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SF 걸작선
브루스 스털링 외 지음, 데이비드 G. 하트웰 외 엮음, 정혜정 외 옮김 / 황금가지 / 2004년 4월
평점 :
절판


 책을 펴고 목차를 들여다보았을 때, 내가 얼마나 SF 소설에 문외한이었는지 깨달았다. 필립 K 딕이 다인 줄로만 알던 편협함이란....

 그리고, 책을 읽기 시작한 지 며칠이 지나도록 채 절반을 넘기지 못하는 가운데 또 하나의 사실을 깨달았다. ‘맙소사, 내가 SF 소설을 읽고 이해하기 힘들어 하다니!’ 하는 놀라움의 배후에는, <SF는 쉽고 흥미진진한 심심풀이에 불과하다.>는 근거 없는 편견이 도사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랬다. 나는 SF라는 장르를 새로운 아이디어는 넘치지만 문학적 품격은 없는 것이라고 은근히 폄하하고 있었던 것이다.(이 대목에서...미해결 된 편견이 하나 더 드러난다. ‘문학적 품격이 있는 책은 대개 어렵다.’ 혹은 ‘쉬운 책은 대개 문학적 품격이 결여되어 있다.’라는.... 아이고, 내가 이토록 편견이 많은 인간이었다니!)

 

 우선 끝까지 읽어보고, 재독할 부분은 재독하자!는 독한 결심(?)이 없었다면 중간에 덮어버렸을지도 모르겠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건데, 처음부터 끝까지 몽땅 읽고 이해하겠다는 아집이 즐거운 책 경험을 방해한 것 같다. 왜 그랬을까? 책이기 때문에? 백 투더 퓨처나 터미네이터를 보면서 그 속에 녹아있는 과학지식까지 몽땅 이해하려고 들지는 않으면서. SF걸작선을 읽을 때에도 그래야 한다. 작가가 풀어놓는 과학적인 근거에 골몰하지 말고, 작가의 상상력이 창조해 놓은 설정 자체, 그 멋진 신세계에 집중해야 할 것이다. 가끔, 정 이해되지 않고 마음에 안 드는 작품은 과감하게 넘어가기도 해야 한다. (내 경우에는 '실러캔스'를 붙들고 일주일이 넘게 헤맸다. TT)

 

 접근 방법이 잘못되어 힘겹게 읽어내긴 했지만, 책 자체는 상당히 매력적이다. <에일로라>나 <사막의 눈> 같은 작품을 만난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울만 하다. 600p가 넘는 분량에 스물 세편의 SF 단편들은, SF 매니아들에게는 멋진 선물이 될 것이다. 나? 나는 예비 SF 매니아 이므로...앞으로, <SF 사전>으로 활용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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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우맘 2004-07-16 08: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읽은 지 얼마나 되었다고....게로포드가 무슨 내용이었는지 생각도 안 나네요.TT

진/우맘 2004-07-29 2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굉장히 어려워요. TT
 
세계여성소설걸작선 1
조안나 러스 외 / 여성사 / 1994년 8월
평점 :
절판


페미니즘과 SF 이 두 가지는 모두 대중적 인기를 크게 끌지는 못하고 있다. 그런데 이 두 가지가 합해지면 형편은 달라진다. 페미니즘 SF는 SF가 갖는 제한되지 않는 상상력이라는 강력한 도구를 사용해서 여성문제에 접근한다. 시간적, 공간적, 생물학적 한계를 뛰어넘어 사회를 이루고 있는 기본적인 가정을 뒤엎어 버리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억압된 사회구조 속에 미묘하게 녹아 있어서 쉽게 잡아내기 힘든 여성 문제를 극명하게 드러내 준다. 필요없는 것을 잘라내고 본질만을 보여주기 때문에, 당연하게 여겨지던 것이 더 이상 그렇지 않고, 때로는 현실을 소름 끼칠 정도로 날카롭게 보여주기도 한다.

---------역자 후기 中

점 빼는 것만큼이나 간단하게 성전환을 할 수 있는 사회를 상상해 봤는가? '점점 나아지고 있다.'는 낙관론과는 달리 여성의 권리가 과거보다 훨씬 줄어든....어머니조차 아들에게 '관리'되고, '여성교화위원회'라는 단체가 설치는 미래는? 여기, 그러한 세계들이 있다.

솔직히 나는...페미니즘에 대한 이해가 거의 없다. 성 차별 사안이 뉴스에 드러나면 잠시 분개하지만 그 뿐. 시집살이를 모르는 편안한 며느리에, 남편에게 맞아본 기억도 없고, 태반이 여성인 직장 생활을 하고 있는 운 좋은 나에게 페미니즘은 TV 속 얘기 같기만 했다. 기본적으로 페미니즘을 '불운한 여성의 권익 보호를 위한 운동' 쯤으로 얼렁뚱땅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과연 그럴까? 페미니즘의 정의를 떠나서, 나 자신도 정말 차별 받아본 기억이 없는가? 아닐 것이다. 다른 여성과 비교해 볼 때 조금 낫다는 것일 뿐, 그 이상은 아니지. 그런데 그 이상 고민하고 싶지가 않았다. 앉은 자리가 따뜻하면 생각하기가 귀찮아 지는 법. 헌데, 이 책은 그 조용한 수면에 돌맹이 하나를 던져 넣었다.

이 책 이전에, '이갈리아의 딸들'이 그랬다. 이갈리아는 좀 더 노골적으로, 돌맹이가 아닌 바위덩이를 던져 넣었지. 이제껏 여자이기 때문에, 생물학적으로 그렇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감수해야 하는 것...이라 믿고 있던 많은 사안들이, 따지고 보면 그렇지도 않다는 사실이(출산의 고통, 수유로 인한 직업 포기 등...) 생경하고 충격적이었다. 그런데 <세계여성소설걸작선>은 그렇게 노골적이지는 않다. 이러한 점이 저렇게 부당하다고 목소리를 높이지 않는다. 대신, 무한 상상력으로 묘하게 비틀어진 세계를 살짝, 내 앞에 내려놓는다. 그 세상을 넘어다 보며 나는, 어느새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그렇다면, 머리 아픈 책 아닌가? 절대 그렇지 않다! 이러니 저러니 하는 생각은 책을 덮고 나서야 자연스레 배어나오는 것이고, 읽는 동안은 별로 다른 생각을 할 틈이 없었다. 8편의 단편이 모두 흥미진진하다고는 못하지만, 각자의 색깔이 분명한 이야기들은 중고등학교 때 로맨스 소설 읽었던 것과 다름 없이 술술 읽혔다. 코니 윌리스나 어슐리 르귄 같은 이름들이 슬슬 익숙해지는 기분(얼마 전 'SF걸작선'을 읽은 기시감 때문에.^^)도 즐거웠다. 재미있고, 개성있는데다 새로운 사고의 지평을 열어 주는...책이 가져야 할 여러 미덕을 겸비한 이 작품의 결정적인 단점 하나는....<품절>이라는 것이다! 아깝다. 나 역시 세계여성소설걸작선2를 읽고 싶건만...흑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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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6-26 11: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panda78 2004-06-28 1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흐.. 이제 거진 다 읽으셨겠군요. ^^
 
밥벌이의 지겨움 - 김훈 世設, 두번째
김훈 지음 / 생각의나무 / 2003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거의 중반에 닿을 때까지, 나는 이 책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전반적으로 내 심사를 뒤트는 무언가가 숨어 있는데, 그게 뭔지 딱 집어낼 수 없어서 답답했다. 어느 정도는, 몸을 사리는 작가의 지나친 신중함 때문이기도 했을 것이다. 나, 아직, 피가 끓는 나이인가?^^금방 제 꼬리를 밟으면서도 길길이 날뛰는 장정일같은 스타일에 매혹되던 터에, '나는 그런 질문을 괴로워할 뿐, 거기에 대답하지 못한다.'는 식의 뜨뜻미지근한 문장들은 자꾸 신경줄을 건드렸다.

그런데, 그 문장에 찌푸린 미간이 미처 펴지기도 전, <노출>이란 제목의 짧은 단상을 읽고 나는 그만 "픗!"하고 웃어버렸다. '올 여름 여자들의 노출이 너무 심하다고 텔레비전은 개탄하고 있지만, 너무 그러지들 말아라. 곧 가을이 오면 여자들은 다시 옷을 입을 것이다. 좋은 것을 좀 내버려두라는 말이다.' 하하, 그의 문장이 너무 <귀여웠다>고 하면, 이 노회한 작가에게 불쾌한 일일까? 48년생, 인생은 육십부터라는 요즘, 아직 젊은 나이다. 그런데도 유독 나이 먹은 척, 나이먹음을 무기로 자신의 속내를 이렇듯 눙치고 들려는 작가가 , 그 유들유들함이, 이상하게도 즐거웠다.

그렇게 한바탕 웃고 나니 눈 앞이 좀 개이는 것 같았다. 그리고는, 내가 왜 그렇게 앵돌아졌었는지 짐작이 갔다. 첫 페이지가 문제였다. <아날로그적 삶의 기쁨>이란 소제목 곁에 발췌되어 있던 글. '남성성의 본질이란 아마도 결핍일 것이다. 스스로 결핍이 아니라면 남자들이 여자를 그리워할 리가 없을 것이다. 오입을 하고 바람을 피울 수밖에 없는 남자들도 다 그 결핍 때문인 것이다.' 글 안에 어우러진 문장을 톡, 끊어 내어 딴지를 걸고 싶은 생각은 없다. 나는 이 문장의 앞도 뒤도 몇 번 찬찬이 훑어보았다. 하지만, 그리 읽고도 불쾌한 마음은 사그라들지를 않았다. 책 속 어딘가에 조용히 녹아 있을 수도 있는 생각이다. 하지만, 소제목 옆에 버젓이 전시될만한 문장은 아니지 않는가? 한 권의 책이지만, 읽는 사람이 무수한만큼 읽는 방법도 각색일 것이다. 다 내맘같지는 않을지언정, 첫인상을 구겨놓아 제대로 글을 즐기기까지 꽤 많은 시간을 겉돌게 한 이 문장이, 이 위치가, 나는 여직 용서가 안 된다.(뭐, 안 돼도...별 수 없지만.^^;)

전반부의 삐걱임, 그 원인을 인식하고 나자 책 읽기는 조금 수월하고 즐거워졌다. 김 훈, 역시 무시할 수 없는 필력의 소유자이다. 대부분의 수필집은 용두사미, 말미로 갈수록 기력을 잃고 오락가락 하거나 자기자랑에 빠지기 십상이다. 그런 불쾌한 경험이 이제껏 <수필은 싫다>고 생각한 주된 이유였다. 헌데 <밥벌이의 지겨움>은 뒤로 갈수록 은근히 끓어올랐다. 세번째 소제목 <큰 풍경은 보이지 않는다>에서 풀어낸 염전이나 11월의 이야기는 경륜이 아니면 쓰기 힘든 것이 아닐까...싶어 숙연해졌다. 그리고서는 내 멋대로, 본문은 이 세번째 소제목에서 끝났다고 규정해 버렸다. <거리에 관한 짧은 기록>이나 <한 편의 문학평론과 하나의 인터뷰>는 흠잡을데가 별로 없었지만, 그 분량과 방식의 이질성 때문에 '수필은 용두사미'라는 내 편견이 자꾸 들쑤시고 일어날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바람소리는 바람의 소리가 아니라, 바람이 세상을 스치는 소리다.' ......글은, 특히나 수필은, 그냥 글이 아니라 작가가 세상을 스친 소리가 아닐까? 김 훈, 이 사람이 세상을 휘휘 돌아 스친 소리는, 아주 간혹 내 귀에 거슬리기도 하였지만....근사하고 그윽하여, 제법 들을만 한 것이었음에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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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우스 2004-06-16 1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진 리뷰였습니다. 그나저나 김훈은 마초입니다. 쾌도난담에서도 그걸 훌륭히 입증했고, 이 책에서도 그러는군요. 글 잘쓰는 마초는 더 나쁜 것 같습니다.
문제: 제가 추천을 했을까요, 안했을까요?
1) 했다 2) 기타

* 서재 지붕 때문에 고생하셨죠? 감사드립니다. 넙죽!

진/우맘 2004-06-16 1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 잘 쓰는 마초는 더 나쁘다....제 찝찝함의 실체를 콕 짚어 주시는군요.^^

chaire 2004-06-18 2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초, 맞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그의 산문은 분명, 퍽 매력적이었어요. 글 잘 쓰는 마초는 더 나쁘다? 후훗...^^

책읽는나무 2004-06-20 09: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도 읽으셨군요!!
반갑네요....ㅎㅎㅎ

남자들의 결핍이란 말이 저도 조금은 신경이 거슬렸지만.....신경이 거슬린다는것이 내가 여자이기때문에 약간의 자기방어적인 식견이 포함된것이 아닐까?? 란 생각으로 일단 접었습니다...나는 남자,여자를 딱히 구별하는것을 아주 싫어하지만...그렇다고 여자는 남자를 무시하고...남자는 여자를 무시하는 처사는 더 옹졸하단 생각이 들더군요!..그래서 상대방의 성을 존중할필요가 있단 생각을 좀 했는데...내가 일단 남자가 아니다보니...남자들의 결핍일수도 있다라는 말을 일단 접수하기로 했었죠!!..ㅎㅎㅎ(지금 내가 무슨말을 하는것인지??)
반대로 여자들도 결핍이 있을수 있는데...그것을 당당하게 표현해낸 여자 수필가가 없단것이 좀 아쉽더군요!!
진우맘!!....그대가 한번 써보지죠??...^^
 
공룡둘리에 대한 슬픈 오마주
최규석 지음 / 길찾기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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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 이야기...사랑은 단백질.

매우 당혹스러웠다. 끌끌거리며 웃다가 문득, '어..이거 웃으면 안 되는거 아닌가?' 싶고, 다음 순간엔 방금 전의 자각이 무색하게 키득거리고....그 소리가 잦아들 때 쯤 눈물이 비치고. 미친 사람이 된 기분이었다. 세 사람 중에 나는 아마도 안경 쓴 놈인 듯 하다. 먹을 땐 먹고, 그 후에는 슬픈 척 뼈를 빻는.... 내가 누리고 있는 소소한 행복이, 어쩌면 다른이들의 피와 땀이 배인 흔적 위에 세워진 것은 아닌가, 잠시 섬뜩한 자문을 던진다.

다섯번째 이야기...선택

내 인생은 원만히 풀린 편이다. 미래를 담보로 뼈 아픈 선택을 해 본 경험이, 내겐 없다. 헌데 책을 들여다 보며 떠오른 생각 하나....선택의 기회가 없었던 것이 아니라, 당면한 선택에 대해 치열한 고민을 해보지 않은 것이 아닌가? 매번의 선택에서 나의 기준은 '더 쉬운 것'이었던 듯 하다. 쉬운 길로만...쉬운 길로만...그 길 끝에서 '나'는, 도대체 어떤 모습일까.

책은, 두 종류로 나눌 수(도) 있다. '쉽게 읽고 어렵게 덮는 책'과 '어렵게 읽고 쉽게 덮는 책' (뭐? 쉽게 읽고 쉽게 덮는 책은 왜 없냐고? 딴지 걸지 말자.-.-) 이 낯선 만화는 전자이다. 보는 것은 너무도 즐겁고 쉬웠다. 하지만 매번, 하나의 작품이 끝날 때마다 마음이 무거워졌다. 내가 애연가 였다면 아마, 담배를 한 대 꺼내 물었을....그런 기분. 만화를 보며, 이렇게 당혹스러웠던 적이 있던가? 세상에는 많은 종류의 웃음이 존재하지만, 웃으면서 이런 죄책감을 느껴본 것은 처음이 아닌가 싶다. 

최규석, 이 사람의 만화는 매우 파격적이다. 엄청난 함의를 품고 있으며 거침이 없다. 이제껏 그런 만화는 많았다. 하지만.....삶에 대해 이런식으로 질문을 던지는 만화(혹은 글)들은 대개 거칠었다. 토해낸 사람의 고충이 반영된 듯 작품 자체도 잔뜩 인상을 쓰고 있었다. 그런데 최규석은 다르다. 그의 작품은 너무도 깔끔하고 잔잔하다.(사랑은 단백질을 보라!) 그렇지만 그 속내는.... 다 읽고 나자, 마치 정리되지 않은 벽장을 연 듯한 기분이 들었다. 아귀가 꼭 맞아 있는 벽장 문을 무심히 열었는데, 뒤엉킨 이불이며 온갖 잡동사니가 우르르....밀려 떨어질 때의 당혹스러움. 아마, 최규석이 열어 준 벽장은, 내가 이제껏 모른 척, 무심한 척 하고 버티던 현실의 일부분-어둡고, 적의에 찬-을 여며 둔 내 머리, 혹은 심장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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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심이 2004-06-16 13: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코멘트 저장 안하고 추천 눌렀다가 코멘트는 다 날라갔네요..T.T
저도 오늘 이책 받습니다. 얼른 읽고 싶어져요..

진/우맘 2004-06-16 14: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무서운 게 딱! 좋아! 10 딱이야 22
이구성 지음 / ILB(아이엘비) / 2003년 7월
평점 :
품절


우리 반 녀석이 열심히 들고 다니기에 한 번 들여다 봤습니다. 저는, 책에 대한 편견은 갖지 않으려고 애씁니다. 저 자신도, 책 못지않게 만화를 좋아하지요. 하지만 이런 책은....안 만들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안 그래도 무서운 일이 많은 세상입니다. 여름이 되면서부터는 TV 켜기가 두려워져요. 갈수록 수위가 높아지는 <납량 특집>들에다, 시간대도 고려 않고 대책 없이 튀어나오는 공포영화 예고편 때문에 다섯 살 딸아이가 제 무릎으로 뛰어들어온 것이 한 두 번이 아닙니다.

저요, 겁이 많은 편이지만 이 책을 읽고 무섭다는 생각은 들지 않더군요. 예전에 넘겨봤던 책에 비하면 전반적으로 그림이 잔인하지 않고, 내용도 평이한 편이었습니다. 하지만...아이들은 상상력이 풍부하지요. 아직도 빨간마스크의 존재를 굳게 믿고, 팥죽송을 들으면 죽는다고 생각해요. 이 친구들이 이 책을 읽고, 밤에 혼자 잠자리에 누워 어떤 생각을 하게 될지 떠올리면....속이 상하네요.

작가가 공을 들여 만들고 출판사가 힘써 다듬은 모든 책들은 다 제나름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냥 한 번 훑어보고, 마음에 안 든다고 해서 <악서>라고 불려도 좋은 책은 없지요. 그러나...이런 책은 이미 너무 많습니다. 호기심에 기생해서 무섭게 팽창하더니, 이젠 그 어마어마한 분량으로 아이들의 눈을 가리고 있습니다. 유사한 책이 필요 이상 넘친다는 점, 바로 그 점이 이 책의 가장 큰 문제점이 아닐까요?

이젠 그만 만들어 주세요. 무서운 이야기는  친구들과 수학여행을 가서 이불 뒤집어쓰고 하는 것이 제격 아니겠습니까?

아까 언급했듯이 이 책은 다른 출판사의 공포물에 비하면 아주 양호한 편이었습니다. (예전에 훑어 본 어떤 책은 사지와 목이 날라다니는, 말 그대로 유혈이 낭자 하더군요.) 그런데 출판사 이름을 보니 ILB...I Love Book이라는 좋은 뜻을 가졌더군요. 어쩌면 정말 책을 사랑하시는 분들이 모인 출판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냥 하소연 한 번 해봤습니다.

너무 주제넘었지요? 밥 먹고 살기 힘든 세상이라는 거 저도 어느정도 압니다만....내 아이에게 꼭 읽히고 싶은, 그런 기준으로 책을 만들어 주신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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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우맘 2004-06-11 1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을 써서 출판사에도 메일로 보내려고 했더니....검색창에 홈피가 안 뜬다.(안 떠서 다행이다...고 은근히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소심쟁이 진/우맘.)

▶◀소굼 2004-06-11 1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책..제목이 특이해서 봤는데...
좀 위험해 보이긴 하더군요;정신건강에 별로 좋지 못한;

마태우스 2004-06-11 1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우맘님, 죄송합니다. 출판사를 알아보니 제가 지분을 가지고 있는 출판사더군요. 알아서 조치하겠습니다.

가을산 2004-06-11 1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아이들 만화책, 잘 골라야 할 것 같아요.
딱 좋아 시리즈니, 공포물... 황당 시리즈... 이런 것은 글로 하면 서너쪽이면 될 것을 갖다가
내용 없이 그림만 키워서는 종이 낭비, 물감 낭비, 돈낭비! 열받아요.
초창기에는 인기가 좋았던 그리스 로마 신화도, 갈수록 지면 낭비가 심해지는 것 같아요.


아영엄마 2004-06-11 13: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 선생님이 독서한 책을 가져와야 독서 카드 검사를 해주시는데, 이런 책은 가져 오지말라고 했다더군요.. 참고로 저희 집에는 이런류의 만화는 없습니다.^^(마태우스님 부자 맞나봐.. 출판사 지분도 가지고 계시고.. ^^*)

호랑녀 2004-06-11 1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속상하죠? 제가 아는 출판사 사람들은,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좋은 책 만들려고 참 애쓰던데, 세상 사람들이 다 제맘같진 않습니다 ㅠㅠ 먹을 거 가지고 장난치는 거 못지않게 나쁩니다.
더 문제는...
이런 책을 학교에서 하는 도서바자회때 팔겠다고 업자가 들고오고, 교장은 편드는... 현실입니다. 이 책 빼느라고 작년에 그렇게 싸웠는데, 비슷한 다른 책들 무지하게 깔더만요...ㅠㅠ

sooninara 2004-06-11 14: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진이가 이런책을 안보여주니..친구집에서 보고 와서 아주 외워 버렸습니다..
손목이라니..공포의 엘리베이터라니...그래서 책도 만들었잖아요..'무서운게 딱 좋아'와 '재미있는게 딱 좋아'라고^^
아이들 키우기 넘 힘들어요..

진/우맘 2004-06-11 15: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니님> 에휴....어찌보면 당연한 반응이고, 잠깐 겪고 넘어가게 되면 좋지만, 이런 책에 너무 맛을 들여버리면.... 정말, 아이 키우기 힘들어요. 먹을 것도 읽을 것도 모두 독기가 가득하니.
호랑녀님> 저런 리뷰를 쓰게 된데는 호랑녀님의 의지도 많이 작용했습니다. 우리 같이 힘내요. 화이팅!
아영엄마님> 멋진 선생님, 멋진 엄마군요.^^
가을산님> 물감 낭비....공감합니다.
마태님> 아무리 바쁘셔도 잘 관리했어야지요! 이번만 봐주겠어요!!
소굼님> 헉...설마, 도서관에 저 책이 있는 건 아니겠죠?!