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도에 가면 시인의 자장면을 맛볼 수 있다
낮엔 자장면 만들고 밤엔 시 쓰는 류외향 시인의 사랑이야기

  강기희 (gihi307)


 




 







  
▲ 마라도. 천연기념물 제423호로 지정된 마라도. 곳곳이 비경이다.
ⓒ 강기희
마라도



 

그녀를 처음 만난 것이 언제인지 확실한 기억은 없다. 몇 해 전의 일인지도 기억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그녀를 자주 혹은 아주 가끔 만났다. 일년에 서너 번 만나는 일도 자주 만나는 편에 속하는 일이니 만남의 시간과 자리가 중요하진 않았다.

 

마라도 총각과 결혼한 류외향 시인 "저, 지금 마라도에 살아요"

 

작가들의 모임 자리에서 만난 적도 있고, 바닷가 어느 마을에서 만나기도 했다. 기억에 남는 그녀와의 만남은 평택 대추리였다. 당시 평택에 살고 있던 그녀는 미군기지 확장 반대 운동 진영에 발을 들여놓고 있었다. 대추리에 갈 때마다 그녀를 만나는 일은 자연스런 일이었다.

 

그녀는 시 잘 쓰는 류외향 시인이다.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 그녀는 미혼의 시인이었다. 지난해 여름 이후부터 결혼설이 심심찮게 들려오더니 급기야 그 해 겨울 결혼식을 올린다는 메일이 날라왔다. 하지만 나는 그녀의 결혼식에 가지 못했다. 그런 이유로 그녀의 마음을 훔쳐간 남자가 누구인지 더욱 궁금했다.

 

지난 일요일(7일) 한국문학평화포럼에서 진행한 <마라도문학축전>에 참가하기 위해 마라도에 갔다가 류외향 시인의 반려자인 원종훈씨를 드디어 만날 수 있었다. 국토 최남단인 제주 앞바다에 있는 마라도의 <마라원자장집>에서 였다. 그녀는 마라도에서 남편인 종훈씨와 자장면집을 운영하고 있었다.  

 

대구가 고향인 그녀. 도시 생활을 하면서도 버릴 수 없었던 경상도 사투리는 여전했다. 부산이 고향이라는 종훈씨 역시 경상도 사투리가 섞여 나왔다. 언어 소통에 문제가 전혀 없을 듯 싶은 두 사람. 우리는 간혹 알아 듣지 못하는 말이 있었지만 둘은 척척 알아 듣고 대답했다.

 

두 사람이 운영하는 자장면집은 남편 성을 따서 '마라원자장'이다. 마라도에서는 네번 째로 생긴 자장면집이며 지난 3월 가게 문을 열었다. 마라도 선착장에서 가장 가까운 집이라 눈에 금방 들어오는 두 사람의 집. 종훈씨는 자장을 볶고 그녀는 남편을 도와 손님을 맞았다.

 

결혼 이후 처음 만나는 시인 류외향. 헐렁한 옷차림이 시선을 오래 붙들고 있었다. 손님이 떠난 탁자를 치우는 모습이 조심스러워 보이는 것도 예전과 다른 모습이었다. 무슨 일이 있었을까.

 

"올 12월이 출산 예정이에요."

 

그녀는 임신 중이었다. 바다 바람에 얼굴이 푸석해진 것인 줄 알았더만 그것이 아니었다. 소중한 생명 하나 품고 있는 그녀가 겨울이면 아기 엄마가 된다고 했다. 결혼 한 지 1년 만의 일이니 경사가 따로 없다. 

 

등대 하나 성당이 하나, 교회가 하나 사찰이 하나, 초등학교가 하나인 마라도는 상주 인구라 해봤자 40여명 밖에 되지 않는다. 사람 걸어다니는 게 다 확인 될 정도로 작은 섬인 마라도는 천천히 걷는다 해도 30분이면 섬 일주를 할 수 있다. 그렇게 작은 섬이며 국토 끝인 마라도에 두 사람이 신접살림을 차린 것이다. 두 사람은 어떻게 만났으며 어떤 연유가 있어 마라도에 정착했을까.

 







  
▲ 시인의 마음을 훔친 남자. 류외향 시인의 발을 마라도에 묶어 둔 남자 원종훈씨. 자장을 볶고 있다.
ⓒ 강기희
자장면









  
▲ 시인의 집. 류외향 시인이 남편 종훈씨와 함께 신혼살림을 차린 곳인 마라원자장면집. 마라도에 오르면 가장 먼저 보이는 첫 집이다.
ⓒ 강기희
마라원자장



 

두 사람이 처음 만난 것은 2007년 1월 초. 당시 류외향 시인은 마라도의 유일한 사찰인 기원정사에 머물고 있었다. 2006년 기원정사는 작가들에게 절을 개방한다며 창작실로 내놓았다. 그때 류외향 시인이 마라도를 찾았다. 2006년 12월이었고, 2007년 1월 마라도를 떠났다.

 

마라도에 머물던 시인을 본 노총각 종훈씨 "첫눈에 꽂혔어예"

 

한 달 정도 기원정사에서 머문 그녀. 그녀의 인생은 그때 새로운 길을 걷기 시작했다. 당시 36살의 미혼인 류외향 시인과 46살인 총각과의 만남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당시 마라도에서 횟집을 하고 있던 종훈씨의 집에 그녀가 손님으로 찾았던 게 일의 발단이었다.

 

"다른 집은 다 문을 닫았는데 종훈씨 집만 불이 켜져 있었어요."

 

뭍에서 그녀를 만나러 몇몇 작가들이 마라도를 방문했을 때 그녀는 종훈씨의 횟집으로 갔다. 밤 늦은 시간까지 이어지는 술자리. 자연스레 처녀 총각은 안주거리가 되었고 일행들은 두 사람에게 잘해보라며 '작대기'를 놓기도 했다.

 

"세 번째 만났는데 이 사람이 제게 프러포즈를 했어요."

 

종훈씨가 술 기운을 빌어 그녀에게 청혼을 한 것이다. 그녀도 싫지만은 않았다. 하지만 그날은 그냥 웃어 넘겼다. 네 번째 다시 만났을 때는 그녀가 '진담이었냐'고 물었다. 종훈씨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녀가 마라도를 떠나기 전 일주일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다.

 

2007년 1월 그녀는 찬바람을 맞으며 마라도를 떠났다. 두 사람의 인연은 그렇게 끝나는가 싶었다. 그녀 자신도 여행지에서 일어날 수 있는 에피소드 정도로 생각하기로 했다. 그녀가 살고 있는 평택과 마라도는 너무도 먼거리였기 때문이었다.

 

답답했던 것은 종훈씨였다. 인연이라 생각했던 그녀가 떠나자 견딜 수 없었다. 종훈씨는 결국 횟집 문을 닫고 그녀를 만나기 위해 평택으로 갔다. 한 달 가량 머물 예정으로 종훈씨는 그녀의 집 근처에 방을 구했다. 

 

다시 만난 두 사람은 사랑의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사랑이 급속도로 진행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이젠 헤어지는 것도 싫었다. 밤이면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는 것도 의미가 없었다. 종훈씨는 방을 뺐고, 두 사람은 일주일 만에 한 방을 쓰기로 했다. 사랑의 완성이었다. 그리곤 양가 집안에 인사를 올리고 2007년 초겨울 결혼식을 올렸다. 

 

두 사람은 결혼식이 끝나자 종훈씨가 하던 횟집에 신접살림을 차렸다. 그리곤 지난 3월부터 메뉴 중에서 자장면을 추가했다. 기껏해야 한 시간 정도 머무는 것이 고작인 관광객이 허기를 채우기엔 자장면이 가장 효율적인 음식이기 때문이었다.

 







  
▲ 시인이 만든 자장면. 마라도 해물자장면 맛 한 번 보실래요?
ⓒ 강기희
자장면









  
▲ 저 이제 마라도에 살아요. 마라도에서 시도 쓰고 자장면도 만드는 류외향 시인.
ⓒ 강기희
마라도자장면



 

남편 종훈씨가 마라도에 살기 시작한 것은 10년 쯤. 마라도로 낚시를 왔다가 그냥 눌러 앉았다. 종훈씨가 횟집을 연 것은 7년 전쯤. 횟집을 할 때만 해도 경쟁이 아니었지만 자장면집으로 만들면서는 주변 자장면집과 경쟁도 시작되었다.

 

시인이 만든 해물자장면은 이제 마라도의 명물

 

그래서 만든 메뉴가 해물짬뽕과 해물자장면이다. 마라도에서 많이 나는 톳을 말려 가루로 낸 다음 그것을 이용해 만든 면이라 면발에서 싱싱한 바다 냄새가 깊이 배어 나왔다. 얼큰 한 것을 좋아하는 이들에겐 해물짬뽕 국물을 들이키는 것 만으로도 마라도에 온 보람이 있다.

 

오래 전 개그맨 이창명이 마라도 앞바다에서 '자장면 시키신 분~' 하는 광고로 인해 유명세를 타기 시작한 마라도표 자장면 가격은 현재 5천원. 운임비와 재료값이 올랐다지만 마라도의 자장면집이 받는 가격은 예전 그대로이다.

 

마라도에 가면 다른 것은 몰라도 자장면 만큼은 꼭 먹어야 마라도 다녀왔다고 말할 수 있는 마라도표 자장면 맛의 비결은 태평양에서 불어오는 상큼한 바람과 시인의 손에서 만들어지는 정성이겠다. 그녀에게 지금까지 가장 많이 팔아 본 게 몇 그릇이었냐고 물었다.

 

"지난 여름인데 200그릇 정도 팔았어요."

 

서울 동대문에서 순대국집을 하던 한 시인은 하루 매상이 10만원도 되지 않아 결국 문을 닫아야 했지만 류외향 시인의 자장면집은 적어도 그럴 일은 없을 듯 했다. 문득 처녀 시절의 그녀 모습이 생각나 자장을 볶고 있는 종훈씨에게 물었다.

 

"외향씨가 처녀 시절엔 가끔 울었는데 요즘은 울지 않나요?"

"그래예? 지금까지 그런 모습 한 번도 본 적이 없습니더."

 

시인 류외향은 처녀 시절 술자리에서 자주 울었다. 곁에서 보기엔 우는 이유가 없는 듯싶었지만 그녀는 어느 순간 두 무릎을 감싸 안고 소리없이 울었다. 누군가 우는 걸 말려야 하는 거 아니냐고 말하면 또 누군가는 "외향이 술 마시면 잘 우니까 그냥 둬"라고 말했다.

 

시인의 눈으로 바라보는 세상이 지겨워 울었던 것인지 혹은 답답하게 흘러가는 현실이 무거워 눈물을 흘린 것인지 그것도 아니면 지독한 외로움을 견디지 못하고 울었던 것인지, 어느 누구도 그녀가 우는 이유를 정확하게 이해하는 이는 없었다.

 







  
▲ 자장면집 벽의 낙서. 류외향 시인이 운영하는 마라원자장면 집 벽에 쓰여져 있는 낙서들.
ⓒ 강기희
낙서









  
▲ 국토 최남단비. 마라도에 가면 국토 최남단비가 있다.
ⓒ 강기희
마라도



 

류외향 시인 "행복해서 울 틈도 없어요"

 

종훈씨의 말대로 결혼 후 그녀가 한 번도 울지 않았다면 홀로라서 울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멀리 바다에 갔어. 죽으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어. 그 많은 물의 넘실거림이란. 외경이었어. 우린 모두 물고기의 자식이었어. 그 속에 들면 요나처럼 살 수 있을 것 같았어. 한 발을 내밀었어. 일생이 축축하고 흥건하게 젖어 들었어. 젖는다는 것. 표피 속으로 점령해 들어오는 물의 기억이었어. 한 발을 더 내밀었어. 이렇듯 저항 없이 감싸일 수 있다는 것. 갑각류의 외피가 벗겨지는 순간이었어. 찰나가 지나가고 비늘 없는 인어가 바다 속을 유영하는 걸 보았어.

 

사랑이 병처럼 깊었어

단지 그뿐이었어

 

- 류외향 시집 <푸른 손들의 꽃밭>에 수록된 시 '깊고 명료한 슬픔' 중에서

 

그 무렵 쓰여진 작품인 듯싶다. 사랑이 병처럼 깊었던 류외향 시인은 남편 종훈씨를 만나면서 그동안 단 한 번도 마음 내주지 않았던 지난 생을 접었다. 그리고는 그녀 스스로 외피를 벗고 비늘 없는 마라도의 인어가 되었다.

 

외로운 바다, 고독한 섬에서 만난 두 사람의 사랑이야기가 전설처럼 시작된 곳 마라도에 가면 시인이 살고 있는 자장면 집이 있다. 시인이 만든 자장면엔 해물만 들어있는 게 아니라 시인이 바다에서 건져 올린 시가 한 편씩 들어 있는 듯하다. 그래서인지, 류외향 시인이 만든 자장면을 먹고 나면 싱그런 바다향이 잔설처럼 오래 남는다.

 

모두가 떠나는 시간이 되면 손 꼭 잡고 떠나는 자를 배웅하는 사이, 그녀의 뱃속에 든 아기도 세상이 궁금해 발길질을 시작한다.

 

"우리가 가긴 힘드니 언제든 마라도로 찾아 줍서."

 

대한민국 국토 최남단 마라도에 가면 시 잘 쓰는 시인이 만든 자장면을 맛 볼 수 있다. 전날(6일) 밤 기원정사에서 묵는 날 그녀의 남편이 준비한 벵어돔 회를 멀미 때문에 한 점도 먹지 못했으니 언젠가 마라도를 다시 찾아 그 맛을 꼭 보리라.  

  







  
▲ 등대와 성당 마라도에서는 뭍에서처럼 종교간 갈등이 전혀 없다.
ⓒ 강기희
마라도







  
▲ 기원정사. 마라도에 있는 유일한 절집인 기원정사 마당. 류외향 시인의 인생이 바뀐 장소이다.
ⓒ 강기희
마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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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푸른고개 2008-09-18 09: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류외향, <푸른 손들의 꽃밭>(실천문학의 시집 172), 실천문학사. 2007

소나무집 2008-09-18 1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라도,
시댁이 제주라서 언젠가 한 번 가보리라 마음먹고 있었는데
시인이 살고 있는 줄은 몰랐네요.
류외향, 시인의 이름을 마음에 새겨둘랍니다.
마라도에 가면 꼭 자장면을 먹고 와야 한다는 이야기는 들었어요.
제주도 사는 큰댁 식구들도 먹었다고 하던데 어디서 먹고 왔는지는 모르겠네요.
님의 글을 읽고 나니
마라도가 우리나라 최남단에 있는 섬이 아닌
아름다운 사랑이 피어나는 시인의 섬으로 기억될 것 같아요.

달빛푸른고개 2008-09-18 13: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얼마전, 제주에 사는 후배 하나가 훌쩍 김포에 내려서 찾아왔습니다. 서울 생활을 접고 고향으로 내려가 학원운영을 시작했는데, 채 2년을 버티지 못하고 구직차 올라온 길이라고 합니다. 한치 앞을 내다보기가 쉽지 않은 세상정황에 대한(본인이던, 모든 사람들이던간에)한숨을 막걸리잔에 녹여보곤 했습니다. 사람살이가 어디라서 특별히 다르지는 않겠지만, 역시 제주의 빼어난 풍광만큼은 손색이 없겠지요. 저도 몇 번 찾아가본 적이 있었는데, 서귀포 앞바다가 저기쯤 보이는 서점이 꽤 인상적이었던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