, 대리운전을 불렀지요. 안양에서 일산으로 건너오는 고속도로에서 오래도록 떠올리지 못했던 가게 이름 하나가 떠오릅니다.

 

'아침이슬 꽃잎에'

 

그 당시를 기억해보면 인테리어를 근사하게 한 카페가 커피숍이나 다방보다 늘어나고, 입소문이 나는 카페는 단골들이 생기고, 특히 여대생들이 흡연장소로 많이 이용했던 곳이지요. 그 친구가 살던 아파트 앞 2층에 있던 카페 이름입니다.

 

그 카페에 앉아서, 수석으로 들어와서 1학기만 다니고 학교를 그만 두겠다기에 그 고민을 함께 나누기도 했고, 많이 싸우기도 했고... 조그만 체구인데 주량이 만만치 않아서 그녀 집앞의 선술집에서 늦게까지 토론하다가, 그만 막차를 놓치고 홀로 공원 벤치에 신문지 깔고 덮고 모기회식을 시키기도 하고... 심한 숙취와 고열로 앓아누운 제 자취방 부엌에서 따뜻한 밥상을 차려주기도 했던 기억. '그래, 네가 누나 맞다!'... 홧김에 '만약 우리가 고민하는 이 문제에 대해 네 생각보다 내 생각이 옳다고 생각하면, 00일 00시까지 청량리역 시계탑으로 나오라'는 말을 남기고, 그 역 앞에서 세 시간을 홀로 기다리다가 돌아설 때 서있던 그녀(점점 신파조로 넘어갑니다). 그때 '삶과 죽음'이라는 뭐 거창한 주제였던 것 같기도 하고, 돌맹이와 도서관이었던 것 같기도 하고... 어느 겨울산에서 찍은 그녀 사진이 제 앨범에 들어있던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그녀 어머님께 "따님을 제게 주십시오" 라고 배짱 부리기에는 대학교 1학년생은 너무 어렸겠지요.^^(제 아내가 이 글을 읽으면 화를 낼까요? 저 선수 또 가을 타고 있구나 라고 할까요^^)

 

그녀 눈가에 곱게 내린 잔주름을 보며, '곱게 나이 들어줘서 고맙다.'는 말을 미처 하지 못했고, 미처 못한 이야기라고 문자메세지로 넣어 줄까 휴대폰을 꺼내다가 도로 집어넣었습니다.

그저 푸근한 기억으로 자리매김할 밖에요.


따뜻하고 커피향 같은 그런 글일런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제 추억 하나가 그대들의 옛 추억을 떠올려보며 커피 한 잔을 마실 수 있는 계기가 된다면 충분하겠지요.
이제부터는 또 서류를 만져야 할 시간입니다. 이만 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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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푸른고개 2009-11-13 0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집 아이들도 이 글을 읽겠지요. 엄마한테 이를까. "엄마~ 아빠가 서재에 올린 이 글 읽어봤어?" 라고 말할까? 아니면 씩 웃으며 '그랬었군!'이라고 생각할까. 그리고 아내는 뭐라 할까. "여보, 정신 차려. 아무리 사내들이 나이 들면서는 추억 속에 빠진다고 하지만서도.."라고 할까? 아니면 토라질까. 궁금하다, 궁금해!

소나무집 2009-11-14 1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 모두의 이야기라는 생각이 드네요.
아이들도 부인도 탓하기보다는 함께 공유하고 싶어할 것 같은데요.
저는 남편의 여자 친구나 제 남자 친구 이야기를 남편이랑 함께 수다꺼리로 삼는데
추억을 공유할 수 있어서 좋은 것 같아요.
사실은 제가 더 많이 하긴 해요.
국문 84라는 단어에 무작정 공감대 형성, 저는 국문 86이기에.
아침이슬이라는 카페는 80년대 대학 근처라면 종종 있었는데
아침이슬 꽃잎에는 어디쯤일까 궁금하기도 합니다.
저도 대학 졸업한 지 20여 년이 다 되어가니 그때가 그립기도 하고
문득 마음에 품고 강의실에 앉아 뒤통수만 무정하게 바라보았던 동기도 생각나고 그럽니다.
저는 여자라서 그런지 남자 동기들이 더 많이 생각나는군요.

달빛푸른고개 2009-11-22 16:42   좋아요 0 | URL
볼품없는 글 읽어주셔서 감사할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